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27화 (427/458)

511화 신이 원하는 것 (9)

‘어딜 가는 거지?’

대장을 바싹 쫓아갔다.

철인은 기척을 감추는 데도 시간 제한이 있는 듯,10분 정도 달리자 녀석의 기척이 훨씬 더 뚜렷하게 감지됐다.

- 쾅! 쾅!

데서리에게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건지,녀석은 대놓고 전력 으로 내달렸다.

소속 문양도 없고,딱 봐도 제국 소속의 철인은 아닌 거체가 대로를 내달리는데 대로에는 순찰하는 경비대 하나 없었다.

녀석 같은 후방의 유격대가 활약하기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폭주하며 내달리던 녀석은 어느새 작은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햇살이 환한 오후인데도, 숲은 마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어두컴컴하고 음침했다.

‘탐지.’

비유가 아닐지도 몰랐다.

실제로 입구부터 작은 숲 전체에 보티스의 결계가 깔려 있었다.

장소를 은폐하고 출입을 거부하는 결계 였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넓지는 않았지만.

마왕의 힘이 느껴지는 높은 수준의 결계 였다.

거무튀튀한 철인을 따라오지 않았 다면 근처를 지났어도 무시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발견한 이상,돌파야 간단하지만.’

녀석을 따라 어둠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입구에서 10분 정도를 직선으로 움직였을 때.

거대한 늪지대 사이에 좌리를 튼 뱀의 석상이 보였다.

一 철컥.

철인의 가슴이 열렸다.

밖으로 나온 남자는 석상을 향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좌리를 튼 뱀의 이마에 박힌 새까만 점이 눈앞에 들어왔다.

크기는 손톱보다 작았고,무언가의

비늘처럼 보이면서 새까만 광탁을 비쳤는데,아무래도 이 세계의 물건 같지 않았다.

어둠에도 종류가 있다.

한 톨의 작은 비늘에 비치는 건.

집요한 가학으로 만들어진 사악한 어둠 같았다.

‘저게 뭐지?’

석상 앞에 멈춘 남자는 품에서 자그마한 단검을 꺼냈다.

단검을 한 손으로 쥔 그는 주머니를 뒤져 꾸깃꾸깃한 종이를 꺼내 펼쳤다.

나는 뒤에서 바싹 붙어 종이를 살폈다.

그곳에는 점과 선의 여러 조합 옆에 대륙어의 각 문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점 하나, 선 하나,점 두 개의 조합이 문자 하나와 대응되는 식이었다.

‘신호표?’

처음 보는 형식이었다.

남자는 종이를 바라보며 단검으로 비늘을 겨눴다.

“젠장,급한 신호가… 세 번 짧게, 세 번 길게,다시 세 번 짧게 찍는 거였지. 빌어먹을 새끼들. 일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오베론급 괴물이 섭외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얘기를 해 줘야 하잖아? 빨리 해결 하라고 신호를 보내야겠어.”

그건 어딘가에서 교육받은 행동을 그대로 옮기고 있는 수련생처럼 보였다.

단검이 비늘에 꽂히기 직전,

一 턱

나는 단검을 쥔 녀석의 팔을 붙잡 았다.

“끄아아흐흡?”

다른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았기에, 비명은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흐읍! 흐읍! 흐으읍!”

“가만히 있어라.”

“읍! 읍읍! 읍읍읍! 으으읍!”

“알아들었다고 치겠다.”

녀석의 손목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줬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단검이 곧바로 바닥에 떨어졌다.

“어,어,어떻게 여기를? 상위 서열 이십니까?”

‘상위 서열?’

유령들이 떠올랐다.

보티스의 가면을 썼던 녀석들.

은폐의 축복을 받고 있었지만, 로랑스 공작은 보티스의 가면을 쓴 다른 유령들의 위치를 모두 다 꿰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내가 묻는 말에 성실한 답변을 해 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학대받은 양은……

잠깐.

어색한 정적이 홀렸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지?”

그 순간이었다.

두두두두

자그마한 남자의 몸이 검게 물들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뚜둑! 뚜두둑! 뚜두두둑!

두 눈이 샛노랗게 물들었다.

앞에 놓인 보티스의 석상처럼 피부가 변해 가며 주위를 감싸던 어둠이 남자에게 흘러들어 갔다.

어둠에 휩싸인 뱀 인간처럼 변한 남자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공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공격이 전혀 적중하지 않자 침을 뱉었는데,넓은 범위로 뿌려지는 비말 하나하나가 지독한 맹독인 것 같았다.

‘더럽잖아.’

나는 아예 녀석의 뒤로 훌쩍 돌아가 피한 뒤 목과 몸을 붙잡았다.

붙잡힌 상태로 버둥거렸지만 힘에서 전혀 상대는 되지 않았다.

“끄으으윽

“성실히 답변을 해달라니까 침을 뱉다니. 뭐 암구호 같은 거였냐?”

