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40화 (340/458)

384화 트로이카 (6)

거대한 흑색 풍뎅이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 금속으로 된 수 미터의 까만 날개를 피릭거리며 점점 거대해지는 모습.

산등성이와 맞닿은 푸른 하늘이 그것만을 위한 배경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 피리리릭

풍뎅이가 날갯짓의 횟수를 줄이며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 쿠콰쾅! 구구구궁!

풍뎅이는 착륙에 필요한 최소거리 따위는 없는 것처럼 땅에 들이박듯 내려앉는다.

착륙 장소인 산장 바로 앞쪽에는 기 스-제 - 라이뿐이 었으므로 착륙에 비틀거리는 자는 없다.

지이이잉, 소리와 함께 풍뎅이의 날개가 열린다.

내린 것은 별빛청여우.

조종사가 착용한 새하얀 수녀복은 새까만 풍뎅이와 대조를 이뤘다.

이마에 세 가닥 붉은 인이 찍힌 여우 가면마저 새하얗다.

햇빛에 비치는 가면을 바라봤다.

레안드로 후작과 일대일로 상대해 갈고리로 심장을 훑어냈던 여자.

코드네임,별빛청여우.

하지만 예전에 봤을 때는 가볍게 뛰어내리던 여우는 조종석에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다.

직선으로 뻗은 초록색 빛이 나를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훑어갈 때.

“…아. 어마어마한 수치야……

그녀가 깊은 탄식을 뱉으며 나를 바라본다.

- 달그락.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여우 가면의 옆자리.

한때 내가 앉았던 그 자리에.

수없이 본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인간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홀린 듯 바라봤다.

그 강렬한 시선에.

주위가 멈춘 것 같았다.

정상에 서 있는 기스-제-라이도, 가면에서 뻗는 초록색 빛으로 나를 스캔하는 별빛청여우도 그 순간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꿀꺽 침을 삼켰다.

움직이는 목울대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달빛을 받은 눈빛에서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어.’

‘예전보다도 자세히.’

‘기억이 강화되고 있는 건가?’

‘이번에도 꿈의 형태인가? 아니야, 저 모습은 아예 자기 기억처럼……

혹색 후드를 두른 그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때.

一 띠링!

[이미 완료한 시나리오입니다.]

[달성한 호감도(70)에 따른 보정이 반영되었습니다.]

[달성한 레벨(60)에 따른 보정이 반영되었습니다.]

[클리어 보정이 반영되었습니다.]

[현재 해당 시나리오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저번과 같은 메시지와 함께.

한 번도 본 적 없는 글자가 새로 떠올랐다.

[클리어한 시나리오에 알 수 없는 왜곡이 반영되었습니다.]

[해당 시나리오가 레드 플레이크와 접촉합니다.]

[시나리오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시나리오 승격을 인지합니다.]

[함께 시나리오를 클리어해 보세요! 상시 시나리오,‘진화하는 조력자’가 활성 상태입니다.]

글자는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나리오 자체 승급 특전으로…….]

그런 건 궁금하지도 않았다.

눈빛이 모든 걸 말해 준다.

레나가 나를 점점 더욱 선명하게 기억해 내고 있다.

그것만이 이 찰나의 시작이고.

끝이다.

우리가 함께한 세계선은 어딘가로 영원히 사라졌지만.

모든 것이 기억으로 남아서.

그녀와 나를 이어 주고 있다.

“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에게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너무 큰 소리를 내면,큰 소리에 눈앞의 상대가.

이 순간이.

꿈이 깨질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듯이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만 새어 나온다.

레드 플레이크의 조사를 단번에 추적한 수완을 가진 거물이라고는, 누가 보아도 믿어지지 않을 소녀 같은 목소리다.

“당신은……

물론 나에게는 숨소리 하나까지도 아주 잘 들린다.

세계선의 변동 때문일까.

레나의 분위기는 꽤 변해 버렸지만, 나쁜 변화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거물이 된 느낌이다.

몇 번이고 변화하는 그녀를 계속

보아 왔기에 이제 차이점을 자세히 짚어낼 수 있다.

