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16화 (416/458)

500화 주머니 속의 칼 (24)

루이에게서 벗어난 망토는.

살아 있는 것처럼 앞으로 몸을 세웠다.

“권한, 정지.”

그 순간.

겐콘의 몸에서 폭주해서 동굴 안을 뒤덮던 광기가 뒤로 튕기듯이 밀려 났다. 기계전갈 위에 떠오른 빛이 망토를 향해 이글거렸다.

[건방진…. 이곳은 천계와 닿아 있는 곳…. 분명히 이쪽에도 권한은 있을 터다…. 우습게 여기지 마라….]

“우습게 여긴 적 없는데요. 협력 관계잖아요. 당신들도 받아먹을 만큼 받지 않았습니까?”

[여기는 원래 우리의 세계…. 인간은 원래부터 우리가 지배하던 종족….]

“말을 똑바로 하셔야지. 꼭 그랬던 것도 아니잖아? 원래 좋아하시는데, 원래 다른 신들에게 귀속되던 영혼

까지 당신들이 몰아서 갖게 해 줬는데 뭘 그래요?”

[네 녀석들의 낙원화樂園化는…. 계속해서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뭘 하나 제대로 믿고 맡길 수가 없군-.]

이미 미쳤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벌레 취급하는 걸까.

서로에게 집중한 탓인지 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낙원화? 우리의 세계? 다른 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울려 퍼지는 사이 나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섬뜩한 빛이 한쪽으로 걷혔지만.

빛에 휩싸여 보지 못했던 광경은 처참했다.

겐콘과 바로 붙어 있던 타이탄 아포플라는 오른손의 플라즈마 소드를 머리에 깊이 처박고 헤저어서 상반 신을 절반 가까이 아예 날려 버렸다.

무슨 광기에 휘말린 걸까.

최소에 가까운,고작 30cm 정도 되는 길이에 플라즈마를 최대한으로 농축해서 활성화하고.

그 강도로 제 머리와 상반신을 얇게 파고들어 저미고 저민 것이었다.

작게 흩어진 아포를라의 ‘내용물’은 사방에 널려 있었고.

가운데 박혀 있어야 할 그의 코어는 물론,다른 코어의 형체도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부서진… 건가?’

- 노바……?

끔찍하게 저며진 파편들을 향해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특히나 노바는 부서진 껍데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 아포플라?

어느 쪽에도 대답은 없다.

아포플라는 잠깐 사이에 제 코어뿐만 아니라 노바까지 저며 버린 것이었다.

마음이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그사이에 정이라도 든 건지.

‘이 녀석들……

짧게나마 나눴던 대화,공유했던 경험이 저며져 사라졌다고 생각한다니 가슴 한켠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초월급 타이탄을… 한 번에 이렇게

미치게 만들었다니.’

그 순간.

<…….>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작게.

무언가 지직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노바의 느낌이었다.

‘설마……

살아 있는 건가?

하지만 그 파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노바의 파편으로

보이는 건 없고.

뭘 챙기려고 해도 챙길 수도 없었다. ‘기계가 이렇게 되려면… 인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망토의 영역이었던 탓에.

섬뜩한 빛이 미처 닿지 못했던 곳.

- 두근.

루이와 카린.

두 여자는 아직 살아서 심장이 뛰었지만.

새하얗게 텅 빈 눈에는 아직 색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미끈…. 싫어…. 싫어….”

루이는 뭘로 뜯어냈는지 다리 한쪽이 무릎부터 사라져 철철 피를 흘리고 있었고,한쪽 눈은 사라지고 없는데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멍하니 중얼 거리고 있었다.

“끄옥". 아하하". 끄그극…. 히히….”

카린은 허리띠를 풀어 제 목을 조른 듯 혀를 반쯤 내밀고, 압력으로 눈의 실핏줄이 잔뜩 터져 주르르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팔의 힘이 부족해 목을 부러뜨리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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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범위에 닿지 않았는데도 불구 하고,단지 한순간 바라본 것만으로도 광기에 휩싸여 극단적인 자해를 시도한 것이었다.

‘이런 게… 천계라는 건가?’

여신들이 끝까지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인간들이 그 실체를 목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서로 이용할 생각이긴 했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저들은 적어도 저런 광기와는 인연 없이 살다 갔을지도 모른다.

적어도,목숨만은.

구해 줘야 한다.

一 서걱!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다가가 허리띠를 잘라냈다. 다행히 그들은 우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서 설전에 몰두 하고 있었다.

‘이럴 때 도망쳐야 하는데.’

두 여자의 심장 박동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응급 지혈을 하긴 했지만 루이는 뜯겨 나간 다리에서 피도 꽤 흘린

상태였다.

인벤토리에 엘릭서 같은 건 없다.

‘서둘러야 해……

이미 노바도,아포플라도 소멸했다.

‘이들까지 죽는다면……!’

가만히 빠져나갈 타이밍을 겠다.

허공에 떠오른 망토가 응응거렸다.

“어차피 지금 천계에 아무도 안 오는 게 목적 아닙니까? 우리도 같아요. 그러니까 좀 앞으로 나오지 말고 얌전히 계세요. 방금처럼 아무거나 부수지 마시고. 그 타이탄은 앞으로 써야 되는 거였다고요.”

‘타이탄…. 아포플라를 얘기하는 건가?’

[기억은… 허락되지 않는다.]

“좋아요,그러니 아무도 못 오게 덮어만 놓을게요. 알았죠? 그쪽은 더 나오지 마시고.”

[필요 없다. 이제부터 수정은 우리가 직접 하겠다……!1

“하아, 안 그래도 오류 때문에

짜증 나는데……. 좋게 말해 줬더니 왜 이렇게 지랄이세요.”

