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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33화 (433/458)

517화 신이 원하는 것 (15)

‘추기경이 내려온다고는 했는데……

비늘을 통해 연락받았지만.

녀석이 직접 달 신앙을 토벌하러 내려온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것도 나 때문인가.’

전쟁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다른 신앙까지 생겨 버리니까 몸이 달았던 것 같다.

내 움직임이 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렇게 다른 곳에서 희생이 생겨 버리자 착잡한 기분도 든다.

“이 마을에 달의 신앙은 어떻게 퍼진 거지?”

풀어 준 사육장 녀석들이 벌써 여기까지 움직이기라도 한 것일까 싶어 물었다.

“이곳 밤베르도 꽤나 정보는 빠릅 니다.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못하고, 적군과 자체적으로 싸워야 하는 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지요.”

전선과 가까운 산악지역인 만큼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커다란 격돌이 일어나는 걸 막을

때마다 달이 환하게 빛난다는 건 주민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달의 성녀 때문에……

“달의 성녀?”

처음 듣는 얘기다.

지난 생까지만 해도 이 제국에 달의 신앙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

당연히 베트라스의 힘은 내가 사용 했고.

신앙도 오직 내 활약으로 널리 퍼졌다.

달 녀석과 얘기를 한 것도 바로 얼마 전인데.

‘웬 성녀.’

책임자가 말을 이었다.

“아,처음 들으십니까? 요새 이곳 저곳 난리이긴 합니다만… 저희 마을에도 달의 성녀에게 치유를 받은 분이 있습니다. 갑자기 중병을 앓게 된 할머니셨죠. 마을 의사가 어딜 가도 어려울 거라고 했지만,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전쟁 중에 목숨을 걸고 노모와 치료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달의 성지를 방문하고 노모는 보란 듯이 나았고,그렇게 저희 마을에도 신앙이 한층 더 퍼졌죠.”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사기꾼인가.’

하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능력이 진짜라면,상대는 사기꾼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괜히 달의 이름 아래 베푸는 광인일지도 모른다.

“정말 나은 게 맞나?”

“저도 처음에 의심했지만 제 눈으로 확인하긴 했습니다. 천성이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달의 성녀니 뭐니 하는 건 믿지 않았지만요.“

책임자 눈빛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베트라스,나 몰래 성녀 같은 걸 만든 적 있나?’

마음속으로 녀석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낮이라서인지,무언가를 준비하겠 다고 사라져 버린 것과 관계가 있는 건지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혹시 그 일 때문에 마을이 표적이 된 건 아닐지……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이었지만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도 아닌지 책임자는 말을 돌렸다.

“아,받으셔야 할 편지가 여기 있습니다.”

책임자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긴 했지만. 애초에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따로

있다.

“잊을 뻔했군……

카린에게서 온 보고서를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중.

한곳에 시선이 멈췄다.

‘여기서도 달의 신앙에,성녀 이야기 까지 나오는군. 신흥 지하 세력의 수장이라……. 역시 제국 남쪽을 본거지로 추정하고 있고.’

‘아직 정확한 전력을 측정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고?’

밑으로 내리자 그 달의 신앙을 노리고 움직이는 그레이시엄의 움직임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도 등장했다.

‘연합에 있으면서 빨리도 파악했어.’ 하필 이곳이 덮쳐지지 않았다면 편지를 읽고 먼저 알았을 정보들이다.

“달의 성지라는 곳이,정확한 위치가 어디지?”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갔다온 청년도 워낙 함구해서요.”

“그런가. 그럼 잿빛추기경이 향한 곳은?”

“두려워서 쫓아가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볼 때는 분명히 에라스트 방향이었습니다.”

“에 라스트?”

책임자의 입에서 익숙한 도시가

튀어나왔다.

“그렇습니다. 끝까지 보지는 못했 지만 분명히 그쪽으로 내려간 것 같습니다.”

“고맙군.”

- 팟!

