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신이 원하는 것 (28)
“흐음.”
문을 닫은 리브레트릴이 나를 돌아 봤다.
노인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진다.
둥글둥글한 얼굴의 파이로가 턱을 괴고 눈을 깜빡거린다.
“어이쿠, 그것까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유령들은 마왕의 가호로 은폐되어 있다. 게다가 공작도 자리를 비웠으니까. 지금 누가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어라, 그렇기는 하겠네요.”
“우리도 정보망이 없는 건 아니네만, 역시 유령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 그들이 상당히 골칫거리이기는 했네. 자네가 지금 유령들을 이끌고 있나?”
너무 순순히 인정하는 리브레트릴의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정말 골칫거리이기는 했던 걸까?
얘기는 하겠지만, 유령들의 문제마저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전쟁 중인데 막상 전투는 가로막히고.
달의 신앙까지 부상 중이고.
유령은 쓸 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너무 태연한 거 아니야‘?’
의구심 속에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 였다.
“곧 그렇게 될 거다.”
“그럼 이렇게 하지. 자네가 유령들의 통제권을 손에 넣고, 그 증거를 보여 준다면, 우리 회의에서 비브리오가 있었던 자리에 자네를 초대하겠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유령들을 통제한다면 우리가 언제 어디서 모이는지는 훤히 알 테고……. 그때 보세나.”
“좋다.”
금세 합의가 이뤄졌다.
‘생각보다 쉽게 허락하는데.’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일단 움직여 보기로 했다.
딱히 내가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혹시나 이들이 무슨 수작이라도 부린다면 충분히 모두 응징할 수도 있으리라.
애초에 나에게 위협을 가할 정도의 수준도 아닌 것 같았다.
‘어쨌거나 정보만 얻을 수 있으면 되니까.’
찻집에서 나온 뒤, 곧바로 나머지 유령들을 찾아서 움직였다.
수도 •곳곳에서 장난을 치며 돌아다니던 유령들의 가호를 모두 해제했다.
유령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몸에 벼락이라도 꽂힌 것처럼 당황하며 구석에 숨어들었다. 당황 하는 유령들의 눈앞에 편지를 하나씩 던져 주었다.
〈은신을 되찾고 싶으면 여기로 와라.〉 그리고 그 아래 만나는 장소와 날짜를 적어 놓았다.
편지는 적당히 찢은 얇은 종잇조각에 불과했지만, 암기처럼 빠르게 날아가 돌벽에 절반 이상이 꽂혀 있었다.
유령들은 그걸 보고 깜짝 놀라서 흠칫하며 조심스럽게 회수해서 돌아 갔다.
“이건… 우리들의 암호 아닌가? 어떻게……
‘너네 내사과장이 가르쳐 줬다.’
말랑말랑한 종이가 돌벽에 뚫고 박혀 있는 데다.
유령들의 암호로 적혀 있자 무시하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새벽까지 종일 빠르게 돌아다니자, 수도 안에 있는 유령들은 대부분 만난 것 같았다.
‘하루 안에 다 해냈군.’
정해 놓은 시간에 맞춰서 기다린 뒤, 시아가 숨어 있던 숲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은폐 능력을 잃어버린 유령 백여 명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 모두가 순전히 당황만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자기 힘으로 몸을 숨기고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는 자들도 있었다. 대부분 시아에게 이야기를 들은 고위 서열들이었다.
저들 중에는 나와 만났을 때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자들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호기심에 찾아오기는 한 모양이었다.
“하인즈, 당신도 편지를 받으셨 습니까?”
유령 서열 6위의 하인즈에게 옆에 있던 남자가 물었다.
“윌프리드, 물론이지. 지금이 편지에 약속된 시간 아닌가. 편지를 쓴 자는 지금 우리의 대화도 듣고 있을 거다. 그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하길 기다려 보자고.”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 숲의 중앙 으로 향했다.
가면을 벗고 적당히 나무에 기대 건들거리며 서 있는 시아가 보였다. 몇몇 유령이 그녀의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다른 유령들보다 현격히 수준이 높았다.
‘저것들이 내사과인가.’
흘끗 그쪽을 바라본 뒤.
중앙에서 가볍게 파동을 일으켰다.