[바깥에서 온 자여,지금 빛의 권위를 모독하는 것이냐……!]

‘오류…? 수정…? 바깥…?’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와 함께.

기계전갈 위로 튕겨진 빛이 다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 쿠구구구구…….

- 끼릭! 끼릭! 끼리리리리릭!

기계전갈의 파편들이 작은 코어가 되어 부서진 동굴 암석들과 결합하며 일어나기 시작했고,먼 바깥에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나며 무언가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 탄생한 것들은 단순히 돌과 철의 결합이 아니었다. 모두 섬뜩한 기운이 덮어씌워져 고깃덩어리처럼 꿈틀거리며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 했다. 코가 아니라 머릿속에 직접 쑤셔박히는 것 같은 비린내였다.

‘젠장!’

이 순간에도 도망쳐야 할 통로가 저것들로 메꿔지고 있었다.

충분히 날려 버릴 수는 있겠지만, 건드리는 순간 일제히 녀석들의 주목을 받을 게 분명했다.

“별 거지 같은 게……. 지금 저한테 굳이 강림을 하게 만드……

- 우우우우웅…….

세상이 조금씩 굳어 갔다.

익숙한 홀로그램의 표식.

단순한 다섯 문양이 서로 겹쳐진 표식.

잿빛 기사에게서.

아이작과 나냐우를 홉수한 녀석들 에게서 봤던 그 표식이 허공에 서서히 새겨지고 있었다.

뼈가 굳는다.

저게 완성된다면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때처럼… 모든 게 빨려나간다면….’ 지금이라도 자살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그때 였다.

“뭐? 동방에서? 이런……!”

공기가 바뀌었다.

망토의 ‘목소리’가 몹시 급박한 느낌이었다.

여기가 아닌.

아주 먼 곳의 무언가와 대화하는 걸까.

- 스으으으윽

새겨지던 홀로그램이 서서히 희미 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일이 생겨서……

[무슨… 수작이냐…….]

“싸우고 싶으면 이대로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요.”

[감히……!]

“권한,단절.”

망토가 살짝 기울어졌다.

- 찌이이이익!

이글거리며 끓고 있던 빛의 한구석이 찢겼다.

“약화. 감금.”

〈무 력 해 져 라>

〈받 아 들 여 라〉

〈부드러워져라〉

〈벗 어 날 수 없 다〉

- 째깍째깍째깍

작은 진동이 울리며 허공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떠다니던 작은 먼지들까지 그 자리에 굳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반투명한 글자들이 나와 세계를 격리하는 것 같았다.

“너무 썼나…. 젠장. 돌아을 테니… 그동안 심심하면 저기 인간들의 혼이나 씹어먹고 있으쇼.”

떠오른 글자들이 내 쪽을 비추는 순간.

망토가 흠칫했다.

‘설마……

그 움직임에 몸이 굳는 것 같았지만.

“으음? 이건 또 뭐야? 언령에 뭐가 걸리네? 해골? 뭐,저것까지 잘 씹어 먹으시고…. 나는 바빠서… 이만……

다행히 별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았다.

一 파앗!

‘사라졌나?’

망토는 허공에 글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빈정대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감히… 신을… 얼마나… 무시하는 거냐……!1

一 과아아아아!

처박혔던 빛이 번쩍거리며 다시

망토를 향해 조사됐다.

하지만 어딘가 약해진 느낌.

그 모습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기회야.’

목소리가 자리를 비웠고.

빛 역시 글자에 구속되어 있다.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 고오오오오…….

나는 글자들을 억지로 밀어냈다.

인벤토리로 내 영역을 구축한 덕분 일까.

광기의 영향에도.

글자들에도 완전히 지배되지 않을 수 있었다.

- 쾅!

〈벗 어 날 수 없 다>

一 쾅! 쾅! 쾅!

〈벗 O 나 날수 없 != }>

충격을 가하자 글자가 흔들렸다.

‘된다!’

내가 주도해야 한다.

황실 비역과 같은 상황.

그때도 아이작도,나냐우도 굳어 있을 때.

나 혼자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카린,루이까지 데리고 글자들을 뚫으려 하자 함께 갇혀 있던 빛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벌레는… 뭐냐…….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미물이… 내 빛에 저항하다니……. 불쾌하군…….]

‘이런……

녀석의 광기에 내가 받는 영향은 적지만.

내 발목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존재.

〈벗 어 날 수 없 다〉

잠시 멈추자 글자는 순식간에 복구 됐다.

그중에도.

카린과 루이의 심박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이 녀석을 상대하면서… 글자까지 뚫을 수는 없어.’

나는 앞을 바라보고 외쳤다.

“저도 방금 사라진 녀석과 적입니다!” 하지만 빛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 느낌이었다.

[너 따위가 무슨…….]

인벤토리 안에서 폭주하는 루-륨의 마력이 빛에 저항하고 있었다. 발버둥 치는 건 가능했지만,그럴수록 빛은 글자에게서 벗어나는 것보다 나에게 집착하는 것 같았다.

[바깥의 냄새가 난다…. 저 녀석의 패거리인가…. 너라도 죽어라….]

당황스러웠다.

‘이 녀석을 어떻게 속여먹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자.

‘일리엔……

죽어 가는 카린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일리엔 님의 신앙을 퍼트렸 습니다! 그분의 신도입니다!”

[헛소리…. 급하니까 별 개소리를 다 하는군….]

“일리엔 님의 눈물!”

[으음……?]

“일리엔 님의 눈물! 그 성스러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제국 수도 아래 자리 잡은 마왕의 결계를 제가 다 부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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