살짝 힘을 줬다.

어두운 비늘로 덮인 팔다리가 꺾이며

덜렁거렸다.

인간의 몸과 다른 신체구조로 변한 탓에 아예 뽑는 것처럼 뼈를 끊어 놨다.

“끄윽! 흐끄으으음!”

목을 잡고 있었기에 비명도 제대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팔다리를 부수며 녀석의 몸을 살폈다.

가만히 있어 보니까 그사이에 이미 천천히 재생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설원 트롤보다 훨씬 뛰어난 속도.

이미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기괴하군.’

한동안 팔다리의 뼈를 구석구석 꼼꼼히 분지르다가,녀석에게 물었다.

“제대로 대답할 거냐?”

“끄읍! 읍읍! 읍읍음!”

한다는 걸까.

슬쩍 목을 놓아준 순간.

녀석은 뱃속 깊숙이 무언가를 모으듯 기괴한 소리를 내고,목을 180도 돌려 뒤에 있는 내게 맹독을 뱉어냈다.

내가 피한 자리는 아예 깊이 뻥 뚫려 부식됐고.

순식간에 주위 수십 미터까지 거미줄 처럼 부식이 번져 나갔다.

침 한 방울 닿은 나무들이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죽고 땅이 쑥 꺼져 버린다.

“좋게 좋게 물어보려고 했더니……

- 서걱!

나는 녀석의 팔다리를 잘라 버렸다.

뱀으로 변한 몸에서 그나마 인간의 흔적이었던 팔다리가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끄극…. 끄그극….”

“침 뱉지 마라.”

몸통을 밟고 서서 녀석을 가만히

노려봤다.

“이럴…. 수가…. 제국까지 위명을 떨칠〈검은 도살자〉인 내가…. 마왕의 가호까지 썼는데 발버둥도 못 치고 지다니…. 너는 도대체… 어떤 존재나“. 검주들이나…. 제국제일검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자기 실력에 무척 자신이 있는 녀석인 모양이었다.

하긴 녀석이 탑승한 철인부터 범상 치는 않다.

그럭저럭 악명 정도는 떨쳤을지도 모른다.

몸이 밟힌 채로 녀석이 말을 이었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반항해 봤자 희망은 없다…! 이 세계는…. 인간들은…. 그냥 장난 감일 뿐….”

“확실히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거리자 녀석이 당황한 듯 몸을 떨었다.

진심으로 납득하는 기세가 읽히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

지상을 장난처럼 유린하는 마왕도.

그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도 알고 있다.

이번 생에는 신의 권속도 경험한 데다가,세계선상에서 어떤 존재를 통째로 적줄하는 자들까지 생각해 본다면.

이 세계나 인간은 그냥 장난감이라는 사실은 알 수밖에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 거기까지 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선했다.

그냥 감이 좋은지도 모르지.

‘흐음.’

밟은 채 가만히 내려다보니,놀랍 게도 팔다리가 느린 속도로 천천히 돋아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속도였다.

내가 부순 뼈도 붙어 가는 것 같았다.

‘어떡하지?’

내려다보자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뼈의 군주 Lv.2…….]

[골격변용骨格變容을 사용합니다!]

- 끄드득…….

“끄으이흐어! 끄히히헉!”

나는 속으로 작은 탄성을 질렀다.

‘이런 식으로도 되는군.’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

단순한 절단이나 파괴보다 훨씬 복구가 어려운 것 같았다.

원래 있던 스킬이지만.

마치 새롭게 습득한 기분이었다.

뼈밖에 없는 내 몸에 사용하면 상쾌한 뚜드득 소리만 나는데,뱀인간 으로 변한 녀석의 몸에 사용하자 살과 몹시 높은 밀도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며 기괴하게 꾸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끄읍! 끄으으읍!”

‘기왕이니,천천히 실험해 볼까.’

안에서 뼈를 왜곡하는 게 재생원리 자체를 뒤트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생명이 끊어질 걱정은 없어 보인다.

열두 시간 정도를 반복하자,녀석의 몸 안쪽에 뭔가가 흐물흐물 풀리는 게 느껴졌다.

전신을 덮은 뱀 비늘도 이제 곤두 서지도 않고 축 처졌다.

‘이 정도면 됐을까.’

“흐흐흑…. 끄흑….”

지금까지 써 볼 생각을 하지 않았 지만 몹시 효과적인 수법인 것 같았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은 견디지 못하고 충격으로 죽으려나?’

물론 내가 상대하는 자들 가운데 평범한 인간이라고 할 녀석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몸이 재생되는 것 같은 기괴한 녀석들이 더 흔한 것이다.

사용처는 무궁무진하다.

“솔직히 다 털어놓으면 그만해 주지.”

“끄으윽…. 외통수인가…. 뭐든…. 물어봐라….”

나는 녀석의 뱀 비늘 피부를 발로

문지르며 물었다.

