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94화 (394/458)

478화 주머니 속의 칼 (2)

자루 속의 물건들을 보며.

넥스몬드 선장은 벌린 입을 도저히 다물 수 없었다.

이 황당한 보물들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단 말인가?

‘동방에서 전설의 보물 창고라도 싹 털어 온 거 아니야?’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물건들의 수준은 터무니없었다.

물품의 1/3은 단 하나로도 연합 경매장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만한 보물들이 다.

한 시즌에 연합 경매장에 나오는 물건 전부를 주더라도 그 하나와 절대로 바꾸지 않을 보물들.

‘그건 그렇다고 쳐.’

선장을 더욱 환장하게 하는 것은, 나머지 2/3는 감히 측정할 수조차 없는 보물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미치겠군,정말……

엠버메어의 최신 감정안조차 답을 주지 못했다.

하나하나 떨리는 손으로 더듬어

봤지만 최신 버전의 촉각 센서도 쓸모없다.

다만 이것들이 의심의 여지 없는 ‘진짜’라는 사실은 상인으로 살아온 그의 온 감각이 외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방금,뭘 본 거지?

눈앞의 보물들은 허공이 찢어지며 튀어나왔다.

‘원래도 어려웠는데……

도저히 눈앞에 서 있는 존재의 가격’을 매길 수가 없다.

그냥.

엄청나다는 것만 알 뿐.

등에서 차가운 식은땀이 흐르고.

미세하게 꿈틀거리던 넥스몬드의 입가가 굳어진다.

- 두근!

빠른 두뇌 회전을 위해 인공으로 만들어진 심장이 펌프질을 한다.

‘오각별을 꺼낼까?’

당연히 가진 카드를 모조리 주며 가입을 권유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갖고 싶군.’

상인 연합에 가두고 싶지 않다.

다른 녀석이 손을 뻗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

넥스몬드는 눈앞의 존재를 가만히 저울질했다.

반대편에 ‘철제 침대’ 전체를 을려 놓아도 과연 이자보다 무거울까?

회의적이다.

‘어떻게든 엮이고 싶다.’

설령 치명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깊이 엮이고 싶은 감각.

넥스몬드의 삶에서 최초로 느끼는 기괴한 감각이었다.

* * *

“이걸… 제게 주신다는 겁니까? 은신처 하나로 이런 걸 받을 수는 없습니다만……

“선금이다. 계속 거래하지.”

나는 넥스몬드를 바라봤다.

상인의 눈빛이 흔들린다.

말 그대로 측정이 안 되는 선금을 받아 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산할 수 있는 만큼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줘야 맞겠지만.

넥스몬드는 눈앞의 자루를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목줄이 매인 거나 마찬기자다.

“이런 걸 선금으로 주시다니……! 저를 많이 믿으시는군요……

목소리까지 흔들린다.

넥스몬드는 알아보는 눈도 있고, 상인으로서 직업 윤리가 투철하며, 거래가 정확하다.

이만큼의 선금을 준다면 이자까지 제대로 쳐서 갚겠지만.

목줄은 오래 쥐고 있자.

내가 원하는 것만 원하는 시간에 가져다주도록.

세상 바깥과의 연결은.

이 녀석 하나면 충분하다.

“믿으면 안 되나?”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후후… 다른 놈들 말고 저만 믿으십시오.”

선장은 묘한 태도를 보인다.

“달리아크를 통해 직접 제 이름을 지목하신 것도 그렇고,저에 대해 많이 알아보셨군요.”

“뭐,그렇지.”

“저를 선택해 주셔서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저렇게까지 의욕에 가득 차 있을 필요는 없는데.

뭘 생각한 건지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건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하겠다는 넥스몬드를 따라서

해안가를 걸어갔다.

중심가를 등진 채였다.

민가는커녕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미행이 붙으면 싫어도 알 수밖에 없을만큼 지독히 한적한 길이었다.

