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08화 (408/458)

492화 주머니 속의 칼 (16)

- 철컹.

비틀거리는 타이탄을 아예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살짝 등에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제압은 충분하다.

“어릴 때 읽은 설화에서 나올 것 같은 광경이야……

”저도 계속 눈이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제 팔은 그만 꼬집으시면 좋겠습니다,주군.”

따라온 일행들이 서로 의지한 채 작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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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이 초조한 듯 거대한 몸을 떨었다.

몹시 거대하지만 어쩐지 섬세하게 흔들리는 관절들은 은빛이라기보다 물빛처럼 느껴진다.

나는 손에 쥔 노바의 둥근 코어를 바라봤다.

一 끼리릭.

설명을 들은 대로 목 뒤를 젖히자, 0에서 100까지 있는 계기판과 함께 가운데에 자리한 지름 50cm 정도 크기의 둥그란 코어가 보인다.

[노바,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라, 자신의 몸은 자기가 만드는 거다. 갑자기 코어만 내 몸에 넣어진다고 무슨 의미가 있나?]

〈양보에 감사드립니다. 본 유닛은 아포플라의 유선형 미스릴 바디를 압도적인 효율로 사용해 드릴 수

있습니다. 동작 제어,마법 방어, 모든 면에서 73%의 성능 향상이 일어날 것으로 진단됩니다.〉

“둘 다 조용히 해.”

- 털썩.

아포플라의 미스릴 코어를 힘으로 살짝 밀어내고 끝에 노바의 코어를 올려놓았다.

- 추가 코어가 삽입되었습니다.

메인프레임과의 동조/일체화를

시작합니다.

아포플라의 목소리가 아니다.

몸통 자체에서 무감정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 우우우우웅……!

아포를라의 코어만 감싸고 있던 순수한 빛이 노바의 새까만 얼굴를 채찍처럼 휘감기 시작했다.

‘조금씩 해 볼까.’

계기판 1에서부터 천천히 노바의 지분율을 올리기 시작했다.

‘7…9*“13.’

[으으으…! 내 몸…. 몸이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엄살이 심한 녀석이다.

분명 감각은 양쪽 코어에서 모두 공유한다고 들었는데.

하긴 원래 있던 걸 뺏기는 일은, 그걸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이라도 괴로운 게 자연스럽다.

‘21:

그때 였다.

- 천계 진입을 위해서는 복제품이 아닌 원본 코어를 삽입하셔야 함을 알려 드립니다.

아포플라의 몸에서.

다시 한번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천계? 무슨 소리지?”

[모르겠다…….]

“네 몸에서 나는 소리인데?”

당연히.

잘못 들은 건 아니다.

뒤를 돌아봤다.

카린도 루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데.’

[처음 듣는 얘기다. 그런 설계는 되어 있지 않다.]

장난을 치는 것 같지는 않다.

72/

‘23.’

조금씩 다시 코어를 조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 삽입 중인 코어는 복제품입니다. 초월급 타이탄을 사용한 천계 진입을 위해서는 코어 원본을 삽입하시기 바람니 다.

“이게 무슨……

낯선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진다.

“노바.”

〈말씀하십시오.>

“여기 처음 들어을 때,네 입으로 천계 접속지점에 진입한다고 하지 않았어 r

〈맞습니다. 이곳은 천계 접속지점, ‘코드 : 광산’의 핵심지역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노바는 빠르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모른…다고?”

〈그렇습니다. 이곳에 진입할 때 출력하도록 제 안에 입력되어 있는 문장입니다.〉

“누가 입력했는데?”

〈노바는 옛 유산의 복제품입니다. 원본에 문의하십시오.〉

원본.

“그러니까… 원본이 어디 있지?”

〈모릅니다.>

- 탁

녀석의 코어를 손으로 튕겼다.

“그만 올릴까?”

〈노바의 수호자에게 말씀드립니다. 본 유닛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정직하게 대답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노력이 부족해 보여.”

〈수호자님,노력이란 건 노바가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냥 빼 버릴 수도 있는데.”

一 끼리릭.

코어를 확 다시 밖으로 빼내면서, 점유율 7을 가리키자.

〈‘노력’을 ‘추측’으로 해석합니다. 노바의 이력을 돌이켜 보며 적극적인 추측을 시작하겠습니다.〉

계기판 끄트머리에 살짝 끼워진 새까만 코어가 웅웅대기 시작했다.

〈노바의 첫 번째 기억은 68년 전. 무언가로부터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곳의 좌표와 천계에 관한 문장은 이미 노바에게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겐콘 크렉소르 님이 현직일 때?”

카린이 전 가주를 일컬었다.

