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8화 눈먼 달,지는 꽃 (45)
“가라.”
레안드로는 소년이 계속 음식을 가져다주는 걸 거절하면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공허한 시선이 어둠을 더듬다가 소년을 향했다.
다행일까.
팔 자신이 떨어져 나온 몸체라서 그런지 반요 소년에게만은 식욕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그 사실을 희미한 위안으로
삼는 사이,미유의 몸은 썩지 않고 조금씩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미유가 흩어진 자리.
그 아래 꽃이 피었다.
땅에 뿌리도 박지 않은 붉은 꽃 한 송이.
어떤 마침표처럼 느껴지는 그 꽃을 레안드로는 멍하니 바라봤다.
“아저씨! 대체 언제까지 아무것도 안 먹을 생각이에요? 정말……!”
소년이 가져다준 음식들이 곁에 쌓여 갔지만 입도 대지 않았다.
몸과 머리에서 먹는다는 행위를 지우려 했다.
식욕이라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얼룩처럼 느껴졌다.
몸은 점점 쇠약해졌지만,의도와는 반대로 요기가 망가지는 몸을 잠식 하려고 더 날뛰었다.
막 이식된 팔은 어느 부분보다도 살고 싶어 했다.
온몸에 가시처럼 박혀 가는 식욕에 격한 구토감을 느꼈지만,먹은 게 아무것도 없기에 제대로 토하지도 못하고 꺽꺽거리기만 했다.
이미 무너진 마음을 따라 몸까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검주의 몸으로도 갈증은 견딜 수
없었기에 레안드로는 동굴 입구로 몸을 뒤척여 빗물을 받아 마셨다.
빗물이 입술을 축이고,입안에 들어오고,식도를 지나며 자극하자 반사적으로 식욕이 을라온다.
머릿속으로 함께 전장을 달리던 기사들이 식욕과 함께 떠올랐다.
요리를 잘하던 기사가 생각났다.
특히 굽고 튀기는 요리를 잘하던 제이드라는 이름의 기사.
그런데.
뭐 하러 요리를 해야 하지?
인간은 굳이 양념을 해서 굽거나 바삭하게 튀기지 않아도 맛있는데.
날것 그대로가 최고.
살아 있는 상태가 좋다.
비명과 몸부림이 식욕을 최고로 돋워 주니까.
제이드의 요리들이 모두 형편없이 느껴졌다.
그 녀석 자체가 제일 맛있을 텐데.
- 콰득.
자신의 생각을 의식한 레안드로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지만 욕망도 생각도 감을 수 없었다.
귀조차 감을 수 없었다.
같이 마물과 싸워 왔던 기사들을 떠올리고 먹고 싶어서 쿵쿵 울리는 심장 박동을 듣는 귀조차도 감을 수 없었다.
이끌던 기사들 가운데 누구라도 나타난다면.
검을 겨눠 준다면 안간힘을 다해 그곳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레안드로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최소한 이름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인간을 먹고 싶어 하는〈요괴>인 자신을 계속 그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것인가.
팔을 잘라내지 못하고.
칼에 감도는 요기妖氣에 억눌려 자살도 하지 못하는 그는.
보이는 즉시 마魔를 벨 때 쓰던 레안드로 폰 바티엔느라는 이름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지웠다.
자신을 잃어버린 남자는 내면을 관조했다.
‘이게 요괴의 욕망인가……
동방의 요괴들은.
이런 것에 침식당하고 끌려가면서 평생을 움직이는 걸까?
고작 팔 하나분의 욕망을 품고서 괴로워하며 남자는 요괴들에 대해
터무니없게도 동정심을 느꼈다.
이건 욕망인가,필요인가.
물론 구분 따위는 무의미하다.
남자는 동굴 벽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빗물을 마시며, 목구멍에 돋아나는 욕망을,팔에서 시작해서 몸 전체를 순회하는 욕망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스스로가 고작 반쪽짜리 욕망조차 제어하지 못해서야 누구에게 무슨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어떤 요괴를 벨 수 있을까.
남자는 소년이 계속 가져다 쌓는 도토리를 씹었다.
풀뿌리를 침으로 녹여서 삼켰다.
결코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이 혀에 닿고 입안에 퍼지는 순간.
울컥 솟아올라 몸을 가득 메우는 식욕을 그냥 느꼈다.
평생 적대시해 왔던 욕망을 남자는 자기 안에서 차분히 관조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욕망으로,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욕망으로 가득하며.
그걸 그냥 괴물이라고 부르는 건 간단하다.
보는 즉시 베어야 할 괴물이라고 적대시한다면 모든 것이 명쾌하고,
깔끔해진다.
남자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괴물이 자기 안에 자리 잡는다면.