“왜 연합 유격대가 보티스의 힘을 갖고 있나? 누굴 통해서 어떤 식으로 받은 거지? 그 루트부터 자세히 읊도록 해라.”

“일단은……

뼈의 군주가 효과적이었던 걸까.

고통에 온몸이 나긋나긋해진 녀석이 자백하려는 순간.

“크읍! 크으읍……!”

남자의 목에서 무언가가 꿈틀,하고 움직였다.

연기 따위는 아니다.

아차 싶었다.

‘보티스의 낙인!’

네크론 신사회의 기억이 떠오른다.

정보를 누설하는 자들을 목졸라 죽였던 그 문신.

결코 잊을 수 없던 선이 빠르게 굵어져 갔다.

‘처음부터 생각했어야 했는데.’

보티스의 은총을 받았다면.

그 각인이 없을 리가 없다.

무신경했다.

지금은 지렁이지만.

순식간에 보티스의 형상을 갖추게 된다.

머리에 뿔이 돋고.

두 개의 어금니가 길게 자라나겠지.

뱀 비늘 피부 위에 만들어지는 뱀의 낙인은 한층 더 기괴하게 느껴졌다.

피부에 파묻힌 채로 남자를 목 졸라 죽일 거다.

‘…젠장.’

뭐 하나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으어…? °1, 이게….”

제 목을 더듬으려는 걸까.

남자가 잘려 나간 팔다리를 꿈틀 거린다.

“히익…. 히이이익….”

답답했다.

저기에 또 당해야 하다니.

방법이 없을까.

점점 짙어지는 문신을 무기력하게 노려보고 있는 순간이었다.

〈당겨라.>

별안간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뭐?”

순간 조각상이 말을 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끅끅대며 바닥을 구르는 남자에게 서는 물론,사방을 빙 둘러봐도 아무것도 탐지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목소리가 울려오는 방향은.

〈나는 베트라스…….>

하늘이었다.

〈너는 내 선교자…. 저런 각인 같은 건…. 파낼 수 있다…. 나를 믿어라….〉

“뭐야? 베트라스라고?”

죽음의 기사 특전.

베트라스의 차가운 달.

달의 신이 지금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건가?

〈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껌뻑 죽지 않는 거냐…. 건방진 놈….〉

〈어쨌든… 달빛이 잘 안 닿으니깐…. 거기 달빛 좀 비치게 해라….〉

“흐히이,키익,하으아아……!”

바닥을 구르는 남자의 숨이 거칠어 진다.

뱀이 뱀의 목을 조르는 모습은 한층 더 섬뜩했다.

‘시간이 없군.’

위를 올려다봤다.

一 퍼격!

얽힌 덩쿨과 무성한 잎을 뻥 쳐냈다.

둥그랗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마법처럼 환한 보름달이 나를 향해 비치고 있었다.

〈달빛의 힘을 사용해서…. 저것만 당긴다고 생각해라…. 멍청한 놈도 할 수 있다…. 해봐라…. 선교도 계속 힘내도록…. 조금만 더 힘내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무언가 배터리가 다 닳은 것처럼 목소리도 끊겼다.

이게 뭔 현상인가.

나는 버둥거리는 남자와 보름달을 번갈아 바라봤다.

몹시 촉박했고.

뭔가 묻기에는 목소리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해볼 수밖에 없었다.

‘당긴다.’

달빛이 모인다.

대지를.

강물을 당기던 감각이라면 곤란하다.

날카롭게.

인력을 다듬었다.

흘러내린 달빛이 남자의 목을 조르는 뱀에 휘감긴다.

꼬리에,몸통에,목에.

눈 없는 뱀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一 乂 근 근 己르.

부서지기 직전의 태엽을 감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뱀을 잡아당겼다.

달빛에 휘감긴 뱀은 남자의 몸 바깥으로 나왔고,공기에 닿는 즉시 휘발되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흐읍! 흐으읍! 흐으으읍!”

격렬하지만, 분명히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숨소리.

어떻게든 다시 공기를 몸에 채워 넣으려는 필사적인 움직임이 한참 이어지고.

남자의 맥박이 점점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진짜… 살았잖아?’

네크론 신사회의 무리도 그랬고.

뱀의 각인은 무조건적인 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수확이 놀랍고 반가웠다.

이제 보티스의 부하들에게 정보를 캘 수 있게 된것이다.

‘베트라스……

도깨비들에게 신으로 숭배받는 존재.

지금까지 녀석의 힘으로 대지를 흔들어 놓으면서도.

정작 그 힘으로 마왕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게 이상 하게 느껴졌다.

달의 힘은 과연 어디까지 통할까?

궁금증이 일었다.

“베트라스! 다른 권능은 없는 건가?” 허공을 향해 외쳤지만.

목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비정상적으로 빛나던 달빛도 이미 희미해져 있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발아래 밟힌 녀석을 향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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