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화 신이 원하는 것 (8)
좌중은 경악한 얼굴로 그레이시엄을 바라보았다. 특히 뒤쪽에 있던 하급 귀족들이 그랬다. 함께 앉아 있던 사제들마저도 그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추,추기경님! 그 눈은……?”
“계시와 함께 신께서 내려 주신 것입니다.”
사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이 일어난 겁니까!”
“신의 은총이로군요!”
‘뭐? 은총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봐도 징그럽기만 했다.
눈꺼풀도 없는 회색빛 두 눈은 모든 걸 짓이겨 버릴 것처럼 바라봤다.
실제로도 시선에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골 처녀의 이마에 저런 게 생겨 났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분명히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을 것이다.
같은 현상이라도 누구에게 일어 났느냐에 따라 악마의 표식이 되기도
하고,성흔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데서리는 숨을 죽였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예메라의 추기경을 관찰했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겉보기에는 이마에 눈이 두 개 생긴 게 전부였지만,추기경의 몸은 분명히 그 밖에도 완전히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꽉… 찼어?’
마치 인간 수십 명분의 무언가를 작은 몸 안에 가득 욱여넣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레이시엄은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네 개의 눈이 한곳에 문득 멈췄다.
한쪽 끝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였다. 고운 인상의 노인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쯧,괜한 짓을.”
추기경은 혀를 차는 노인을 새로 생긴 두 눈으로 잠시 바라봤다.
허공에 미묘한 압력이 느껴졌고, 노인이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자는,비브리오 명예 공작……
갑자기 귀족 회의의 추대를 받아서, 폐하의 특별 칙명으로 명예 공작의 작위를 받은 노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자. 꽤나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분명히.
추기경의 저 모습을 비브리오 공작
역시 기꺼워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 귀족 회의장에서.
데서리 외에 유일하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존재였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비브리오를 노려보던 추기경이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부터 신께서 지정하신
이교도를 척결하러 떠나겠습니다. 모두 이 손으로 깨끗하게 지울 것 입니다. 이교도들은 땅 위에 발 디딜 수 없다는 것을 보이겠습니다.”
그레이시엄은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봤지만 아무도 잡지 못했다.
모조리 내통하고 있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레이시엄이 로브를 벗고 네 개의 눈을 드러낸 충격이 컸는지 사람들은 응성거리고,한동안 회의가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그 혼란 속에서 데서리 바티엔느는 슬쩍 얼버무렸다.
“제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에,이교의 신앙이 번져 추기경께서 나서는 일까지 만들었군요.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다시 칙명을 수행하러 가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추기경을 뒤쫓았다.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라며 수군 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붙잡으려는 자들도 있었지만,목소 리가 크지 않았다.
무시하며 그대로 빠르게 밖으로 따라 나갔다.
무례한 행동이지만.
저대로 그레이시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어.’
그녀는 추기경의 이교도 심판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교도를 절멸시킨다.
보는 눈이 적은 서부에서는 심지어 마물들을 이용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예메라에게 직접 계시를 받고, 제 몸에 〈성흔〉이 생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체 어떤 규모의 살육을 벌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교도든 누구든.
훨씬 더 많은 제국민이 죽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맨몸으로 계속 추기경의 뒤를 밟다가, 인적이 드문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오베론.”
〈결합하겠다.>
회의장 바깥에서 기다리다가,이곳 까지 은폐 모드로 쫓아왔던 타이탄.
파일럿과는 별개의 독립행동이 가능한 타이탄이 그늘 아래에서 나타났다.
- 좌르르륵!
미스릴의 조각조각이 의지를 갖고 살아 움직이면서,자연스러운 형태로 데서리 바티엔느의 몸에 휘감겼다.
“저 추기경을 스캔해 봐……. 그래, 안쪽까지.”
〈인식 결합.>
〈시험 중인 기능을 사용하겠다.〉
탑승한 파일럿의 기감이,투사되는 고주파와 결합한다.
어느 한쪽만 있을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이 가능해진다.
기감과 결합한 고주파는,투시의 마안이 되어 추기경의 몸 안 전부를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저건……
그레이 시엄은.
몸 안의 장기들이 압축되어 사슬처럼 얽혀 있었다.
‘인간이 아니잖아?’
제자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해진 기능 따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동하고 있었다.
