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54화 (354/458)

397화 트로이카 (19)

“단장님,직접 가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한 명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대신 제가 가보겠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이.

“아닙니다. 제가 가는 편이 가장 깔끔할 겁니다.”

모두 분대장급 기사.

“깔끔한 일 처리라면 난데……

뒤쪽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기사

레일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덮듯 기사 메텍이 크게 말했다.

“황실에서는 남부에 극히 불길한 무언가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고작 그림자 한 명이 실종된 것뿐. 단장님의 시선을 수도에서 돌리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움직이실 필요가 있을까요?”

후작은 메렉을 슬쩍 바라봤다.

“폐하께서 정확히 나와 푸른 사자 기사단을 지목하셨다. 지금 황명을 거역하라는 건가. 조언이 과하다.”

메렉은 초조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추적하지 않으셨습니까……! 단장님에 의해… 황실과 마廢의 연관성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했다.

메렉의 의견도 일리는 있다.

‘아니, 그쪽이 옳을지도.’

애초에 경우 없는 말을 지껄이는 기사가 아니다.

일리엔의 눈물을 가지고 수도의 지하도를 수색한 결과.

나타난 것은 어딘가 숨겨져 있을 마경魔境의 파편들.

실종된 인간을 개조해서 기괴하게

만들어진 괴물들이었다.

비브리오 공작과 엮인 무리를 턱밑까지 추적하고 있다.

수도에서 그를 막을 만한 유일한 인물은 제국제일검.

그러나 로랑스 타르티에는 애초에 그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기도 했고,어느 순간에 홀연히 사라져 버린 뒤 나타나지 않았다.

“보십시오! 바실리스크 토벌부터, 단장님이 일부러 수도에 못 계시게 여기저기 돌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도 똑같은 수작입니다. 제일검 로랑스 공작 각하도 사라지시고,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를 2검주께선

원래 방랑하는 분이시고,3검주야 성정이 음습하고 잔혹한 작자이니, 이 수도의 기둥은 각하십니다!”

“수상한 건 비브리오만이 아닙니다. 그놈을 추대한 태부 리브레트릴을 시작으로, 대사마,광록훈을 비롯해 대사농에,종사중랑까지. 이자들이 모여서 대체 뭘 하는지……. 폐하를 꼭두각시로 삼아……! 제국의 암막을 밝힐 분은 각하뿐입니다.”

“언동에 주의해라.”

후작은 메렉을 보며 주의를 준다.

하지만 눈빛은 어쩐지 비어 있고, 해야 할 경고이므로 어쩔 수 없이

던진다는 어조.

기사가 뱉은 불경의 수위에 맞는 준엄한 경고라고는 할 수 없었다.

‘당연한 건 굳이 말할 필요 없다.’ 같은 태도다.

“우리 기사단 얘기만이 아닙니다. 기사라면 모두 각하를 따를 겁니다. 언제든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반역이라도 조장할 셈인가.

문득 데서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티엔느 가문에서 내려온 것은. 어머니가 죽은 것은,제국에 대한 충성인가.

아니면 황실에 대한 충성인가.

황실의 칼이 되어야 하는가.

제국의 칼이 되어야 하는가.

그 둘은 다른가,같은가.

하나의 혈통에 대한 충성 따위는 흉터 같은 미련함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이 바쳐야 할 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충성일지도.

“단장님……!”

“각하!”

점점 뜨거워지는 기사들의 시선에, 후작은 문득 상념에서 깨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떻다고 해도.

자신은, 그럴 도량이 없다.

여자 하나도 넉넉히 품을 수 없는 그릇.

칼 한 자루.

말 한 필.

자신은 거기까지가 어울린다.

“그렇다면 여긴 너희들이 남아서 상황을 살펴라. 나만 가겠다.”

말리는 부하들을 혼자 움직여야 세 배는 빠르다며 침묵시켰다.

게다가,미묘하게.

남부가 마음에 걸렸다.

투둑,투둑.

신경을 찔러 들어오는 것처럼. 자신을 의식해 달라는 것처럼.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 다그닥! 다그닥!

그는 중간에 어떤 도시도 들르지 않았다.

구태여 정보를 구하지 않았다.

도시에 들러서 정보를 수집한다면 그만큼 그는 지체되고,노출된다.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달렸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바람이 몸에 척척 감기며 어서 달리라고 속삭였다.

- 다그닥! 다그닥!