‘처음 보는 장비가 많아.’

‘인지 범위도 넓어진 것 같다.’

'옷이 특수한 재질이군.’

걱정이 우스울 정도로.

레나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세계에 우뚝 서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이야.’

세계선이 변동되더라도.

시나리오 클리어의 효과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오랜만이다,레나.”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 ♦ 플러스

“…그렇게 된 거로군.”

레나는 엠버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트로핀 여단의 제3 본부장.

제국 중서부와 남부를 담당하는 고 위직이 었다.

‘T&T를 대체하는 녀석들인가.’

예상대로다.

트로핀 나냐우의 증발로 T&T에

중대한 변경이 가해지더라도.

시나리오 클리어.

그것으로 달성한 레나의 지위는 유사한 형태로 이어진다.

견고한 존속이다.

“분명 다시 만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레나가 환하게 웃었다.

이 세계선에서 만난 적 없는 나를 다시 만날 거라고 확신했다면.

기억이 얼마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을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군.”

“다음 생에서는 도와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네요.”

기억이 그녀를 휘감고 있다.

미안한 기분이었다.

이번 세계의 자신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약속을 그녀는 마음속에 단단하게 묶고 있던 것이다.

‘그냥 알아만 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상태창에 떠오른 것처럼 〈진화하는 조력자〉로서 시나리오를 함께 클리어하면.

그녀에게도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마왕 강림이 앞으로 2년.’

‘어차피 레나도 휩쓸릴 거라면…

확실히 협력 관계를 맺어 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어.’

생각에 잠긴 사이.

“이제 끼어들어도 될까?”

옆에 서 있던 네크로멘서가 문득 말을 걸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레나와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른다.

주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기다려 준 기스-제-라이의 배려가 느껴졌다.

“이런. 너무 세워 둬서 미안해요.”

레나가 살짝 얼굴을 붉히고.

네크로멘서는 웃었다.

“큭큭큭……. 절대 아니야. 굉장히 흥미롭군. 세계선이 초기화되어도 기억을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짜릿한걸. 원래도 그랬지만, 너희 둘 모두 정말 마음에 들어.”

네크로멘서는 길고 가늘게 찢어진 입가에서 핏물이라도 홀릴 것처럼 진하게 웃었다.

“이제 소개할까? 이쪽은 암살교단 소명수녀,엘윈 에사우라고 해.”

이제 막 풍뎅이에서 나오고 있는 여우 가면을 바라봤다.

“굉장한 격투가지만 취미 활동으로 날아다니는 폭탄도 운용하고 있어. 너에게는 구면일 테지? 코드네임은

알고 있을 거고.”

- 탈칵.

가벼운 소리와 함께.

가면의 한쪽 눈에서부터 뿜어져 내 몸을 훑던 녹색 광선이 멎었다.

별빛청여우는 작동을 멈춘 가면을 벗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골 형제,만나서 정말 반가워. 수녀,여우,내키는 대로 불러 줘. 다음 회귀 때 만난다면 인사라도 부탁할게.”

- 우우웅

작동을 멈춘 가면 아래로 희미한 잔상이 흩어진다.

허공에 희미한 파장이 번진다.

‘복잡한 물건이군.’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레안드로의 혼신을 다한 검기를 그대로 ‘투과’시킨 아티팩트니까.

“크크큭… 가면까지 벗는 거냐.”

“기스,네 친구니까 상관없잖아? 종합 스캔 결과도 정말 엄청나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걸.”

‘저런 캐릭터였나?’

확연히 한 단계 내려간 경계.

부르는 호칭도 ‘해골 친구’에서 ‘해골 형제’로 친근해졌다.

세계선이 바뀌어서일지도 모른다.

수녀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더욱 부드러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왕의 강림이 예전보다 훨씬 앞당겨진 이런 세계에서?

‘아마… 아니,분명히.’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알 수 있는 분위기였다.

‘기스-제-라이와 함께라서겠지.’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수녀는 기스-제-라이와 함께 있는 순간이 무척 편안해 보인다.

저런 편안한 모습도 처음이지만.

- 人르

가면 아래를 덮은 새파란 잔상이 완전히 흩어진 뒤.

