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28화 (428/458)

512화 신이 원하는 것 (10)

“그럼 말해 봐라. 이 조각상에 붙은 비늘은 뭐지?”

“조,조금만 발을…. 쿨럭….”

“o으”

— I그 •

발을 치워 줬다.

어차피 놓칠 가능성은 없다.

남자는 꿈틀거리며 몸을 수습하더니,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나와 조각상을 번갈아 보곤 말했다.

“그건… 마왕의 일부다.”

“보티스의 일부라고?”

“바로… 그렇다. 통신 수단으로 쓰이지. 이 비늘에 점과 선을 찍으면 반대편에 그대로 떠오르게 된다.”

남자는 자신이 확인하려 꺼낸 신호표를 내밀었다.

신호표는 뱀 인간으로 변했던 남자의 검은 피가 튀었는데도 전혀 더럽혀 지지 않았다.

특수한 처리가 된 것 같았다.

“문자 하나와… 점과 선의 조합이 대응하는 구조다. 여기서는 길게 찍고, 짧게 찍는 것밖에 할 수 없지만…. 이 신호를 받는 제국 수뇌부는 글자를

써서 지령을 내릴 수 있지.”

“이 비늘 위에 글자가 떠오른다고?”

“그렇다……

“놀라운 기술이군. 반대편에서 비브리오가 지령을 내려 주는 거냐?”

“비브리오를 알고 있다고……?”

힘겹게 꿈틀대며 말하던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내 입장에서야 뻔한 얘기다.

제국 수뇌부면서.

보티스의 비늘에 글자를 써서 명령 하는 자라면 당연히 비브리오밖에 없다.

“계속하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음…. 그러지. 이 전쟁의 목적은 일단 마왕의 강림…. 그게 진정한 목적일지는 모르고…. 일단 그 이후도 있는 것 같지만…. 병사들의 피를 뿌리는 거야. 하지만 땅이 갈라지고 강이 범람하는 현상 때문에 전투가 일어나지 않아서,대신 소규모 유격 대로 후방의 민간인을 대신 학살하게 된 거네.”

뭔가 감이 좋은 인간이다.

어쨌건,최전선에 있는 놈이 느낄 정도라면.

놈과 보티스를 이어 줬던 연합의 윗줄들은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지

않을까.

용사들이 나오는 것까지 알고 진행 하는 걸지도 모른다.

‘마왕들의 강림이… 인간들에게 딱히 좋은 건 아니니까.’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침묵에 불안을 느꼈는지 남자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 비,비브리오에게 마왕의 힘까지 받으면서 말이야. 3개월 정도 됐다네.”

“마왕의 힘을 나눠 주기 싫어하진 않던가? 쉽게 주진 않았을 텐데?”

푸르손의 추종자들과 달리.

네크론 신사회의 무리는 마왕의 권능 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비밀을 누설하면 목이 졸려 살해 당하기나 했지.

남자가 경악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 봤다.

“그것…까지… 알고 있다니……! 맞는 말이야. 그자가 아까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군. 비브리오는… 여러모로 불쾌한 녀석이었네. 그래도 나는 명색이 2선 의원이기에 권능을 받기야 했지. 그만큼 이 일이 마왕 에게 절박한 장애물인 것 같기도 했고.”

‘의원?’

전직이기는 해도.

생각보다 거물인 녀석이었다.

50명밖에 없는 연합 의회의 구성원이 여기서 살육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내가 벌인 일 때문에 보티스가 어지간히 몸이 단 것 같았다.

‘나중에 놈들이 강림하면 내가 이런 짓을 했다는 건 숨기는 게 좋겠군...,

남자는 말을 이었다.

그를 이곳에 파견하고.

비브리오를 소개시켜 준 의장과 스스로에 대해서 줄줄 읊어 갔다.

남자가 데리고 있는 건 군의 사형수 들과 살육을 원하는 지원자들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활약한 뒤 자기가 잃어버린 의석을 되찾기를.

그리고 그 이상까지를 노리고 있었다.

“계속 말해 봐라.”

12시간 동안 이어진 고문의 효과인 듯 정보가 끊임없이 뱉어졌다.