갈기를 휘날리는 혹마는 장애물을 아주 간단히 뛰어넘고,별빛 한 점 없는 어둠 속도 대낮처럼 빠르게 달렸다.

인마일체.

고삐 따위는 아예 필요도 없었다.

“히히힝!”

빨리 달릴수록 미유는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태양이 에라스트로 향하는 갓길을 넘어갈 때.

지도에 없이 도로 가운데에 솟은 관문을 발견했다.

‘저건……?’

작은 바위산을 양쪽에 두고 세운 관문이다.

일 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지도가 이런 건축물을 기록하지 않을 리 없다. 게다가 최근의 갱신은 고작 두 달 전에 이루어졌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거대한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관문은 웬만한 도시의 외성보다 더 크고 높았다.

장식이나 글귀 따위는 전혀 없는 밋밋한 관문이었지만 지나는 이를 감시하고 도로에서 막는 용도로는 충분히 쓰이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선이 느껴진다.

한참 떨어져 있음에도, 관문 위에 선 자들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무 걸음.

그 안에서 레안드로는 제3의 눈이

열린 것처럼 지형을 훑어낼 수도, 날아다니는 화살도 즉시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안에 떨어지는 ‘시선’도 마찬가지.

‘준비하고 있었군.’

관문 가운데 있는 존재.

지하에 매복하는 수많은 마물을 모두 통솔하는 존재.

구태여 스스로를 감추지도 않는 존재감에 살에 소름이 돋고 삐죽삐죽 솜털이 섰다.

하지만 기분 좋은 소름이었다.

소녀 공작이 사라진 뒤 얼마 만에 느끼는 쾌감이던가.

계속해서 말을 달렸다.

이미 ‘경계’ 안쪽에 진입했다.

어쩌면 그가 수도에 있는 사이에 마계가 진입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모한 짓일까?

더 준비하고 와야 할까?

돌아갈까?

떠오르는 생각에 레안드로 후작은 피식 웃어 버렸다.

수도에선 오히려 숨어 있는 마를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이렇게 강대한 마기를 드러내는 상대라면,

‘느낌은 좀 다르지만……

마땅히 환영할 게 아닌가.

덤벼 봐라.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그에게는 바닥에 수십 겹으로 드리워진 검은 땅거미가 보였다.

솟구칠 공격에 대해 미리 반격을 생각했다.

어떤 틈을 치고, 어떻게 수습하고, 깔린 결계를 어떻게 사그라트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무모한 것도 아니었다.

일리엔의 눈물을 들고 수도 아래 지하를 파헤치며 진법이나 결계와

싸워 본 경험은 결코 적지 않았고, 준비된 하나의 세계와 겨루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다.

무엇이 환幻인가.

무엇이 꾸임이며, 비틀어짐이며, 거짓이며, 무엇이 투영이고 무엇이 원본인가.

하지만.

그가 분명히 범한 바닥의 결계는, 움직이지 않고 침묵했다.

‘의외로군.’

대신,

- 쿵!

어울리지도 않는 풀 플레이트를 입은 한 녀석이 관문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한껏 결계를 즐겨 볼까 했는데, 분위기를 깨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후작의 미간이 좁아진다.

상대 역시 강자였지만.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이 결계의 주인은 아니므로.

‘일단 이것부터.’

뭐가 됐든 마물은 벤다.

게다가 자신의 홍을 깼다면 인사

한마디 뱉어 줄 것도 없다.

레안드로는 땅을 울리며 달려오는 적을 베기 위해서 칼을,

“비브리오는 마왕 보티스의 대리자 이자 네크론 신사회의 수괴이며, 황실은 인간을 잡아먹고 복사하는 애벌레를 만든다! 로랑스 타르티에와 제국 수뇌부는 황실 지하에 비역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어! 연합과도 내통해 타이탄도 잔뜩 가지고 있단 말이다! 전쟁은 처음부터 마왕들을 강림시키기 위한 핑계에 불과해!”

“뭐… 라고?”

- 탁.

뽑지 않고 집어넣었다.

“히히힝!”

미유가 주인의 심기를 읽고 바로 자리에 멈춰 섰다.

후작은 천천히 상대를 바라본다.

마치 대본이라도 줄줄 읽는 것처럼, 빠르게 외우듯 쏟아내는 말.

누가 저런 어투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면 옳은 말조차 비웃음을 사겠지만.

