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51화 (451/458)

535화 신이 원하는 것 (33)

시아가 다시 돌아오는 데는 채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교육은 끝났어!”

“ 빠르군.”

부하들을 뭘 어떻게 굴린 걸까.

그녀가 씩 웃었다.

“이틀이라고 말했는걸? 모처럼 기대도 해주셨는데 부응해야지. 그리고… 이거 한번 봐.”

“ 으음?”

그녀가 커다란 비늘을 내밀었다.

“송신 때 비늘에서 암구호를 쓰는 위치와, 수신 때 비늘에서 암구호가 나타나는 위치를 비교해 봤다. 이걸 이렇게 하면……

시아가 설명을 이어갔다. 유령들은 3조로 나뉘어서 메시지를 보낼 텐데, 혹시 동시에 보내더라도 겹쳐지지 않게 자기들의 공간을 사용한다는 이야기였다.

“기능적이군. 그런데 공간이 꽤 남는 거 같은데?”

“그건 지도다. 지명을 모르거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위치를 지시할 때 사용하는 거지. 중앙에 점을 찍어도 수신자와의 위치 차에 따라서 살짝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활용한 건데, 항해의 육분의처럼 사용해서……

나는 가만히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유령들이 어디서든 서로의 위치를 공유할 수 있는 놀라운 기능이었다.

〈보티스, 이런 걸 유도했었나?〉

〈미천하지만 귀여운 인간이로군. 아니다. 나는 곧바로 내 비늘의 위치를 알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음.......〉

‘미친 거 아닌가?’

보티스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걸 비늘을 붙든 지 고작 이틀 사이에 알아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계속 관찰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놀랍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 인간의 유능함은 역시 엘릭서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보티스가 하는 말도 모르고 시아는 설명을 계속했다.

“이제 세 조로 나눠진 유령들한테서 직접 연락이 올거야. 일리엔을 쫓는 애들한테서 먼저 이때쯤 보내라고 지시했는데… 좀 많이 늦네?”

시아가 슬쩍 시계를 바라봤다.

[비르폰 조에서 보고드립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제들도 성화聖火를 소지, 신전을 비우고 수도 서쪽으로 향한 상황입니다. 지속적으로 추적하여 특이사항 보고 드리겠습니다.]

결국 첫 번째 메시지는 다른 곳에서 도착했다.

‘성화가 사라졌다니.’

수도의 본전本殿을 지나며 의외로 시원하다던 보티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미 그 시점부터 없었다는 이야기.’

뭘 위해서 움직이는 걸까.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비르폰 조에서 추가 보고드립니다. 서쪽으로 향하던 사제들이 정신을 잃은 주민 무리와 조우했습니다. 주민들은 마약에 취한 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대치 중입니다. 사제들은 주민들의 상태를 파악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약에 취한 주민이라고?”

몇 번씩 회귀를 거듭하며 방문했지만, 이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유령들의 보고서에서도 수도만큼은 의외로 마약의 유통이 엄격하게 제한된다고 했다.

“서쪽은 유통망이 아예 없어.”

시아가 짓씹듯 말하고 가만히 비늘을 바라봤다.

[예메라 조에서 보고드립니다. 현재 동쪽에서 수도를 향하는 거대 괴조怪鳥 목격.]

[외곽 도로 일부가 파헤쳐져 있습 니다.]

[대량의 핏자국 목격.]

[예메라의 사제들은 일체의 현상을 무시하고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속 추적하겠습니 다.]

‘도대체 무슨 일이……

괴조라니.

하피라도 나타났다는 말인가?

인간의 손이 잘 닿지 않는 원해의 하피 정도가 아니라면.

육지에서 살아남은 경우는 무척 드물 텐데.

나도 마왕들이 강림하기 전에는 고작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당장이라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시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비늘을 바라보며 문득 말을 꺼냈다.

“일리엔은 아직도 메시지가 없군.”

그 순간이었다.

[문명에 의해 더럽혀진 하늘과 땅…. 죽어...』

‘뭐지?’

일리엔 조가 쓰는 글자가 새겨지는 위치.

[도시는 모조리 태우고, 균을 옮겨 인간들을 없애라.]

[이 땅 자체가 모조리 사라지기 전에….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인간이 세계를 짓밟지 못하도록…. 문명을 빼앗아라.]

"……."

광기에 찬 듯 실시간으로 연속되던 메시지가 한동안 멈추고.

[조장 정신 이상. 아측 요원 9인 살해 후 자살. 비늘 탈취 후 이탈. 수도 남동쪽 이스트넛밀 주변. 지원 요청.]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 파앗!

반사적으로 몸을 튕겼다. 이스트넛밀이라면 제법 먼 외곽.

빠르게 달려도 20분은 걸린다.

“부탁한다! 나는 서쪽부터 한 바퀴 돌게!”

