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71화 (371/458)

454화 눈먼 달, 지는 꽃 (31)

“그게… 대체……

“인간은 단순히 가축으로 길러지면 수명마저 급격히 짧아지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하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해.”

“고통과 복종뿐만 아니라 쾌락과 희열,미움과 사랑,호기심,후회, 뿌듯함,열망,그런 정신의 고양과 충만함까지 다양하게 느껴야 고기도 뇌도 맛있어지니까. 한번 그런 걸 맛보면 갇혀서 사육된 인간 따위는

입에 넣자마자 뱉어 버리게……

초롱너울의 경악스러운 이야기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질 때.

“서쪽. 동쪽.”

깔끔하게 그녀를 무시하고 있던 레안드로가 짧게 읊었다.

“느껴지나?”

녀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가장 가까이 있는 요괴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레안드로의 말대로 서쪽과 동쪽 방향에서 각자 서너 무리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방향을 나눠서……

그때 였다.

- 화르르!

초록 불꽃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서 버럭 화를 냈다.

“안 돼! 여기서 싸워 봤자 전력만 노출되고,준비된 함정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꼴인데 제정신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

이건 함정이다.

애초에 이 함정을 만든 상대들은

인간을 우리가 구할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을 거다.

초통너울의 말대로 그냥 미끼였겠지.

우리는 함정을 판 쪽의 의도보다 더욱 깊이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냥당하는 인간들을 여기 두고 갈 수는 없다.”

후작이 바싹 마른 풀처럼 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사람 구한다는 이야기도 저렇게 딱딱하게 하나.’

그러나 불꽃은 허공에서 가만히 비웃음을 흘렸다.

“왜? 대체 왜 안 되지? 너희들, 내가 만든 가짜 사냥터에서는 아주 신나게 사냥했잖아. 전부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거랑 이거랑 도대체 뭐가 달라?”

“뭐,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이라서, 인간은 사냥당하면 안 된다는 거? 그런데 어쩌나. 여기는 동방이에요. 인간이 요괴에게 먹히는 게 이곳의 법칙이야. 갑자기 선택적 정의감이 막 불타오르고 그래? 그것 때문에 우리 계획을 망치자고? 어휴,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어째서일까.

레안드로는 곧바로 달려나가거나 반박하지 않고.

뭔가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저 마물 혐오자의 마음에 저런 게 조금이라고 와닿았다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불꽃은 후작을 버려두고 내 쪽에 와서 속살거리듯 말을 걸었다.

“우리만이라도 빨리 빠져나가자. 그래도 너는 이해하지? 서쪽에서 인간들에게 잔뜩 당하고 살았잖아. 그러니까 여기서는 좀 먹히건 말건 내버려 둬. 그게 균형이 맞잖아? 복수라고 생각해도 좋고……

네크론 신사회에게 양식당하던 고블린 부락이 떠오른다.

던전에서 약한 몸으로 인간들에게 몇 번씩 연달아 짓밟히던 기억도.

모험가의 경험치 취급을 받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곳은 정확히 그 반대.

어떤 통쾌함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동쪽을 맡지.”

후작이 문득 고개를 돌려.

의외라는 듯 눈을 마주쳐 온다.

“어머,네가 갑자기 인간이라도 되는 줄 안 거야? 너는……

서방에서는 인간이 마물을 사냥한다. 동방에서는 마물이 인간을 사냥한다. 반대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반대라는 것은.

거울에 비춘 듯 같다는 이야기.

“복수라면,괴롭히는 쪽에 칼을 겨눠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초롱너울의 반응을 무시하고.

후작이 서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 팟!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움직이는 기척을 따라가자 금세 요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

* * *

소년은 절망했다.

벗어날 수 없는 공포가 뻣속까지

마비시켰다.

목구멍까지 울컥 올라오는 두려움에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닌지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품에 꼭 안고 있는 남동생의 콩닥거리는 심장 박동만 느껴졌다.

자신은 몰라도.

어쨌거나 동생은 살아 있다.

하지만一

곧 죽는다.

벗어날 방법은 없다.

세 방향에서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뾰족뾰족한 붉은 근육이 묘하게 얽힌 개들이었다.

아니,저걸 개라고 불러야 할까?

너무나 끔찍한 형상이라서 제대로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을의〈수호신>들이 목줄을 매어 데리고 다니던 번견들.

네 발로 얌전히 기어 다니며 마을 바깥을 순찰하던 그 개들은 갑자기 두 발로 일어섰다.

길게 입이 찢어졌다.

살갗이 열리고 근육이 흘러나와 부풀며 창칼처럼 솟았다.

그리고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봉사했던 세월을 보상받는 것처럼 인간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마을의〈수호신〉들.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면 그렇게 거대해진 개들조차도 단번에 때려죽일 수 있을〈수호신>들은 개들의 목줄 에서 손을 떼었다.

오히려.

마을의 가장 뛰어난 무사들이 모여 〈붉은 개〉한 마리를 죽이는 일에 성공하자.

