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주머니 속의 칼 (17)
[잠깐!]
아포플라의 커다란 외침이 콕핏 내부에 울려 퍼졌다.
“뭐지?”
흘러드는 내 마력에 방금 전까지 즐거운 경악을 보여 줬던 녀석이다.
이제 와서 반항하는 건 아닐 텐데.
[기다려라! 네가 지금 활성화하는
기능은 마법의 억제다!]
“알고 있다고.”
[무엇보다도 사악한 마력의 억제, 항마抗魔와 퇴마退魔가 주된 목적! 너무 힘을 불어넣는다면 네 힘에 스스로 타격을 입을지도 몰라.]
‘그런가?’
〈타이탄 아포플라의 지능 부족이 다시 확인됩니다. 듀얼코어의 상호 보완적 역량을 기대하는 대신 노바
단독 코어의 활용을 제안합니다.>
[무슨 헛소리냐!]
〈타이탄 아포플라가 47분 9초 전의 전투 경험을 입력하고도 해당 의견을 제시한 것은 극단적으로 낮은 연산 효율의 증거입니다. 그렇게 맞고도 모르시겠습니까? 현 콕핏 탑승자는 아포를라의 대마력 같은 건 힘으로 무시할 수 있습니다.>
‘o으'
- T그 •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계속 힘을 불어넣었다.
노바의 의견에 설득당했다기보다, 마력을 불어넣으면서 방금 전까지 공격받는 느낌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통제하는 힘. 꺼림칙하면 바로 멈추면 된다.
- 파아앗!
대마법진이 선명해지며 빛이 한층 강하게 터져 나온다.
터져 나온 빛이 콕핏 안쪽으로까지 가득 스며들었다.
하지만 드러난 빛들은 나를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
〈‘모듈 : 반탄’ 활성화.>
〈‘모듈 : 왜곡’ 활성화.>
〈‘모듈 : 억지(抑止)’ 활성화.〉
‘음?’
견디고 이겨낼 필요조차 없다.
빛은 약간의 반발도 없이 나에게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 순간.
- 마도화학…….
- 빛의 방벽…….
- 공간 억압…….
- …이 해제됩니다.
- 마도공학의…….
- 마도공학 레벨이…….
- 마도공학 레벨이…….
피릭.
떠오르는 수많은 상태창을 곧바로 아래로 닫아 버렸다.
반투명한 푸른 창 위에 떠오르는
확실한 이정표들.
하지만.
더 이상은.
최소한 이번 생만큼은 녀석에게 휘둘리기 싫다.
내 느낌에만 충실하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마물인 네가 대체 어떻게 신성력을 저항 없이 흡수하는 거지?]
〈본 유닛 역시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동조율이 초고속으로 상승할 경우에 속성을 극복한다는
가설 1과,탑승자가 마魔 속성이 아니라는 가설2를 제시합니다.〉
그나저나.
‘이거 재미있는데?’
초월급 타이탄의 대마법진을 그저 발동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다.
〈동조을 62%…….>
타이탄이 발동하고 있는 능력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물리력과 마법의 방어.
반탄 능력까지.
‘단순히 튕기는 게 아니야.’
타이탄이 모으던 힘과 공격해 온 상대의 힘을 합쳐 되돌리는 권능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입력된다.
‘이게 타이탄에 탑승한 파일럿이 강해진다는 의미인가?’
나는 강하고.
타이탄 아포플라는 약하다.
1,000번을 싸워도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다.
하지만 하나의 정신체와 온전히 공명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었다.
‘인벤토리로 활용해 봐야겠어.’
온전히 느껴지는 대마법진이.
응용할 수 있는 또렷한 기준점이 되어 주고 있었다.
〈동조율 64%…….>
느껴진다.
‘보호용으로도 괜찮겠고.’
따로 떨어져서 활동하면서 녀석을 어디 붙여 놔도 괜찮을 거다.
나에게 굴복하긴 했지만 발동하는 물리반탄의 효력을 보면 검주들의
호신강기를 뛰어넘는 데다.
