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00화 (400/458)

484화 주머니 속의 칼 (8)

“…바로 말입니까?”

호위는 무척 당황한 기색이었다.

“대략적인 위치만 알고 다른 건 어차피 아는 게 없다면서?”

“그렇습니다.”

“미스릴 광산에 대해 조사한다면, 오히려 조사하는 과정에 가문에서 꼬리가 붙고 방해가 들어올 거다. 어차피 광산에 대해 아는 건 모두 가문 내의 인간들일 거 아닌가?”

“모두 카린 님의 경쟁자들이니…

확실히 그럴지도……

호위가 중얼거렸다.

‘경쟁자라.’

그것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조금 다르다.

크렉소르 가문의 가주라는 자.

그는 과연 미스릴 광산의 비밀이 밝혀지는 걸 기뻐할까?

지금까지 봉인해 놓은 곳을 열지 않고 숨긴 걸 보면 냄새가 난다.

음모의 냄새가.

아직 확실한 건 없다.

다만.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라는 자들에게 나는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제국의 우두머리들도 황실 비역 지하에서 세상을 팔아먹을 계획을 세웠다.

자유 연합의 가장 강력한 가문인 크렉소르의 뒤도 깨끗할 리가 없다.

커다란 권력과 재력은 그만큼의 욕망을 뜻한다.

가장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자들이 가장 크고 기괴한 욕망에 눈이 멀어 있는 건 당연하다.

사실은 크렉소르 가문의 가주가 마왕의 사제라거나.

광산 안에 마왕의 무리가 남아서 가주의 승인하에 인신공양 따위를 행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괜히 정보를 흘렸다가 뒤통수나 맞기 딱 좋아.’

인간의 수법은 슬슬 익숙하다.

정보를 조사하는 카린 본인이나.

심복인 루이 같은 녀석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될 수도 있다.

애초에 봉인된 광산을 열어젖히고 안전을 확인한다고 해서.

카린을 확실히 후계자로 정해 줄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가주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몰래 간다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나쁠 건 없다.

‘난 빠지면 되지.’

숨는 게 목표라면 내 한 몸 정도야 충분하다.

설령 이번 세계선에서 이 여자의 인생이 완전히 꼬인다고 해도.

내 입장에서야 크렉소르 가문의 비밀을 알아내고,챙길 걸 챙긴 뒤 다시 은신처에서 수련에 몰두하는 미래도 그릴 수 있다.

그때 였다.

“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던 카린이 입술을 열었다.

“뭐지?”

“저를,도와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살짝 흔들리던 그녀의 눈이 그 말에 다시 빛난다.

“후후… 진행하죠.”

호위가 끼어들었다.

“가주께 보고드리지 않아도 정말 괜찮으십니까? 현재 누가 보더라도 선두 그룹에 계신데… 혹시 흠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카린이 말을 받았다.

“루이,나만 가서 가주님께 이걸 말씀드리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 들일까?”

“그건……

“황당해할 거야. 그리고 꼬리를 붙이시겠지. 가주님이 내게 붙인 그 ‘꼬리’는 이걸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말하게 될까?”

카린이 말을 이었다.

“허락도 못 받고 알 놈은 다 알게 만들어 버리기만 하겠지. 정말로 가주님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업적을 세워 버리는 게 나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야. 상황을 봐서 이 일을 ‘업적’으로 취급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카린 크렉소르는.

아니,카린은.

지금까지 보였던 어떤 웃음보다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예?”

“상황이 다 끝난 뒤에도 이 일을 숨길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봐.”

“설마……

“어차피 크렉소르 가문도 의회에 보고하지 않고 숨겼던 광산이잖아?

이번에는 가문 하나처럼 먹일 입이 많지 않아. 오직 내 파벌이 최고급 타이탄 네 기와 미스릴 광산 하나를 가지는 거야. 루이,너와 내가.”

“멋지지 않아? 호호,물론 이분이 허락하신다면 말이지만.”

“좋을 대로 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훌륭한 선택지라는 생각이 든다.

공을 세워 가주에게 바친다는 건 아무리 크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위험이 생겨난다.

힘이 생긴다면.

누군가에게 바쳐 인정받는 것보다 자기가 오롯이 쥐고 있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가주가 되는 길에도.

심지어 가주가 되고 나서.

가문을,의회를 장악하는 데도.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과열된 후계 경쟁이라는 구도가, 얼핏 당연한 그런 이야기마저 잊게 만들고 있었지만.

카린이라는 여자의 눈은 그런 것에 가려지지 않고 있었다.

‘생각보다 똑똑한걸.’