대형을 이룬 그들에게 장난처럼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렀다.

그 한 번에 마을의 무사들은 모두 형체도 없이 짓이겨졌다.

구해 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기에 소년은 달려왔다.

이 숲을 지나 북쪽으로 가면 진짜 〈신〉이 있다고 했다.

전설로 내려오는 꽃의 신.

마을의 수호자들조차 두려워하는 절대적인 존재.

인간에게도 요괴에게도 평등하게 변덕에 따라 재앙을 내린다는 신이 지배하는 산이 나온다고 했다.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했던 장소.

하지만 수호신들이 돌변한 이상, 일말의 희망을 안고 반대 항에 몸을 던지고 있다.

믿을 것이 그것뿐이기에.

하지만.

애초에,이 숲을 지나서 북쪽으로 지나간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인간은 요괴에게 먹힌다.

힘의 차이는 헤아릴 수도 없다.

속도도,형상도.

욕망조차도.

모든 것이 압도적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먹힐 운명이고, 요괴는 포식하는 운명이다.

저항은 물론이고.

도망도 재미없는 농담일 뿐.

요괴가 보호하길 원하면 보호받고, 보호하길 원하지 않는 순간 언제든 살해당하고 먹힌다.

동생만 아니었다면 다리가 굳어서 그냥 마을에서 죽었을 텐데.

여기까지 달린 게 괴로웠다.

마을에서 서로 밀치며 빨리 달린 어른들을 먼저 죽이고 자기를 그냥 놓아줬던 건 어째서였을까?

소년이 작아서였을까?

아니면 맛있는 건 나중으로 남기고 싶어서였을까?

조금 더 살이 처지고 푸석푸석한 어른들로 배를 채운 뒤 부드러운

요리는 마지막으로 미루고 싶어서?

소년 스스로 떠을렸다고 하기에는 기괴한 생각이었다.

붉은 개들의 욕망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에 옮아오는 것 같았다.

어차피 먹힐 거라면 조금 더 살을 찌워 둘 걸 그랬나?

그랬다면 자기를 다 먹고 난 뒤 동생을 먹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세 마리의 붉은 개는 까맣게 빈 눈구멍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점점 가까워진다.

너무도 공포에 질린 탓일까.

품에 꼬옥 안고 있는 동생의 심장

박동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듯하다.

고통스럽게 먹히기 전에 차라리 공포에 질려 죽어 버렸으면.

소년도 동생도.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 오직 그런 것일 뿐일 때.

개들은 그 자리에 멈췄다.

나무뿌리에 걸린 것도 아니다.

동시에 세 마리 개 모두 동시에 식욕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없다.

세상이 멈춘 것일까?

하지만 소년은 숨을 쉬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동생의 심장도 된다.

소년의 품에 안겨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떨고 있다.

멈춘 것은.

그 자리에 몸이 굳은 것은 분명 세 마리 요괴뿐.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몹시 강하게 움켜쥐어진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있다고?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자비로운 척 자신들을 보내 주다, 소년이 다시 희망을 가지는 순간에 악의에 찬 미소를 지으며 몸통을

씹어먹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수호신〉들은 자기들의 마을 전체를 가지고 그런 장난을 쳤으니까.

그렇게 망설이는 순간.

동생의 심장이 조금씩 더 선명히 뛰는 걸 느꼈다.

이게 농락이라고 하더라도.

일어나야 했다.

품에 안은 동생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막 일어나 걸으려 하자, 붉은 개들은 끈적한 침을 흘리며 입을 앞으로 다시 내밀었다.

역시.

농락이 었을까.

절망한 소년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순간.

一 퍼격.

빛이 지나갔다.

* * *

“〈공포〉를 뚫고 움직인 건가…….

완전히 잔챙이들은 아니로군.”

“어휴. 어휴……

한숨을 쉬는 초롱너울을 무시하며 요괴들을 바라봤다.

동시에 베어 넘긴 세 시체.

허리에 피를 뚝뚝 흘리는 인간의 머리통을 대여섯 개씩 달아 놓은 요괴들이 었다.

“제법이야.”

비록 낮은 레벨의 〈공포〉였지만, 고작 세 녀석에게 집중시켰는데도 극복하고 움직여 다시 인간을 잡아 먹으려고 했다.

동굴 안에 숨어 있던 무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저항 없이 잘라내긴 했지만.

근육의 강도는 잘 제련된 강철에 버금갈 정도였다.

검기가 아니면 상처조차 입힐 수 없겠지.

주저앉은 검은 머리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 마주친 남자를 레안드로가 구했다면.

이 두 명의 아이는 숲에서 내가 처음으로 목숨을 구한 인간들이다.

‘돌려보내 줘야 할 텐데.’

“가까운 마을은?”

초롱너울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남아 있을 리 없잖아.

그 ‘가까운 마을’들을 전부 여기로 털어 넣었을 텐데.”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품에 안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일까.