탑주들이 달라붙어도 대마법진을 뚫을 수 있을지 의문이니까.
〈동조을 66.7%…….>
〈‘무장 : 플라즈마 소드’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거로군.’
손에 쥔 힐트를 어떻게 쓰는지가 자연스럽게 머리에 흘러들어온다.
텅 비어 있는 공간을 향해 힐트를 겨눴다.
마력과 동조한 아포를라의 몸이
내 의지를 읽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마력 집중.
그대로 앞에 빛의 검이 솟는다.
[오오오……!]
아포플라가 제어할 때는 힐트에서 한 번 솟구치고,옆으로 벤 다음, 사라진 것과는 달랐다.
5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빛의 검은 유형의 재료로 제련되어 이 세계에 실재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은은히 타오른다.
〈‘무장 : 플라즈마 소드’의 출력이 821% 증가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포플라를 비웃는 이야기였지만 녀석조차도 감탄을 참지 못했다.
[그렇다. 이렇게 완벽하게 형상을 갖춘 플라즈마 분사를 유지하다니! 얼마나 막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지 상상하지 못하겠구나. 인정한다!]
‘흐음……
녀석의 감탄과는 별개로.
역시 힐트의 원리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홀러들어왔다.
압축과 방출의 두 단계.
검주들이 쓰는 것과 비교했을 때 정밀도는 낮아 보이지만.
넓은 범위의 직경을 입자 단위로 분해하는 힘을 압축하고,방출하는 구조는 인벤토리에도 활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 낮춰 볼까?’
〈동조을 71%…….>
〈고주파 블레이드로 전환합니다.〉
- 우우응……!
범위가 낮아지며 순식간에 절단의 정밀도가 상승한다.
하지만 블레이드가 닿는 부분만 볼 때 파괴력은 낮아지지 않고.
무엇보다.
줄력을 낮춰서 고주파 블레이드로 전환하자.
초음파가 쁨어지면서 거기에 얽힌 공기 자체가 모두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간다.
조금씩,조금씩,넓게.
‘이런 거였나.’
후작이 사용했던 검기의 바람.
넥스몬드가 마련해 준 아지트에서 혼자 수련할 때는 간질간질하게 닿지 못했던 그 감각이.
초음파 분사로 공기를 칼날처럼 만드는 구조가 머릿속에 입력되자.
무언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 좌륵 좌륵 좌르르륵…….
바람이.
바람의 숨이 가빠진다.
캄캄하고 흐렸던 바람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굶주려 메말라 이빨을 드러낸다.
허공을 자르고 아드득 아드드득 깨물어 먹는다.
아무것도 부서진 건 없지만.
피 냄새가 홍건하다.
- 검술 레벨이 올랐습니다.
- 검술 레벨이…….
- 검술...
- 바람의…….
- …습득했습니다.
떠오르는 상태창을 이번에도 치워 버린다.
[대단해! 고주파 블레이드를 보고 즉시 이런 응용을 생각해 내다니! 도대체 얼마나 천재적인 거냐!]
레안드로가 내 인벤토리를 보고 곧바로 만들어 낸 기술을.
아지트에서 한 달간 따라 하려다 실패한 뒤.
딱 맞는 새로운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되자 조합해 봤을 뿐이지만.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겠지.
“뭐,그럴 수도 있지 않나?”
[겸손까지…….]
어쩐지 민망해져 말을 돌렸다.
“됐고,물어볼 게 있다.”
[뭐든 말해 보라,불세출의 재능을 가진 존재여.]
“아포플라. 너를 탑승하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가능한 거냐? 머릿속에
플라즈마 소드,초음파 블레이드의 원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나는 자유자재로 제어되는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예를 들면,저기 있는 두 명의 인간은 어떻지? 탑승해 본다면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거냐?”
상태창을 무시하긴 했지만.
