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눈먼 달,지는 꽃 (33)
몇 번을 반복해서 외치자.
일제히 시선을 보내는 요괴들은 물론이고.
인간들까지 모두 목소리의 존재와 방향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대다수 인간은 아직 내 쪽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극소수의 모험가 정도일까.
방향을 잡고 제대로 다가오는 건 그야말로 헤아릴 만큼 적다.
‘믿지 않는 건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늘에 떠을라 있다고는 해도, 인간들이 내가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보기란 힘들다.
너무 높은 곳에 있고,요괴들로부터 도망 다니느라 정신없을뿐더러, 나무가 가리기까지 한다.
무엇보다도.
그저 또 다른 강한 요괴 하나가 인간을 희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작은 희롱이라면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다.
허공에 인간을 던졌다,다시 받고.
날카로운 이빨이 빼곡한 아가리에 머리를 살짝 물었다가 뱉고.
두 다리를 찢으려고 힘을 줬다가 벌벌 떨며 경련하는 모습만 보고 다시 힘을 푼다.
여기로 오면 살 수 있다는 외침이.
요괴들의 웃음소리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한 유희일 가능성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실력을 행사해야겠군.’
이쪽으로 도망치는 소수의 인간을 쫓는 요괴들을 조준한다.
영역을 저곳까지 넓히는 건 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역에서 만든 검뢰라면 저곳까지 충분히 뻗어 갈 수 있다.
- 파지지지직!
검기로 만들어진 커다란 번개가 날아가 내 쪽으로 도망치던 인간을 쫓던 요괴를 구워 버린다.
위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요괴들이 쓰러진 자리에 또다시 검뢰를 날리고,앞뒤에다,좌우까지 모조리 번개를 꽂아서 부근의 숲을
소멸시켜 버린다.
‘의외로 괜찮은데.’
소모량도 적다.
이 정도는 계속 날릴 수 있다.
하지만 한정된 인간들의 시야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보여 주는 건 무리다.
예시가 필요하다.
나를 믿은 녀석은…….
“너.”
숲에서 누구보다 먼저 내 쪽으로 다가온 소년을 불렀다.
동생처럼 보이는 아이와 손을 잡고 있었다.
‘아까 구해 줬던 녀석이군.’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곧장 여기로 뛰어온 것 같다.
“네……!”
소년이 볼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올려다보며 대답한다.
‘될 것 같군.’
“살짝 발을 위로 들고… 네 앞을 밟아라.”
“앞… 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건지, 소년은 동생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앞을 밟는다.
“아아……!”
단단한 계단을 밟은 것처럼 둘의 몸이 허공에 들린다.
“가만히 서 있어.”
“네……!”
스스로 올라올 필요는 없다.
움직이는 건,
계단 쪽이다.
- 스스스스...
떨어지지 않는 바구니 형태로.
두 아이를 담은 인벤토리가 위로
천천히 올라온다.
익숙하지 않은 일.
고도의 몰입이 필요하다.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은 채 계속 투명한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어렵군.’
“와아아! 와아!”
아직 움츠려만 있던 소년의 동생이 눈을 크게 뜨고 무척 즐거워했다.
“와아! 형! 이것 봐! 우리가 날아! 하늘을 날고 있어!”
다행히 집중은 깨지지 않았다.
나는 두 아이를 옆까지 데려다 놓고 외쳤다.
“이들처럼 살고 싶으면 와라!”
그 순간.
하늘에서 숲을 둘러보며 아직까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소년이 크게 외쳤다.
“여러분! 신이에요! 신님이 여기로 오셨어요! 신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다구요!”
그때 였다.
- 어이쿠,저 아이……. 감나무집네 둘째 아니야?
- 옆에 있는 아이는 셋째고!
- 아이들까지 하늘에 떠 있잖아!
정말인가? 정말 신님이 여기로 내려오신 거야?
곳곳에서 가까이 있는 인간들의 외침이 들린다.
‘이건……
예상외의 전개지만.
예상보다 빠르고.
- 신께서 강림하셨어!
원활한 전개다.
- 파직!
번개가 날아갈 때마다.
그 근처의 인간들까지 이쪽으로 뛰어오며 외친다.
간절한 상태에서는 공포만큼이나 믿음도 쉽게 전염된다.
파멸에 몰려 있으면 어떤 구원도 쉽게 믿어 버리는 법이다.
작은 증거만으로도.
그들이 찾아 헤매던 신.
마을의 수호자들조차 두려워했던, 전설로 내려오는 절대적인 신.
