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화 주머니 속의 칼 (26)
모험을 걸어야 한다.
벌어지며 흔들리는 천장을 바라봤다.
휘몰아치는 돌가루 틈으로 아주 희미한 빛이 흘러내렸다.
‘저 기다.’
기계전갈의 꼬리에 달려 있던 굴착기.
바위를 물처럼 가르던 그 장치를 떠올리면서.
인벤토리의 위쪽 절반을 나선으로 꼬았다.
- 위이이이이잉!
뒤틀린 인벤토리에 고속 회전 기능 까지 부여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 1= r: [ [: 1= [[득!
부서지는 동굴 천장에서 돌가루가 피처럼 튀었다.
한순간 한순간마다 주위로 좍좍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빛이 만드는 음영이 어지럽게 춤을 춘다.
- 끼기긱!
천장을 굴착하며 올라가는 우리를.
아직 부서지지 않은 철인의 팔들이 붙잡으려 했지만.
곧 튕겨지고 무너지는 천장에 묻혀 버린다.
‘기왕 부서지는 거면……
- 좌광! 좌광! 과광! 콰과과과과과과!
올라가면서 인벤토리를 키워서 파괴 규모를 늘려 버렸다.
철판들까지 무게로 꾸득꾸득 뭉개 버리는 거대한 암반들도 내 영역을 돌파할 수는 없었다.
두 인간을 옆구리에 끼고,굴착에 집중하며 허공을 디뎠다.
산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 지만 아예 이쪽도 위쪽을 강하게 부수며 나아가자 오히려 진폭이 상쇄되는 듯했다.
‘다 부서져라!’
차라리 잘된 일.
아포를라와 노바.
겐콘 크렉소르를 살해한 존재.
아래쪽에 있는 일리엔의 왼손인지 뭔지도 저대로 파묻혀서 죽든지 어딘가 망가져 버리면 좋겠다.
‘최소한 혼란에 빠지기는 하겠지.’
망토의〈목소리>가 돌아온다고 해도.
광산이 다 무너져서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다면.
나도 거기 휘말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통로와 통로가 뒤섞이고,휩쓸려 가고,쩡쩡하게 부서진다.
거대한 광산이 울부짖듯 무너져
버렸다.
—드드드드득
굴착음이 멈추고.
나선의 인벤토리 끝에 환한 햇빛이 닿는다.
‘끝인가.’
- 파삭.
나머지 바위를 부수고 나와.
빠르게 멀리 떨어진 언덕으로 이동해
둘을 눕혀 놨다.
언덕에 서서 쑥 꺼져 버린 옆 산을 바라봤다.
폭파가 여러 군데서 일어난 탓일까.
어떻게 무너져야 할지도 헤매며 험하게 무너진 모습.
[이게 뭐야!]
[왜 이렇게까지 무너진 거지?]
[연쇄 충격을 감안해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여길 보십시오. 뭔가… 거대한 굴착기가 안에서 작동한 것 같습니다.]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이런 크기의
굴착기가 어딨어?]
[아무튼 됐다. 일단 여기로 진입한다.]
잠시 후.
트로핀 여단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서둘러 피하지 않았으면 마주쳤을 테지.
‘다 날아가 버렸군……
아직도 벌건 흙먼지와 뽀안 돌가루가 하늘을 뒤덮는다.
이 연막으로,〈목소리〉를 속일 수 있을까.
불안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데리고 있는 두 여자의 심장 박동을 듣는 순간 생각은 다른 깨끗이 지워 졌다.
점점 흐트러지는 박동.
생명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지혈을 하긴 했지만.
루이는 뜯겨 나간 다리에서 피를 많이 흘린 상태고,한쪽 눈까지 사라졌다.
강인한 신체가 아니라면 이미 쇼크로 죽었겠지.
‘혹시.’
빠르게 이들의 몸을 수색했다.
하지만 광기에 휩싸였을 때 잃어버린 걸까.
둘 모두 치료약은커녕 기본적인 짐조차 없었고,옷과 피부는 여기저기 괴상하게 찢겨 있었다.
“이봐! 정신 차려! 이러다 죽는다고!”
감각은 있는 걸까. 카린이 작게 옹알거렸으나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문득 회의감이 치밀었다.
정신을 차리게 해서 뭘 한다는 말인가?
자기가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 말고.
지금 대체 뭘 해줄 수 있을까?
근처에 있는 녀석들을 찾아다니며 치료약 같은 거라도 뺏어 볼까 싶었 지만,그러려면 아까 빠져나온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노바도 아포플라도 이미 부서졌고. 카린이 크렉소르의 가주가 된다고 해도 더 이상 천계에 갈 수는 없다.
