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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81화 (381/458)

464화 눈먼 달,지는 꽃 (41)

도깨비들이 양쪽으로 납작 엎드린 길을 따라 올라간다.

영안이나 탐색 따위가 있긴 해도 형식적으로 연기하는 건지 진심으로 복종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알 바는 아니다.

아니,사실은.

그걸 궁금해할 여유가 없다.

〈먹어!>

〈먹어!〉

〈전부 빨아먹는 거야!>

〈이 자식,왕이 어쩌니 하면서도 엎드려서 눈알을 굴리고 있잖아?〉

〈뭐? 건방지게 눈알을 굴린다고? 눈알부터 파먹자!〉

〈귀도 떼어 먹고!〉

〈나는 껍질이 좋은걸?〉

〈인간… 도깨비 따위 말고 최고로 야들야들한 인간이 먹고 싶어…….>

〈이 자식들,씹는 맛도 모르냐?>

〈먹어…….>

〈먹어…….>

〈먹고 싶다…….>

〈배고파…….>

〈빨리 먹어 줘…….>

〈먹어…….>

하나의 거대한 군단이 된 채로, 삼천 요괴들의 사념에 영향받는 건 나 하나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림자 자신들이 서로의 마음을 침식한다.

비교적 약한 자아를 가진 요괴는 식욕 외에 다른 마음을 가지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

의식이 까맣게 잠겨 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사념이 울려 퍼진다.

먹어라.

어차피 다 먹어 버리면 진정이건 연기건 무슨 상관이지.

'배가 고프다는 게… 이런 건가?’

요괴들의 감정이 전이된다.

요괴들은 항상 굶주려 있었고.

그건 더 이상 배를 채울 필요가 없는 그림자가 되고 오히려 한층 심해진 것 같았다.

그림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배를 채울 수 없이 흔적밖에 없는 굶주림의 노예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초에 요괴들의 굶주림은 정신적인 영역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 사이를 계속 걷는다.

거대한 부피의 그림자들이 그들의 몸을 덮을 때마다 도깨비들은 덜덜 떨었다.

내게 묶인 요괴들의 분노와 식욕이 계속 홀러들어 온다.

도깨비들에게 사적인 감정을 가진 녀석도 꽤나 많은 모양이었다.

넓은 계단을 백 개쯤 올라간 곳에 우두머리가 엎드리고 있었다.

우두머리를 바라본다.

다른 도깨비들보다 몸은 오히려 작았지만,전신이 금빛으로 빛나고 땅에 눕혀 둔 방망이는 두 배 넘게 기다란 녀석이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우두머리의 복장을 잠시 살폈다.

짧은 바지나 조끼 정도만 착용한 다른 도깨비들에 비해 녀석은 마치 의식을 치르는 사제 같은 치렁치렁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녀석을 보는 순간이었다.

〈도깨비들의 성주다……!>

〈죽여 버리자!〉

〈죽여!>

〈죽여라!>

〈지금은 우리가 강해!〉

〈훨씬 강해! 여기서 당장 죽여서

복수해야 해……!>

짧은 순간에 멍멍할 정도로 수많은 아우성이 울려 퍼진다.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요괴들마저 도깨비들의 우두머리를 보자 즉각 강렬한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도깨비들의 피로 갈증을 식혀 줘.>

〈죽여야지〉

〈죽여 버려야지>

〈이 녀석이 내 친구들을 죽이고 나를 쫓아냈어!>

〈내 사냥감을 약탈했어!>

목이 마르다.

몸서리치는 모습을 보며 우적우적 뼈째로 씹어먹고 싶다.

머리를 오드드득 씹어 먹고 싶고 팔다리를 토톡 끊어 먹고 싶다.

잇몸에 튀는 피가 도대체 얼마나 감미로울까.

그림자들이一

아니,내가 원하는 대로.

눈앞의 도깨비를 통째로 잡아먹고 싶은 느낌을 참을 수 없었다.

통제하기가 힘들 정도의 감정에 완전히 잠겨 드는 것 같았다.

사정을 물을 것도 없이.

다 먹어 버려도 상관은 없다.

‘나는……

뭘 참고 있는 거지?

떠밀리듯 걸어가서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먹을 수 있다.

강하긴 하지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더라도 금방 흡수할 수 있겠지.

물론 이야기 정도는 한번 들어 볼 생각이다.

가까스로 식욕에 고삐를 채우고.

“도깨비 나븐 길달.”

나는 상대를 불렀다.

굳이 초롱너울이 말하지 않아도 수많은 그림자가 녀석의 이름을 아우성치고 있었다.