샛붉은 심장에서 뻗어나온 동맥이 치렁치렁 얽혀서 몸 안에서 기포를 발생시켰다.
저런 게 신에게 받은 계시라니.
저런 몸으로 평범한 인간들을 죽이는 걸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늘 속에서 추기경을 계속 따라 가려고 하는 순간.
- 乂근 근르
골목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
〈추적 대상 상실.>
오베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라졌다고?’
다시 한번 투사를 해봤지만 추기경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시험가동 중인 기능의 문제일지도 몰라 끄고 기본 시야로 전환했지만.
역시 추기경의 기척은 어디서도 감지되지 않았다.
‘설마 쏘아 보낸 고주파를 탐지한 건가.’
마지막에 가서 사용했어야 했나.
하지만 자책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오베론,고주파에 의한 광역 시각 화는 어디까지 가능하지?”
〈반경 50m-. 파일럿의 신경 통증을 무시한다면 75m까지 가능하다.〉
“그것밖에 안 되는 거였나?”
〈파일럿의 기감과 결합했기에 가능한 거리다. 광역 추적을 위해서라면 온도 감지 센서를 추천한다. 추적 대상의
표면 온도는 체온보다 3도 이상 높았다.〉
확실했다.
계시를 받은 그레이시엄은 보통 인간보다 훨씬 뜨거웠다.
장기가 압축되고 여러 개의 심장에서 뻗어 나온 동맥이 사슬처럼 피부 아래에 얽혀 있어,내부가 완전히 다른 탓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굳이 안을 들여다봐야 할 것은 아니었다.
위치만 파악하면 된다.
“좋아,그걸로 하자고.”
* * *
결국 그레이시엄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다.
골목골목을 뒤지며 샅샅이 돌린 열 감지 센서도 쓸모없었다.
‘실패했나.’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깊은 고민에 빠진 데서리 바티엔느의 뇌리에 한 장면이 스쳐갔다.
예메라의 추기경을 불쾌한 눈으로
바라보던 노인.
‘비브리오 공작……
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홀연히 나타나서.
갑자기 폐하로부터 온갖 작위를 하사받은 인물.
‘애초에 정치 활동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골목골목을 돌면서 빈민들을 구제 하거나,보육원을 세워서 아이들을 도와준다는 이야기 정도만 들었다.
폐하수도 근처의 빈민가에서 자주 목격되는 성자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귀중한 인재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정치에 눈을 감고 살아온 평생.
하지만,이제부터라도 그런 귀인과 인연을 맺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비브리오 공작이야말로 제국의 보루이자 희망 같은 존재인지 누가 알겠는가.
슬쩍 한번 찾아가 볼까 싶었다.
동태 정도는 살펴보자.
- 파앗!
데서리 바티엔느는 비브리오 공작의 집으로 향했다.
- 뻐그덕.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집 주변.
〈공작은 부재중이군.〉
‘이렇게 청렴하시다니.’
심지어 그 흔한 정원조차도 없다.
데서리는 새삼스럽게 비브리오라는 노인에 대해 감탄했다.
근처에 심어진 커다란 버짐나무와 은행나무 하나가 전부.
초음파로 탐지했지만.
문 안쪽에도 변변한 세간살이조차 없다.
“알아볼 만한 분이었군. 한번 주변을 돌아보자.”
배회하는 중에 비브리오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우하거나,소문을 듣거나.
선행을 베푸는 모습이라도 직접 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것에도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비브리오의 집 근처에서 시작해서.
꽤 떨어진 주위 골목 골목까지
돌아보던 데서리는 묘한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수도 안에 이런 곳이 있다니……
빈민가였다.
배수 시설이나 정화 시설도 없어서 쓰레기와 오수가 넘쳐흘렀다.
들개들은 붉은 눈으로 짖으며 몰려 다녔다.
일부러 이런 곳 근처에 집을 지어 사는 걸 비브리오 명예 공작의 탁월한 인간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상하군.’
이 빈민가는 어딘가 기이했다.
데서리의 나이는 50에 가깝다.
수도라고 해서 모든 백성이 깨끗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환상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곳은 평범한 빈민가가 아니다.
골목은 마치 일부러 접근하지 말라는 것처럼 더러웠고.
