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56화 (356/458)

399화 트로이카 (21)

- 까강!

- 까가강……!

이것은 실재.

세계를 구성하는 이치.

시간과 공간이 있고,흐름이 있고, 밖이 드러내는 무늬와 안이 품은 진동이 있는 영역이다.

낯선 곳에 처음 몸을 비집어 넣는 나사처럼,천천히.

다시 한 번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칼을 내리그으면서.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레안드로는 허공의 표면을 비집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약간의 성공.

- 과과과과과광!

- 콰광! 콰광! 콰광!

- 휘이이이이잉!

하지만 경악한 탓일까.

공세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지며, 표면을 긁는 반격 정도로는 이제 감당할 수 없다.

번개가 입으로 흐르고,갑옷 안을 얼음이 얼린다. 얼굴까지 얼어붙는 한파에 눈은 애초에 뜰 수 없었다.

- 파지지직!

- 콰광! 콰광광!

폭주하듯 헐떡거리는 공간에 다시 혹독한 얼음폭풍이 치고,얼어붙은 허공에서 다시 번개가 솟아난다.

폐로,장으로,척추로 흐르는 번개가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을 모두 엉망으로 헝클어트리고.

뒤섞이는 감각은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마비된다.

무엇도 분별하지 못하는 육체의 감옥이지만.

베어야 할 허공에 어차피 ‘보아야’ 할 것은 없다.

맡아야 할 것,

들어야 할 것도.

맛보아야 할 것도.

느껴야 할 것도 없으니.

육체와 감각이 찢겨 차단된 것은, 오히려 호재에 가까웠다.

일리엔의 눈물을 가지고 해 왔던 활약들.

수도를 침식하는 기괴한 결계를 수없이 부수고,마물로 만들어진 진지를 불태우며, 온갖 거미줄을 헤쳐 온, 레안드로의 모든 순간이,

‘눈물’을 버리고 싸우는 지금,

찢기고 마비되는 감각을 뛰어넘어 터져 나왔다.

‘힘’으로써 이 세계를 왜곡하면서 ‘자리 잡은’ 이상…….

‘벨 수 있다.’

- 번쩍!

♦ ♦孝

‘뭘 한 거지?’

섬광과 함께 인벤토리가 뚫렸다.

- 팟!

훌쩍 뒤로 대피했다.

간접적으로 가해진 충격보다도, 영역이 뚫렸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더 컸다.

후작은 얼어붙고 감전된 몸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내 영역을 분명히 베어냈다.

경악하고 있을 때 같은 방향에서 똑같은 공격이 날아왔다.

단순한 내려베기였지만 처음처럼 막을 자신이 없었다.

같은 공격이라면 뚫린다.

‘같은 밀도라면.’

아예 회피한 뒤 영역을 눈앞까지 압축시켰다.

세 걸음.

‘8 배.’

- 콰과과콰콰콰쾅!!!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로 압축된 힘이 마력을 싣고 터져 나간다.

휩쓸린 후작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폭발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검은 한 걸음 앞으로 파고들었다.

- 스륵.

‘이게… 가를 수 있는 거였나?’

더 이상 영역을 압축할 수 없다.

2배로,4배로,8배로 압축해 놓은

영역마저도 후작은 베어냈다.

그리고 그 안으로 걸어왔다.

더 이상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역으로 공격하면 할수록 후작의 만신창이가 된 몸이 거기에 더 잘 반응하는 듯한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다시 시도했다가 베어지는 즉시 안쪽의 내가 공격받을지도 몰랐다.

- 스릉.

답은 이제 이것뿐이다.

후작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격이 지나치게 누적된 탓일지도 모른다.

회청색 머리카락은 전부 하얗게 타거나 얼어 버렸고,푸른 갑옷은 안감까지 너덜너덜하게 다 찢긴 상태였다.

아까부터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칼을 들어 올린다.

부서져 날렸던 돌먼지가 칼등에 감긴다.

내 영역을 뚫어냈다면.

[그림자 갑옷 Lv.l을 발동합니다!]

스킬로 승부한다.

전신에서 솟아오른 검은 연기가 곳곳을 뒤덮고,반투명한 장막을 만들어 낸다.