이미 수없이 많은 죽음을 봤고, 눈앞의 인간들에게 특별히 큰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살리고 싶었다.
‘나와 함께라면… 안전하다고 약속
했는데.’
함께 힘들고 괴로운 모험을 헤쳐 왔음에도.
결국 살아남는 건 또다시 나 하나뿐 이란 말일까?
이대로라면 녀석들은 다시 눈을 뜨지 못할 것이다.
‘자살할까?’
그렇다면 아포플라도, 노바도.
겐콘 크렉소르도 다시 살아나고.
루이와 카린 역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겠지.
이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된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접었다.
‘없었던 일은… 되지 않아.’ 반복되는 세계선은.
내 기억 속에 모두 남아 있다.
포기하고 자살한 것까지도.
그런 걸 반복하다가는 금방 정신이 마모되어 버릴 거다.
내가 누구인지도 잊고 지치고 망가져 버릴 확률이 높았다.
‘영자는… 순간의 총합이라고 했던가.’ 일리엔의 왼손에 먹혀 버린 겐콘 크렉소르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손쉬운 포기를.
내〈순간〉에 넣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낸다.
살려낸다.
트로핀 여단을 협박하든,어쩌든.
치료제를 구할 만한 곳으로 달려 가려던 때.
넓게 뻗은 감지 범위에 기척이 잡혔다.
사방 어디에서도.
내가 간신히 뚫고 나온 지하 광산 에서도 아닌.
‘머리 위?’
하늘에서 다가오는 뭔가가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초여름 바람에 묶여 휘날리는 햇빛과 함께,작은 비행정의 실루엣이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비행정에서 탔던 존재는 로랑스 타르티에.
빙의된 제국제일검이다.
낙하하는 비행정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벌써 여기를 찾아왔다고?’
착각이 아니다.
이쪽을 보고 똑바로 다가오는 비행정.
숨어야 하나 싶었지만,비행정이 조금 더 가까워지고.
탑승자가 감지되자 긴장이 탁 풀려 버렸다.
‘자꾸 사람을 놀라게 하는 녀석 이군……
- 타타타타타타…….
비행정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착륙했다.
매끄럽지 않은 표면인데도 능숙한 조종이었다.
“접니다.”
훌쩍 뛰어내린 건 익숙한 얼굴.
“넥스몬드,당신이 여길 어떻게 알고 왔지?”
녀석이 나를 카린과 연결해 주기는 했지만.
목적지를 알려 준 적은 없고.
‘따라오라고 한 적은 더 없는데.’
따지듯 묻자 선장의 얼굴의 겸연쩍은 표정이 떠올랏다.
“처음부터 줄곧 위에서 보고 있었 습니다.”
“뭐라고? 여기까지 미행했다는 건가? 카린을?”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확실히,비행정이라면 가능하다.
넥스몬드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당신을 쫓아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최고 관심사라서요….”
“뭐? 무슨 소릴……
불쾌함보다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급한 게 있었다.
“그건 됐고,혹시 이 인간들을 치료할 수 있겠나?”
넥스몬드가 살짝 머리를 들며 씩 웃었다.
“물론입니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다가, 애초에 그걸 위해서 내려온 겁니다. 아무래도 두 분의 상태가 위험한 것
같군요.”
더 따질 겨를도 없이.
- 위잉.
앞으로 뻗은 팔이 살짝 벌어진다.
가벼운 움직이지만,암살이었다면 두 명이 동시에 죽었을 만한 신속.
푸르게 빛나는 의안은,부상에 시달리는 두 여자의 몸을 훑어서 증상을 빠르게 진단한다.
네入모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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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육체는 절반 이상이 엠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응급조치만 시행하지요.”
최첨단의 센서가 부착된 근육과 신경에 실수나 오차 따위는 없다.
외과의가 조준을 마치고,집도를 시작했다.
배선을 깔아 놓은 뇌에는 살인뿐만 아니라 활인의 기능도 지원되는 걸까.
넥스몬드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시겟바늘 소리처럼,두 여자의 박동이 작게 울려 퍼진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군.’
밀수라는 험한 직종에서 부하들을 줄곧 치료해 왔는지.
이런 것도 할 줄 아냐고 물을 만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그 익숙함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안정시켰습니다.”
두 여자의 몸은 더 이상 떨리지 않고.
두근,두근.
태엽이 맞춰진 시계처럼 박동도 규칙적으로 울린다.
