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70화 (370/458)

453화 눈먼 달,지는 꽃 (30)

초롱너울은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우리를 인도했다.

방향은 줄곧 직선이었다.

종종 구릉이나 계곡이 나타나지만 그런 건 가볍게 뛰어넘는다.

‘야옹이’는 탈 수 없더라도.

날파리 같은 요괴 무리가 없으니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파른 직선으로 하루를 달리자 눈앞에 거대한 숲이 나타났다.

“바람숲이다. 이 숲만 넘어서면 슬슬 도깨비 소굴이야.”

불꽃이 흔들리며 말했다.

그 뒤편 숲의 입구에 반딧불들이 서성거린다.

“요괴들이 머무르는 곳인가?”

“머무른다기보다는… 막 꽃의 신의 영역에서 나왔으니 달려들기 딱 좋은 장소잖아? 얽히지 않게 집중해서 빨리 통과하자고.”

“알았다.”

이곳까지는 어려움 없이 왔지만, 경계심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 숲에서야말로.

뭔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후작도 그 사실을 생각하는 건지 새삼 경계 태세를 갖췄다.

우리는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초저녁의 숲은 위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물감을 나뭇잎들이 받아내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트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짝짓기 신호를 보내는 작은 벌레들이 꼬리에 불을 밝히는 모습이 소란했다.

높고 굵게 자란 나무와 나무 사이 거리는 제법 널찍했고 숲 곳곳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초롱너울은 숲의 수많은 갈래에서

거의 망설이지 않고 우리를 빠르게 안내한다.

- 톡톡…….

자그맣게 날갯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작은 곤충들뿐이었지만.

한참을 들어가자 훨씬 더 육중한 기척도 느껴진다.

‘인간이군.’

하지만 미묘하다.

‘이건……

서쪽에서 다가오는 인간들의 기척이 탐지 영역 끄트머리에 걸린다.

우리가 가는 곳은 동남쪽.

방향은 어긋나 있다.

속도도 한참 떨어지고.

이대로 가면 마주치지 않겠지.

하지만.

레안드로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군. 저들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뭐,숲에서 산책이라도 하나 봐. 원래 사는 곳에 먹을 게 없어져서 열매라도 따러 온 걸 수도 있고.”

초통너울의 말에 후작이 의심스런 눈빛을 보낸다.

“움직임으로 봐서 그런 건 아닌 거 같다만.”

안내하던 불꽃이 살짝 짜증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이거 봐,내가 그런 남들 사정을 뭐 하나하나 어떻게 다 알겠어? 그리고 뭐,어차피 재네랑 싸울 일 없잖아? 안 그래?”

“사정을 물어보겠다.”

같은 인간이라 그런가.

동방의 인간들에게도 관심이 많은 녀석이다.

물론 원래 인간이라도 날벌레처럼 죽이는 녀석이라는 걸 잘 알기에

웃기긴 하다.

“뭘 어떻게 물어보려고? 동방어는 할 줄 아니? 설마 이 요괴님에게 대신 물어봐 달라고 부탁할래?”

초롱너울이 면박을 줬다.

“여기 인간들한테는 괜히 우리랑 엮여 여기저기 찍히는 게 오히려 훨씬 민폐라고. 인간을 돕고 싶어? 그럼 빨리 도깨비를 처리하는 게 그들의 삶을 좋게 해 주는 거야.”

언어가 안 통하니 혼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레안드로는 더 이상의 대화 없이

불꽃을 외면하고 나아갔다.

‘납득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가보자는 걸지도 모른다.

- 팟!

녀석과 함께 한층 더 빠르게 숲을 내달렸다.

비탈이나 굵은 나무뿌리.

지형의 굴곡 따위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길은 평온했으며.

전투나 살해의 흔적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숲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안에 있는 건 약한 인간들뿐이고, 강한 요괴의 기척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같은 걸 느끼고 있는 듯 후작의 표정도 점점 더 굳어 가고 있다.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분이다.

‘어째서지?’

차라리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면 힘을 재어 볼 수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지금 잘 달려가고 있다고. 빨리 이곳을 통과하자.”

초롱너울이 빙긋 웃으며 우리를 격려한다.

그때.

“ ...잠깐.”

후작이 자리에 멈춰섰고.

“응? 뭐야? 갑자기 뭔데?”

나도 녀석을 따라 멈추자 당황한 목소리로 불꽃이 놀라 물었다.

후작은 그 자리에 서서 침착하게 말했다.

“너,인간들의 기척을 과도하게 피하고 있는 것 같군. 방금은 분명

직선으로 가는 게 훨씬 빨랐는데, 그 경로에서 인간의 기척을 느끼고 한참 둘러 갔다.”

“직선이 항상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할 수 없잖아. 장애물이……

“아니.”