여기 담긴 정보 하나하나의 깊이는 어투 따위는 무시할 만큼.

기괴할 정도로 깊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레안드로가 어렴풋이 짐작만 하는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낸다.

다시 초점을 맞춰 바라본다.

상대는 분명 마물.

갑옷을 걸쳤지만,안은 해골이다. 넘치는 죽음의 기운이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걸 말해 준다.

갑옷 안의 해골이 지껄인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계 침략에 관심 없어. 남부를 발전시키는 걸 원할 뿐이다. 그러니…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데?”

“히힝?”

밟아서 부수지 않아도 되냐는 듯, 미유가 살짝 발을 들었다 내린다.

해골은 미유를 흘끗거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제국 수도야말로 마굴 그 자체! 당신이 꼭 필요한 곳이다! 여신의 눈물로 수도의 어둠을… 계속해서, 끝까지 밝히는 거다! 그러니까… 돌아가서 힘내… 주지 않을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과 조합해, 단번에 결론이 내려진다.

“하.. • 하하하하하   ”

사람도.

“히힝! 히히힝!”

말도 폭소를 터트렸다.

눈앞의 마물이 지껄인 순간 모든 퍼즐이 꿰어 맞춰진다.

수도에서 계속 눈앞에 떨어지던 정보가 있었다.

비브리오를 조사하는 데 집중해서, 정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굳이 추적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정보는 모두 정확했으며.

그렇게 거둔 성과도 많다.

하지만.

그 미끼를 살랑살랑 그의 앞에서 혼들던 자들이 마물이었단 말인가.

‘제국 남부의… 이런 상황을 전부 숨기기 위해서?’

마리오네트처럼 마물의 끈에 묶여 휘둘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물이 뿌리는 떡밥을 관상어처럼 꼬박꼬박 받아먹으며 전진했다.

게다가.

저렇게 멍청해 보이는 녀석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더욱 지끈거린다.

해골이 계속 지껄였다.

“네가 가장 경계하는 건 마왕의

세력이겠지. 하지만 안심해도 좋아. 우리는 마왕들과 적대관계다!”

“남부의 인간들을 노예로 삼아서 말인가? 황실의 유령들까지 잘도 좀비로 만들었군.”

느껴지는 기척만도 수십.

일리엔의 눈물을 가지고 있기에 마왕과 관련된 감지 능력은 한층 증폭된 상태였다.

“아니,남부를 다스리고 있는 건 인간이다! 레이 루비아라는 훌륭한 영주가 통치하고 있다. 이미 벌써 영지 레벨 9……. 아니,너도 오} 보면 알 텐데……

루비아라.

에라스트 영주 가문의 장녀에서 남부의 지배자로 등극했다고 했다.

신경 쓰지 않았지만,엄밀히 따져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일.

‘이런 부하들까지 있다니……

대단한 마녀임이 틀림없다.

올라온 마계의 권속이 이미 그녀의 몸을 빼앗아 놀고 있는 걸지도.

남부는.

이미 마녀의 놀이터인가.

“보내 줄 건가?”

후작은 농담처럼 물었다.

해골은 곤란한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좀 곤란한데… 레벨 10이 될 때까지… 좀 더 발전할 때까지 기다려 주면……

“도시와 도시 사이의 모든 도로는 사유지가 아닌 제국의 공로公路로 인정된다. 개인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으며… 아,귀찮군.”

후작은 말을 끊었다.

“이단대처 특별법을 적용하겠다. 악마는 여하한 선익善益 없이 태어난 존재이므로 세속의 법리를 베풀지 않는다. 부조리 속에서 태어났기에 모든 종류의 자연권을 박탈한다. 악마는 오로지 제재하며,예방하고, 징벌하며,폐기되어야 한다.”

“구속拘束하지 않는다. 웅크리면 웅크릴수록 사악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정敎 1E 하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바뀔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예하지 않는다. 영구히 죄책이 추정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상조는.

공격할 테면 공격해 보라는 듯이 느긋하게 법을 옮었다.

어쩐지 본인조차 그 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열정 없이 삐딱한 자세를 하고 중얼거렸다.

“이는 악마뿐 아니라 소환한 자, 부린 자,추종한 자,몸이나 혼을 섞은 자,협조한 자,찬양한 자에게

모두 적용된다.”

“처벌은,사형. 지극히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화형이고……

후작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피치 못할 사정은 본 대상조의 기분으로 한다. 대신하여 참형을 집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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