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화 신이 원하는 것 (38)
“예, 성하. 차가운 곳, 바다가 멈추는 곳, 어둠마저 새파랗게 삼켜지고 그 어떤 비명도 모두 얼어붙는 세상의 끝으로 가겠나이다.”
“멈추는 지점은 알아서 말해 주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년은 갑판 위에 선 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무리 신성력으로 강화되었다고는 해도, 완전히 탈피하지 않는 이상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언제 죽이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조바심이라도 나는지 보티스가 채근한다.
〈일단 조금 두고 볼 거야. 기다려 봐.〉
한참 더 강해진다면 몰라도.
아직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다.
“성하,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 나는••••••
소년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린다.
“누구… 내가… 너무 많구나……. 융합이 힘들어… 그 신수는… 어떻게 되었느냐……?”
“어떤 신수 말씀이옵니까?”
“내 피라는” 지렁이는… 거북이는一.”
“애쉬는 조용히 모래 안에서 배교자들을 잡아먹고 있사옵니다. 와들루스는 움직이지 않았사옵니다.”
“주교들은 이단에게 순교하였는가'••…
“그렇사옵니다, 성하.”
‘추기경이군.’
확실하다.
아직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은 것 같지만.
‘영혼을 이동시키라도 했단 말인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미스릴 광산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겐콘 크렉소르는 자신의 혼을 기계에 집어넣었다.
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닌 것이다.
〈저 인간은 계속 조금씩 강해지고 있어. 확실히 나한테 바치는 걸 기억해라. 찝찝하면 그냥 지금 죽여 버리면 된다.〉
‘이놈은 그게 걱정이었던 건가.’ 나는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공격할 생각은 없다.
‘더 정보를 얻어야겠어.’
저게 정말 내가 죽였던 추기경이라면.
지금 죽여 봤자 다시 어딘가에서 몸을 얻을 확률이 높다.
괜히 다시 한번 뒤쫓게 되는 수고만 들이고 나를 노줄시키게 된다.
죽여도 어떤 목적으로 어디를 향하는지 알아낸 다음 죽이는 게 좋으리라.
소년은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바실리스크는… 잘 있느냐……
“그렇사옵니다, 성하. 윌드스톤에서 북쪽으로 사흘 거리에 기르면서, 사형이 결정된 이교도들을 두어 마리씩 먹이로 주고 있사옵니다. 아주 얌전하옵니다.”
“그래••••••
‘바실리스크라고?’
저번 세계선에서 레안드로가 처리했던 마물.
길이만 무려 삼십 미터에 달하는 흉악무도한 마물이다.
‘그걸... 아예 녀석들이 기르고
있었다니……
어지간히 고문과 살해를 좋아하는 교단이라고는 짐작하고 있었고.
‘사막의 신’이라고 불리는 애쉬 웜을 추기경이 피리로 조종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실리스크만 한 마물을 직접 기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기에 자못 충격에 빠졌다.
〈어이가 없구나. 나중에 반드시 그 녀석을 만나러 가자.〉
〈그 녀석?〉
〈서리 바실리스크 말이다. 내 부하였다. 뒤에서 나에게 건방진 소리를 한 게 발각되어서, 혼자 후환을 두려워하다가 지상으로 도망간 녀석이다. 다시 잡아 와서 부려먹어야겠다.〉
<…….>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그런데… 대체 어딜 가는 걸까.’
방향을 계산해 본다.
배는 엠버로도, 연합으로도 향하는 것 같지 않다. 동방이 목적지라고 보기에도 너무 가파른 각도로 북쪽을 향하고 있다.
‘차가운 곳이라.’
북쪽.
아직까지 제대로 마음먹고 가 본 적은 없는 방향.
제국, 엠버, 연합, 심지어 동방까지 가 봤지만 극지방을 탐험해 본 적은 없었다.
예메라의 교단이 탄 배는 아직 제국의 근해를 항해하고 있다.
여기서 북쪽이라면 한 장소가 떠오른다.
‘마탑••••••?’
눈보라가 치는 북방에는 아쥬라의 탑이 있다.
마법사들의 성지.
제국 영토 안에 있지만 제국법을 적용할 수 없는 영역.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내가 회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자문을 구하려 한 적도 있고.