“한 분은 크게 다친 곳은 없고… 한 분은 시신경이 뿌리까지 뽑힌 탓에 평범한 의안 교체는 어렵겠군요. 여기서 당장 할 수 있는 배선은 아니니 의식이 돌아온 다음 상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족도요.”
“그러지.”
미행의 불만을 말할 새는 없었다.
“이제,타시겠습니까? 일단 아비 도니아 항구로 가겠습니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 부우웅…….
떠오른 비행정이 금세 구름에 휘감 긴다.
“이런 건 또 어디서 얻었지?”
“엠버입니다. 주 거래처니까요.
하지만 눈에 띄는 건 역시 좋지 않아서… 오늘처럼 중요한 일에나 사용하는 녀석이지요.”
“그런가.”
비행정은 구름을 뚫고.
철새 몇 마리가 기류에 휘감겨 지나간다.
마치 준비된 것 같은 탈출이다.
‘이런 고도에서라면……
역시 미행을 감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 같은 건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망원경과 비행정의 조합은 그런 내 능력 바깥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안정제를 주입한 카린과 루이를 보며 말했다.
“둘을 잠시 부탁하지. 가문에는 돌려보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 사건,크렉소르 가문이 얽힌 일입니까?”
“현 가주가 위험한 존재인 것 같아.”
하지만 크렉소르 가문이 아니라도 안전한 곳이 있을까?
너무 시선을 끌어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살아 있다는 걸 안다면.
천계와〈목소리〉가 어떻게든 나를 찾아내려 하지 않을까.
- 화르르!
뒤에서 강한 불꽃이 뿜어지며 비행 정이 가속한다.
미행을 따돌리느라 며칠에 걸쳐 왔던 산맥을 빠르게 지나서,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항구 도시로 향했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저 끝에서 벌써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빠르군.’
풍경을 내려다보는 내게 넥스몬드가 말을 걸었다.
“이분들과 같이 지내실 겁니까?”
“음……. 너는?”
“글쎄요. 제 관심사는 역시 당신 입니다. 이왕 미행을 들켰으니 고백 하지요.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서 저도 움직일 겁니다.”
넥스몬드를 바라봤다.
당연한다는 듯한 눈빛이 당황스러 웠다.
“여기까지 쫓아온 것도 그렇고……. 내가… 그렇게까지?”
선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입니다. 주신 보물들의 값을 치르려면 제가 10년은 전담해야
하니까요. 감정에 재감정을 해봤지만 주신 것들은 모두 진품, 혹은 그 이상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도깨비들의 창고에서 직접 꺼내 온 거니까.
그걸 감정할 수 있다는 걸 대단하 다고 봐야지.
넥스몬드가 말을 이었다.
“주신 것들은 제가 아는 ‘섬’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수준이 완전히 다릅니다. 진짜 동방으로는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혹시 이미 다녀오신 건 아닙니까? 어떤 상인이랑 가셨는지 혹시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조건은 제가 더 좋게 맞춰드릴 수 있을 겁니다.”
살짝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너랑 간 건데.’
물론 말해 봤자 믿을 리는 없다.
넥스몬드만큼 유용한 인간도 드물긴 하지만 이자에게 회귀까지 모두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별말이 없자 넥스몬드가 확신한다는 것처럼 말했다.
“언젠가 저를 믿고 함께 가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쎄. 갈 일이 있을지.”
동방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았다.
내가 조종하던 요괴들에게 오히려 휘둘려서 터무니없는 파괴극을 벌였고, 레안드로가 아니었다면 그 상황을 탈출하지도 못하고 계속 시간을 낭비했을 터였다.
‘그 인간은 아예 세계선에서 사라져 버렸고.’
동방.
그 순간.
〈뭐? 동방에서? 이런……!>
급하게 사라지던 망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지금 일이 생겨서…….>
예전과 달라진 동방의 문제라면.
‘설마.’
계속 거래를 시도하려는 듯한 눈빛의 선장을 바라봤다.
“난 여기서 내리지.”
“예?”
“10년은 됐고,그만큼 이 둘을 잘 부탁한다.”
“그게 무슨……
“기다리지 마라.”
그 말과 동시에 나는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어어!”
- 타다다다다다……!
날개 소리를 뒤로하고 바람을 디뎠다. 그대로 낙하하지 않고 바람을 딛고 날아가는 내 모습을 보고 넥스몬드가 경악에 빠져 소리를 질렀다. 한 번의 도약으로 이십 미터 정도는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 파앗!
몸이 수면에 가까워지기 전까지, 수 킬로에 가깝게 앞으로 전진했다. 흘끗 올려다본 비행정은 까마득한 점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 좌르륵!
