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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45화 (445/458)

529화 신이 원하는 것 (27)

꽤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는 했지만, 눈앞의 유령 내사과장을 완전한 동료라고 할 수는 없다.

‘회귀에 대한 건 말하지 않는다.’

자칫 그 정보가 빙의된 공작에게 들어가면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굳이 도박을 할 필요는 없다.

“ 먼저•…”

내사과장이 확실히 알고 있을 것 같은 정보들을 시작으로,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자세히 풀어 나가자 그녀는 금세 골똘한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연합과 제국 양쪽에서 전쟁을 유발하는 배후들에 이어, 16마왕의 발호에 대한 이야기까지 진행하자 그녀의 눈동자가 멍해졌다.

어느새 눈앞의 풍경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내 이야기에 완전히 침식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 아.”

전쟁을 빌미로 한 대규모 인신공양에 마왕 강림까지 끔찍하고 어두운 이야기들뿐인데, 그녀는 마치 천국이라도 영접한 것처럼 흥분과 만족감에 휩싸인 표정이었다.

문득 내사과장이 꿀꺽 침을 삼키며 물었다.

“혹시, 내가 배신할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 거냐?”

자기 입으로 그 얘기를 하다니 녀석 다웠다.

“배신한다면 네 손해지.”

아쉬울 것 없었다.

그 시점부터 내사과장과 협력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거기에 더해 계속 회귀하면서 처리할 리스트에 올려 두면 된다. 열두 번쯤 죽이다 보면 웬만한 배신이라도 별 감정이 없어 지지 않을까?

“흠……

내 말에서 뭔가 느꼈는지 내사과장은 몸을 움츠리며 살짝 떨었다.

“왠지 정말인 것 같군……. 좋다. 이런 정보를 듣고, 거기에 내가 끼어들기까지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네게 협력하겠다.”

손을 맞잡는 과정도, 뭔가를 작성 하는 과정도 없었지만 내사과장의 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네 목표는 뭐지?”

“지금까지 이야기한 판을 이끌어 가는 세력들을 더 깊이 파악하고, 그 판을 뒤엎거나 저지하는 거다.”

“좋아... 좋아”

시아는 손을 떨며 큭큭 웃었다.

별말도 안 했는데 혼자서 뭘 생각 하는지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체온이 올라간 것 같았다.

“ 괜찮냐?”

“그럼…. 아주 기쁘군…. 정말 살맛이 난다……

입가에 터져서 굳은 피와 홍조가 어우러지자 상당히 기괴했지만, 상대방의 진심이 만져질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다.

‘살기? 글쎄. 이 자식, 검객이 아니야.’ 그녀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령 서열 2위라는 천부적인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무엇보다도 세계의 어두운 비밀을 파고드는 게 압도적으로 적성에 맞는 것이다.

시아 으스노르.

그녀는 탐정이다.

“그럼 일단.”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시아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당신은 문지기 회의에서 비브리오 공작의 위치를 선점하는 게 좋겠어.” “신경 쓰였는데, 문지기 회의가 뭐지?” 유령들의 입에서 언급된 단어지만 잘 모른다.

시아 으스노르는 이제 나와 동료가 되기로 했으니 굳이 모르는 걸 아는 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별걸 다 알고 있으면서 그건 모르는군. 태부, 대사마, 광록훈과 대사농, 종사중랑까지 들어가 있는 황실 수뇌부 회의다. 로랑스 놈과 비브리오도 그 일원이었지. 합하면 열 명이 좀 넘는다. 왜 문지기 회의라고 불리는지는 나도 몰라.”

‘똑같아.’

모두가 비역에서 봤던 자들.

레안드로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냐우에게 하나씩 설명을 들은 이름들 그대로였다.

시아가 계속 설명했다.

“로랑스는 우리들에게 수도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놈들의 지시를 따르라고 말하고 사라졌지.”

“문지기 회의의 지시를 따르라고? 너희들은 완전히 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거야, 그놈들은 우리에게 지시를 내릴 수가 없으니까. 일단은 볼 수 있어야 말을 걸 거 아닌가?” 시아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흠……. 그래도 공작의 지시사항일 텐데.”

시아의 눈빛이 갑자기 바뀐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차갑게 굳어 버린다.

“공작의 성격이 바뀐 건 네가 아까 말해 준 대로다. 그 뒤부터 놈은 우리를 감정이 배제된 눈으로 보기 시작했어. 마치 껍데기만 있는 인형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지.”