-투두두두두둑
가벼운 기파를 일으키자 사방 수백 미터의 나뭇가지가 파르르 흔들리고, 작은 날벌레들은 그 자리에서 죽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가 약한 유령들은 휘청거리며 반사적으로 파동의 근원지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나무 꼭대기에 서 있는 내가 있었다.
숲 가운데서 사방에 모여든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쩐지 동방에서 레안드로와 함께 모험할 때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이들 가운데 죄 없는 이는 하나도 없다.
공작의 명에 따라 시체 몇 구는 가볍게 연못 아래로 던져 넣었겠지. 이들에게서 풍기는 피 냄새가 숲의 나무들에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들어라.”
모든 유령의 시선이 고정된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어제 너희들의 은신을 해제한 존재가 나다. 비브리오는 어제 죽었고, 내가 새로운 보티스의 제사장이다. 은폐의 가호는 이제 전적으로 내 권한이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를 따라야 한다.”
“음……!”
“그 괴물이 죽었다고……? 그럴 리가 없어.”
“비브리오만큼은 쉽게 말할 놈이 아니라고.”
“애벌레 사육장에서 강렬한 힘의 격돌이 느껴지긴 했네. 마탑주들 에게서도 느껴 본 적 없는 강렬한 파장이었지.”
산 근처에서 봤던 노인 유령이 한마디를 보태고.
“누구 비브리오를 목격한 사람 있나?”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도중.
“그게 정말인지, 당신이 그냥 미친놈인지 어떻게 안단 말이야?”
똑바로 물어오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바라봤다.
초록색 짧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위협적인 눈빛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긴 상처 자국 두 개가 나 있었다.
‘유령 서열 9위 이베트.’
시아가 알려 준 서열 10위까지의 프로파일에 있던 녀석이다.
서열이 높지만.
통솔력이 낮고 성격이 나쁜 탓에 항상 단독임무에만 투입된다는 유령 이었다.
가면의 힘을 잃어버렸음에도 패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던 녀석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네 주위에 있는 자들을 봐라.”
“보고 있... 어어?”
이베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내가 손짓하는 순간, 방금까지 뻔히 감지 하고 있던 유령 다섯 명의 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건•…”!”
“설마 지금 기척을 사라지게 만든 건가……
유령들은 바보가 아니었고, 특히 상위 서열일수록 그러했다.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당연히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자들 이었다.
“음……!”
“분명히...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어.”
“은폐를 마음대로 부여하고 없앨 수 있다는 게 사실인 건가?”
“비브리오 공작도 그런 건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때 였다.
“당신이 보티스의 새로운 계약자라는 사실은 인정하지요.”
어딘가 걱정이 많아 보이는 표정의 금발이 중얼거렸다. 어릴 적의 사고로 오른쪽 어금니가 다 날아간 탓에, 얼굴이 조금 비뚤어져 있다는 남자.
유령 서열 5위 게드만이었다.
이 숲에 모인 자들.
수도에 있던 유령들 가운데서는 시아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서열의 유령이 다.
“가면의 힘을 거두고 내릴 수 있다는 얘기도 일단 믿어야겠군요. 그렇다고 우리가 당신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요 다시 은폐의 가호를 돌려주겠다면 우리의 호의를 받을 수 있겠지만……. 애초에 우리는 비브리오 공작의 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직 로랑스 공작님의 명령만을 따를 뿐입니다.”
“로랑스 공작의 명령만을 따른다고?”
“물론입니다. 공작님의 명령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지만, 그 외에는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습니다.”
공작의 정체도 의심하고 있는 녀석들이 말은 잘한다.
“공작은 너희도 알다시피 먼 동방으로 가 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황실의 그림자들이 계속 놀겠다는 말인가?”
“으음……. 그분의 인장이 찍힌 편지라거나 그분밖에 갖고 있지 않은 신물信物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요. 그게 뭔지는 가르쳐 드릴 수 없지만 말이오.”
‘ 됐다.’
모두 정확히 시아가 이야기한 대로 홀러가고 있었다.
나는 품에 넣고 있던 물건을 꺼냈다.
“전원, 이게 뭔지 똑바로 봐라.”
그건 프리모파이트로 만들어진 부엉이 모양의 인장이었다.