그러나,불안한 신.
신성한 영토에 감히 더러운 발을 들여놓았다고.
인간들을 먼지처럼 불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신이.
- 신께서!
- 우리를 보호하러 오셨다!
무려 숲 깊은 곳까지 나왔다.
요괴들에게 짓이겨져서 질척하게 흩뿌려지는 공포에 질렸으면서도, 죽고 싶지 않아 버둥거리면서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는데.
다정한 신이 인간들을 보호하러 강림했다.
- 와아! 와아아아……!
극과 극은 쉽게 통한다.
끔찍했던 공포가 맹목의 희망으로 변해 버린 탓일까.
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까맣게 잊은 채로.
요괴들의 감각을 생각해 본다면 애초부터 의미라고는 조금도 없던 수풀 속,나무 아래 진흙 범벅의 은신 따윈 버려두고.
곳곳에 흩어져 숨어 있던 인간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뛰쳐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 신이 강림하셨다!
- 북방의 신이 강림하셨다!
북쪽의 산을 다스리는 것은一
꽃의 신이라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잊어버렸는지.
- 번개의 신이다!
제법 우스운 외침마저 들려온다. 요괴들이 이곳저곳 바늘로 찌르듯 꾸준히 쏟아지는 번개에 당황하며, 나에게 관심이 쏠린 잠깐 사이.
비교적 가까이 숨어 있던 인간들, 도망치던 인간들의 기척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신의 강림을 외치며 뛰쳐나와서 달리는 인간들부터 노리는 가까운 요괴들을一
- 서걱!
나선형의 회전까지 걸린 날카로운
바람이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벌써 저기 있다니.’
어느새 훌쩍 앞으로 튀어나가서, 나무와 나무를 밟고 움직이고 있는 후작이 보이지 않는 검기의 바람을 일으켜 요괴들을 베어낸다.
한 갈래의 선이 가로로 길게 뻗어 요괴의 무리를 절반으로 가른다.
보이지 않기에 피할 방법도 없고. 보이더라도 피할 속도는 아니다.
- 좌악!
한 번의 발도로 뻗어나간 바람에
다섯 요괴가 절명하고.
그 앞에 있는 스무 명의 인간은 목숨을 구원받는다.
하지만.
요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검기가, 인간들에게 보일 리는 없다.
- 와아아! 번개의 신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으음.’
아무래도 눈에 띄는 거야 당연히 번개 쪽인 데다가.
내 위치는 모두가 볼 수 있지만,
레안드로는 고작 나무 위 정도에 있으니까.
- 오오! 번개의 신이시여!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들의 외침이 계속 들린다.
물론.
레안드로 녀석은 저런 건 당연히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 와중에 멀리서 내 말을 믿고 도망치는 자를 쫓는 요괴들을 나는 우선적으로 검뢰로 내려친다.
가까이 오면 후작이 처리할 테고.
‘저런 녀석들부터 구해 줘야지.’
꽃의 신이라고 생각하건.
번개의 신이라고 생각하건.
아예 지하에서 나타난 마왕이라고 생각하든지.
나를 믿고 움직이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줘야 한다.
숲 전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간들이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내 목소리를 향해 도망치는 자들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요괴들이 성큼성큼 걸으면 금방 따라잡히고,앞으로 손만 뻗으면 인형처럼 찢겼을 자신이.
계속 살아남아 달리고 있으며.
하늘을 가르는 황금빛 실선들이 그들의 뒤에 꽂혀 폭발했고.
인간을 질척하게 짓이기던 요괴의 피육이 가루처럼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을.
적어도 도망치는 자들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一 쏴아아아아…….
운도 따라주는 걸까.
때마침 비가 내린다.
- 파직! 파지직!
검뢰라고 해도.
사방을 가득 메운 요괴의 규모에 비하면 바늘로 종이에 구멍을 뚫어 공격하는 수준이지만.
젖은 땅에 내려꽂히는 번개라면.
- 과광! 파지지지지지직!
- 콰광! 콰광! 파지지지지직!
번들거리는 젖은 땅 위에 작렬한
검뢰들이 연거푸 튕기고 번지면서 광역 피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검 뢰가,
폭주한다.
- 2}■르르르르르르르1 화■롤1
바닥에 축적되는 뇌기가 허공에서 꽂히는 검뢰에 반응하며 공중에서 연속 폭발을 일으킨다.
소멸까지는 무리라도.