“애초에 그렇게 바뀐 녀석을 따르기도 찝찝했는데, 대리 지명하고 간 잡놈들 지시를 얌전히 받을 리가 없잖아? 나는 아니라도, 우리 애들은 나름 제국제일검의 직속 휘하라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로랑스는 스스로 그걸 가져다 버린 거지.” “어쨌거나, 그놈들이라면 아는 게 있을 거야. 유령들을 미끼로 내부에 접근해 봐라.”

“너희들을 미끼로?”

“이런 방법이지.”

시아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한 뒤 필요한 물건을 스윽 건네줬고, 나는 그걸 품에 넣었다.

“…대단한 준비성이군.”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알아. 모습이나 목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야. 사소한 손동작, 무언가를 바라보는 태도…. 그놈은 절대로 바뀌었으니까. 이걸 훔쳐도 모를 거 같았거든.”

저번 생을 떠올렸다.

산의 꼭대기에 선 로랑스 공작을 스쳐갈 때.

비행선 위에서 흘끗 보면서도 절대로 그 새끼가 아니라던 시아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떠오른다.

어떤 의미로든.

로랑스 타르티에는 눈앞의 여자에게 꽤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아 참, 오늘 저녁에 문지기들의 차모임이 있을 거야. 미리 구경하는 건 어때?”

“오늘 놈들의 회의가 있단 말인가?”

의외의 말에 흠칫 놀랐다.

시아가 손을 내저었다.

“무슨 큰 회의는 아니고. 차 마시면서 수다 떠는 거야. 전선에 나간 녀석도 많지만, 문관들은 호그위드 찻집에서 자주 모이거든.”

전쟁 중에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말 한가하다 싶었다.

하지만 비역에서 본 놈들의 차모임 이라니 당장이라고 가서 엿듣고 싶었다.

“그럼… 나는 그곳부터…… 서두르자 시아가 피식 웃었다.

“너무 기대하지는 마. 우리도 예전에 바싹 붙어서 무슨 얘길 하나 감시했는데, 워낙 영양가 없는 잡담뿐이어서 대충 행선지만 파악하고 있거든.”

“일단 가보지.”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지, 시아가 즉석에서 슥슥 그려 주는 초상화를 받아들고 시내로 향했다.

호그위드 찻집은 황궁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고, 일리엔의 신전과 비르폰의 신전이 좌우 양쪽에 놓인 묘한 지역에 있었다.

‘무슨 결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진입하기 전에 자세히 주위를 탐지 했지만, 양쪽의 두 신전에서는 왠지 활동하는 사제들의 기척도 몇 명 느껴지지 않는 데다가, 오히려 무언가 미묘한 허전함이 느껴졌다.

원래 신전에 있어야 할 게 사라진 것 같았다.

“보티스, 뭔가 느껴지나?”

〈일리엔의 개집은 나와 상극…….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르폰의 개집은 상당히 시원하군.〉

“불의 여신의 신전인데… 시원해?”

〈땔감이 떨어지기라도 했나……. 장작 태우던 잡놈들이 연기에 목이 막혀 뒈져 버리기라도 했나……. 아무튼 시원하다. 지나가도 된다.〉

“ 흐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위험하지 않다는 의견인 것 같았다. 양쪽의 신전들을 흘끗 보면서 찻집 안으로 들어섰다.

‘정말 제국 수뇌부 모임이 맞나?’

1층에는 다과를 준비하는 종업원들 외에는 호위기사 하나 없었다.

2층을 막아서고 있는 인간도 아무래도 원래 가게에 고용된 사람처럼 보였다.

‘ 으음.’

그대로 슬쩍 2층으로 올라가자 차를 마시는 인간들이 보였다.

스무 명 정도는 앉아도 될 것 같은 넓은 테이블에 세 명만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

녀석들을 시아가 그려진 초상화와 하나씩 비교했다.

‘태부, 광록훈, 대사농.’

잡담을 나누며 들리는 목소리도 비역에서 들었던 것과 동일했다.

빈틈없이 이어진 거대한 쇳덩어리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었음에도, 그때의 목소리는 모든 잡음을 배제했다.

오직 〈증폭〉의 기능에 충실해 음성을 또렷하게 전해 줬으니까.

모두 기억 속 그대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은 아무런 내용도 비밀도 없었다.

노골적인 정도로 영양가 없는 잡담.