흑색 등급의 드워프 장인 외에는 다룰 수도 없는 재료.
위조는 상상할 수도 없는 증거였다.
줄줄이 말이 많던 게드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주위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건... 공작님의 인장……!
“확실히… 볼 것도 없이 진품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어......
“공작님이 인장을 맡기실 정도 라니……
물론 이 물건은 진짜다.
‘맡긴 건 아니고 훔친 거지만.’
로랑스 공작이 사람이 완전히 바뀌 었으며.
기억마저도 상당히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즉시 확신한 시아는 미리 중요한 물건 몇 개를 빼돌려 놓았던 것이다.
“애초에 너희들은〈문지기 회의〉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입장 아닌가? 직접 공작에게 들은 이야기를 거역할 생각은 아니겠지?”
유령들이 입을 꾹 닫는다.
인장까지 보여 주고 있는 이상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비브리오를 대신해서 강림한 본인은, 당연히 문지기 회의의 일원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지만, 이들이 알 리가 없다.
게다가 어차피 금방 될 거 아닌가?
“허나.”
나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내게 협조하여 다시 은폐의 가호를 얻은 뒤, 계속 그림자 속에 숨어 다닐 수 있다면, 다른 녀석들의 지시는 지금처럼 무시해도 좋다. 문지기 회의? 솔직히 열 명이 넘는 놈들의 지시를 어떻게 다 듣고 있겠는가? 의견 통일도 제대로 안 될 텐데 말이다.”
유령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낮게 웅성거렸다.
“내 말만 들으면 된다. 물론 거부하고 여기서 걸어 나가도 좋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너희들은 햇볕 아래 노출된 채로, 나 외의 다른 잡놈들에게 다 휘말릴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살고 싶은가?”
솔직히 생각해 볼 것도 없는 제안이다.
꼭 문지기 회의의 지시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유령들은 대부분 여기저기 깊은 원한을 많이 쌓아 놓았다.
무위는 물론 뛰어나지만.
소수인 데다.
이들을 보호해 줄 절대적인 존재인 공작도 없는 상태다.
게다가 그 공작의 지시사항인 〈문지기 회의에 따르라〉를 계속해서 대놓고 거부한다면.
“뭐, 적극 협조하도록 하지.”
시아의 말에 이어 다른 자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협조하겠습니다.”
“누님이 그러신다면 저도.”
“일단 당신의 지시에 따르겠소.”
자리에 모인 2위, 5위, 6위가 협조의 의사를 표하자, 한때 어둠 속을 누볐던 군중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반발하거나 자리를 이탈하는 자는 없었다.
“좋아. 별다른 지시가 있을 때 까지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명령을 내렸다.
“세 조로 나눠서 교대로 세 여신의 신전을 감시해라.”
예메라의 주교들처럼 달의 신앙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일지도 모른다.
‘수도에 온 목적 중의 하나는… 일리엔과 비르폰의 신전을 감시하는 것도 있으니까.’
나는 유령들 사이를 이동하며 가면의 능력을 하나하나 다시 복구시켰다.
직접 가면이 다시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자, 녀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 왔다.
‘연락망의 사용 방법은 시아에게 설명을 들었지.’
같은 보티스의 계약자라거나.
일리엔의 힘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황실의 그림자들.
항상 위험한 적이었던 그들이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이건 참 새롭군……
대충 유령들을 해산시키고.
예정대로 시아와 다른 장소로 이동 했다.
나와 그녀 모두 은폐의 가호로 몸을 숨기고 있었기에 주위의 시선 같은 건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말이지?”
“네 말대로 찻집에 다녀왔다. 하지만 모인 녀석들이 지나치게 약하더군. 호위도 없었고……. 하지만 목소리와 인상착의는 같았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혹시 아는 게 있나?”
“후후후……
시아는 웃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개미들에게 몸을 뜯기고 있는 커다란 딱정벌레가 있었다.
계속 턱을 움직이는 개미들의 서른 배는 되는 크기였지만, 바닥에 뒤집힌 채로 껍질이 텅 빌 때까지 살을 뜯기고 있었다.
“죽여 봤어.”
기묘한 소리였다.
“뭐?”
