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53화 (353/458)

396화 트로이카 (18)

그때 였다.

통로 입구 쪽을 지키던 누군가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원한다면, 지금에라도 얼마든지. 수녀에게 연락해 줘? 석판 지도는 아직 분석하지 못했지만,엠버에 데려다주는 것 정도는 당장 할 수 있거든?”

시아와 레드 플레이크의 거래.

아무리 소녀 공작을 혐오하여도, 전前 유령 서열 2위 시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 자신이다.

로랑스 타르티에를 파멸시키더라도, 굳이 그녀 자신의 몸까지 불사르며 그럴 생각이…….

‘아예 없진 않지만.’

어쨌거나.

제국 남부에서 난장을 치더라도.

원할 때 언제든지 엠버의 벙커로 피신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계약은 아주 중요하다.

“흐음……. 그럴까나.”

유령은 자신이 모두 정리하고 싶다는 시아의 요청으로.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해

밖에서 기다려 준 기스-제-라이를 보며 시아가 밝게 웃었다.

“좀 더 아슬아슬할 때 부탁할게. 재미는 다 보고 가고 싶으니까.”

네크로멘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여기까지 굳이 기어들어 온 거야?”

그녀의 시선은 쓰러진 시체를 향하고 있었다.

“눈치는 진작 챘을 텐데 말이야. 너를 어지간히 좋아했나 봐?”

“그보다는……

시아는 꽃무늬가 세공된 반투명 그물 장갑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공작 그놈이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달려들지 않았을 텐데.”

“무슨 상관이지?”

“거지 같은 새끼지만……. 그놈 곁에 있으면 휘말려서 엉뚱한 생각 할 겨를이 없어지거든. 사실 그놈 혼자 유령을 통솔한다고 봐야 해. 확실히 사라진 것 같아.”

기스-제-라이가 흔들리는 시아의 붉은 눈을 바라봤다.

“과연… 레드 플레이크도 녀석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조금 불안한걸? 마왕의 기운을 탐색하는 장비는 작동시킨 상태지만……. 보티스의 권능을 전혀

빌리지 않고 다가오면, 완벽하게 감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기스-제-라이는 비밀 통로 안에서 계속 새끼줄을 꼬는 유령들을 보며 말을 맺었다.

“저런 녀석들 하나도 안 건드리고 바로 우리를 찾는다면 말이야.”

- 달그락.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칼자루를 쥔 손을 쥐었다 폈다.

서열 6위.

상위 유령이 에라스트까지 들어와 사태를 대부분 눈치채고 시아에게 살해당한 지도 열홀째.

그의 실종을 제국 황실에서 모를 가능성은 없다.

- 토토

一1 —1 •

손끝으로 칼자루를 두드렸다.

작은 소리가 구축한 요새 안에서 울린다.

이곳은 전초기지.

죽은 자들의 요새.

남부에 오려면 반드시 경유하는 도로 위에 세워 놓았다.

평범한 관문처럼 보이지만.

지하에 거미줄처럼 뻗은 거대한 터널과 연결된 곳.

밖으로 드러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아래쪽에는 죽은 자들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전쟁……

불세출의 네크로멘서가 지하에서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황실의 전력이 정면으로

내려오면 막아 낼 수 없다.

에라스트.

유블람.

그라스미어는 그날로 끝이다.

‘루비아도 마찬가지지.’

음울하고 무거운 비감이 기지를 디딘 발끝에서부터 기어오른다.

단시일에 이 정도의 전초 기지를 만들어 낸 기스-제-라이의 역량도 어마어마하지만.

아쥬라의 마법사들.

황실 비역의 타이탄.

검주들과 이미 마주친 적이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전력이다.

'아이작도… 없고.’

기스-제-라이와 수녀를 제외하면 레드 플레이크가 전력으로 우리를 도와주는 것도 아닌 상황.

‘닥터 설아의 지원과… 정보 백업 정도일까.’

나머지 멤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쪽을 도와준다는 선택지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닥터 설아의 연구가 점점 성과를 맺어 간다는 것 정도가 위안이고.

통치 레벨 10은 아직.

계속해서 전초기지를 지키면서,

내가 할 만한 일은…….

〈도원향의 사냥꾼〉

- 스륵.

책을 읽는 것 정도.

一 띠링!

[지혜가 1 올랐습니다!]

[체력: 149]

[힘: 159]

[민첩: 174]

[지혜: 94(new!)]