말이 끝나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꺼림칙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직감이 온몸을 가득 메웠다.

* * *

한 마리 누런 황소가 달구지를 끌고 해질녘을 걷고 있었다. 달구지는 텅 비어 가벼운 짚단 몇 가닥 외에 짐은 거의 없었다. 황소 곁의 늙은 농부는 느릿한 울림으로 아무 노래를 응얼거렸다.

‘으음?’

그의 눈에 절뚝거리는 늙은 수도사가 보였다. 소달구지라고 해 봐야 속도는 여섯 살 어린아이 걸음만도 못했지만, 어깨까지 심하게 기울어져 있을 만큼

절뚝이는 수도사는 그보다도 더욱 느렸다.

‘어이쿠,고생이겠네.’

농부는 곧장 수도사를 따라잡았다.

“어이!”

가까이 가자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광택이라곤 없는 로브 너머로 비쩍 마른 몸의 굴곡이 비쳐 보였다. 농부는 수도사에게 말을 걸었다.

“심하게 저는구려. 지팡이는 어쩌고 그러고 있소?”

“그게……. 산에서 늑대를 만나 잃어버렸습니다.”

“어이쿠.”

농부는 다 벗겨진 머리를 어루만졌다.

“여기 타시구려. 좀 덜컹거리긴 하지만 훨씬 나을 거요. 아,짚단도 좀 있으니까.”

“아닙니다.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농부가 수도사들을 많이 보면서 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무척 수양이 깊어 보였다. 옷차림만 해도 그린 듯한 청빈한 수도사였다.

“사양하지 마시고 폐는 무슨.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아니오?”

“물론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주인 께서도 걸으시는데 제가 어찌……

아이 같은 쑥쓰러움까지 느껴지는 말투에 농부는 한층 더 감탄했다.

“아! 여러 말 말고 얼른 타시구려! 해 지겠소.”

“송구스럽습니다.”

수도사는 농부의 강권이 못 이겨 올라탔다.

- 덜커덩. 덜커덩.

달구지가 다시 움직였다. 올라탄 수도사가 워낙 비쩍 말라 있는 탓인지 소는 거의 부담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딜 가는 길이셨소?”

“에라스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런.”

농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사는 자기보다 대여섯 살쯤 아래로 보였다. 과연 그럴 만한 나이였다.

“나도 삼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소. 이 녀석으로 시체를 끌고 갔지.”

“그렇군요……. 세 여신의 축복이 깃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어이구,수도사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몹시 고맙구려.”

“제가 잘 모르는 신이기는 하지만….” 수도사가 품 안을 부스럭거리며 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달의 조각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달의 축복도 있기를 기원합니다.”

“수도사께서 그런 것도 가지고 계시오?”

농부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수도사가 입가에 열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이러면 안 됩니다만,어머니 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보내 주신 물건입니다. 그 유지를 가볍게 넘길

수 없기에……

“어이쿠,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그 달의 신앙을 가지셨던 모양이오.”

“그렇습니다. 무덤에서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 특히 사제들에게 축복 받으신다면 기뻐하실 텐데. 찾을 도리가 전혀 없으니 답답하고 괴롭기만 하군요.”

“흐흐흠.”

달구지를 끌던 농부가 가볍게 콧김을 내뿜었다. 무언가를 조금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수도사가 말을 이었다.

“에라스트에 들어가 이 달 조각을 보여 주고 다니기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딘가 결연한 말투였다.

농부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오!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마시구려.”

“그렇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까?”

“아 당연히 안 되고 말고!”

“평생을 작은 수도원 안에서만 일하며 지내 세상 물정을 잘 모릅니다.”

“크흠!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막 보이며 다녔다간 경을 치기 십상일 거요. 특히 수도사라는 양반이 그러면 어찌 감당하시려고! 나 참……

농부는 크게 혀를 찼다.

- 덜커덩.