드러난 수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서 그녀가 가면을 벗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나타난 건 아는 얼굴이었다.

“당신… 유를람의……!”

여관 주인이 살해당한 후 나타난, 묘한 분위기를 풍기던 여관 주인.

별빛청여우는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시,그거였나.’

지금 돌이켜 보면 여관 주변에서 풍뎅이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별빛청여우는 기스-제-라이의 황제 암살이 실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찾아왔다.

근방에서 여관 주인 행세를 하며 기다렸다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수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야?”

“혹시 유블람에서 여관을 한 적 있나?”

“유를람? 잠깐 들르긴 했지만,전혀 아닌데? 그곳 여관 주인은 1층만 서빙하는 할아버지라고.”

“노인이라고……?”

“그래. 80살은 넘어 보이던걸.”

전혀 달라졌다.

이 세계선은,내가 여관 주인을 죽이지 않았다는 차원이 아니다.

유블람이라는 도시 자체가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다.

“내가 경험한 세계선은 여행자를 팔아먹는 자가 있었다.”

유블람의 여관 주인을 죽이게 된 정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내가 유블람의 병사들을 죽인 것.

방앗간에 침입해서 여관 주인을 살해한 것.

한참 뒤에 레나와 들른 여관에서 가면을 벗은 수녀를 봤던 것까지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수녀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여관 주인이었다고?”

“그랬지.”

“그러네, 빈 여관이면 차지하지 않을 이유도 없어. 내가 할 만한 일이기는 하네.”

그녀가 비활성화된 여우 가면을 슬쩍 들어 을렸다.

“여기엔 최면 기능도 있으니까. 여관 따위야 눌러앉으면 됐겠지.”

얼마나 많은 기능을 갖고 있는지 짐작되지도 않는 물건이다.

유산이라고 했던가.

‘레드 플레이크……

잠재력의 끝을 알 수 없는 집단.

그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기스-제-라이가 서 있는 산장을 보고 문득 떠올린 게 있었다.

“잠시만.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응? 물론이야. 안 그래도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했어.”

一 끼긱.

네크로멘서가 열어 준 문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온통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채 창문 하나 없는 산장이지만,미리 준비한 듯 안쪽에도 환한 등불이 켜져 있었다.

안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는 준비된 듯 제국 지도가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예전과 달리 피 냄새는 없다.

치웠는지 일으켰는지 벽에 매달린 동물 박제도,사냥꾼들이 만들었던 〈트롤 가족〉도 없다.

물론 확인하고 싶은 건 다른 것.

계단을 딛고 2층으로 을라갔다.

환한 등불에 사방이 비친다.

‘이쯤이 었는데.’

침대 곁을 살피고.

곧 발견한다.

〈당신이 트롤을 죽이고 싶다면〉 산장에 있던 캐빈 애슈턴의 책은

그대로다.

이 책은 다른 애슈턴의 책과 달리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다.

- 따르륵!

〈트롤은 사랑이라는 개념을…….>

〈트롤을 사냥하려는 당신…….>

〈약한 쪽을 살해하면…….>

〈…복수를 차갑게 식혀 먹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읽는 둥 마는 둥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지혜를 을리는 게 목적이 아니다.

마지막 장.

〈깨진 조각들과 접촉할 것〉

글자는 어지러움 없이 읽혔다.

그리고.

<3/7>

〈접촉개시…….>

〈일부 시나리오 승급 시작…….>

머릿속에서 오래된 몇 가지 실이 꿰어진다.

“뭐 찾는 거 있어?”

기스-제-라이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걸 보려고 했다.”

나는〈3/7>이라는 숫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뒤로 돌았다.

애슈턴의 책을 그대로 손에 쥐고 페이지를 펼친 채.

“저번에도 같은 질문을 했는데……. 달리아크의 정보 경매상. 그자가 레드 플레이크의 일원인가? 그리고… 레드 플레이크는 캐빈 애슈턴과 대체 무슨 관계지?”

- 저벅.

네크로멘서의 뒤로 별빛청여우가 걸어왔다.

“그건,내가 대답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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