그럼에도 안전을 기하려는 건지, 넥스몬드는 망원경을 두 눈에 대고 백여 미터마다 주위를 둘러봤다.

한참을 걸어가자 탁 트인 바다가 길 위에서 훤히 보였다.

겨울이라고 해도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한 정도였다.

하늘과 바다 사이 차가운 기운이

달콤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때쯤 주변에 드문드문 민가들이 나타났는데, 짐작컨대 풍경 때문에 이렇게 외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사는 것 같았다.

“여깁니다.”

넥스몬드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길 오른쪽 언덕에 수풀들 사이로 자그마한 계단이 있었다.

얼핏 평범한 계단처럼 보였지만, 여기 이게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백이면 백 지나칠 만큼 교묘하게 감춰져 있다.

‘마법이 걸린 것도 아닌데.’

차라리 그랬다면 뛰어난 마법사의 관심을 끌었겠지.

신경이 안 쓰이도록 자연스럽게 은폐된 상태가 기가 막히다.

아무렇게나 자란 것 같은 수풀도 하나하나가 세심한 의도를 가지고 심어졌을 테고.

무언가 감추려는 건.

숨기려는 건 오히려 쉽다.

정말 어려운 건 무언가 숨기려는 의도까지 감춰 버리는 것이다.

‘…훌륭하군.’

넥스몬드가 계단 위를 올라갔고, 뒤를 따라갔다.

올라가자 작은 향로가 있다.

제단 옆 석재 헌금함에 구리 동전 몇 개가 떨어졌지만 진지하게 향을 피운 흔적은 없다.

‘버려진 장소.’

이런 데 누가 오기는 할까 싶다.

‘적절해.’

어디에나 흔히 있을 법한 제단처럼 과하지 않으면서도 아는 자들에겐 뚜렷한 표식이겠지.

중앙에는 석상들이 삼각형 형태로 세워져 있었다.

모두 셋.

앞에 있는 인간의 석상은 방패를.

왼쪽 뒤의 석상은 활을 들었고. 오른쪽 뒤의 석상은 한 손에 오브, 다른 한 손은 지팡이를 들고 있다.

그리 경외의 대상은 아닌지 석상 주변에 쓰레기가 서너 점 어지럽게 널려 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왠지 한 번쯤 스치듯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석상 자체가 얼굴이 그리 정밀하게 표현되지 않은 데다,몹시 오래전 세워졌는지 풍화되어 있어 잘 알기 힘든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나름대로… 신전입니다. 오래전 마왕의 던전을 토벌한 모험가들을 신으로 숭배해 세워 놓은 것이죠. 이걸… 이렇게 하면……:’

- 좌륵.

넥스몬드는 코트를 살짝 열었다.

길고 날카로운 은색 창이 품에서 빠져나와 눈 덮인 땅바닥을 푸욱 찔렀다.

뇌와 완벽하게 연결된 의안義眼이 지시하는 궤적에 따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 자루의 은빛 창이

땅을 찌르고.

- 파지지직…….

창끝으로 전류가 흐른다.

그것과 함께.

- 스르르르.,

세월에 풍화되고.

찾는 이도 없고.

관리도 전혀 안 되는 위쪽 제단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무척 부드럽게 무언가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 딸깍.

뭔가 따이는 소리가 나며.

작고 시커먼 구멍이 입을 열었다.

M |,,

석상 셋 사이에 갑작스레 생겨난 구멍을 보고 감탄이 흘러나온다.

'•••폴륭하군.’

첫 번째.

여기가 은신처의 입구라면.

모르는 이가 우연히 이곳을 열 수 있을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세 지점에 동시에 압력과 전류를 가해야 열리는 방식이라니.

두 번째로.

통로가 열린 아래는 그냥 컴컴한 지하였다.

내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까지도 그랬다.

웬만한 녀석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나가더라도.

안에 이렇게 은신처가 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거다.

입구로는 완벽하다.

“가시죠.”