[약점포착 Lv.l을…….]

녀석이 보인 움직임 자체는 결코 나보다 빠르지 않다.

무리하게 땅에 몇 번씩 처박히며 대미지가 누적된 발목이 보인다.

속도는 이쪽이 우위.

‘선공이 다.’

[흡착 포획 Lv.l을 발동합니다!]

끌려오지는 않았지만.

살짝 흐트러진다.

‘시간 가속……r

후작이 제대로 자세를 잡기 전에 칼을 내리쳤다.

두 번의 섬광이 한 호홉에 이어졌다.

두 번,그리고 다시 두 번.

[초월적인 수준의 대련!]

[생사결生死決이 인정됩니다.]

[검술 숙련도가 대폭 회복됩니다!]

[검술 Lv.8을 회복합니다!]

후작과 나의 칼이 부딪칠 때마다 선연한 빛이 터지며 허공에 떠돌던 먼지마저 잘게 부서졌다.

날카롭게 제련된 금속에 불과한 두 자루 칼이 새파란 빛을 머금고 서로를 향해 춤춘다.

제국 대상조大上造.

관내후關 內候.

푸른 사자 기사단 전투원수元神.

하지만 본질은,검객.

보이지 않는 영역에 새롭게 눈을 떠 버린 레안드로 폰 바티엔느만큼 완벽한 검술 대결 상대가 세상에 있을 리 없었다.

- 까강!

빛살처럼 휘두른 그림자 칼날을, 레안드로는 완만한 곡선으로 멀리 튕겨 버린다.

[만검慢劍의 묘를 목격합니다!]

[검술 숙련도가 대폭 회복됩니다!]

- 까강! 까강!

다시 두 번을 튕겨낸다.

- 파앗!

계속 부딪치며 알아차렸다.

‘내가 더 빠르고.’

- 까강!

내가 더 강했다.

만신창이가 된 레안드로의 힘과 속도는 나보다 나을 게 없었다.

하지만 더 느리고,더 약한 그의 검이 언제나 내 칼을 제압해 내고 있었다.

검과 검 사이의 간격,호흡,각도, 살기의 조절.

내가 빠르게 움직이면 레안드로는 일부러 한충 느리게 움직였는데, 기이하게도 내가 하는 공격은 모두 녀석의 검로에 말려들었다.

[세적동주의 묘리에 휘말립니다」

검이 꺾이고.

[검술 Lv.9를 회복합니다!]

다시 검이 고개를 든다.

검객 레안드로는 눈을 감은 채,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는다.

베고,긋고,찔러도 공격을 전부 이끌어 흩어 버린다.

[검술 Lv.10을 회복합니다!]

조금씩 검이 닿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속도도.

각도도 예측할 수 없었다.

게다가 녀석에게 닿으려는 순간, 갑작스레 빨라지는 쾌검이 머리를 노렸다.

그럴 때마다 균형이 무너졌다.

- 카강!

루비아가 건네준 갑옷은 어느새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서로 부딪치는 두 자루 칼보다도,

그 충격파를 감당해야 하는 갑옷이 먼저 부서져서 바닥에 날렸다.

[검술 Lv.ll을 회복합니다!]

- 콰광! 콰광!

드디어 얽히기 시작하는 검기.

칼과 칼이 부딪치는데도 폭발과 폭발이 이어지며 땅바닥이 꺼지고 터져 나갔다.

- 쿠구궁!

검기劍氣는 칼에서 나오는 것도.

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바람을.

계절을.

노을을 받아쓰는 것이니.

- 우우응!

[검기 Lv.3을 회복합니다!]

아무리 상처 입고,비틀어져 있는 몸이라도.

- 과과과광!

깨달음에 따라 얼마든지 휘둘러 낼 수 있었다.

후작이 손목을 한 번 까딱거릴 때 나는 온몸으로 피하고 크게 칼을 휘둘러야 했다.

훨씬 더 많이 움직였지만 공격은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후작을 치지 못하고 지나갔다.

[검술 Lv.12를..]

기억한다.

몸이 다시 기억해 낸다.

검은 구슬에 흡수당했던 검술을, 비역을 뚫고 지나가던 검기를 다시 회복해 내고 있다.