“예,왕이시여.”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금빛 도깨비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껏 늘어서 있던 우락부락한 다른 도깨비들보다 확실히 더 작은 몸뚱이에 얼굴도 선이 날렵했다.

하지만 이마 한가운데 솟아오른 두꺼운 뿔은 다른 도깨비와 달리 매끈하게 빠지지 않고 우둘투둘하게 몇 겹으로 각질이 져 있었다.

“부디… 저희를 구원해 주십시오.”

“구원이라고?”

내가 이끄는 그림자들이 그 말에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들썩거린다.

계속 신경 쓰며 통제하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먹어치울 모양이다.

“말해 봐라.”

나는 난동을 부리는 그림자들을 억누르며 이야기를 재촉한다.

금빛 도깨비는 고개를 들어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충 내용은 이러했다.

도깨비들은 원래 온갖 가학적이고 육체적인 욕구로 가득 찬 지상의 더러운 요괴들과는 다르다.

도깨비들은 애초에 고귀한 달의 축복을 받는 종족이었다.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달빛만 받고 살 수 있었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몹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종족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달에서는 갑자기 지상의 도깨비들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았고 그들은 점점 쇠약해졌다.

대신 달은 도깨비들에게 달빛을 내리는 대신 인간의 몸에 스며들어 낙인을 박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몸에서 빛나는 그것은 사실 마땅히 저희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순수한 빛을 받는 대신에 그들의 고기나 먹으며 비참 하게 살고 있지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달의 낙인 따위를 바랄 리 없는데 도깨비들은 그걸 질투하며

원한까지 가진다.

〈도깨비들은 다른 요괴들과 달리 인간들에게 ‘먹는 것’ 이상의 강한 증오를 품고 있지요.〉

〈애초에 수호신 따위를 자청하며 인간의 마음을 유린할 만큼의 지독한 악의부터가 괴팍하지만요.〉

초롱너울의 말을 떠올리는 사이에 금빛 도깨비가 이야기를 이어 간다.

“지상의 더러움,욕망,약육강식 같은 건 절대로 저희 도깨비들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달빛이 인간들이 아닌 저희에게 비추기를 바랄 뿐입니다. 달이 눈을 돌려 저희를 바라볼 때, 그때의 충만함과 완벽한 고양감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결국.

신이 되고 싶던 게 아니다.

‘신과의 연결,인가.’

초롱너울이 어처구니없다며 옆에서 피식피식 웃는다.

도깨비를 이해할 수 없기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렇게 철저히 인간을 가학하면서도 오히려 그 자신들이 원한을 품고

혐오를 한다.

물론 나에게 그런 사정 같은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상관없는 이야기에 짜증이 났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격렬하게 치미는 식욕을 간신히 억누르며 물었다.

더 이상 호기심을 풀 수 없다면.

‘먹는다.’

내 욕망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도깨비가 침을 꿀꺽 삼킨다.

“달의 제단을 다시 작동시키려면 몹시 강한 혼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니면,집결되어 하나로 움직이는

혼들이 거나……

“그래서 혼들을 묶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초롱너울이 끼어들었다.

“원래할 줄 몰랐잖아?”

“방법을 가르쳐 준 분이 있었다. 그분께서 전하가 오시리라는 것도 예언했지만… 내가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무리하고 있었지.”

“그게 누군데?”

꿈틀거리는 식욕을 억누르는 사이 초롱너울이 대신 묻는다.

“내기를 걸어 너를 서쪽으로 보낸

방법을 알려 주신 분이다. 자신을 유연이라고 소개하셨지.”

“어쩐지… 네 녀석이 나를 이길 머리가 있을 리 없잖아. 열 받지만 덕분에 전하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봐주도록 할까.”

불꽃이 나를 흘깃 보면서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유연이라니… 처음 듣는 이름이네.”

‘유연이 라.’

분명히 어디에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어렴풋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아파… 아파…….>

〈배고파……!>

〈먹어……!>

〈당장 먹어……!>

하지만 제대로 기억에 닿기 전에 욕망이 돌발적으로 계속 일어난다.

그런 이름 따위는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강한 욕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이야기는 들어 보려고 했지만.

눈앞에서 움직이는 도깨비의 혀를

잘라서 먹고 싶었다.

뱉어 낸 목소리까지 다 먹어 버리고 싶었다.

도깨비인 주제에 갸름한 얼굴을 당장이라도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앞에 엎드려서 계속 지껄여 대는 이 녀석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그럼에도.

‘유연……

그 이름이 머릿속에 깊이 울린다.

〈여기서는 유연流S이라고 하세. 린트부름의 유적을 찾고,자네가 바다를 건너가 줄 곳에서는 캐빈

애슈턴이라고 하면 통할 걸세.〉

기스-제-라이에게.