一 터벅.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딱 한 명 정도만 지나갈 넓이였는데,지하 20미터,30미터 아래로 더 내려갈수록 그에 따라 공간이 조금씩 넓어졌다.

그리고.

단순히 뚫린 길 하나를 계속해서 내려가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하면……

넥스몬드는 중간중간 벽을 밀고, 돌계단을 열어 밑에 있는 레버를 잡아당겼다.

그에 따라 조명이 켜지고.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관찰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처음부터 알지 못하면 쓸 수 없는 기관장치들이다.

“곳곳에 철판 차단기가 있습니다. 그냥 내려오면 진로도 퇴로도 끊겨 갇혀 버리게 되죠.”

통로의 내부는 돌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겨 입구가 발각된다고 해도 침입자는 쇳덩이 사이에서 생매장되게 된다.

“이곳은… 도대체 뭐지……?”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최상위의 은신처입니다. 이곳의 접근 권한을 넘겨드리려고 합니다.”

“…대단하군. 엠버도 아닌데 이런 은신처를 만들 수 있다니.”

글로리아의 꿈 기계를 보호하던 기관장치가 떠오른다.

이렇게 깊이 땅을 파는 것 자체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고.

두꺼운 철판들로 기관을 제작하는 수준까지 가면 말할 나위도 없다.

“엠버에 대해서도 깊게 아시는 것 같군요. 하지만 연합도 나름대로 기술로 절대성을 추구하고 있지요. 어둠에 숨은 자들은 더 그렇고요.”

어둠에 숨은 자들이라.

상인 연합을 칭하는 호칭으로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더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비밀 통로의 끝은 허름한 지상의 입구로는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공간이었다.

반경 300미터는 훌쩍 넘을 듯한 거대한 지하 공간에는 식량과 수도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뭐가 이런……

대충 탐지해 봐도 거의 수십 년에 걸쳐서 꾸준히 관리되고 만들어진 장소 같았다.

이런 장소까지 갖고 있을 줄이야.

은신처를 달라고 했더니.

기대도 안 한 수준의 터무니없는 장소에 데려와 버렸다.

깊은 동굴 정도나 소개해 줬어도 만족했을 텐데.

“솔직히… 놀랍군.”

상인 연합의 저력에도.

눈앞의 인간에게도.

넥스몬드가 몹시 뿌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사실 저희는 제국보다는 연합에 더 기반을 두고 있고,특히 저는 이곳이 제 고향이니까요.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제가 숨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제 최후의 보루를 믿고 맡기는 겁니다. 저를 그만큼 믿어 주신 것처럼 말이죠.”

나를 보고 눈을 깜빡이면서 짓는 미소가 조금은 부담스럽다.

자루에 너무 많이 담은 걸까?

반만 담아도 됐으려나.

넥스몬드와 함께 걸으며 벽면까지 자세히 둘러보자.

‘이런 거였나.’

어째서 마왕의 던전을 토벌했다는 모험가들의 석상이 이 위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으음.’

석상은 없었지만.

늑대의 몸을 한 올빼미의 부조가 곳곳에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아몬.

제 2좌.

불꽃과 악의의 마왕이 커다랗게 뚫린 눈으로 사방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아몬의 제단이었던 건가?”

“그것까지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넥스몬드가 말을 이었다.

“사실 던전이 쓸려나간 후에도 마왕을 숭배하는 사교도들이 여기 비밀리에 모여 회동을 가졌습니다. 그 녀석들이 이 통로와 장치들을 대부분 마련해 놓았지요.”

“너희들이 사교도들을 살해하고 여길 손에 넣은 건가?”

넥스몬드가 머쓱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이십 년 전에 이곳을 관리하던 마지막 아몬의 제사장이 이곳을 저희에게 팔아먹었지요.”

“뭐?”

“강림도 안 하는 마왕을 기다리는 게 지겹다고… 이곳을 저희한테 팔아 먹었죠. 그리고 그 돈으로 방탕하게 살다가 마약에 취해 죽었습니다. 저희들이 건강관리까지 해 주는 건 아니니까요.”

