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55화 (455/458)

539화 신이 원하는 것 (37)

‘왜 아무 편지가 없지?’

의아하다.

넥스몬드의 보고서는 정기적으로 보내진다.

일단 월간으로 받고 있지만.

초기에는 매주마다 전해줬을 만큼 열정이 있는 인간이다. 쓰기 싫어서 빼먹었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카린의 보고서도 마찬가지.’

정기적으로 약속된 건 아니다.

마왕 추종자들의 동향이라든가, 주전파와 제국 수뇌부들의 사전 내통, 새롭게 생겨나는 달의 신앙 등.

나와 밀접하게 관련된 정보만 파고 들어 보내는 특별 보고서 형식이지만.

‘바로 그 달의 이적이 사라지고, 다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쓸 내용이 없을 리가 없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초소를 지키고 있는 녀석들에게 물었다.

“이 사서함,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만…… 고개를 끄덕거린다. 원래대로라면 아무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게 원칙이긴 하지만, 내 의문을 금방 알아차리고, 길드에서 오는 다른 편지들은 제대로 도착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넥스몬드의 편지를 받는 자〉라는 건 이들 사이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카린과 넥스몬드만.’

오직 그들의 편지만 오지 않고 있다. 문제가 생겼다는 확신이 든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아는 넥스몬드는 몹시 유능한 인간이다. 항구 도시의 소년으로 시작해서 상인길드의 핵심에 자리잡은 건 물론, 엠버메어의 기술까지 다룰 줄 알고, 심지어는 유령선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들을 마주하고도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임기응변으로 선원들의 사기를 고취했다.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도 상관없이, 지불한 대가에 따라서 제대로 일을 해줬다. 폭력과 광기가 일상인 세상에서도 상인의 직업 윤리는 살아 있었다. 복잡한 혐오의 층위는 넥스몬드의 직업 윤리 앞에 상쾌할 만큼 단순해진다.

‘보수를 받았으면 일을 한다.’

그것뿐이다.

돈을 더 받지도 않았고, 무례하거나 음습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가 판단한 내 잠재력에 따라 아낌없이 투자해 주고 있다. 투자는 당연히도 미래를 상정한다. 넥스몬드가 그리는 미래에, 내 자리가 그렇게 선명하다는 건 꽤나 묘한 기분이다.

카린 역시 남다르게 뛰어난 총명과 담력을 갖췄다.

‘나한테 휘말리지만 않았어도 멀쩡히 살고 있을 텐데.’

가문 승계 다툼에서 최선두 그룹에

있었다.

나와 만나지만 않았어도 예정대로 종군 의원으로 순탄히 승리를 거듭해 갔겠지. 예전 생에서도 내 존재를 파악하고 곧바로 접근해 왔다. 미스릴 광산을 지키는 모래 정령을 설득한 것도 놀랍다.

‘경매장에서 보인 능력 같은 건 기본이고.’

광산의 심층부에서 세계의 이면을 직접 경험하고도 정신이 망가지지 않고 결국은 극복해 냈고.

오히려 한층 날카롭게 어둠에 눈을 뜨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받고서 깜짝 놀랐던 보고서를 떠올린다.

카린 크렉소르.

그 잠재력을 다 알기 어려울 정도로 유능한 인간이다.

‘이런 자들이 손도 못 쓰고 연락이 끊길 상황이라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을 상상해 본다.

상인 동료들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든가, 초월적인 능력자들의 모임인 레드플레이크에게 적대시 됐다든가, 어쩌면 동방에 가 있다고 알려진 공작의 활동이라든가. 그들 외에도 세상에 내가 아직 모르는 위협은 많다.

"……."

무엇보다 이 둘의 연락 두절은 나와 엮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 명도 아니고, 동시에 두 명이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안일하다.

정보망을 끊고 어둠 속에서 나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내 자취를 주적하던 도중 이들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빨리 파악해야 해.’

최대한 빨리 상황을 잡아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만약 그들이 실종된 게 맞고, 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모든 게 깡그리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마저 든다.

놓아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유령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한다.

〈예메라의 사제들은 남동쪽 해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몇 조가 따로 움직이며 배를 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치는…….>

유령들이 설명하는 위치를 보고 확신한다.

‘여기는 아니군.’ 어쨌건 동부 산맥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움직임이다.

루비아는 안전하다.

배를 탄다면 제국을 아예 벗어나려고 한다는 이야기.

‘엠버? 연합인가? 아니면……

전에 생각했던 대로 동방일수도 있다.