다리는 풀려 주저앉았지만 두 눈은 분명히 뜨고 있었다.

지킬 게 있어서인지 처음 만났던 남자보다 정신력이 강해 보였다.

〈감… 사… 합니다.〉

소년의 입에서 동방어로 느릿한 인사가 튀어나왔다.

대답해 줄 말은 없다.

당장은 살렸다지만.

책임질 수 없는 동정은 오만이나 기만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보장해 줄 방법은 없으며, 나는 소년을 방치해야 한다.

작은 손에 무기라도 쥘까 싶지만, 인벤토리에 있는 걸 건네준다면 약한 소년에게는 무기라기보다는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위험해지는 재물에 불과하다.

같은 인간들로부터도 노려지겠지.

동방의 이름 모를 소년을 더 심한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다.

소년을 뒤로하는 순간.

〈저… @이신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이 날아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였다.

“뭐라고 하는 거지?”

불꽃이 큭큭대며 웃었다.

“신이냐고 묻네. 동방까지 와서 인간들의 신이 된 기분은 좀 어때? 좋은 말도 들었으니 계획을 따라서 빨리 여기를 벗어나서… 야!”

- 파앗!

또다시 느껴지는 요괴의 기척을

향해 달려갔다.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개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일까.

감각은 제법 예민한 것 같았다. 시체를 씹어 먹고 있는 도중에도 내가 달려오는 걸 느끼고 뛰어을라 덮쳐 왔다.

은신보다는 속도에 중점을 두고 달려오긴 했지만 웬만한 인간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예민함이었다.

“잠깐만! 지금 이 녀석들의 힘을 담고 있잖아! 조금만,내가 다 담고 나서 움직여 줄래?”

푹푹 한숨을 쉬던 불꽃은 어느새 죽은 요괴들을 허겁지겁 제 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 좋은 일 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다만.”

“몇 번 말해? 나 좋은 게 당연히 너 좋은 일이지! 전부 네 힘이야!”

굳이 필요 없지만.

잠깐은 기다려 줄 수 있다.

초롱너울이 일을 마무리하는 즉시 계속 빠르게 이동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무리까지 정 리 하자 가까이 서 〈사냥개 > 들의 기척은 나타나지 않았다.

거대한 요괴의 포위망이 조여들고 있는 게 감지됐지만,아직 거리는 멀었다.

그걸 제외한다면.

‘하나 남았나.’

‘그런데… 이건 뭐지?’

마지막 기척의 동선은 이상했다.

이상할 만큼 빠르고.

한곳에 거의 머물지도 않으면서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속도로만 봐도 지금까지 마주친 어떤 녀석보다 강했다.

그대로 계속 기척을 따라갔다.

비슷한 시점에 자기 쪽에 머물던 무리를 모조리 정리했는지 후작도 기척을 쫓아 움직이는 게 멀리서 느껴졌다.

녀석을 쫓자 점점 괴이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이렇게……

〈남긴〉게 몹시 많았다.

붉은 근육이 기괴하게 풀어졌던 〈사냥개〉들은 인간의 뻣조각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애초에 인간 사냥이라는 건 먹기 위한 게 아닌가?

하지만 흔적은 그게 아니었다.

점점 더 근처로 가자 그건 먹다 남긴 흔적조차 아니었다.

시식이라고 부르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

이미 식욕은 채울 대로 채워서.

인간에게 다른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댄 혼적.

‘이런……

꿰뚫고,짓밟고,늘이고,돌리고, 씹다 뱉은 흔적이 눈 위에 붉었다.

인간의 파편으로 점점 지저분해지던 길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급격히 깔끔하게 변했다.

그리고.

인간의 기척이 움직이는 녀석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납치하는 건가?’

하나가 아니다.

‘최소한… 스물……?,

대체 어떤 식으로 인간들을 잡아 가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 파앗!

은신을 멈추고 인벤토리를 밟으며 전력으로 달렸다.

한 번에 이삼십 미터씩 도약하며

달리자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레안드로의 기척은 반대 방향에서 금세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 움직임을 읽고 요괴의 경로를 함께 차단하려는 것 같았다.

가까운 장소.

인간들의 기척이 조밀한 방향으로 달려가던 요괴는 자리에 멈췄다.

‘저 녀석인가.’

나무가 드문 곳이라 상대는 금세 시야에 들어왔다.

배와 가슴이 하얗고 얼굴은 검은데, 눈 주위만 둥그렇게 붉은 요괴가 피로 물든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바라봤다.

영락없는 너구리였다.

함께 느껴지던 기척의 인간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에 검은 글씨가 새겨진 하얀 술 포대를 메고 있었는데,포대의 크기만 해도 집채보다 컸다.

- 스륵.

너구리는 까맣게 물든 꼬리를 뻗어 가까이 있던 긴 머리 소녀를 포대에 넣고 씩 웃었다.

스무 명이 넘는 인간의 박동이.

커다랗고 새하얀 술 포대 안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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