‘…제사장이 그래도 되나?’

아무튼.

잘 죽은 건지도 모른다.

승배를 멈추고 십 년 후에 실제로 마왕이 강림하는 걸 봤다면 몹시 억울했겠지.

아니,희망고문 없이 삼십 년을 편하게 살았으니 만족하려나.

‘제삼자가 알 수야 없지만.’

내일 강림해도 상관없으니까 이제 마왕 승배 따위는 때려치우겠다는 생각으로 팔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벽면에 새겨진 부조들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바라보았다.

바알의 신전처럼 어디 숨어 있다 덤벼드는 녀석은 없다.

그때처럼 홍옥을 입에 물렸을 때 들리는 목소리도 없고.

‘입에 물릴 뭐도 없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동상이나 제단 같은 것도 없다.

마지막 사교도가 응답도 강림도 하지 않는 마왕에 열 받아서 스스로 부숴 버리기라도 한 건지 모른다.

'팔아먹었다니까 가능하긴 한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부조들의 커다란 눈이 좀 찝찝하긴 하지만.

어쨌건.

무려 반경 300미터가 넘는 넓고 쾌적한 공간.

수련하기에 이만큼 편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정말 내가 써도 되나?”

“물론입니다, 어디에도 누설되지 않는 오로지 손님만의 은신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기……

넥스몬드는 한쪽 구석의 철판을 가리켰다.

두껍고 넓은 철판 차단기 뒤쪽에 긴 레버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레버들을 위,위, 아래,아래,아래로 돌려놓으면, 여기서 서쪽에 있는 폐등대의 불이 켜집니다. 항상 꺼져 있으니까…

저를 부르실 일이 있다면 언제든 등대의 불을 켜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꼭 불러 달라는 눈빛이다.

물론.

오랫동안 버티는 것이 목적인데, 괜히 불러 봤자 위험만 생기겠지.

최대한 자제할 생각이다.

어쩌면 마지막 만남일지도.

30년 뒤 눈앞의 남자는 살아남아 있을지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 뒤.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넥스몬드가 위로 올라가고.

드넓은 공간에 홀로 남은 나는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느긋하군.”

보폭을 조금씩 조절하며 이렇게도 걷고 저렇게도 걸어 본다.

평온한 기분이다.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기로 결심하자 상당한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도 시간부터 재야지.’

나만을 위한 소중한 시기.

수십 년이 저절로 흐르기를 바라며 그저 나른하게만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달그락.

한쪽에 정리된 모래시계 더미로 걸어갔다.

과연 아지트라는 걸까.

한 시간에서 하루.

일주일짜리 모래시계도 있었다.

아예 한쪽에는 1년이라고 쓰인 길이 5미터짜리 거대한 모래시계가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레버를 눌러서 가볍게 그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 사르르륵…….

아래로 모래가 떨어진다.

‘이걸 30번 정도 반복하고 나가면 되겠지.’

전쟁 따위엔 관심을 끄자.

마왕과 용사의 난리가 마무리된 다음에나 나가자.

닥치는 대로 기록을 찾고.

탐문을 거듭하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겠지.

미래로부터 시선.

‘바깥’으로부터의 시선을.

수련이다.

30년이면 뭐라도 하지 않겠는가?

1만 일이 넘는다.

깨달음이 와도 몇 번은 오겠지.

일단.

‘인벤토리.’

- 우우웅.

저번 생의 마지막에서.

레안드로의 ‘세 걸음’을 베고.

빙의된 공작을 터트렸던 내 힘을 복기해 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두 번 느꼈던 감각이고.

두 번 경험했던 지배이며.

두 번 그렸던 심상心象.

‘했던 거다.’

이것부터.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온전한 내 힘으로 습득한다.

지하 수십 미터 연무장.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한 점의

빛도 이곳에 베풀지 못하지만.

30년이면 내가 빛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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