이들의 추격은 지금처럼 유령들에게 맡겨 놓고, 나는 넥스몬드와 카린의 흔적부터 쫓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본대에 접근해 엿듣기가 어렵습니다.

투명한 힘에 밀려나게 됩니다.〉

〈이동 가능한 결계를 펼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희의 존재를 알고 있는 느낌 이므로, 거리를 두고 주의하여 추격 하겠습니 다.〉

‘대체 무슨……

이동하는 결계라.

게다가 유령들에게 있는 보티스의 가호를 간파해 낸다니.

그 말까지 듣자 신경 쓰인다.

‘누가 붙어 있길래?’

은폐의 가호를 무력화하는 일리엔의 눈물 따윌 들고 움직야는 것도 아닐 거고 단순한 예메라의 사제들이 이런 힘을 발휘할 리는 없다.

은폐 속에 살아온 유령들은 누구보다 발각되는 데 민감하고.

그들이 보티스의 가호가 간파된다고 판단한 이상 사실일 확률이 높다.

어느 쪽으로 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곧 결정을 내린다.

한쪽은, ‘이미’ 유령들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보고가 나온 곳이며.

훨씬 덜 모호하다.

‘예메라의 교단을 쫓아야겠어.’ 물론 넥스몬드와 카린도 몹시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쪽도 확실하게 알아볼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는 시아를 호출한다.

〈카린과 넥스몬드라는 자들의 근황에 대해 찾아봐라. 조심해서 살펴보도록. 위험한 사안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자세히 전달하자 곧 답장이 도착한다.

〈좋아. 특히 똘똘한 애들 몇명 뽑아서 같이 움직여 볼게.〉

조금은 안심이 된다. 직접 쫓아가서 싸우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애매한 흔적이나 사라진 정황을 추적하는 거는 시아가 나보다 나을 거다.

나는 산 위에서 곧바로 예메라의 교단을 쫓는다. 그 와중에도 유령들 로부터 메시지는 계속 도착했다.

〈비르폰 교단 추격조에서 알려 드립니다. 서북쪽 옴스키르크에서 주민 서른 명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체들은 몸 곳곳의 뼈마디와 살점, 장기가 사라져 있었는데, 특이사항 으로 모두 얼굴이 동일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서남쪽의 던간논에서 주민들이 모두 실종되었습니다.〉

〈주택과 거리 어디에도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파라스카 자매를 남겨서 사태를 조사하겠습니다.〉

〈아나냐 파라스카입니다. 던간논의 주택들은 수색하다 보면 집 안에 작은 숫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 됩니다.〉

〈현재 발견한 숫자는 678, 870, 212 입니다.〉

〈어떤 규칙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전체 실종이라니……

굳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을 필요는 없다.

‘개판이로군.’

- 달그락. 나는 스쳐 가는 광경에 진저리를 친다.

무수한 잡신들이 날뛰고 있다.

사람의 머리를 한 개들이 몰려다니고, 나무가 뿌리를 뽑고 입을 벌려 움직 이고, 조각상이 눈을 굴리며, 더 나은 계약자를 찾기 위해 영체들이 계속 몸을 갈아치운다.

하지만.

수도에도 도착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베트라스의 성녀는 물론, 오베론에 탑승한 데서리와 함께하는 루비아에게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다.

무시하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산길에서 평야로 넘어갈 즈음.

예메라 추격조에서 보낸 메시지가 도착한다.

〈나눠진 수도사들이 배를 구하고 있습니다. 본대 외에는 접근 가능 합니다. 저지합니까?〉

유령들이 내 지시를 기다린다.

잠시 망설인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도 훼방을 놓고 싶긴 하지만, 그랬다가는 놈들이 원래의 계획을 포기하고 동부 산맥 으로 올지도 모르고.

여기서 요격하더라도 상대가 패거리를 나눠서 오거나, 길이 엇갈리면 루비아가 괜한 위협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내버려 둬.〉

〈알겠습니다. 현재 위치는…….>

〈배를 구했습니다.〉

예메라의 사제들이 배를 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나 역시 시간에 맞춰 해안에 도착 하자, 쫓아와 있는 유령들이 멀리서 감지된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배에 탑승하는 수도사들과 안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추격은 중지한다. 시아의 지시에 따르도록.〉

기운의 크기를 마주하는 즉시 유령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런 것과 싸우다 휘말리면 다른 녀석들은 꼼짝없이 죽어 버릴 거다.

배로 계속 다가갔다.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기운이 바깥으로 줄줄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기억이 날 듯 말듯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섞여 있었다. 파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지자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메라의 추기경……?’