한 번 탑승하는 것만으로도 마법과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시나리오 대상인 녀석들을 태워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포플라가 응응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동조화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너 같은 경우는 마력으로 압도적인 동조율을 끌어올린 데다, 방금 보여 준 재능으로 내 감화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저들은… 글쎄. 뛰어난 재능이고,상당히 마음에 드는 편이다. 하지만 탑승하더라도 그냥 걷는 정도가 한계겠군.]
“-7 러?”
[나에게 걷는 걸 배우게 될 거다. 하지만 저들도 할 수 있지 않나?]
“•••당연히 그렇지.”
[새로 배우는 건 없을 거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신장 6미터짜리 미스릴 안에 타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방호를 보장받겠지만.
‘일단 나 혼자 써야겠군.’
〈동조을 79.8%.>
<80.5%.>
<81%.>
〈‘무장 : 플라즈마 캐논’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 O 으”
•- 1그 •
나는 옆에 있던 막대기를 집었다. 몸 전체보다도 훨씬 엄청나게 긴 막대기였다. 든 상태로 수정구에 마력을 불어넣았다.
- 위이이이잉!
10미터에 달하는 플라즈마 캐논의 손잡이 부분.
은빛의 길고 복잡한 케이블로 얽힌 방패 부분에도 새롭게 눈이 생겨났다.
탑승구 위쪽에 박혀 있던 노바의 코어에서 빛이 깜빡였다.
〈연산을 시작합니다.〉
〈플라즈마 캐논 작동.>
〈입자 충전 100% 완료.〉
“안 무너지겠지?”
지금까지 지나온 기나긴 동굴을
겨냥한다.
애초에 진입로는 끝없이 광활하고 깊은 구멍이었고.
그 너머조차 수 킬로에 걸친 넓은 직선의 동굴.
- 파지직!! 파지지직!!!
가느다란 백색의 실선이 방패 위에 모이며 점점 더 굵어진다.
[오오…! 드디어…!]
- 파아앙! 파아아앙!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화려하게 공간을 터트리는 그 은빛이.
얽힌 케이블을 따라 막대 위에서 휘몰아치고,흐르고,감기고…….
마침내,
- 번쩍!
쏘아져서.
빛이 공기를 자른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난폭한 힘의 폭발.
수 킬로미터에 걸친 지름 3미터의 거대한 궤적.
그 선형의 허공 자체를 소리마저 소각해 버리는 폭사.
一 콰아아아아아앙!
수 킬로미터 바깥에서.
이제야 들리는 소리.
빛의 끝에 닿은 암벽이 먼지처럼 부서진다.
[이거다아아아아앗!]
〈동조을 85.6%••••••.>
“ 음 ”
- 기계공학…….
- …습득했습니다.
- …니다.
- 마도공학 레벨이
- …공학...
- …습득했습니다.
떠오르는 상태창을 꺼 버린다.
‘입자의 극단적인 가속인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개념으로 상황을 인식한다.
나조차 측정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도저히 피하지는 못하겠군.’
겨냥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멀리서 몰래 발사된다면 피하거나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가벼운 유도까지 가능.
초원거리 저격 용도로 이만큼 좋은 무기는 없겠지.
감지는커녕 관측할 수조차 없는 거리까지 뻗어 나간다.
‘타깃이 클수록 좋겠어.’
당장 인벤토리로 응용할 방법은 모르겠지만.
‘연구해 봐야겠군.’
탑승한 상태로 쓰면 되긴 하지만, 상황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언제까지 탑승해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조금씩 머릿속에 플라즈마 캐논의 구조를 넣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건 그렇고.’
이 정도까지 타이탄과의 동조율이 올라온 시점에서도 뭔가 보이지는 않는다.
딱히 새롭게 느껴지는 건 없다.
- 쿵. 쿵. 쿵.
아포플라가 머무른 깊은 내부까지 돌아다녔지만.
역시 천계를 향하는 입구 같은 건 발견되지 않는다.
계속 탐색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막혀 있는 공간일 뿐이다.
광산의 막다른 길.