남자가 말하는 정보를 카린이 알려 준 정보와 비교해서 맞춰 보았다.

‘많이 들을수록 좋겠지.’

이런 걸 적어서 카린과 넥스몬드에게 보내면 커다란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전직 2선 의원이라서인지 어떤

부분에서는 꽤 깊고 자세한 정보까지 가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거물을 잡은 셈이었다.

꼼꼼히 기록해 가면서 듣고 있을 때였다.

웬만한 건 전부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중언부언하던 남자가 문득 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철인을 가리켰다.

“이 녀석 또한 오베론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타이탄이지. 보티스의 힘으로 은폐한 타이탄을 쫓아오고, 마왕의 힘까지 사용한 나를 이렇게 가볍게 제압하다니……

녀석이 마른 입을 다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직 변신이 풀리지 않은 샛노란 눈이 빛난다.

“자네,혹시 나를 살려 줄 생각은 없나?”

“음?”

“아까도 살려 주지 않았나. 사는 거! 나한텐 뭐니 뭐니 해도 그게 가장 중요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네.”

“그런 거냐.”

“맞아! 그래서 지금까지 마왕의

장기말로 살아온 거지. 나라고 뭐 딱히 마왕이 좋겠나? 비브리오가 좋겠나? 이건 진심이라네.”

남자가 발버둥 치듯 몸을 떨었다.

“보티스의 각인까지 무효화하다니…. 자네 혹시,마왕을 벌하려고 내려온 신의 대리인인가? 아니면 정의의 용사인 건가? 그렇다면 난 이제 그쪽 편이 되겠네! 네 부하,아니,최고로 성실한 노예가 되겠어. 부탁하네. 나는 살고 싶어. 복귀에 성공하고 싶어! 그렇게 3선 의원이 된다면 나는 분명 더 쓸모가 있을 거야!”

“부디 나를 사용해 주게. 정의의

용사여!”

용사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툭툭 쳐울렸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밝아지며,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틈새에서 비져 나왔다.

기분 나쁜 농담이다.

‘최악의 단어 선택이군.’

손을 살짝 긋자,반쯤 비늘에 덮인 남자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살려… 줘……

이미 반으로 잘린 상태에서도 그는 살려 달라고 말했다.

절단면이 깔끔한 탓에 그는 몇 초

정도 더 살아 있다가 천천히 벌어져서 죽었다.

녀석은 딱히 쾌락 살인마는 아니고.

살인이나 가학으로 자극을 얻는 부류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세상을 불태울 수 있는 타입으로 보인다.

애초에 이런 자를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일어나라……

언데드로 다시 살린다면 모를까.

[뼈의 군주 Lv.2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통제력이 부족합니다!]

[필요 통제력: 70이

[보유 통제력: 0/50]

‘전혀 안 되는군.’

간단하게 제압한 녀석이지만 통제력이

700이나 필요하다.

기스-제-라이가 통솔하던 정예 트롤

해골의 필요 통제력이 100이었던 걸

생각하면,이 녀석도 나름대로 거물 이긴 한 것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대로 노예로 써 줄 수도 있었는데.

조금 아까운 마음에 몇 번 시도해 봤지만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억지로 마력을 투입하면 안 되는 건가?’

- 우우우우웅!

두개골을 짚고 마력을 불어넣었지만.

- 투콱! 투콰콱!

“이런.”

무리한 일인지 녀석의 뼈가 그대로 조각나고 터져 버린다.

‘아까운 스킬인데……

일단 포기하고 묻기 위해 땅을 팠다.

서너 번에 손짓에 순식간에 넓고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녀석과 철인을 안에 묻으려다가, 문득 조각상의 검은 비늘에 시선이 갔다.

마왕의 파편.

‘보티스……

- 유1그트

주먹을 쥐었다.

루비아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네크론 신사회부터.

비브리오까지.

모두 보티스와 관련된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이 뱀의 무리를 한 번도 뿌리째 뽑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건 루비아를 지켜 주지 못했던 나 자신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부숴 버릴까. 아니야……

그걸로는 부족하다.

갚아야 될 빚이 많다.

문득.