거기서 모든 어긋남이 생겨난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조금도 간단하지 않았다.
남자는 가만히 앉아서 제 욕망을 참다가 구토하고,입술을 짓씹고, 왈칵 눈물을 홀렸다.
너무 인간을 먹고 싶어서 도무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이 지독히도 우스꽝스러웠다.
한쪽 눈 근처까지 새카만 혈관이
번져 있었지만 왜인지 눈물만큼은 별빛처럼 맑고 투명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욕망은 씻어지지 않았다.
투명한 눈물 아래 푸른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 * *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달이 지나갔다.
달은 계속 모습을 바꿨다.
풀이 돋았다가 시들고,이파리가 울긋불긋 물들다가 지고,장마철이 몇 번 지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가 자신의 내면만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대부분의 시간을 동굴에서 보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느새인가 남자는 일어났다.
그리고 한 번도 다시 바닥에 눕지 않았다.
잘 때도 앉아서 잤다.
스스로 잠을 잤는지조차 모른다.
눈은 깊이 움푹 꺼지고.
몸은 뭘 걸쳐도 흘러내릴 정도로 앙상하게 마르고,피부는 여기저기 갈라지고 핏줄이 드러났다.
남자는 땅에서 나온 꽃과 곡식을 먹는 벌레를,벌레를 먹는 짐승을, 짐승을 먹는 인간을,인간을 먹는 요괴를 생각했다.
동굴에서 머무르는 사이.
자신을 찾아온 요괴들의 시체가 묻힌 곳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던 모습을 생각했다.
‘자연은……
먹는다는 건 무엇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어떤 걸 희미하게 느꼈고.
어느새인가 자신의 욕망을 흔들림 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가슴에서 울리는 그 욕망이 이제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을 뜯고,씹고,삼키고 싶은 욕망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었다.
굳이 부정할 것도.
도취할 것도 없는 그냥 욕망.
단선적이고 연기 같은 거라고 굳이 펌하할 것도,본질이며 목적이라고 애써 긍정할 것도 없다.
“아저씨,오늘은 무슨 생각 해요? 맨날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져 버리겠어요.”
동굴 입구에 앉아.
흩어져 버린 말의 시체 아래 남은 한 포기의 붉은 꽃을 바라보며.
시선의 반은 동굴 밖 빛을 보고.
시선은 절반은 동굴 안의 어둠을 보는 남자에게 소년이 물었다.
십 대 초반.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해서인지, 소년은 본격적으로 자라서 키가 10cm도 넘게 커 버리고 뼈도 무척 굵어져 있었다.
소년은 몰랐지만.
그날 밤 팔을 자르지 않았다면, 몸의 욕구에 강렬하게 눈뜨게 되는 사춘기 시기 소년은 식인의 욕구를 견디지 못하고 힘겹게 지키던 선을 완전히 넘어 버렸을 것이다.
제가 무척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소년은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언제부터 일까.
말 없는 남자는 더 이상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
“•••가라.”
언제나처럼.
남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싫은데요? 어차피 아저씨는 나를 밀어내지도 못하잖아요.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실 것도 아니잖아요. 아저씨도 사람을 먹을까 봐 무섭죠? 왼팔에 힘주는 게 무섭죠? 헤헤. 그러니까 마음대로 아저씨 가까이 가야……. 어어!”
남자는 곁에 다가가려는 소년을 ‘왼팔’로 밀어냈다.
무쇠처럼 굳은 것처럼 ‘왼팔’에는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기 팔이,어째서.”
하지만 왼팔의 검은 혈관은 전혀
울퉁불퉁 돋아나 있지 않았다.
신경이 발작하지 않으며.
근육은 꿈틀거리지 않고.
요기는 조금도 폭주하지 않는다.
그저,평온하게.
“무서워야 하나.”
보통의 팔처럼 평범하게 가라앉아 피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으아! 어이쿠!”
소년은 깜짝 놀라서 원래 제 몸에 붙어 있던 남자의 팔을 잡았다.
“어떻게 된 거죠? 이제 그 팔에 힘을 줘도 괜찮은 거예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눈을 감았다.
- 우우응……!
남자의 어깨에서 새까만 요기와 파란 기운이 서로 교차되어 빙그르 나선으로 돌았다.
서로를 끌어당기고.
때로는 서로를 밀어내는 두 갈래 기운이 천천히 손끝까지 내려왔다가 살짝 소년의 가슴을 짚은 뒤 다시 어깨로 되돌아갔다.
“와아아…! 아저…씨! 대단해요…!
그 기운을 완벽하게 통제하실 수 있게 됐어! 역시! 아저씨한테 주길 잘했어요! 이럴 줄은 몰랐지만!”