그때 였다.

“이런… 미행이 붙었습니다.”

루이가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그녀는 제 왼쪽 손등을 바라봤다.

검은 장갑 위에 하얀 원이 그려져 있었고.

붉은 점 하나가 그 원의 가운데서 깜빡거렸다.

“어머,이제 뜬 거야?”

“…여기까지 경계를 뚫은 걸 봐서

‘인형사’이신 것 같습니다.”

- 똑똑.

바깥문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숨어 있지.”

아무래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싫다.

- 스스슥.

곤란한 표정을 짓는 카린을 보고, 나는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와아……!”

카린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봤다.

노크를 한 인간은 허락도 구하지 않고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뒤로 빗은 곱슬곱슬한 미역 머리에, 눈이 가느랗고 입꼬리가 비뚜름한 남자였다.

헐렁한 소매 밑으로는 반투명하고 치렁치렁한 실이 몇 가닥 늘어져 있었다.

‘조종하는 실……?’

보통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가느다랗고 투명한 실은 문 밖까지 늘어져 있었다.

‘바깥에 인형이 있다는 건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지나가다 우리 누이동생이 여기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으흠……

불청객이 다정한 태도로 웃었다.

하지만 낮은 웃음이 섞인 목소리는 금방 흐트러졌다.

“어머,날 보러 왔어? 뭐 찾는 게 있는 건 아니고?”

카린이 실소했다.

자신만만하게 안에 들어온 남자의 표정이 방 안을 둘러본 뒤 점점 썩어들어 가는 걸 놓칠 리가 없었다.

“내가 찾긴 뭘 찾겠어. 오붓하게

차 한잔이나 하는 거지.”

“그럼 여기에 마실래? 마침 잔이 하나 남았는데.”

카린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따르지 않은 빈 찻잔을 살짝 밀어 테이블 가운데 놓았다.

남자는 물기 하나 없는 잔을 보고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다른 잔은 없니? 초록색은 너랑 잘 어울리는데.”

“없어. 여기에 마셔.”

“그럼 오빠는 다음 기회에 오마. 언제나처럼 바빠서 말이야.”

남자는 찻잔을 노골적으로 피하며

일부러 말을 돌렸다.

“언제나처럼 집요하고 가학적으로 괴롭힐 꼭두각시가 생각나서겠지? 얼른 사라져 줘.”

“호호… 루이와 즐거운 시간 가지렴, 사랑하는 우리 동생.”

좀처럼 썩은 표정을 감출 수 없던 남자가 사라졌다.

“이제 나오셔도 돼요……!”

카린이 속삭였다.

“누구였지?”

“〈인형사〉 브랜틀리 크렉소르… 어지간히 잔혹하고 비열한 놈이죠. 제가 중요한 약속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찾아온 거죠.”

“위험해 보이는 녀석이더군.”

“애초에 경쟁 구도에 낄 방계조차 아니었는데 녀석이 아홉 살 때부터 원래 경쟁에 끼어야 할 친척들이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어요. 당연히 저 녀석 짓이죠.”

“아홉 살 때부터?”

“네. 당장 죽으면 좋긴 하겠지만, 나름대로 공공의 적 역할을 해줘서 제가 착해 보이는 건 좋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숨으신 거예요?”

카린은 다시 나타난 나를 보면서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놀라워하는 시선을 흘려보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정도야. 항상 미행이 붙나?”

“일곱 살 때부터 줄곧 붙었지요. 그나저나 이 장소도 못 쓰겠네요. 밀회에 자주 썼는데 내부 보안이 완전히 뚫린 것 같아요.”

“보안이?”

“네.”

- 톡

카린은 인형사에게 권했던 찻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리고 품 안에서 손가락 하나만 한 얇고 긴 종이를 들어 초록색 찻잔 안쪽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물도 없는 찻잔 안에 닿은 하얀 종이가 순식간에 짙은 보라로 변해 버렸다.

“설마……

“네,맞아요. 절 노리고 이미 바른 독약이에요.”

“…자주 있는 일인가?”

카린은 초록색 찻잔을 손톱으로 살짝 튕겼다.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가 조금 들뜬 듯이 속삭였다.

“권력의 일상이죠. 사람들이 저를 노리고 있다는 게 즐겁게 느껴지면 이상한가요?”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 * *

-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다.

셋을 태운 마차는 빠르게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자유 연합 북쪽에 있다는 할비 산의 7번째 봉우리까지 가려면 제법 긴 여정이었다.

뒤에서 보이지 않게 검은 후드로 머리카락과 몸 전체를 가린 루이가 앞에서 마차를 몰았다.

