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84화 (384/458)

467화 눈먼 달,지는 꽃 (44)

- 털썩!

잘린 팔이 땅에 떨어졌다.

팔은 잘린 채로도 혼자 펄떡펄떡 레안드로를 향해 움직인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이제 잡아 뜯을 수도 없다.

살점을 뜯어서 넣을 입도 없지만, 팔은 무슨 회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없어져…! 없어져 버려…! 그래, 차라리 처음부터 잘라 버리는 게 나았어!>

그동안 자신을 지배하던 식욕이, 거기에 대해 느낀 강한 수치심이, 죄책감이,메워지지 않던 구멍이, 자기부정의 근원이 잘려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에이잇! 속이 다 시원하다!〉

어깨에서 피를 뚝뚝 홀리면서도

소년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제 팔에게 역정을 냈다.

〈그렇게 저 인간을 원하면,아주 잘됐네,아예 붙어 버리면 되겠지! 하나가 되라고! 붙어 버려!〉

소년은 잘린 팔을 주웠다.

그리고 새카만 피를 뚝뚝 흘리는 절단면을 그대로 레안드로의 어깨에 충동적으로 가져다 붙였다.

홧김에 한 일이었다.

게다가 팔이 없는 인간이니까.

혹시나,아주 혹시나.

마음속에서 기대가 전혀 없던 건 아니었지만.

- 꾸드득!

왼팔의 잘린 부분이 꿈틀거리며 레안드로의 어깨에 붙었다.

〈어어?〉

잘린 팔을 치유하지 못해서 아직 몸에 응축되어 있던 황금빛 기운이 어깨로 빠져나왔다.

- 乂、O O 이

봉합된 혈관을 열고.

단절된 신경을 이었다.

소년은 물론,레안드로 자신조차 그 효능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엘릭서를 붓는다면 잘려 나간 팔도 다시 붙일 수 있다.

- 우우우우!

엘릭서의 기운이 감응해서 새로운

어깨로,심장으로,머리로.

왼팔의 검은 혈관이 뻗어 나갔다.

〈저,정말……? 정말 붙… 어?〉

황금빛 기운이 봉합을 끝내고.

- 과광! 과광! 콰광!

팔에 응축되었던 새카만 기운과 레안드로의 원래 경맥에 있던 푸른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 계속 폭발을 일으켰다.

〈이게… 대체 뭐야?〉

소년이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쏟아지며 온몸에서 땀이 솟아났다.

전신의 경맥과 혈관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에 인상이 찡그려지며 레안드로의 몸이 덜덜 떨렸다.

안에서 일어나는 폭발과 충돌에 기절한 채로도 충격으로 발작하며 입에서 피를 흘렸다.

크으으으윽

- 파직! 파지지직!

심장의 1/3 정도까지 검은 혈관이 뻗어 나왔을 때 검은 기운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췄다.

그러나 기운은 심장뿐만 아니라 이미 목을 타고 왼쪽 머리 일부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아… 안 돼! 피까지 토하고 있어! 어쩌지? 어떡해야 하지? 아저씨? 괜찮은 거야? 나 때문이야? 설마 이 팔 때문이야?”

기절한 레안드로의 정신을 뚫고.

어렴풋이 목소리가 들린다.

어째서인지 요괴의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해석되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배경으로 레안드로의 머릿속에 온갖 기억이 떠올랐다.

데서리 바티엔느와의 유년시절.

어머니의 장례식.

복수를 위한다며 방에 틀어박혀 마물을 연구하던 아버지.

삼 년을 매일같이 유년을 되살리다 결국은 베어 버린 잔상.

더 이상 떠올릴 수 없게 되어 버린 그녀의 환상.

고독한 마물사냥꾼으로서의 삶.

마물을 직접 잡는 대신,마물을 잡아 받은 현상금을 탐내서 자신을 몰이사냥하던 현상금 사냥꾼들.

숲속의 추격전.

3미터의 영역.

그 안에 들어온 인간들을 차분히 죽일 때 느껴지던 쾌감.

배를 잡고 내장을 뜯어내어 입에 넣던 쾌감.

쾌감……?

사냥꾼들의 내장을 뜯어냈던가?

그런 취미는 없다. 먹었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위조된 쾌감 속에서 강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기억이 계속 빠르게 지나갔다.

히포그리프가 먹었던 시체들.