타격이 넓게 퍼지며 요괴들에게 몸이 멎거나 부상당할 만한 쇼크는
충분히 줄 수 있다.
인간들의 생존율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신님이! 비를 내려주셨어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소년이 옆에서 계속 크게 외친다.
지치는 줄도 모르는지 아까부터 부끄러운 소리만 크게 외쳐 가던 녀석이다.
그에 동조해서.
빠르게 검뢰를 흩뿌리는 것으로, 도망치는 인간들은 마치 숲 전체를 내 영역인 것처럼 인식한다.
- 신이 숲을 지배하신다!
- 저희를 인도하소서!
- 다시 신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그리고.
- 크르르르! 크르르르!
검은 그림자의〈개> 수십 마리가 일제히 일어나서 아래에서 사납게
짖어내고 있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내 옆에 다시 피어오른 불꽃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잦아들던 잔소리.
초롱너울.
그녀는 나에게 떨어져 있었다.
어쩌면 제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나에게 분노해서 버리고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크르르르! 크르르!
수십 마리의 〈개>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목표는 명확하다.
숲에서 헤매는 인간들.
“설마……
말로 해서 듣지 않으니.
내가 이 숲에 머무는 이유를 아예 없애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거추장스러운 인간들을 다 죽이고 빠져가는 게 목적일지도.
“몰살시킬……!”
- 화르르!
불꽃이 커지며 내 앞에 떠올랐다.
“뭐?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재들 안내해 줘야 할 거 아니야. 제대로 길도 못 찾는 거 같은데.”
“흥분해서 여기까지 달려오다가 탈진한 인간도 하나둘이 아니고. 못 걸어. 태워다 주면 좋겠지.”
- 위이이잉! 위이이잉!
어느새 빙빙 도는 너구리 꼬리 그림자가 옆에서 솟아났다.
이 녀석들 전부…〈묶여〉있던 거나?”
내 물음에.
초롱너울이 씩 웃었다.
“아니,내가〈묶은> 거야.”
“뭐라고?”
“남이 묶은 걸 보고 따라 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 특히 너처럼 말도 안 되게 강한 축이 있으면.”
“그게 무슨 소리……
“혼을 살려 놓는 대신 온전하게 요괴의 힘을 보존하는 방식이야.”
“혼을 살린다고?”
사냥개들과.
아무 힘도 없는 인간을 악랄하게 사냥하던 너구리의 진득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런 걸 살려도 되는 걸까.
“어차피 너에게 묶어 놨으니 모두 너를 따르는 힘이 될 거야.”
초롱너울의 표정은 몹시 밝다.
- 크르르르!
어느새 그림자 〈개〉들은 가까이 있는 인간들을 서넛씩 등에 태우고 다시 등장했다.
‘뭐,괜찮겠지……
하지만,언제까지 그렇게 사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에게 자극받은 걸까.
눈에 띄던 기척들.
유독 존재감을 강하게 발휘하던 요괴들이 인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 해봐야 스물 정도나 될까.
전체 포위망에 비교하자면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런 힘을 목격하고도 호승심을 발휘해서 뛰어오는 자들이다.
인간 사냥의 축제보다도.
자극될 만한 강자가 여기에 있다.
그 사실을 알고 기뻐서 뛰어오는 이들이기에.
포위망을 구성한 기척 가운에서도 유독 신경 쓰이던 존재들.
그중에는 심지어 기척조차 제대로 감지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하나,둘.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는데……
분명 탐지 스킬에 걸리고는 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둘은 기척의 〈형태〉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그저 겉모습이 바뀌는 적이라면 많지만.
이건 전혀 다르다.
‘마치……
〈숨기는〉차원이 아니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탐지>하는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녀석들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두 개의 시선이 날카롭게 이쪽을 마주 응시한다.
코앞에서.
U |
기척으로 이런 느낌까지 가지게 하는 건 결코 범상치 않다.
‘쉽지 않겠군.’
이걸 바로 상대의 전투능력으로 치환해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정신이 바짝 드는 건 사실이었다.
탐지 스킬을,농락한다.
초롱너울과 상대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러니 느껴지는 두 마리만 해도 초롱너울에 못지않은 능력을 가진 요괴일지도 모른다.
다만,다른 점이라면.
저 둘은 결코 육체를 파괴당하며 기꺼워하지 않겠지.
그 밖에도.
하나하나가 결코 만만하지 않은 스물 정도의 요괴들과 함께.
짧고 가벼운 전주곡이 끝나고一
조금씩 본막이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