마왕의 힘에 의해,고블린이 죽어 만들어진 ‘덩어리’들과 생사결을 할 때조차 검술이 회복되었으므로.

‘하려면,처음부터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몸과 마음을,기술을 하나로 모아, 제대로 된 대결을 해 본 적이 대체 언제인가.

썩어 가고 있었다.

의지가 좀먹어 갔다.

레안드로는 그런 내 삶을 또렷이 만들어 주고 있었다.

뼈마디 사이로.

수백의 투로閱路가.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죽음이, 악의가,환하게 피어나고,시들고, 흐드러지며 시간을 잃고 겨룬다.

흐리고.

침침하던 검이,명징해진다.

희열마저 느껴졌다.

[검술 Lv.13를 회복했습니다!]

그때.

“흥미롭군.”

후작이 작게 입을 열었다.

“검술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계속 보려고 했지만……

□〔

고::=r.

후작의 주변으로 공간이 왜곡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뭐지……?’

후작은 앞에 서 있으면서도 뒤에 있는 것 같기도,옆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스윽.

언제나와 같이.

천천히 휘두른 칼이 은빛 섬광을 담고 뻗어 왔다.

방금보다도 느린 속도였다.

‘지친 건가?’

섬광 자체도 전보다 약했다.

이번에 아예 승부를 낼 생각으로 강하게 칼을 휘둘렀다.

‘이긴다.’

하지만 후작은 내 칼에 부딪치지

않았다. 분명 직선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왜곡하는 것처럼 휘어져서 목으로 들어왔다.

一 번쩍!

은빛 섬광이 구부정하게 들어와 턱밑에서 폭발했다.

루비아가 선물해 줬던 투구가, 갑옷이 터져 날아가고 쇄골이 잘려 휘청거렸다.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던 후작은 내 공격을 피하고 어느새 왼쪽에서 칼을 겨누고 있었다.

마치,세 걸음 안에서.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의 검술로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저항력이 무시됩니다!]

‘이건……!’

“…이만 끝내겠다. 지금껏 어울린 이백 합은,말을 순순히 보내 준 보답이다.”

그렇게나 싸웠던가.

무엇보다도.

“봐… 주고… 있었다는 거냐?”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뜬 건 모두 네 덕분이다.”

후작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적응이 필요했으니까.”

비틀거리며 천천히 걸어오는 그를 어쩐지 피할 수 없었다.

후작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괴한 감각이 떠올랐다.

‘그럴 수 없어!’

녀석이 깨달은 게 뭔지는 몰라도.

어떻게 각성했는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이겨야 했다.

[뼈의 군주 Lv.3을 사용합니다!]

- 우둑! 우두둑!

쇄골을 다시 붙이고 휘청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에라스트.

그라스미어.

유블람.

루비아가 다스리는 도시들이 나의 등 뒤에 자리 잡고 있다.

통치 레벨 9를 달성한 것도 이게 처음이다.

‘내가… 지켜 줘야 해.’

지금까지 긴 세월을 싸워 왔다. 루비아의 무수한 죽음을 생각했다. 거짓말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무력했던 시절을 반복할 수는 없다.

시나리오 클리어까지.

앞으로 고작 한 걸음.

‘버틴다.’

- 우르르릉!

힘을 결집한 것만으로 허공에서 천둥이 울리고.

후작도 살짝 표정을 굳혔다.

그가 칼을 잡고 중단세로 내 쪽을 겨냥한다.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서로가 서로를 살핀다.

최후의 순간…….

“여기 무술 대회 아니야,얘들아.”

- 콰르르르르르르르!

허공을 갈라 버릴 것처럼 강렬한

불꽃의 기둥이 맹포하게 울부짖으며 후작의 뒤에서 뻗어왔다.

후작은 그 순간에도 몸을 돌리며 뒤로 칼을 휘둘렀지만,지친 데다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조금 늦었다.

“이건……!”

노랗고 푸른 불꽃은 퍼지지 않고 오직 후작을 향해 날아갔다. 그가 뒤로 돌아 휘두른 칼날에 불꽃이 아교처럼 엉겨 붙었다. 순식간에 팔로 기어올라 가고,몸과 얼굴로 터져 나갔다. 불꽃에 스며들어 있는 죽음의 글자들이 후작의 온몸을

꿰고 탈색시킨다.