“직접 느껴 보라고 말하지 않았지.” 시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녀석들을 감시하고 있는 건 나였어. 너도 들었지? 쟤네가 하는 얘기. 뭐 없나 계속 감시해 봤는데, 모여서 항상 거지 같은 소리만 하길래 지독히도 짜증이 났어. 그날따라 덥고 습한데 온갖 체액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야.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쫓아간 다음 죽였어. 파이로라는 놈이었지.”
"……!"
“몸에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다섯 개 내 줬고, 피가 다 흘러서 금세 죽어 버렸지. 하지만 다음 날에 다시 멀쩡하게 나타나더군.”
시아는 자신의 칼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직도 놈이 다시 나타난 날이 기억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 그 이후로 나는 감시를 포기했지. 넌 좀 다를까 했는데, 아쉽지만 너도 다른 건 못 느낀 모양이네?”
긴장감 때문에 공기가 싸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분명히 로봇 같은 건 아니 었다.
대체 뭐란 말인가?
문득 애슈턴의 책이 떠올랐다.
‘사람을 따라 하는 인형……
룬어로 쓰여 있어서 나는 읽을 수 없었지만, 루비아가 대신 읽어 줬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내 친구는 목이 잘린 알몸의 인형을 주워 온 적이 있다. 친구는 자기 목을 대신 그 인형에 끼워 넣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굳이 목이 잘린 인형을 찾아서 제 목을 끼워 넣을 필요는 없다.〉
〈완벽한 인형에 제 영혼만 뽑아서 집어넣으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순수한 육체를 가지리라.〉
‘분명히 타이탄에 관한 책이었는데….’
어째서 처음의 의미 없던 문구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을까?
‘책을 읽는 순간, 동화율도 떨어졌고.’ 그때 였다.
“그런데 왜 하필 신전이야? 거기는 왜 감시하라고 한 거야?”
“그냥… 느낌이.” 신흥 종교를 이끄는 루비아.
그녀의 잠재적인 위협이라서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아, 나는 또 뭘 알고 그런 줄 알았지.”
“무슨 말이지?”
“정말 모르는 거야? 비르폰의 신전에서 사제들이 모시는 성화가 밖으로 나가고 있거든.”
“이단심판인가? 동부 산맥 쪽으로?”
나는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물었다.
한발 늦은 걸지도 모른다.
시아가 갸웃한 표정이 되었다.
“동쪽…. 으음, 전선 쪽으로는 갔는데 산맥은 아니야. 그리고 최근에 움직인 건 서부 사막 윌드스톤 쪽이지. 그리고… 이번에 나간 녀석들은 이단심판 같은 걸 안 해.”
“으음? 비르폰이?”
예메라의 그레이시엄이 겹쳐진다.
같은 무리 아닐까.
세 여신의 사제가 이단심판을 하지 않는다니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시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비르폰의 교단에는 두 파가 있어. 하나는 고문이나 좋아하는 녀석들이지만, 다른 하나는, 제 힘을 이용해서
연합이나 엠버에서 유용한 기술 따위를 들여와서 나눠 주는 녀석들 이거든. 자기들이 개발한 기술도 서민들이 대가 없이 쓸 수 있게 하지. 오히려 그런 것 때문에 황실 측과 갈등을 겪기도 해. 이번에 나간 건 그 녀석들이야.”
‘신기한 일이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긴 수도 내부의 교단 종파에 대해서 자세히 파악할 기회는 없었으니까.
“일리엔은 어떻지?”
“그 녀석들은……
시아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수도 전체에 결계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뭔가가’ 못 들어오도록 말야. 수도를 자신들의 신역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달까……. 이쪽은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뭔가가, 라……
달의 신은 여기에 대해 어떤 의견을 줄까?
‘ 베트라스.’
나는 조용히 녀석을 불렀지만.
달이 떠 있는데도 불구하고.
베트라스에게서 대답은 없다.
‘일단 회의부터 가야겠어.’ 약속대로 유령도 장악한 이상, 역시 그〈문지기 회의〉에 비브리오의 자격으로 참석해야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으리라.
비역의 회의.
죽어도 죽지 않는 인간들.
누구보다 위협적인 ‘빙의된 공작’이 없는 상황에서 여기까지 왔다.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주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놈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파고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