이마에 은빛으로 빛나는 두 눈이 생겨나고, 기괴한 거울의 권능을 사용했던 추기경 그레이시엄. 맨몸 으로 타이탄 오베론의 주먹을 연거푸 받아냈던 인간의 기운이 그곳에 느껴지고 있다.

‘분명히 죽었는데… 어떻게……

데서리에게 목이 잘렸다. 시체에서 정수 흡수까지 끝냈다. 그런 뒤 검기로 나머지 시체마저 깨끗하게 증발시켰다. 그런 녀석의 기운이 줄항을 준비하는 커다란 선박 안에서 느껴진다.

덫 같은 서늘함이 발목을 물어온다.

심지어 그때 느꼈던 그 기운을 훌쩍 초월해 있다. 뚫을 수 없는 안개 같은 기운이 해안가 전체를 적셔 갔다. 여름 바람에 휩쓸려 쳐야 할 파도가, 일어나야 할 하얀 분말들은 날아가지 못하고 배 안에서 뿜어지는 기운에 얌전하게 짓눌려 버린다.

‘결계 따윈 아니야.’

유령들이 밀려난 건 결계 탓은 아니다. 딱히 그런 결계는 없다. 그저 압도적인 존재감, 돋우거나 뿜어내지 않아도 저절로 퍼지는 신성력 때문에 튕겨서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다.

〈짜증 나는 파장이구나. 웬만한 것들은 다 들키겠어.〉

보티스가 중얼거린다. 확실히 그렇다. 주체하지 못하고 주위로 발산하는 신성력은 감지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하지만 널 감지할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흘려보낼 수 있지.〉 모래사장을 건너 곧바로 커다란 배 안으로 숨어든다. 터무니없이 강력한 신성력이 뿜어지지만, 확실히 나를 얽어맬 정도는 아니다. 수련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그냥 순수한 힘이다. 싸운다고 상상하면 힘의 용량 자체도 솔직히 별로 부담스럽지는 않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뭐, 콱 밟으면 밟히겠는데?〉

보티스와 같은 의견이다.

‘탐지.’ 조용히 선내를 살핀다.

철저한 광신자들의 집단.

고문으로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네크론 신사회에게 효과를 발휘했던, 예메라의 참회 스킬도 이들에게는 먹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다.

‘몰래 엿들어야겠군.’

갑판 한쪽에 자리잡은 순간.

〈지금 썰어 버리거라.〉

〈음‘?〉

〈이제 와서 모르는 척을 할 셈이냐?

‘다른 신이나 마왕의 제사장급을 사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생기는 한 번의 사냥감을 네가 원할 때 공양하겠다.’라고 했지 않느냐. 이걸로 주면 딱 좋겠구나.〉

〈지금……?>

〈망설일 게 뭐 있느냐? 숙성이라도 시키자는 것이냐?〉

* * *

- 휘이이잉!

바람이 불며 배를 후려친다. 단숨에 다시 출발한 해안으로 밀려날 것 같은 강한 역풍이지만, 그들이 띄운 배는 애초에 돛을 쓰지 않았다.

- 첨벙.

수십 개의 노가 일제히 물 안에 내려지고.

- 찌그덕.

한 번에 물을 깊이 밀어내는 순간, 거대한 선박은 불어오는 바람을 치받듯 뛰어오르며 전진한다. 역풍이 부는 바다에서 노를 저어 나아가는 건 십여 분도 버티지 못할 만큼 힘든 일이지만, 신앙으로 묶인 수십 명의 수도사가 만들어 내는 속도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빨랐다. 흉터로 덮인 바위 같은 근육을 가진 수도사들은 땅 위에서보다 오히려 훨씬 더 편한 표정이었다.

갑판 위의 소년을 바라본다.

“여기는… 바다 위인가?”

갑판 위에 선 소년이 중얼거렸다. 어색했던 말투가 묘하게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목소리는 살짝 더 굵어져 있었고, 키마저 손바닥 한 뼘 정도 자라나 있었다. 길어진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몇 움큼 하얗게 새어 버린 상태였다.

“그렇사옵니다, 성하. 수도사들이 정말 노를 잘 젓지 않습니까? 성하께서 저들까지 순교시키셨다면 저희가 직접 노를 저을 뻔했사옵니다.”

곁에 선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으......”

“이제 정신이 조금 돌아오시옵니까?”

“그래. 배를 탔다면… 이제, 북쪽으로 동북쪽으로… 간다.”

“동북쪽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차가운 곳. 차가운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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