바닥에 떨어진 신호표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이 녀석인 척을 해보자.’

비브리오와 대화하다 보면 녀석을 타도할 방법이 나올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이제 유격대로 민간인을 학살한다면.

거기에 맞는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직접 학살 명령을 받고,그걸 뒤엎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겠지.

조각상의 사용 방법은 남자에게 이미 충분히 설명을 들은 터다.

- 스륵.

뾰족한 단검을 들었다.

‘뭐라고 할까……

유격대가 당한 소식은 금방 알려질 거다.

일단 녀석이 하려고 한 것처럼.

‘짧게 세 번,길게 세 번,다시 짧게….’

긴급 신호부터 보내는 게 자연스럽 겠지.

단검이 비늘에 꽂힌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점을 찍은 순간.

〈말,해,라.〉

차례대로.

‘되는군.’

비늘 위에 글자가 떠올랐다.

죽은 남자의 설명대로,반대편에서는 곧바로 글자를 쓸 수 있는 모양.

나는 단검을 꽉 쥐었다.

맞은편에 있는 건 비브리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어서 남자가 치려고 했다고 말한 문장을,그대로 조심스럽게 만들어 냈다.

‘오베론. 습격. 가호. 혼자. 생존. 병력. 전멸.’

어차피 알게 될 일들이므로 먼저 말해 줘야 한다.

전직 2선 의원이 생존했다는 거짓.

비브리오의〈지시〉에 따라 움직일 거라는 환상.

그 독을 주입시켜야 한다.

‘혹시 비브리오가 직접 내려온다고 하진 않겠지?’

긴장이 고조된다.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녀석의 전력을 확실하게 100% 파악한 것은 아니다.

특히 비브리오 혼자 올 거라는 보장도 없다.

혹시라도 주렁주렁 무언가를 달고 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기다리고 있던 순간.

손톱만 한 비늘 위에 다시 자그마한 글자가 하나씩 떠올랐다.

〈숙,련,도,를...〉

‘뭐가 이렇게 길어?’

하나씩 받아 적자 긴 문장이 나타 났다.

〈숙련도를 연습해서 신호 보내는 속도를 더 올리도록 해라. 나는 몹시 바쁘다. 너 따위가 답답하게 치는 부호에 오래 할애할 시간은 없다. 쓰레기들이 죽은 게 뭐 그리 대수냐. 어차피 어디서든 보충 가능한 고깃

덩어리들이다.〉

방금 죽은 시체를 흘끗 바라봤다.

지금까지 이런 상대와 대화하고 있었다는 건가.

동정은 가지 않지만.

그 나름의 고충은 있었던 듯하다.

비늘에 문자가 계속 새겨졌다.

〈연합 고기들 대신 제국 고기들을 이끌고 활동해라. 근처에 네크론 신사회의 지부가 있다.〉

‘네크론의… 지부?’

쏟아내는 정보가 시작부터 솔깃하다.

〈위치는…….>

자그마한 비늘 위에 글자들이 계속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런?’

글자들이 묘사하는 네크론 지부는 꽤 익숙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블린 부락이잖아.’

혈석 채굴장.

인간들이 고블린들을 양식해서 죽이는 장소였다.

그곳에 있는 인간들을 오랜만에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 철컥.

옆에 서 있는 철인에 탑승했다.

흉내 낼 거라면 철저하게.

이 녀석을 타고 가는 편이 납득 시키기 쉽겠지.

그 순간이었다.

〈귀하는… 설마…. 나에게 타려는 것인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철인이 말을 걸다니.

하긴,죽어 자빠진 놈은 2선 의원 이고.

이 녀석은 놈의 타이탄이라고 했다. 자아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 네 새로운 파일럿이다.”

반항하려나.

방금 제 전 주인을 죽인 걸 봤다.

어쨌거나 여차하면 마력으로 복종 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초월급 타이탄인 아포플라도 마력 으로 강제로 공조시켰으니 충분히 가능할 거다.

하지만.

타이탄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줬다.

〈만족…. 대만족…. 탑승을 환영 합니다,파일럿님.〉

〈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버리지 말고 계속 타 주십시오….〉

타이탄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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