레벨업도.

어떤 사냥조차 필요 없었다.

애슈턴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혜가 끝없이 을라간다.

인밴토리에 보존하기만 한다면.

회귀한 뒤에 다시 책을 읽는다면 같은 책이라도 지혜가 오른다.

기괴할 정도의 특혜라는 사실은, 몇 번을 죽고 반복하며 분명하게

깨닫고 있다.

‘스탯 합계 576.’

직업 상태창을 다시 불러온다.

[특전: 유치린의 후회]

- 지금까지 찍었던 스랫을 모조리 재분배할 수 있습니다.

- 스랫 총합 100을 달성했을 때 1회 개방됩니다. (사용됨)

- 스랫 총합 666을 달성했을 때 2차 특전이 개방됩니다.

첫 번째 특전은 스랫 200 추가.

2차 특전이 가까워진다.

처음부터 주는 첫 번째 특전보다 훨씬 강력한 혜택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쾌감만은 아니다.

올라가는 지혜와 함께.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낸, 애슈턴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거부할 수는 없지.’

- 스륵.

[지혜가 1 올랐습니다!]

[지혜가…….]

애슈턴의 책 덕분에 지혜는 계속 을라서 다시 100에 도달.

앞으로 읽을 책은 열 권.

〈욕망이 없는 개〉

인벤토리에 남겨 둔 두꺼운 책을 펼쳐 들었을 때였다.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아주,천천히.

나를 바라보며 다가오는 기척.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살아 있는 인간.

이 관문에 없던 존재다.

열 걸음.

다섯,셋,한 걸음 뒤.

왼쪽에서,손을 머리 뒤로 젖히고 뭘 하려는 건지…….

“와앗!”

남부 세 도시의 영주가 큰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들이댔다.

- 달그락.

설마 이러려고 다가온 건가 싶어 한순간 움찔했다.

“놀랐다! 놀랐어요! 놀랐죠!? 방금 반응은 진짜였어! 엄청 놀라신 거 맞죠? 눈치 못 챘죠?”

루비아가 얼굴에 발간 홍조까지 띠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 바깥에서나 볼 수 있을 순수함 같았다.

“설마 혼자 온 건… 아니군.”

그녀를 호위하는 유령들이 멀리서 간격을 두고 하나둘 제 모습을 드러냈다.

닥터 설아의 연구가 점점 탁월하게 내고 있는 성과의 결과였다.

“무슨 일이지?”

“전초기지 시찰이거든요! 영주의 당연한 의무라구요?”

하지만.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시찰 때문에 여기 온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녀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불안하신가요?”

“불안… 하냐니?”

“저도 불안하면 책을 읽거든요. 아까부터 망원경으로 지켜봤는데, 계속 책만 읽으셔서요.”

“그런가.”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계획대로 잘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다음이 있잖아요? 그때도 이어져 있는 거 아닌가요?”

어색할 정도로 밝은 목소리.

해변가에 소풍이라도 온 것 같은 소녀의 목소리로.

벌써, 그녀는.

또다시.

죽음을 이야기한다.

죄책감이 몸에 달라붙었다.

루비아가 지금껏 살아온,그리고 살아갈 삶의 무게에 죽음의 무게가 더해진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요새.

그라스미어도 사정은 마찬가지.

루비아는 어느새 시체 행정관들에게 결재를 하고,명령을 내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의 적응력은 탁월했지만.

아무래도.

‘심한 짓을 하는 걸까……

게다가 심지어 내 쪽에서 걱정을 사고 있다니.

“그런 게 아니라……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변명을 하려고 할 때였다.

- 파드득!

회오리 문양 털을 가진 전서구가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레 나로군.’

〈푸른 사자 기사단이 내려갑니다! 레안드로 바티엔느가 남부 감찰을 명령 받았습니다!〉

급박해 보이는 메시지.

수도로부터 사훌 전 동틀 때쯤 출발했다고 쓰여 있었다.

“…성으로 돌아가라.”

그녀를 굳은 눈길로 바라봤다.

편지를 확인한 루비아도 심각한 표정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예전에는 루비아를 지켜 주지 못해 밟히고,부러지고.

으스러졌던 손목뼈다.

그녀가 내 머리에 손을 뻗는다.

루비아를 지켜 주지 못하고 짓찧는 공격에 부서졌던 두개골이다.