루비아가 그곳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고 가려던 적도 있다.
‘그리고 별빛청여우가 보여 준 일곱 장소 중에 하나지.’
레드 플레이크 본부에서 봤던 지도.
〈열쇠〉의 위치를 표시하며 반짝이 던 일곱 개의 광점이 떠오른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분명히 마탑에 있었다.
혹시 예메라의 교단이 〈열쇠〉와 관련이라도 있는 걸까?
그렇다면 더더욱 알아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면 얻어 낼 수 없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도중에도.
-철퍽!
수십 개의 노가 다시 연거푸 바닷물을 밀어낸다. 북쪽으로 항할수록 바닷물은 점점 더 둔중하고 차가워진다. 건방지게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비틀어 꺾는 것 같은 새하얀 냉기가 올라온다. 해마저 떨어지는 밤이면 갑판 위로 먹먹한 밤안개가 몰려왔다.
한번 달라붙은 안개는 노를 젓고 저어도 좀처럼 가시지 않아서, 검은 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의 잔광마저 묻어 지워 버렸다. 해가 뜬 뒤에도 희부옇게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달도 어딘가로 숨어 버렸고, 수도에서 힘을 모두 소진한 탓인지 베트라스와는 연락도 닿지 않는다.
하지만 탐지 스킬을 계속 활용하자 대략적인 위치는 잡을 수 있었다.
‘마탑은 아닌데… 그럼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땅에서는 확실히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항해와 함께 소년의 머리칼도 점점 잿빛으로 물들어 갔다.
“머리가 아프구나....... 헌데…
초월조차 못한 타이탄 따위에 나의 순교가 엮여 있다는 것이 이상하구나 •••••. 예메라께서 축복하셨는데… 뭔가… 뭔가가……
“악마가 지저에서 직접 올라온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러하느니라.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 역시… 끝으로… 북쪽 끝으로 가야 하느니라……
〈악마? 누구 얘기냐? 누가 올라왔느냐?〉
〈글쎄.〉
짐짓 모른 척하고 앞을 바라봤다. 아찔할 정도로 고요한 북쪽 바다.
-꾸드득.
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얼어붙기 직전의 수면은 서로 웅크러 들어 견고한 막을 형성하고, 노를 밀어내는 일은 더 힘겨워진다. 수도사들의 팔이 탈력과 추위로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한다.
〈북쪽 바다 끝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나?〉
〈마계에 있던 나에게 그런 걸 물어도 곤란하구나. 모른다.〉
<…….>
〈그나저나 계속 두고 볼 생각이냐?〉
보티스가 불안한 듯한 말투로 슬쩍 채근했다.
기억을 되찾으며 중얼거리던 추기경은 자주 선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하지만 잠에 든 채로도 느껴지는 힘은 확실히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항해가 계속될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온몸이 근육으로 빚어진 수십 명의 수도사들이 진이 다 빠지도록 노를 젓는데도, 거의 출렁이지 않는 기괴한 바다가 불안감을 부채질하는지도 몰랐다.
‘슬슬 처리해야 될까?’
신경 쓰이기 시작했지만.
‘아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지금까지 오랫동안 지켜봤다. 이제야말로 뭔가 더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쫓아왔는데,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로 소년을 보티스에게 공양한다는 건 수지가 맞지 않는다.
바람이 멈추고.
당연한 듯이 하늘을 새까맣게 덮고 있던 눈안개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어느새 소년의 머리카락은 절반 이상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이마에는 언제부턴가 성흔이 새겨진 상태였다.
〈좀 빨리……!>
보티스가 다시 징징거린 순간.
-탁.
꾸벅꾸벅 졸던 소년의 머리칼이 갑자기 위로 치켜 올라갔다. 소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입에 거품을 물고 헐떡거리고는 토하는 것처럼 몇 차례 숨을 씹어뱉더니,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번뜩 뜨인 두 눈은 동공도 흰자도 없이 모두 혼탁한 잿빛이었다.
“여기다.”
다시 일어선 소년의 말과 함께 일제히 노가 멈췄다.