옆에서 달리는 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메라.

비르폰.

일리엔의 사제들은 모두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최소한 세 군데에서 일이 터지고 있는 상황.

‘아니, 보고받는 것만 그러니까……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일부러라도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

하나만 일어나도 눈여겨볼 일이 온갖 곳에서 일어난다면.

이것들이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건 당연한 결론.

‘대체 뭐가 움직이는 걸까.’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탐지를 최대한으로 활성화하고 있었기에, 목적지인 이스트넛밀에 가기 전에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게 뭐지?’

이스트넛밀 근처에는 유령 몇몇이 대기하고 있었다. 1/3이라고 보기에는 숫자가 확 줄어든 상태였고, 여기저기 다친 자도 많았다. 그것보다도 거대한 제분소 너머의 평야가 이상했다.

- 구구구구구…….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 거대한 충돌과 고통들이 느껴진다. 허공에 시커멓게 뭉친 것들이 느껴진다. 유령들이 서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은폐의 가호를 받고 있는 그들마저도 눈가에 두려움이 묻어난다. 유령답지 않게 격전을 치뤄낸 모양인지 눈 밑이 까맣다. 나는 멀리서 일어나는 일들을 탐지하면서 묻는다.

“어떻게 된 거냐?”

“와 주셨습니까! 조, 조심하십시오. 일리엔의 주교급도 저곳에 있습니다. 빛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에게는 은폐가 잘 통하지 않습니다.”

〈너는 상관없다.〉

보티스가 중얼거린다.

〈일리엔의 눈물이 아닌 이상, 대제사장의 은폐를 간파할 유물은 없다.〉

‘그런가.’

애초에 굳이 몸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유령들을 지나쳐 평야로 향했다. 빵이 시민들의 주식이기에 제분소 주변은 대부분 밀밭과 민가였다.

그리고, 군량미로 모조리 추수된 밀밭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더 기괴했다.

단순히 인간들이 미쳐서 죽고 죽이는 현장이 아니었다.

밀밭 위로 헤아릴 수도 없는 진딧물 들이 시커멓게 뭉친 새까만 구름의 형상이 되어 날아다녔고, 주변에 있는 살아 있는 인간과 짐승의 눈 코 입 귀 같은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가 빠져 나왔다.

검은 구름이 몸에 들어갔다 나온 동물들의 구멍에서는 끈적거리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부글부글 끓는 투명한 액체는 꿈틀거리는 거대한 지렁이의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이 세계와 어딘가 사이에 걸쳐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 꾸르륵…. 꾸르르르륵….

지렁이는 주기적으로 부글부글 끓는 액체를 주위에 흘리며 이동했다. 밀대와 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곤충들은 액체에 담궈지자 모습이 변하고 숫자가 금세 수십 배로 불어났다. 인간과 짐승의 정수를 흡수하는 것 같았다. 날개가 없는 것도 날개가 달렸고, 이빨이 없던 것들도 이빨이 났다.

진드기들은 발갛게 타오르는 수십만의 악의처럼 변해서 외곽을 지키는 일리엔의 사제들을 종이처럼 찢어 버렸다. 지나간 자리에는 핏물 한 방울 남지 않았고, 대신 까맣던 곤충의 구름은 조금씩 더 발갛게 물들었다.

“마왕… 강림인가?”

무심코 목소리가 나왔다.

어디에선가 마왕이 강림해서, 마계의 존재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을 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깊은 던전도 아니고 수도 외곽에서 저런 현상이 벌어지려면.

〈그럴 리가 없다.〉

보티스가 웅웅거리며 단언했다.

〈완전한 인과율이 달성되어야 마왕은 강림할 수 있느니라. 지상과 마계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야 하지. 우리의 본체는 마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건 그랬어.’

강림한 마왕들은 그 자체로 마계와 지상의 통로이기도 했다.

마계에 있는 자신의 권속을 근처로 소환할 수 있는 자들.

그러므로, 오직 열여섯밖에 없는 왕王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대체 뭐지?”

〈강도가 된 거지떼이다.〉 갑자기 베트라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저기서 신앙을 구걸하다 억지로 빼앗기로 마음먹은 무리지.〉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잊혀진 옛 신들이라는 이야기인가.

“혹시… 이게 내 공양 때문인가?”

저들이 제신諸神에게 바친 비브리오의 핵을 받아먹은 것들이라면. 나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 버린 건지도 모른다.

〈후후…. 굳이 여기 몰려온 이유는 네가 냄새를 풍긴 탓이라고 생각 하지만…. 공양 자체가…. 그만한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 한두 명이 몰아 받았다면 엄청난 혜택이겠지만….〉

확실히 우연성의 축복을 받는다고 해도, 비브리오 하나를 공양했다고 저런 존재들이 풀려나는 건 무리한 결론이긴 하다.