물리적으로 어딘가와 통해 있는
장소는 아니다.
- 우우응……!
아포플라가 몸을 살짝 떤다.
“뭐냐?”
[나도 너를 따라 해 봤다…. 주변의
지형을 깊숙이 감지하는 능력이지?
훌륭하군....]
“너도 가능한 거냐?”
[우리 정신은 동조되어 있지 않나. 따라 하고 싶은 권능이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호오.’
자아가 있는 타이탄과 파일럿이 상호 발전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좋아,그럼 천계로 향하는 길을 한번 찾아봐라.”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천계 접속 지점이라는 이곳에 있던 녀석이라면 혹시 뭔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천계… 천계라… 알았다…….]
한번 인정한 상대에게는 의외로 순종적이다.
상대하기는 노바보다 이 녀석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꼼꼼히 살피는 도중.
갑자기.
위화감이 스쳐 지나간다.
‘이건……
깨끗하다.
이 동굴은 너무 깨끗하다.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미스릴 광산의 깊은 지점임에도 마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르무르나 그 승배자들의 흔적 같은 건.
마왕의 각인 따위가 지금까지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분명히.
카린은 겐콘 크렉소르가 마왕의 힘을 타이탄에 부여해 줄 사교도를 이용했다고 했는데.
다른 방향에 있는 걸까?
하지만 꽤 깊은 곳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도려내진’ 것처럼
광산에 마왕의 흔적이 없다.
“그럼,혹시 마왕의 흔적에 대해 아는 건 없나?”
위화감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그런 건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정보입니다.〉
두 녀석을 버려두고.
카린에게 말했다.
“카린,네가 했던 이야기는 역시 밖에서 만들어진 가짜 이야기였을까? 사람들이 미스릴 광산 내부 진입을 두려워하도록 말이지.”
가문의 핵심 일원에게만 전해지는 이야기라도.
그것조차 위조된 거짓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다수와 소수에게 다른 두 거짓을 들려준다면 소수는 자신이 아는 걸 진실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어떤 이야기요?”
그녀가 의아하게 묻는다.
“음? 미스릴 광맥을 감싸고 있는 여신들의 힘을 중화시키기 위해… 마왕의 힘을 빌려서 광산 내부로 진입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네……?”
카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요?”
장난치는 건가?
나는 옆에 선 루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도 갸웃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신의 힘…? 신성력…? 그런 게 실재하는 것입니까? 미스릴은 그냥 미스릴입니다. 뛰어난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강도,마법공학에 있어서 놀라운 쓰임을 가진 금속이지요.”
툭 던져진 그 말은 자연스러웠고 막힘없었다.
루이 클로드.
차가운 인상의 호위.
그녀는 절대로 이런 장난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이게 무슨 대화인 거지?
꾸불꾸불한 공기가 몸을 더듬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녀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눈빛에는 조금의 이상도 장난기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침착하고 또렷하다.
이번 생에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서늘한 공포가 기어오고 있었다.
아니.
아직은 아무 일도 없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가 뭘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수수께끼를 쥐고 고민하려 할 때.
〈경고합니다.>
〈겐콘 크렉소르가 이쪽으로 접근
하고 있습니다.〉
노바가 외쳤다.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며?”
〈통신은 현재도 연결되어 있으며, 겐콘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플라즈마 캐논의 발사를 감지하고 다가오는 건가.]
어디서 온다는 거지?
맞은편인가.
이 위화감을.
녀석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
〈수호자,걱정하지 마십시오. 겐콘 크렉소르는 당신의 상대가 아닙니다. 패배 확률은 0.2% 이하로…….>
더 이상.
녀석과의 싸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들어야 한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노바가 계속 말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전투 준비 따위는 하지 않고 홀린 듯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득히서.
- 콰쾅! 콰쾅! 과쾅!
거친 바람이 불어온다.
묘할 정도로 차분한 이 장소에서, 벽을 때려부수고 달려오는 소음이 반갑게 느껴졌다.
一 철컥.
나는 기쁘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