자신이 최근에 구한 신발이 네 것보다 훨씬 좋다, 내 속옷 취향이 너보다 옳다에서 시작해서, 변태적인 주제에 대한 격렬하고 진지한 토론까지가 몇 번이나 차를 우려내도록 이어졌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그들은 때때로 멱살을 잡고, 성질을 내거나 싸움 끝에 화해하고 또 다른 자를 몰아 붙이곤 했다.

‘괜히 그만둔 게 아니로군.’

과연 유령들이 왜 굳이 도청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내용을 암호화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지만.

세 인간이 화를 내거나 흥분을 하는 것 모두 저열한 대화의 맥락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의미 있는 규칙의 암호가 있었다면, 전문가인 유령들이 먼저 알아내지 않았을까.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티스, 이 인간들… 지나치게 약해 보이지 않나?”

호위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문관이라도.

제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인간들.

그럼에도 웬만한 기사 한 명의 무력조차 가진 것 같지 않다.

유령 한명이 마음먹고 이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가면이 없어도 1분 안에 모두 목이 딸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부서져 있구나.〉

보티스가 말했다.

“무슨 소리지? 겉보기엔 멀쩡한데?”

〈고기 말고, 그 내부 말이다. 고기 안에 담긴 혼의 양이 부족하다. 혼마다 크기는 달라도 형태라는 게 있는데…….>

“영혼이 나눠져 있기라도 한다는 얘긴가?”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모서리가 마모된 상태로 느껴지는군……. 게다가 먹을 수 없게 겉에 기름이 칠해졌다니.......>

“으음......?”

〈입맛이 떨어지는군.〉 보티스가 입을 다물었다. 팔찌를 두들겨 봐도 텅텅 소리만 나고 더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일단 말을 걸어 볼까.’

지독히 무의미한 잡담을 더 기다리기는 지겨웠다.

— 스르륵.

나는 녀석들이 앉아 있는 탁자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시체라고 상상하면서 성적인 흥분을 느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라?” “저는 제가 기계라고 상상하는 편이…. 드드득 드드득 돌아가는…. 뭐가 갑자기 나타났네요.”

“어디서 나온 분이신가? 숨바꼭질도 만족감을 주는 흔한 방법이지. 우리를 몰래 지켜보며 뭘 하셨소?”

나는 말을 잃어버리고 이들을 바라 봤다.

갑자기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는 데도 이들은 깜짝 놀라지 않았다.

의자째로 뒤로 와장창 넘어지거나, 찻잔을 떨어트려 깨거나,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입을 벌리며 굳는 것 정도는 예상 했다.

당황하며 외마디 신음을 내지르는 게 보통의 반응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주시하며 다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감지하고… 있었어? 아니, 뭔가 달라.’

미묘하게 다르다.

뭘까.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했다기보다.

오히려〈갑작스러운 위협이 생겨도 굳이 놀랄 건 없다.〉라는 반응에 가까웠다.

처음 접하는 기묘한 느낌.

아무도 당황하지 않는 의외의 반응 속에서, 준비해 뒀던 말을 길어 올리듯 힘겹게 꺼냈다.

“마왕 보티스의 새로운 계약자로서, 이제부터 본인이 비브리오를 대체함을 알려 주겠다. 물론〈문지기 회의〉에도 참석할 생각이다.”

“오호라? 비브리오 님이 이제 없어 졌다는 건가요?”

궁중 제관을 통솔하는 광록훈 파이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둥글둥글한 체형에, 손을 맞잡고 말하는 버릇이 있는 중년 남자였다.

“그렇다. 그는 내가 죽였고, 놈이 이끌던 네크론 신사회도 이제 없다.”

“거참 아깝네요. 기껏 우리가 공작 위까지 올려 드렸는데…. 허무하기도 하지. 역시 인명은 재천이라니까.”

그게 전부였다.

‘비브리오가 죽었다는데.’

그것도 내가 직접 죽였는다는데.

이게 무슨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란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허허, 갑자기 이래도 곤란하니…. 우리가 나름대로 귀하에 대해 알아 보겠소.”

길고 하얀 머리칼의 노인.

태부 리브레트릴이 슬쩍 손짓을 하자, 다른 두 남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준비해 둔 본론을 꺼냈다.

“그〈알아볼〉유령들이 다 일을 안 하고 있지 않나? 지금 여기서 나랑 대화하는 편이 좋을 텐데?”

계단을 향해 걸어나가던 리브레트릴이 멈칫했다.

- 덜컥.

2층의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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