카린과 나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말 두 필이 끄는 개방형 마차였기 에 바깥이 어디든 훤히 보였다.

반대로 바깥 어디서든 여길 훤히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야 이렇게 앉아도 몸을 숨길 수 있지만.

카린이 문제다.

“화살 걱정 같은 건 안 하나?”

찻잔 안쪽에 독이 발라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갸웃할 만큼 태연한 태도다.

“전 괜찮아요.”

“괜찮다니?”

“여차하면 보호해 주실 거잖아요? 그게 아니라도 저는 운이 좋아요.”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으면서 농담하는 건지 진심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내가 없을 때도 줄곧 이런 삶을 살았을 테니 당연히 농담이겠지만.

‘이 여자라면……

진심일지도 모른다.

마차는 산 위의 도로를 지나갔고, 뒤로 몇 대의 마차가 쫓아오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났다는 걸까.

미행을 숨기려는 성의조차도 없어 보이는 녀석도 많았다.

‘여차하면 암살로 변하겠는데.’

“박살 낼 기세로 대놓고 쫓아오는군.

바퀴라도 터트려 줄까?”

“터트…리신다고요? 저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데요? 어떻게요?”

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렇게.”

- 파직!

가늘게 쏘아낸 검뢰가 선두에서 달려오는 마차의 오른쪽 앞바퀴를 먼지로 만들어 버린다.

- 히히힝!

말이 옆으로 쓰러지며 마차가 폭삭 주저앉는다.

“이런 건… 이런 건 처음 봐요! 정말 순식간에 다 쓸어버리실 수 있는 거구나……

두려움과 놀라움, 기쁨이 조금씩 섞인 목소리다.

“원해?”

“감사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저는 쫓기는 게 즐겁거든요.”

“뭐……?”

“그만큼 제가 앞을 달리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 따가닥! 따각! 따가각!

달리던 마차는.

- 덜컹……!

길고 좁게 빙 커브를 트는 지점에서 느려졌다.

하나밖에 없는 길인지.

다른 쪽에서 달려오던 미행자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샛길로 달려오던 자들까지 모두

나타났다.

빙 도는 커브를 지나면 저 앞에서 길이 세 갈래로 나눠진다.

미행을 한다면.

카린이 어디로 가는지 이곳에서 반드시 봐야 했다.

앞을 향해서.

마차가 커브를 빠져나갈 때였다.

- 와르르르르!

대놓고 뒤따라오던 마차들을 향해 산비탈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약한 마차는 파삭 으깨지고.

더 단단한 마차는 형체는 그럭저럭 버티며 옆으로 뒤집히기만 했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전멸은 아니다.

- 파직!

아예 마차를 뚫고 나와 떨어지는 바위를 깨부순 인간도 있었다.

칼이나 주먹으로 바위를 부숴 낸 인간들이 길을 메우도록 쌓인 바위를 깨부수고 있었다.

마차가 앞으로 달리다가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그때 도로 옆의 숲속에서 검은 후드를 입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루이와 거의 비슷한 체격이었고 걸친 후드는 똑같았다.

“그럼,약속대로 이어받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내릴게요.”

- 다그닥! 다그닥!

남자는 마부의 자리에 올라타서 말을 몰았다.

좌석은 덮어진 채였다.

‘미끼로군.’

“이제부터 도보로 이동해요.”

기척을 감지하며 카린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녀는 산길을 타고 도보로 빠르게 내려오더니,외곽 도로에 준비된 다른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는지 몇 번씩 길을 바꿨다. 좋은 경계 태세였고, 깔끔한 준비였다.

따라오는 기척은 하나도 없는 걸 느끼고 카린에게 물었다.

“아까 바위는 어떻게 된 거지?”

“예전에 산악 부족을 설득했어요. 근방을 지배하는 넬리트펜 가문이 그들을 괴롭히거든요. 토벌 정보를 몇 번 주고 우린 좋은 친구가 됐죠. 필요할 때 바위 정도는 굴려 줄 수 있는 친구요.”

“토벌 정보를 산 건가?”

“아니요,제가 > 넬리트펜 가문은 깃발이나 세우고 그만이에요. 산악 안 만나는 편이 제가 중간에서 -

1 돈을 왜 써요? 어차피 근처에서 세금이나 걷으면 부족이랑은 서로 양쪽 다 좋아요. L 집단의 동선이

안 겹치도록 조율해 주고 있죠.”

“•••후드를 쓴 남자는 누구지?”

“아,트로핀 여단이에요.”

“트로핀… 여단이라고?”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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