몇 번이고 진창 속에 파묻히면서.

하지만.

언젠가 다시 그런 날이 을 수밖에 없더라도.

그게 오늘은 아니다.

“다시 만나자. 성으로 돌아가라.”

“기다릴게요.”

[S급 시나리오,‘레이 루비아’가

진행 중입니다!]

[통치 레벨을 10까지 을리세요.]

[현재 통치 도시 - 그라스미어, 유를람,에라스트]

[통치(眞) Lv.9]

[그라스미에

[던전 랭크: A더블 플러스]

[영지 레벨: 9]

[농업: 597]

- 끄로프 종족이 활약 중입니다.

- 높은 제조업 역량이 농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목축: 291]

[어업: 0]

[광업: 813]

- 대호황입니다.

- 연쇄 광맥 발견으로 인해 광업 수치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1,253]

- 새로운 광물의 전폭적 투입이 제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 그라스미어가 제국의 제조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에라스트…….]

- 영주의 주기적인 순방이…….

[유블람…….]

- 영주의 노력으로…….

레이 루비아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자신의 싸움에 충실하고 있다.

루비아가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 뎅! 뎅! 뎅!

즉시 소집의 종을 치고,내용을 전파한다.

상황을 전달하고 다시 달려온 전령 빈스본이 말했다.

“기스-제-라이 님이 준비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고작 세 시간 뒤.

- 파드득!

또 한 마리 전서구가 날아든다.

이번에는 조금 더 상세한 상황을 전파하는 편지였다.

‘역시. 레나로군…….,

제대로 첩보를 수집하는 그녀에게 감탄하고 있을 때.

-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 다그닥! 다그닥!

지축을 울리는 소리.

‘벌써.?’

전서구가 수도를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첫 번째 편지는 레나가 푸른 사자 기사단의 출동을 안 즉시 전서구를 날렸다.

전서구의 최대 속도는 평균적으로 말의 1.5 배.

게다가,땅을 박차야 하는 말이 최대 속도를 유지하는 건 전서구의 활공과 비교할 수 없이 힘든 일.

사흘 동안이라면.

전서구는 기사단이 타는 말보다 적어도 세 배는 빠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하지만.

사홀 동안.

아니,하루 종일의 질주에도.

지친 기색 없이 땅 위를 날 듯이 다가오는 말은…….

한 마리.

말 위의 사람도 물론 하나.

전서구에 쓰여 있던 사자 기사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 다그닥! 다그닥!

“후작… 인가.”

설마 기사단을 다 버리고 혼자서 달려온 건가?

가까워진다.

레안드로 바티엔느가.

회청색 머리칼의 짐숭이 점점 더 내게 가까워진다.

녀석을 보는 순간 푸른 봄 하늘이 그의 갑옷과 어우러져.

위쪽에서부터 나를 겨누는 칼날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였다.

“왜 그렇게 긴장해?”

어느새 나타난 전직 내사과장이 말을 이었다.

“시간을 벌겠는걸.”

“시간을… 버는 건가……

“4검주와 사자 기사단 하나라면, 기스-제-라이의 언데드 군단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게다가……

- 스륵.

그녀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무엇보다 당신도 있지 않은가? 검주 한 명……. 아니, 그를 포함해 푸른 사자 기사단 전체가 상대라도 이쪽이 압도적이다.”

- 다그닥! 다그닥!

‘정말 그럴까?’

유령 서열 2위의 검객.

그녀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 같지는 않다.

나와 겨뤄 본 적도 적지 않고.

‘어쩌면……

과거의 경험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엉망이야. 서열 6위인 하인즈가 증발됐는데. 수상해. 공작 새끼가 있었다면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진 않을 텐데. 농담이 아니라,정말로 실종이라도 된 것 같군. 도대체… 누가 그놈을 실종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작이 전초기지와 계속 거리를 좁혀 오는 동안에도.

시아는 여유로워 보였다.

“무모한 분이야……. 이쪽의 전력을 모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선을 넘었군.’

단기필마單驗E馬는 네크로멘서가 쳐 놓은 거미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 사냥을 시작할까?”

어느새 옆에 나타난 네크로멘서가 보드람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뛰어내릴 수 있는 관문이.

바로 앞.

“이번에는……

어차피 극복해야 할 대상.

검주도, 탑주도,마왕들도. 모두 다 넘어서야 한다.

“내가… 혼자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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