그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반쯤 하얗게 변해 버린 머리칼을 흩트리며 남자가 소년을 바라봤다.
주변에 먹을 것을 차곡차곡 쌓아 주는 사이 손도 대지 않고 남자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가만히 앉아서 어떤 걸 생각하고 있었는지 소년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안 갈 거면… 물 좀 주겠나?”
남자가 가라는 걸 말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처음이라서.
몹시 기뻤다.
“맞아요! 가져왔다구요!”
소년은 맑은 지하수가 찰랑거리는 나무 물통을 앞으로 내밀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는 소년이 그동안 쌓아 놓은 더미에서 찹쌀과 보릿가루,마 가루에 밤 가루까지 섞어 물통 속에 넣었다.
나뭇가지를 써서 가루가 물속에 골고루 퍼지게 한 뒤 조금씩 그걸 들이켜기 시작했다.
일 년 만인가?
아니면 이 년 만일까.
날짜를 헤아리지 않았기에 얼마나 오랜만의 식사인지는 모른다.
- 꿀꺽.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배와 등이 붙다시피 한 육신으로 청량하고 달콤한 기운이 퍼져 갔다.
- 뚜둑.
입과 목을 충분히 축인 뒤 남자는
옆에 쌓인 더미에서 누룽지를 집어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살짝 눌은 찹쌀 누룽지가 녹으며 고소한 향과 묘한 단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와아……!”
소년이 탄성을 냈다.
분명히 맛있어 보인다.
자기가 가져온 것들을 처음으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몹시 뿌듯했다.
- 스륵.
남자는 누룽지를 마지막까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밖으로 나가겠다.”
“아저씨? 밖… 으로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준 팔은 엄청 강하기는 하지만… 당신은…! 그럼 잠깐만요! 이렇게 갑자기 동굴을 떠난다고 하시면! 저도 뭘 챙길지 고민해 봐야 하는데!”
“…혼자 간다.”
“무슨 소리예요! 싫어요! 아저씨랑 나도 같이 갈 거예요! 위험해요!”
소년은 남자의 쇄골 근처에 찍힌 낙인을 가리켰다.
하지만,
“어? 없…어 졌어?”
만월인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쇄골 근처에 있는 낙인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고 있었다.
“어,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는 살짝 걸음을 멈추고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몸에 감도는 요기를 통제해 여기로 몰아넣으니 낙인을 가려 주더군.”
“네? 그런 것까지 가능해요?”
- 저벅.
“…가겠다.”
“알았어요! 나도 짐을 안 챙기면 되잖아요! 원래 챙길 것도 없어요! 그런데 어디로 간다는 거예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에서 든 꽃을 품에 넣고 계속 동굴 밖으로 걸어갔다.
“에잇……
소년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이 길은 어디죠?”
남자가 걷는 길은 소년이 평소에 오가는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큰 나무들 사이로 쏟아 들어오는 환한 달빛.
다채로운 꽃들이 달빛 아래에서도 풍성하고 짙은 색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그 아래에는.
“도대체……
이미 풍화된 요괴의 시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언제 죽은 걸까?
완전히 뼈만 남은 요괴들도 있고, 천천히 썩어 가는 잔해들도 있었다.
요괴들이 죽고,시체가 누운 곳에 숨 막힐 것처럼 화려한 꽂이 피고.
그 옆에 다시 요괴들이 쓰러지고를
몇 해가 지나도록 반복해 온 듯한 풍경이었다.
남자는 걷고,소년이 다시 뒤를 따라 걸었다.
눈에 보이는 시체의 숫자만 해도 수백을 훌쩍 넘어선다.
“무슨… 일이죠…? 이 녀석들… 혹시……
“낙인을 숨길 수 있게 되기 전에 동굴 주변으로 다가온 녀석들이다. 미리 감지해서 없애 버렸다.”
“ I ”
자신이 붙여 준 팔로 이 정도의 살육을 벌였다는 이야기일까.
눈을 크게 뜨며 침을 꿀꺽 삼키는 소년에게.
“따라오지 마라.”
경고가 다시 이어졌다.
“어딜… 가는데요!”
“신에게.”
“네……?”
“습격한 요괴들을 잡아서 물었다. 내 말에게 생겨났던 붉은 반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지. 이곳의 신이 피워 낸 꽃을 먹으면 받는 저주라고 하더군.”
“그렇게 죽은 건,꽃으로 남고… 신이 살려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꽃을… 품었던 게……!”
팔을 줬기 때문일까.
실체를 가진 신에게 향한다는 게, 어쩐지 긴장된 탓일까.
남자는 소년에게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한 번,살려낼 수 있다고 했지.”
“나는,”
남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뜨며 마지막 말을 이었다.
“…녀석을 살리고,돌아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