레안드로가 불꽃의 말을 가볍게 끊어 냈다.

“우리가 언제부터 지형에 방해를 받았다는 거지? 그리고,둘러 가는 와중에도 인간이 기척이 느껴지자 또다시 돌았어.”

“그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지.”

레안드로가 조용히 말했다.

이미 눈빛에 확신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눈빛은 나를 향한다.

생각해 보면.

초롱너울과 언쟁을 하고 있지만, 애초에 모든 게 나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듣고 느끼라고.

설득의 대상은.

나였다.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레안드로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 참.”

불꽃이 일변한 목소리로 말했다.

“걔들이 우리를 보면 놀랄 테니까 피해서 가자고. 인간들에게 폐 끼치는 거 싫다며?”

저런 소리를 듣자.

나조차 심한 위화감이 들었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녀석이 인간들을 그렇게 신경 써 줬다는 거지?

후작은 저런 이야기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태도로 고개를 돌려 나만 바라보고 있고.

초통너울도 후작을 설득하는 건 포기했다는 듯이 아예 내 쪽으로 돌아서서 말한다.

“이것 봐. 상식적으로 생각하자고. 네가 가면 인간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겠어? 응? 저 녀석은 인간이긴 하지만 복장도 생김새도 다르잖니. 게다가 인상도 분위기가 더럽고. 여기 사람들이 수상한 침략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인간들은 인간들의 삶을 살게 놔두고,우린 우리 일을 빨리 해결하는 게 그들에게도 훨씬 좋다니까?”

나를 열심히 설득하는 초롱너울을 가만히 바라보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가자.”

한 마디로 끝내는 레안드로를 다시 바라봤다.

그 순간.

- 끄아아아아아!

숲 바깥에서일까.

바람을 타고.

어디서인지도 명확하지 않을 만큼 멀리서 희미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제야.

지금까지 피해 온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을.

숲속을 가득 메어 왔던 공기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공포……

사방에서 느껴지는 인간들의 공포가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탐지 범위에.

인간들만이 느껴졌기에.

이 숲의 묘한 분위기가 인간들의 〈공포〉로 만들어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단지 지금 느껴지는 인간들만의 공포는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바람숲 자체에 아주 깊이 새겨진 끔찍한 공포.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괴이했다.

땅이나 나무들이 말라 죽은 것도 아닌데 살고 있는 짐승을 지금까지 단 한 마리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제정신이라면……

감각이 예민한 짐승들이 들어오지 않는 건 당연하겠지.

이제야.

숲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 팟!

희미하다.

하지만 방향은 알 수 있다.

비명이 들린 즉시 나는 망설이지 않고, 심지어 레안드로보다도 먼저 서쪽으로 뛰어갔다.

초롱너울이 뭔가 숨기고 있다.

이 숲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이것 봐! 동남쪽이라니까… 휴.”

불꽃이 불평을 쏟아내지만.

금방 나를 따라잡은 레안드로는 나를 흘끗 쳐다본다.

약간은 의외라는 눈빛에 호의와 신뢰가 들어 있다.

‘으흠.’

- 파앗!

더 빠르게 달려갔다.

순식간에 탐지 거리 바깥으로.

3km 정도를 달리자.

a | w

곳곳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요괴……

인간과는 엄연히 이질적인 강력한 기척들이 다.

‘발소리를 죽이자.’

후작과 눈빛을 교환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두 요괴를 향해 은밀히 다가갔다.

인간과 바로 붙어 있는 기척이라 놀라게 하면 곧장 인간을 죽이고 도망칠지도 몰랐다. 자세를 낮춰 조심스럽게 풀숲을 지났다.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나무 위에 남자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남자의 양팔을 잡고 있는 요괴 두 마리가 있었다.

‘묘한 생김새군.’

피부는 달빛처럼 새하얗다.

크기는 인간 아이들 정도였고.

생김새도 그러했다.

소년과 소녀 정도일까.

다만 이마 앞쪽으로 두 개의 쁠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것과.

그 대신인지 두 눈이 툭 튀어나온 뿔만큼이나 깊이 안으로 함몰되어 무저갱처럼 보이는 것.

그리고.

몸뚱이에서 뻗어 나온 끈적거리는 촉수가 인간의 팔다리 한쪽씩을 칭칭 감은 걸 제외한다면.

“도깨비다.”

초롱너울이 작게 속삭였다.

요괴와 인간의 몸이 엉킨 상황.

후작도 뛰쳐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축제라더니. 다른 돼지 놈들한테 밀려서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걸. 여기까지 오느라 나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어.”

남자의 왼쪽에 있는 요괴가 입을 쩌억 벌렸다.

평범한 인간 아이 정도이던 크기의 입이 쩌억 벌어지는 순간 머리통의 절반을 차지하며 찢어졌다.