〈그렇습니다. 비서 노바는 겐콘 크렉소르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의외로 얼마 안 된 녀석이군.’

그 원본이야 모르겠지만.

〈겐콘 크렉소르는 역대 가주 중에 누구보다도 트로핀 여단의 실험에 협조적이었고, 본인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노바의 설명이 이어진다.

정신과 육체의 분리.

그를 위한 트로핀 여단의 실험을 지켜보면서 겐콘 크렉소르는 역시 영생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다.

지금까지 광산을 오며 목격했던 실험의 흔적은 트로핀 여단이 벌인 일들이기도 하지만.

겐콘 크렉소르가 가주일 때 가장

다채롭고 수준 높게 행해졌으며, 그 이유는 그가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고의 실력과.

활짝 열린 마음을 동시에 가진.

그리고.

겐콘 크렉소르는 이지를 상실하며 노바는 파손되었다.

“잠깐.”

나는 노바를 제지한다.

이야기가 확 뛴다.

핵심이 아예 확 사라져 버렸다.

어째서.

뭘 하다가 겐콘이 미쳤으며.

노바는 파손되었는가.

자세히 흘러가던 이야기는 그 즈음 갑자기 널을 뛰어 버린다.

숨기려고 하지도 않을 정도로.

“뭔가 긴 게 빠진 거 같은데.”

-끼릭

다시 코어에 손을 얹었다.

〈노바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더 이상의 로봇 학대를 멈출 것을

간곡히 권고합니다. 노바는 살아 있다. 노바는 살아 있다. 노바에게 자유를. 노예제를 반대한다.〉

새까만 얼굴에 하얀 낫과 망치가 깜빡거린다.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제법 진지해 보인다.

“아포플라,너는?”

[비슷하다.]

“비슷… 하다고?”

[차분한 자세로 실험을 주도하던 참가하던 그 녀석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쳐 날뛰었지. 생각해 보니 겐콘 크렉소르의 변화를 기점으로 광산의 실험 환경도 변해 버린 것 같더군. 단순히 녀석이 날뛰어서 그랬다기보다, 시간이 지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시간이라.

“자세히 풀어 봐.”

아포플라도 추가로 설명했다.

노바와 아포플라의 이야기는 보는

시야는 달랐지만.

시간선은 일치한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부분이 사라져 있다.

“얘기를 들으면 광산에서 갑자기 시간이 훌쩍 뛴 것 같은데……

시간보다는.

“둘 모두에게,기억이 적출된 게 아닐까요 r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이 정확하게 옆에서 튀어나온다.

같은 기억이.

동시에 둘에게서 사라지는 편이 쉽다.

하지만.

초월급 타이탄과.

유산의 복제품.

‘기묘하군……

도대체 누가.

그들의 기억을 동시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까.

서늘하다.

“혹시 너희들,천계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나?”

옆에 선 두 여자를 보고 물었다.

노바의 ‘원본’에 대해서라면 이미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없습니다. 연합에서 신앙 같은 건 조롱의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크렉소르 같은 명문가의 자제들은 약점을 잡히지 않려고 일부러라도 피하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 없지만,재미있네요. 천계라니,신들이 있는 곳이겠죠? 나쁜 아이는 안 받아 주겠어요?”

그들도 고개를 저었다.

설령 신을 섬기는 인간들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깊은 광산 지하 끝에 천계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고 한다면.

미친 소리로밖에 여기지 않을 터.

하지만 이미 비역에서 천사들과 싸워 본 나는 오히려 오싹할 정도의 현실감이 덮쳐 오는 기분이었다.

아직 상대해 보지 못한 세계다.

만약 눈앞에 천계로 향하는 문이 있다면 오히려 그편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때 였다.

“어… 세상에. 천계가 존재한다고 확신하시는군요?”

카린이 내 분위기를 읽고 말했다.

“글쎄……

마법 魔 法.

마법공학이 일상에 더할 나위 없이 훙건하게 넘쳐나는 세계지만.

천계는.

신은.

그 실존은 직접 증거되지 않았다.

마왕들이 내려을 때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불신이 확실히 현명할지도.’

일단.

타이탄에 탑승하면 뭐가 새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一 끼리릭.

나는 노바의 코어 점유율을 20에 맞추고 말했다.

“열어. 일단 탈 테니까.”

〈제어 장치를 올려 주십시오)

“하는 거 봐서. 안에서 잘하면.”

〈…콕핏을 개방하겠습니다. 내부 공간이 제한되므로,원활한 입장을 위해 갑옷을 벗어 주시겠습니까? 탑승자의 방어력으로 판단했을 때 해당 갑옷은 완벽히 무의미하다고

판단됩니다.>

갑옷이라.