‘그럼 어떻게 해방된 거지?’

첫 번째 생에서는, 16마왕이 강림 하고 용사들이 나타날 때까지도 잊혀진 신들 따위는 없었다.

베트라스는 내 심정을 읽은 것처럼 대답했다.

〈왜 해방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낯선 신격의 개입이 있었던 것 같다고 추정해 볼 뿐…….>

지금까지의 일들을 가만히 돌이켜 봤다.

‘내가 잊혀진 신들을 해방할 만한 일을 했었나?’

있다면 죽음의 기사 특전과 관련된 베트라스와 유치린뿐.

나머지는 이름조차 모른다.

‘동방의 주신 미리별…. 서방의 세 여신….’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

하지만 내 행동이 분명히 어딘가에서 이 상황의 시작을 만들었을 거다.

어디 일까.

〈이 베트라스 님도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 거다…. 고민한다고 뭐가 해결되느냐….〉

달이 반짝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너는 뭐 하다 이제 나타난 거야?”

생각해 보면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 한번 없던 녀석이다. 베트라스가 웅얼거렸다.

〈포교를 위해 성녀를 돕고 있었다…. 네가 달의 힘에…. 요즘 너무 소홀 하지 않았느냐…. 포교에 큰 지장이 된다-. 너만 보고 있다가, 잘못해서….〉

“잘못해서?”

〈끈 떨어진 연이 되면 책임지겠느냐”.〉

‘그쪽을 보고 있었던 건가.’

루비아 일행을 챙긴다고 하자 딱히 할 말은 없다. 달의 신이 지켜보는 편이 훨씬 안심이 된다. 베트라스가 슬쩍 말을 돌렸다.

〈어쨌건…. 참으로 역겨운 모습 이로군….〉

“대체 뭘 하는 거지?”

〈자연을 관장하던 신들이…. 함께 곤충을 매개체로 신앙을 전파하고 있다. 아니, 저런 건 신앙도 아니지…. 오랫동안 잊혀진 탓에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잊어버린 건가…….>

주된 개종改宗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수십, 수백만 마리의 진드기떼가 그 대상.

설득과 공감의 과정이 필요할 인간은 포기하며.

동물마저도 포기하고.

곤충떼에 빙의하여.

인간과 짐승에게서는 오직 영성을 가진 액체만을 뽑아내어 신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_ 촤르르르르르륵!

부글부글 끓는 지렁이가 바닥으로 액체를 흘리자,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덩굴이 솟아난다. 수십 미터로 자라난 덩굴이 검은 연기를 뿌리면서 촉수 처럼 일렁거린다. 그 덩굴들 한가운데 고위 사제복을 입은 인간이 보인다. 목에는 아직 반짝거리는 목걸이가 걸려 있지만, 몸 곳곳은 이미 변형 되어 덩굴들과 함께하는 상태다.

‘저 녀석이 주교인가.’ 그 와중에서도, 신들은 쓸모 있을 인간들은 모두 찾아내어 벌레들로 둘러싼다.

한 번에 수만 마리가 죽어도, 투명한 액체로 강화된 날갯소리가 만드는 주파수 공격이 성공한다면, 인간도 이지를 잃고 새로운 신도가 된다.

- 우지직! 우지직!

섬뜩한 소리를 내며 덩굴들이 저항 하는 사제들을 감싼다. 척추가 찢기고 두개골이 조막만 하게 움츠러든다. 땅에서 끝없이 덩굴이 솟아나며 서로 얽히는 탓에 가운데는 마치 흐트러진 실뭉치처럼 보인다.

사제들 셋 가운데 하나는 곤충 무리에 휩싸인 채 미쳐 버리지만, 개종시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제물로 먹고 싶은 자들은 그 자리에서 덩굴에 감겨 죽어 버린다.

〈신이 아니라 격만 높은 원귀의 무리가 되어 버렸군…. 주의해라….〉

사제들은 계속 뒤로 밀리고, 근처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압도적인 공포를 느낀 탓에 도무지 발도 떼지 못한다. 투명한 액체를 그대로 몸의 구멍으로 흘려내고 껍데기만 남아 죽어 버린다.

예전 생에 마왕들이 강림할 때도 비슷했다. 인간들은 질린 채 덜덜 떨면서 제대로 비명도 못 지르고 짓이겨졌다.

나는 그런 기분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 이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지금에서도 첫 번째 생의 마지막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신들이라.’

앞으로 나가려다가, 분투하는 일리엔의 사제들을 바라본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면 일리엔의 신앙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미스릴 광산에서 아포플라와 노바, 겐콘 크렉소르를 살해한 일리엔의 왼손이 떠오른다.

‘그 녀석 좋은 짓은 할 수 없지.’

이런 경우에는 명백하게 다른 신앙이 필요하다.

“ 베트라스.”

〈말해라…….>

“포교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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