순간 오른쪽 요괴가 그 아가리를 촉수 다발로 강하게 쳐냈다.

“아야!”

왼쪽 요괴가 비명을 질렀다.

“손에 가시 세웠어! 가시!”

입이 찢어져 점액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오른쪽에 자리 잡은 요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추추! 너,지금 머리통을 통째로 먹으려고 했지? 절대 안 돼.”

추추라고 불린 요괴는 아가리를

여전히 다물지 않은 채 침을 질질 흘려 댔다.

“헤헤. 난 머리만 먹으면 되잖아. 나머지는 네가 다 먹으렴,밍밍.”

“닥쳐. 너는 머리만 먹는 척하면서 항상 심장까지 같이 먹어 버리잖아. 오늘만 해도 세 번이나 그랬는걸. 절대 안 속아.”

“그치만……. 네가 팔다리를 전부 다 먹으면 되잖아.”

밍밍이라고 불린 요괴는 다시금 촉수에 날카롭게 가시를 세웠다.

“절대 싫어. 이번에는 무조건 내가 머리랑 심장을 먹을 거야. 특히나 이 녀석은 심장이 굉장히 졸깃해

보인다고. I물히물하던 것들이랑 벌써 냄새부터 달라.”

“그치만……. 재 팔도 맛있을 텐데? 잘 단련되어 있잖아. 무척 뛰어난 검객 같은 거인가 봐.”

“흥. 그런데 제일 먼저 도망부터 쳤다고. 몸만 그럴듯하고 실속은 별로 없는 놈일지도.”

“그래? 그러면… 밍밍,내가 이거 다 먹어도 될까?”

“아니지. 기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멀리 도망친 것만 해도 이 녀석은 진짜야. 지금까지 먹은 인간 중에 제일 맛있을지도……. 야! 추추!”

잠자코 분석을 듣는 것 같던 왼쪽

요괴가 아예 가슴까지 입을 벌려 남자를 통째로 먹으려고 했다.

기습적인 그 행동에 분노에 차서 오른쪽 요괴가 남자를 자기 쪽으로 황급히 끌어당기려고 했을 때였다.

“어?”

- 서걱.

가슴까지 벌어진 왼쪽 요괴의 입이 다시 닫히지 못하고 그대로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앞으로 뻗은 오른쪽 요괴의 두 팔이 그대로 모두 잘려 떨어졌다.

푸른빛이 그림자도 없이 빠르게 회전했다.

다시 재생하려던 요괴들의 몸을 휘어 감듯 갈기갈기 찢고 터트렸다.

一 덥석.

후작이 갈아 버린 두 마리 요괴에 잡혀 있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떨어지는 남자를 내가 받았다.

“어이.”

남자는 살아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도와주러 왔다.”

하지만 대꾸는 없었다.

그저 필사적으로 감은 눈에 더욱 힘을 주고 버틴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을 뿐이다.

뭘 본 건지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았다.

“어이! 정신 차려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一 퍽!

충격 요법으로 뺨을 때렸지만.

너무 세게 때린 걸까.

아예 기절해 버린 거 같다.

요괴들 말대로.

몸은 튼튼하게 생겼는데.

“근처의 다른 인간을 구하러 가서 물어보겠다.”

후작이 내게 말하자 초롱너울이 짜증을 냈다.

“어휴! 진짜! 뭘 물어봐? 그런 거 물어볼 필요 없다니까!”

“아니,나도 녀석과 같은 의견이다. 인간들에게 찾아가서 상황 설명을 제대로 들어야겠어.”

왜 인간들이 달려오고 있는지.

어째서 공포가 느껴지는지.

요괴들이 했던 대화도 하나하나 모두 신경 쓰인다.

내가 단호하게 나오자.

초롱너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이유는 내가 알아! 찾아가서 물을 필요 따위 없다고!”

순간 레안드로까지 흠칫했다.

“뭐……?”

불꽃은 사방에 느껴지는 기척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축제야. 아꼈던 사냥감을…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도깨비들의 휘하에 두고 보호하며 잘 키워 왔던 인간의 도시를,마을을 송두리째 먹잇감으로 풀어 놓는 거지. 그러면 도깨비들의 보호 아래 있을 때는 손도 못 대고 군침만 흘렸던 온갖 요괴들이 전부 몰려든다.”

“무슨… 소릴……

“방목하고 아무렇게나 사냥하기만 하면 재미없지. 문명이라는 게 어느 정도 유지된 상태의 인간은 각별한 맛이 있다. 인간을 보호하며 그들이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고,정말로 도깨비들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선민

이라고 생각하고 오만해질 때 즈음 보호를 해제하고,축제를 여는 거다.”

“그런……

“바람숲은,그 축제가 열리는 장소. 이번에는 조금 일찍 열린 것 같군. 우리를,노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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