- 과•과과과과과과과1

터져 나가는 불꽃에 휘말린 채로도 후작은 불꽃을 베어 냈다.

하지만 그가 베지 못하는 곳에서, 몸에서 다시 불꽃의 이빨이 솟아, 후작을 쥐어뜯고 물고 씹었다.

- 과과과과과광! 화르르르륵!

불꽃은 후작을 태우며 계속 위로 치솟았다.

수도 없는 폭발이 이미 지쳐 버린 그의 몸 안에서 일어났다.

비명이 있었다면 그마저도 하얗게 태워 버렸을 것 같았다.

가장 뜨거운 푸른 화염의 격류가 호신강기를 태웠다.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어 녀석을 바라봤다.

불꽃은 오로지 후작만을 겨냥해 물어뜯었고,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열기와 폭풍에 몸이 밀려나 뒹굴 정도였다.

‘저걸 온전히 맞았다니

붉은 하늘로 한참 솟구쳐 오르던

후작은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오닉스의 고리.”

시체는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니,아직 살아서 어딘가 약간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시체의 반동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끌려온 시체 앞에서.

“맛있겠다. 칼이 아깝지는 않네!”

용의 불꽃을 뿜어내고.

오닉스의 고리로 시체를 끌어당긴 네크로멘서가 말했다.

- 스윽.

그녀는 손에 든 단검으로 후작의 양쪽 경동맥을 자르고.

- 서걱.

심장에 칼을 박았다.

익숙한 형태의 붉은 단검이었지만 칼날 위로 움직이던 글자는 모두 사라져 있다.

‘린트부름의… 단검……

재와 함께 검은 피가 떨어지면서

시체의 움직임이 멎었다.

레안드로 폰 바티엔느.

한때 제국제일검을 순수한 검술로 물리치고,홀로 원해遠海까지 쫓아와 별빛청여우와 크라켄을 죽였으며, 잿빛기사를 세 걸음이나 물러나게 만든 검귀劍鬼.

그는,

또다시.

죽었다.

하지만 멍하니 애도하거나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었다.

허공에 남은 열기를 느낄 시간도,

폐허가 된 대지를 바라보며 신음올 뱉을 한가로움도 남기지 않고.

- 人르

난입한 네크로멘서는,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품에서 자색 약병을 꺼내고.

심장에 꽂힌 단검 자루에 부으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바닷 우사아 사라야 아카 사나야 카라이,반 듀네 프라나카 야에타, 바닷 우사아 사라야 카라이……

받쳐진 후작의 심장이 잘린 목의

동맥으로 나머지 피를 쏟아낸다.

”이는 흙으로 빚어진 그릇이 아니며, 모양도 없고 깨지지 않으니, 비어 있는 것도,차 있는 것도 없어서, 붓고, 휘젓고, 뜻대로 섞어도 무엇 하나 어긋나지 않기에……

나의 이해는 관계없다는 듯이.

주문은 계속 이어지고.

땅이,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수십 겹으로 드리워졌던 검은 땅거미가,

[결계가 시동합니다.]

[룬어: 증폭/제물/흡수/미식]

서서히 기어오},

후작의 시체를 엮는다.

“에이야 단나. 사티마 테네 단나. 에이야 에투라타 단나……

“입에 넣고,굴리고,아귀에 쥐고, 움키고,남김없이 깃들어라.”

[결계 발동 95%.]

[〈마왕에 도전하는 네크로멘서〉의 권역에 들어왔습니다.]

[대상으로 지정됩니다.]

[저항하지 않습니다.]

[정수 흡수 스킬이 증폭됩니다.]

[제물로 탐색 중…….]

[단일 대상을 발견합니다.]

[홉수 효율 계산…….]

[1,897%.]

[제물에 한정,상위 스킬의 흡수가 가능해집니다.]

네크로멘서의 결계는,

함정 따위가 아니었다.

제물로 바쳐진 레안드로의 시체는 땅거미에 칭칭 얽힌 채,새카맣게

느껴질 정도로 진한 녹색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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