인간은 대충 잡아 뜯어 먹는 것도 괜찮지만 차분히 발골해서 먹어도 좋았을 텐데.

미 유.

사막의 기사단. 로랑스 타르티에. 묘한 타이밍에 자기를 보라는 듯이 10년 만에 나타난 가르베라.

본체를 갈랐지만.

나이테라고는 없이 매끈하던 핵.

로랑스 타르티에를 조사하던 도중

나타난 마물.

해변에서의 싸움.

항해. 유령선단. 수많은 요괴들, 떨어지던 팔…….

- 콰득!

레안드로는 손으로 강하게 바닥을 움켜쥐었다.

‘꿈인가……?’

두 팔은 분명히 잘렸는데.

‘미유……

꿈이라면 미유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죽은 게 꿈일지도 모른다.

동방이라는 대륙에 온 것 자체가 허황된 꿈일지도.

여기는 마구간일까.

훈련을 마치고 지쳐 버린 미유를 눕히고 자신도 잠든 것일까.

오른쪽에 있는 미유를 더듬으려고 팔을 뻗었다.

하지만.

오른쪽 팔은,여전히 없었다.

아무것도 뻗지 못했다.

미유는 숨소리가 없다.

이왕 꿈이라면 전부 살려 놓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덜덜 떨리는 왼쪽 손을 들어 동굴 안쪽까지 튄 빗물을 닦았다.

왼쪽 팔의 감각이 이상하다.

우둘투둘한 혈관이 돋아 있는 게 자기 팔의 감각이 아니다.

‘이건… 뭐지?’

불길한 감각에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머리칼이 헝클어진 소년의 두 눈동자가 보였다.

“무슨… 꿈을 꾸고 있어?”

제국어?

아니다.

모르는 게 당연한 낯선 언어가, 자연스럽게 해석되어 들렸다.

역시 꿈인가.

“…요괴의 말이 들리다니.”

그 언어를 들어서인지.

자연스럽게 같은 언어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소년이 눈이 동그랗게 떴다.

“내 말이… 들리는 거야? 그리고 난 요괴가 아니야! 원래 아니었어……. 이제는 더 아니라구!”

레안드로는 필사적으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요괴를 바라봤다.

요괴의 눈은 맑고 생기가 넘쳤다.

무력하지 않았다.

음울하지 않았다.

요괴는 자신을 얽어매던 굴레에서 해방된 듯이 가뿐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레안드로는 그 맑은 요괴의 눈에 비친 스스로를 바라봤다.

자기의 눈빛을 바라봤다.

눈빛은 무력하다.

죽어 썩어 있었고.

궁핍했다.

가지고 있던 아주 작은 환상마저 철저히 폐기된 그곳엔 쓸쓸함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없이 어둡고,음울하고, 시꺼멓기만 했다.

이래서는 눈빛만 봐도…….

도대체 어느 쪽이 요괴인가.

우스웠다.

레안드로는 요괴의 눈에 비치는 자신을 들여보다가 다시 왼쪽 팔로 시선을 향했다.

새롭게 어깨에 달린 왼팔은 계속

욱신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외쳤다.

통증이 아니다.

자신의 뜻을,기운을,피를 좀 더 밀어붙이기 위해서,심장에,머리에 자리를 내줄 것을 강요하는 강렬한 욱신거림 이었다.

시커멓게 혈관들이 돋아나 있는 왼팔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강렬한 요기가 느껴졌다.

농담이 아니다.

눈빛이 아니라 육신마저도 요괴가 되어 버렸다는 건가.

“이건 뭐지……?”

팔 하나가 생겨났다는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경계심과,타죽어 버린 뼈 같은 건조하고 앙상한 목소리로 레안드로가 물었다.

“하하핫,아저씨… 괜찮은 거지?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내 팔이야. 아니,이제 아저씨 팔이야.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괜찮지 않아? 아까… 걱정했는데.”

레안드로는 눈앞의 소년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잘려 나가 있었다.

자기 팔을 잘라서 이식해 준 건가.

소년에게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쓱스러움과 미안한 감정,그리고 뚜렷한 선의가 느껴졌다.

레안드로는 어쩐지 머리를 만지는 소년의 팔을 쳐낼 수 없었다.

상대가 잘라 준 팔로 상대의 팔을 쳐내는 일이 어쩐지 몹시 기괴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잘린 팔에서 흘렸는지 바닥에는 새카만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상대를 호명했다.