바퀴가 돌을 밟은 탓에,수도사의 몸이 위로 들렸다가 다시 축 처졌다. 마치 크게 낙심한 그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쩐다.”

농부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비밀로 유지하실 수 있겠소?”

수도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수도사는 비밀을 지키는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누구 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도록 예메라의 이름으로 굳건히 맹세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든든하군. 좋소.”

늙은 농부의 안색이 밝아졌다.

“사실,나도 달의 신을 믿소이다.”

“그러시군요.”

수도사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마치 예상했던 것 같은 고요한 말투였다.

농부는 가슴팍을 뒤적였다.

그러자 매듭과 이어진 조각달이 옷 위로 떠올랐다.

거친 부분이 없도록 정성들여 깎은 건지 반들반들 빛이 났다.

“성녀님 덕분이지. 딱히 병을 치료한 건 아니지만,그분이 믿으라고 하시 는데 안 그럴 수가 있나. 허허허……

알쏭달쏭한 말을 한 농부는 에라스트 저 너머의 산을 가리켰다.

“보이시오? 저 산에 어머니를 묻어 두고,달 조각상을 무덤 위에 꽂아 두시오. 그렇다면 축복을 받을 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산에 달의 성녀께서 계신다오.”

수사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데 무덤을 만들어 놓고 달 조각을 꽂아도 들짐승 들이 금세 조각을 파헤치지는 않을까 두렵군요. 혹시 그분이 무덤을 조금 더 발견하기 쉬운 곳은 어디쯤인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성녀님이 머무르는 곳을 묻는 건가? 그런 것까지야 모른다오.”

“그렇군요. 그러면 일단 당신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오는 누군가를 기다리면 되겠군요.”

“뭐? 내 무덤?”

농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네 방금 무슨 소리를 한… 끄그그급!”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 하기도 전에,로브에 덮여 있던 이마에서 작게 빛났다. 그곳에 스스로 빛을 발하는 눈이라도 달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농부의 몸은 얇고 날카 롭게 굳어 갔다. 숨이 부족했다. 폐도,심장도,몸통 전체가 얇고 넓은 무언가로 조형되어 버린 것 같았다. 팔다리도 움직일 수 없었고 감축은 왜곡되어 있었다. 살려 달라는 소리도 내뱉지 못하고 농부는 그 자리에서 숨이 멈춰 죽었다.

“이교도의 시체는 손을 대기도

싫으니… 그냥 버려야겠군.”

- 쨍그랑.

수도사는 발로 밟아 거울을 깨트렸다.

- 메에.

남겨진 소가,옛 주인의 파편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 파앗!

양옆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왜 이렇게 조급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군.’

불길함일까.

하지만 나쁜 일이 일어날 것도 없다.

어차피 이 세계선에는 지킬 것도 없으니까.

‘잿빛추기경을 막고 싶은 건가……

녀석이 달의 신도들을 죽인다면, 내가 끌어 쓸 수 있는 달의 힘에 악영향을 끼칠 테니 서둘러 막고 싶은 걸까.

내가 기껏 사육장에서 해방시켜 준 녀석들을 살해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급한 건 아니야.’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다.

‘대체 성녀라는 녀석은,어째서 에라스트 근처에 있는 거지?’

성녀에 대한 의심일지도 모른다.

엠버의 글로리아처럼 사람들을 호도하는 건 아닐까?

그쪽으로 생각을 틀어 보자면.

밤베르의 학살도 성녀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지도.

‘이건 좀 너무 갔나.’

혹은 유령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나 보면 알겠지.’

- 쿠궁.

타이탄은 어느새 몹시 익숙한 장소에 접어들고 있었다.

에라스트 근방 야산의 초입.

처음 일어났던 묘지가 있는 곳이다.

추기경의 흔적은 그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왜 하필 여기로 오는 거지…?’

쫓을수록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첫 번째 회귀 때의 내 흔적을 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달의 성녀란 녀석이 설마 이 산속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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