린트부름의 유적이 잠든 장소를 알려 주었던 동방의 촌장이다.

‘캐빈 애슈턴의 다른 이름이었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올려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런 울림이 머리에 퍼져 가는 것 같았다.

동방에 온 목적이.

남쪽의 도깨비왕을 타깃으로 잡은

목적이 다시 떠올랐다.

머릿속을 뒤덮으며 나를 떠밀던 요괴들의 아우성이 잠시 옅어진다.

‘열쇠… 열쇠를 찾아야 해.’

힘겹게 중심을 잡고.

밀려드는 삼천 개의 생각을 잠시 억지로 밀어낸 뒤.

인벤토리에 황금빛 벌레 모형을 꺼내 들었다.

“이걸 내놔라.”

황금빛 열쇠.

왠지 놓쳐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다시 요괴들의 사념에 잠길지

모른다.

“이런 건 처음 봅니다만……

도깨비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좋은 건 전부 다 니들 창고 안에 처넣을 테니까 있을 거 아니야?”

“그게… 나는 보물창고를 상당히 꼼꼼히 관리한다. 그런 내가 보지 못한 물건이다.”

“일단 열기나 해.”

초롱너울이 윽박질렀다.

“이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개방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의 확약조차 얻지 못한 채로 금빛 도깨비가 나를 인도했다.

더 높은 계단으로 을라갔다.

내가 이끄는 그림자들은 계단을 아예 다 덮어 버리고 그 양옆으로 흘러 넘쳤다.

거기에 비하면 도깨비왕 길달은 우리를 이끄는 작은 금빛 점처럼 보였지만 응축된 존재감은 역시나 상당했다.

‘저걸 먹는다면……

도깨비는 제단으로 가는 도중에 계단에서 멈춰선다.

그리고 자신의 특별히 길고 굵은 도깨비방망이로 조금 들어간 곳을 몇 번 두드린다.

한 곳을 두드리고.

다시 근처의 움푹 튀어나온 곳을 두드린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 다른 곳과 계단을 두드린다.

‘다행인가.’

그냥 먹어 버렸다면 이런 게 있는지 전혀 몰랐겠지.

다른 곳과 특별히 구별되지 않아 보이는 곳인 데다가 탐지 스킬에도 걸려들지 않았지만.

- 드르르륵

거대한 계단이 크기에 비해 무척 부드러운 소리를 내면서 안쪽으로 돌아간다.

‘보물창고인가.’

문이 열리는 순간.

도깨비를 당장 먹어치우라고 계속 아우성치던 그림자들도 잠깐 조용해 진다.

‘이건……

〈보물이다! 도깨비의 보물창고다! 시체다! 돈이다! 진귀한 보물이다! 도깨비를 잡아먹는 것도 좋지만 보물도 좋지! 먼저 빼앗고 나중에 잡아먹자!〉

〈아니야,먼저 잡아먹고 나중에 전부 다 빼앗자!〉

〈보물… 보물… 내 보물.

〈이 도둑놈! 길달! 망할 도깨비! 내가 모은 보물도 훔쳐간 놈이야! 돌려받아야 해!〉

황실의 비역과는 다르다.

도깨비들의 창고에는 총천연색의 보석으로 빛나던 제국의 비역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유약이 곱게 칠해진 우아한 선의 그릇들과 보는 순간 발걸음을 멎게 만드는 여운을 남기는 그림들.

겨울철 반짝이는 성에를 보존해 놓은 것 같거나,바다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을 생생하게 살린 것 같은 조각들.

보물창고에 기나긴 세월을 잠들어 있었을 텐데도 막 햇살을 받아서 눈부셔하는 것 같은 인물화.

‘멋지군.’

도깨비를 먹고 싶다고 아우성치던 목소리들의 상당수가 보물창고로 신경이 휩쓸릴 정도였다.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문을 연 도깨비가 모형을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피식 웃는다.

“찾아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그냥 문이나 열고 있어라.”

그림자가 된 요괴들의 욕망이 내게 공유되는 것처럼.

내 바람도 그들에게 공유된다.

그림자들의 욕망이 아래에서 위로 차오른다면.

내 바람은 훨씬 알기 쉽게 위에서 아래로 넓게 퍼진다.

삼천이 넘는 그림자들은 내 손에 들린 황금빛 벌레를 보고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걸 파악한다.

그리고.

‘좀 뒤집어 놓을 것 같으니까.’

〈보물이다!〉

〈돌려줘!>

〈나도 가질 거야!〉

〈보물… 보물…….>

〈살아 있을 때 하나를 빼앗겼으니

이번에는 마흔 개를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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