“•••요괴인가.”

“아니라니까! 나는 인간이라고요! 너를 먹고 싶지 않아!”

“아니,그러니까,원래부터 먹고 싶지 않았어! 아니, 지금도 조금은 먹고 싶긴 하지만, 으아아! 몰라! 참아왔어! 지금까지 인간은 정말 한 명도 먹지 않았어!”

“•••그만해라.”

고개를 돌렸다.

이식된 왼쪽 팔의 강력한 요기는 신경 쓰지 않으면 계속 높아지면서 자신을 침식할 것 같았다.

‘옮겨 온 건가.’

지금 소년에게서 느껴지던 요기는,

확실히 그가 처음 나타날 때보다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이 팔에 소년의 요기가 몰려 있었던 건가.

그게 아니면 일부러 한쪽 팔에다 요기를 몰아넣었는지도 모른다.

반인반요라도 되었다는 건가.

자세한 사정은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 두근.

식욕.

“ O 으

— td

낯선 식욕이 배를 돋아 올라왔다.

갈증이 목을 더듬어 을라왔다.

팔이 떨렸다.

먹고 싶다. 마시고 싶다.

온몸을 때리는 것 같은 식욕의 정체를 깨달았다.

인간의 고기를 먹고 싶다.

인간의 피를 마시고 싶다.

인간을…….

- 스릉.

레안드로는 검은 피로 범벅이 된

칼을 손에 들었다.

소년도 이 칼로 자신의 왼팔을 잘라냈을 터였다.

이걸로…….

잘라낼 수가 없었다.

들고 있는 칼로 칼을 들고 있는 팔을 잘라내는 행위는 물리적으로 어려웠다.

아니,그보다도.

기껏 생겨난 팔을.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칼을 잡는 순간의 그 전율을 다시 느끼게 해 준 팔을.

다시 잘라내는 것이.

레안드로는 분명히 아까웠다.

자를 수 없었다.

자르고 싶지,않았다. 머뭇거리며, 분명히 그런 감정이 돋아났다.

요괴의 팔을 얻고.

인간의 살과 내장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칼을 쥐고 싶다는 건가.

그는 어지러울 정도의 혐오감을 느꼈다.

이런 자신이라면…….

죽어 버리자.

팔을 자르는 건 조금 힘들겠지만, 목이라면 쉽게 베어낼 수 있겠지.

마물들을 벨 때처럼 다시 검기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베어야 할 마물이 그냥 자신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겠지.

올라온 검기에는,

- 우우웅.

새카만 기운이 반쯤 섞여 있었다.

스스로가 일으킨 검은 기운을 보자 손에서 힘이 쭉 빠졌다.

자살마저도 요괴의 힘으로 해야만 한다는 건가.

- 쩔그렁.

힘없이 칼을 떨어트린 레안드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저씨,괜찮아?”

소년이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계乂사?”

이 팔이 생겨서.

요괴의 힘과 식욕이 생기고.

동방의 언어가 들렸다는 건가.

죽고 싶었다.

하지만 자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을 유폐하고 싶었다.

“내버려 둬.”

레안드로는 작고 낮게 말했다.

“아저씨!”

“나를…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라. 이 팔은… 다시 가져가도 좋다.”

“아니에요! 아저씨 팔이에요! 나는 그냥 싫어서 잘랐는데 아저씨한테 붙은 거란 말이에요.”

“제발 좀 내버려 둬.”

“싫어! 안 내버려 둘 건데요! 도토리 먹을래요? 여기 있어요. 더 먹고 싶으면 말해요. 저 안에 제가 잔뜩 모아 놨거든요.”

소년이 손을 내밀었다.

까지도 않은 도토리 두 알을 보고 레안드로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소년은 가까이 왔다.

휘휘 저어서 소년을 내치려다가, 그 팔이 소년이 잘라 붙인 팔임을

떠올리면서, 레안드로의 움직임은 다시 굳어 버렸다.

“내 이름은 쇠돌이예요.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그냥 가.”

“도토리를 별로 안 좋아하나 봐요? 그러면 다른 걸 가져올게요. 잠깐 기다려 볼래요?”

한 팔이 잘려서 그만큼 몸이 더 가벼워진 걸까.

소년은 어두운 동굴로 사뿐하게 걸어 들어갔다.

레안드로는 캄캄한 어둠을 보면서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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