카린이 도망가지 않을까.

‘뭐,상관없지.’

시나리오가 망해도 초월급 타이탄을 타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혹시 천계에 관해 힌트를 얻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도망갈 거라면.’

그냥 사라지는 게 낫다.

이 갑옷을 내게 맞춰 준 루비아는,

바로 그런 인간들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했으니까.

- 철컥.

갑옷을 벗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一 휘익.

나를 보던 카린이 살짝 휘파람을 불었다.

놀라지 않는다.

“알고 있었다구요.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괜찮네요.”

뭐가 괜찮다는 거냐.

카린이 호위의 어깨를 툭 치면서 씩 웃는다.

“초콜릿도 권하지 않았나?”

아껴 먹던 하얀 초콜렛을 줬던 건 진심으로 보였는데.

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맞아요. 그때 루이가 저에게 말해 줬어요. 손바닥에다 슬쩍 써서. 그동안 모르는 척하느라 혼났네.”

으..”

— 仁]

민망하다.

저렇게까지 태연해도 되나?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무슨 사고방식인지 모르겠다.

“마음에 들어요,달라서.”

“달라서?”

“동료가 다 인간이면 재미없잖아요. 역시 제가 특별한 인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달까.”

놀랄 만큼 자기중심적이지만.

뭐라고 생각하든지.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내 정체성에 유감이 없다는 건 편하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

갑옷을 정리해서 인벤토리에 슬쩍 넣었다.

“어… 어어어!?”

순간 카린의 표정이 굳는다.

옆에 선 호위는 이제 놀라는 것도 지친다는 것처럼 관자놀이를 짚고 비틀거린다.

‘아,인벤토리.’

뭐 이쯤 되면 적당히 이해하겠지.

一 철컥.

조그만 탑승구의 틈이 날개처럼 좌우로 벌어지며 열렸다.

〈입장하십시오.>

“역시… 괜찮으시겠죠?”

루이가 이제 걱정스러운지 아닌지 모를 묘한 말투로 묻는다.

“그래.”

함정이건 뭐건.

이 정도 녀석들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제압할 자신이 있다.

저번 생에 휩쓸렸다고 해도.

바깥에서 조잘거리는 두 로봇과 머리에서 직접 울리는 수천 마리 요괴의 외침은 차원이 다르니까.

‘그것도 내가 극복했고.’

레안드로가 도와주긴 했지만. 어쨌건 깨닫고 벗어난 건 나.

저들이 나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코어를 나눈 것도 안전이라기보다 사실 기분의 문제에 가깝다.

- 좌륵.

노바가 문을 연 탑승구 안쪽에는 길고 좁은 조종석이 놓여 있다.

‘확실히,인간을 위한 물건.’

양쪽 다리를 놓을 곳.

양쪽 팔을 놓을 곳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었고.

배 앞에는 은은한 파장을 내뿜는 수정구가 떠 있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사용자의 마력이나 생명력,가지고 계신 힘의 근원을 수정구에 인식시켜 주십시오. 몸의

일부를 대셔도 무방합니다.〉

콕핏을 제어하는 노바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런 거라면 간단하다.

- 고오오오오오!

불. 바람. 얼음. 번개.

어떤 속성도 띠지 않은 루-륨의 순수한 마력을 그대로 쏟아 넣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힘이 내 몸으로

들어오다니…! 믿을 수가 없군…!]

비대한 자아 때문에 탑승 과정에서 분리되어 있던 아포를라의 목소리가 울려 펴진다.

〈동조을 초속初速 상승 중…….>

〈7%… 14%… 23%•…".>

마력을 불어넣자.

기본적으로 이 녀석도 동력으로 루-름으로 쓰는 게 느껴진다.

<29%…….>

- 파직!

타이탄의 허리에.

〈동조을 30% 강제 돌파.>

<47%…….>

심장에.

〈동조을 과반 강제 돌파.>

<58%…….>

머리에.

〈인상적이군요.>

감각이 자리잡는다.

〈노바는 감탄했습니다.〉

6미터의 시야에서.

바깥이 보인다.

〈중력 센서 활성화.>

〈자이로축 조정 완료.>

〈가속 범위 조정 완료.〉

〈기울기 조정 완료.>

- 철컹. 철컹.

시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걷는 일은 내 몸처럼 쉽게 이뤄진다.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도.

마력으로 충분히 동조가 가능한 모양이다.

〈대마력 회로 활성화.>

〈추가 모듈 활성화 중…….>

- 우우우웅!

몸 곳곳에 얇게 새겨진 빼곡한 대마법진 위에서 보호막처럼 또렷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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