그대로 바다 위를 얼려가며 앞으로 내달렸다.
막 만들어지는 얼음 길을 한 번 디딜 때마다 과광 과광 소리가 울리며 부서진 얼음 조각들이 비산했다.
공중을 그냥 밟아도 되지만 이쪽이
훨씬 효율이 좋았다.
‘대충 방향은 아니까.’
해류의 영향도,바람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게다가 한 번 가 본 길.
인도는 필요하지 않다.
‘서둘러야 해.’
목표는 동쪽.
혹시 세계선에서 사라진 레안드로가
그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근거는 없다.
확신도 없다.
스쳐가는 감일 뿐이지만.
동방이 저번 세계선과 달라졌다면.
무언가 일어났다면,달라진 건 레안드로의 존재뿐.
‘얌전히 있을 놈은 아니지.’
어디 있건 주머니를 찢고 나을 놈이다.
만에 하나.
후작이 그곳에 있고.
〈목소리〉가 처리하려는 상대가 그 녀석이라면.
‘도와줘야 해.’
최소한 어떤 상대와 싸우고 있는지 정보를 알려 줘야 했다.
경고는 남겨야 했다.
건방진 녀석이긴 하지만.
진 빚도 있고.
‘고마워할 놈은 아니라도……
꺾어도 내가 꺾을 존재.
어떤 식으로 남아 있건.
결코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 콰광! 콰광!
얼음을 밟으며 몸을 솟구쳤다. 순풍을 받은 범선보다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바다가 뭔가 이상했다.
‘이쯤이면 나와야 할 텐데……
들를 생각은 없긴 했지만.
아무리 달려도,중간 이정표로 삼으려 했던〈섬〉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뭐지……?’
분명히 방향은 제대로 잡았는데.
- 콰과과광!
‘8바]!’
공기가 일그러질 정도로 발아래 마력을 압축시키며 속도를 냈다.
단단히 얼어붙은 얼음이 사정없이 터져 나간다.
하지만 계속 달려도 섬의 해안 따윈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달린 거리로만 보면 이미 〈섬〉을 지났다.
모험가들의 배가 갇혀 있던 구간에 왔을 텐데.
‘일단 갈 수밖에 없군.’
- 파앗!
불안감을 안고 계속 달렸다.
하지만 끝없는 바다만 반복될 뿐.
‘언제까지… 이런 거지?’
그때.
묘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으음?’
앞에 얼음 파편들이 둥실대며 떠 있다.
너무 북쪽으로 온 걸까.
하지만 지금은 초여름.
온도는 딱 쾌적하다.
절대 바닷물이 얼어붙을 날씨는
아닌데.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쿠구구구구…….
나는 몸 안의 루-름을 모두 가동 해서 마력을 끌어모으고.
손을 얼음덩어리 위에 댔다.
- 쩌저저저저정!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직경 수백 미터에 이르는 바다 한쪽을 아예 거대한 얼음 지형으로 만들어 버린다.
- 휘이이잉!
바람을 움직여 바닥에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X자 표식을 남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기분 탓이었나.’
다른 진형으로 진입한 걸까.
아까와 바람이나 해류가 달라진 것 같다.
조금 더 가자 앞에 거대한 섬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좀 작은데……
레플리카는 아니다.
방힝을 잘못 잡은 탓에 새로 발견한 장소일까.
하지만.
그것과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며 나는 흠칫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
— :철스적... :철/척.••
파도가 부딪치는 섬.
둥둥 떠다니는 작은 얼음 섬 위에는,
내가 몇 분 전에 새겼던 거대한 X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내가 건너려는 바다는 말 그대로 끝이 없는 공간이었다.
시간은 그대로 흐르는 건지.
하늘 저편에서 스며드는 붉은 노을이 바다 위에 천천히 닿고 있었다.
‘복제……?’
하지만 인식조차 불가능한 결계.
깨는 건 불가능하다.
이 너머에서는 분명히 무언가 벌어 지고 있지만.
— :철/먹... :철4역...
나는 흔들리는 얼음 섬 위에 서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전장은.
내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사방을 탐지해 보지만.
- 쩌적.
초여름의 바닷물이,얼음 섬을 갉아먹는 소리만 들려온다.
감각은 복제된 세계에 갇혀 있을 뿐. 결계의 핵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몇 번이고 죽으며 나를 밀쳐 왔지만.
‘들어갈… 수도… 없다는 건가.’ 되돌아온 X 표시가 그동안 쌓인 실패처럼 느껴졌다.
그 위에 매인 채.
나는 막막하게 허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