몰려다니는 들개들은 그저 굶주린 게 아니라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위험 하게 행동했다.
무엇보다도.
이 장소는 데서리가 가지고 있는 군사용 지도에조차 존재하지 않는 구역.
데서리 바티엔느는 그 사이를 걸었다.
〈열 감지 센서 가동.>
이 골목의 지하에 분명히 인간의 체온보다 높은 온도가 감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시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몹시 광범위했으므로.
‘대체 뭐지?’
오베론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입구를 찾은 그녀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 갔다.
금세 공간이 놀랄 만큼 높고 넓어 졌다.
〈층고 27미터.〉
철인 여단의 훈련용으로 써도 될 만한 장소였다.
‘이런 곳이 지금까지 숨겨지고 있었다고?’
뭐가 나올지 몰랐다.
거대한 기둥들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500m.
광역 열 감지 센서를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었는데, 열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게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넓은 공간 자체라는 게 느껴 졌다.
‘광…장?’
200m.
점점 가까워지자.
무언가 기괴한 비명이 그쪽에서 하수도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모든 걸 완전히 체념하고,절망 했음에도 불구하고,신경이 눌린 탓에 어쩔 수 없이 토해낼 수밖에 없는 기계적인 비명.
70m.
〈시야를 전환하겠다.>
고주파 측정에 의해 주위가 투명하게 시각화되면서.
데서리 바티엔느에게 ‘열원’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가벼운 웃음이 나왔다.
수백 명의 인간이 몹시 압축적으로 얽히고 얽혀서 광장 전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천장도 바닥도 벽인 광장 속에서.
모든 심장이 뛰었고.
모든 혈관이 피를 보냈으며.
모든 신경이 서로 이어져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신경안정제의 투입을 권유하겠다.〉
“거절하지.”
데서리 바티엔느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차분해지는 법이다.
〈재의 수도회에 연락해서 소각 및 추적을…….>
“우리가 추적하던 그 수도회의 수장에게?”
<…….>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이 광장과.
그레이시엄은 온도 반응마저도 비슷하다.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진 광장에 서서.
데서리 바티엔느는 좌표를 측정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정보와 현재 좌표를 결합하자 새로운 정보가 생겨난다.
‘비브리오 공작.’
여기서 위로 뚫고 올라간다면.
귀족 회의의 추대를 받아서,폐하의 특별 칙명으로 명예 공작의 작위를 받은 노인의 저택이 나온다.
잿빛 추기경과의 미묘한 기류를 떠올리고.
상담을 요청할까 고민했던 노인의 저택이.
‘이 수도는… 악마들의 식탁인가?’
둘의 갈등이라고 해 봤자 누가 뭘 더 먹느냐 하는 것 정도였겠지.
그녀는 한동안 소리 없이 웃었다.
지금까지 제국을 위해 복무했던 게 다 뭐였을까?
자신은 30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았던 걸까.
더 강한 힘?
타이탄의 개발?
이런 괴물들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가?
악마들의 만찬에 바칠 음식을 기르기 위해?
- 우드득.
몸을 뒤덮은 염동력이 마치 불꽃처럼 이글거리며 타이탄의 전신을 뒤덮었다.
데서리는 벽을,바닥을 바라본다.
‘서른…. 마흔…. 쉰….’
모두 제국의 백성이었을 자들.
- 투둑. 투두둑.
풀려나오는 염동력이,신경과 신경 사이를 지나갈 만큼 극단적으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얽혀진 생명
들을 끊어낸다.
죽음 외에는 어떤 자비도 위로도 불가능한 광장.
〈파일럿 데서리.〉
오베론은 파일럿의 생각을 읽고 말을 이었다.
〈폭주는 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일단 빠르게 수도를 벗어나자.>
데서리 바티엔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디까지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정보도,조직도 없는 상태 에서 부딪친다면 결과는 의미 없는 죽음일 뿐.
임무를 수행하는 척하며 활동 범위를 넓히고.
외부 조직의 힘을 빌려 바깥에서 캐내야 했다.
전쟁을 지연시키는 괴현상이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늦게 눈을 떴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 인지도 모르지만.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지킨다.’
30년 넘게 복무하며 단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던 다짐.
나라와 국민을 지킨다는 맹세.
데서리 바티엔느는 다시 한번 새롭게 되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