“성하? 괜찮으십니까? 기억이 다 돌아오신 겁니까? 이곳이 말씀하셨던 그 성지입니까?”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여기가 성지… 라고? 아무것도 없는데?’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작은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
감지되는 특이한 생명체조차 없다.
그저 깊고 시린 바다.
매끈한 수면은 떠다니는 빙하와 작게 부스러진 하얀 눈덩어리들. 푸른 하늘을 거울처럼 비췄다. 무겁고 잔잔한 물에 비치는 풍경을 뒤집으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 풍경 속에서.
소년은 한 걸음 한 걸음 갑판 끝으로 나아갔다.
“성하? 믿는 자들이여! 모두 나와 보거라! 성하께서 계시 받으신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노를 젓던 수도사들이 갑판으로 나와서 바다 위의 소년을 바라봤다.
〈내 제물이 왜 저기로 걸어가냐? 나는 제사장이 직접 썰어서 바치는 게 좋은데? 자살하는 거 아니냐?〉
‘자살……? 아니야.’
자신이 담겨져 있는 육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건 맞지만.
지금은 절대로 물에 빠져 죽으려는 움직임이 아니다. 비슷한 움직임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더욱 확실히 느껴진다. 오히려 내가 인벤토리를 밟고 움직이려는 감각에 가까웠다.
—스륵 •
언제부턴가 소년의 주위를 떠돌던 검은 갈매기 한 마리가 소년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년은 갑판 위에서 바다로 살포시 뛰어내렸다. 소년은 물에 적셔지지 않았다. 소년의 발아래로 꿈틀거리는 검붉은 그림자 덩어리가 생성됐다. 그것이 소년을 받치고 있었다.
[굶주린 나의 종들아…….]
이제 더 이상 소년이 말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이도, 성별도 구별되지 않은 군체의 목소리였다. 아예 인간의 말이 아니라 수많은 잠승들의 으르렁거림을 모은 것 같기도 했다
‘뭐지?’
경각심이 들었다. 상황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기 위해 녀석에게 붙어 가만히 따라 움직였다.
소년의 몸에 구겨 넣어져 있던 힘들이, 검붉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하나둘 바깥으로 풀려나기 시작했다. 그건 길고 커다란 대롱 끝에 달려 있는 눈 모양이기도 했고, 부리와 발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날지 못하는 거대한 새의 모습이기도 했다. 수십 미터 바깥에 있는 것까지 뭐든지 빨아들이는 긴 주둥이의 모습이기도, 먹잇감의 몸통을 쫙 열어서 갈라먹기 위해 변형되어 있는 손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나둘이 아니잖아?’
〈뭐야, 이 미친 신성력은.......
이러면 안 될 텐데…….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짓거리를……! 아무리 주신主神이라도 인과율을 이런 식으로 소모한다고? 뭘 믿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강신이다! 당장 죽여라! 수습할 수 없기 전에 당장 공격해!〉
녀석의 말대로 심상치 않은 상황인 것 같았다. 처음부터 힘을 아끼지 않을 생각으로 인벤토리를 소년의 양쪽에 전개해서 둘러쌌다.
수십 마리의 듣도 보도 못한 짐승들의 그림자가, 마계가 강림했을 때조차도 보지 못했던 형태의 짐승들의 그림자가 소년의 몸에서 쏟아 나오고 있었다. 수면 위에 넘실거리는 그림자들은 움직이지 않는 바다 위에 아주 또렷하게 비춰졌다. 그리고 ‘비춰진’ 시점부터 뭔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발목 근처에 만들어진 검은 그림자들은 거대한 지느러미 모양이었다. 처음에 그대로 반사되었던 그림자 지느러미들은, 조금씩 변형되며 원본과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수많은 지느러미도, 길게 빨아들이는 주둥이도, 대롱 위의 눈도, 몸통을 가르는 손도 낫처럼 구부러진 손발도”….
슬쩍 봐도 수십은 가볍게 헤아리는 그림자들이 수면에 비춰진 순간, 복제되며 별도의 생명을 얻고 있었다.
‘거울•…"!’
추기경과 데서리가 싸우던 순간이 떠올랐다. 계곡에서 불투명하게 달빛을 반사하던 얼음들은 티 없는 거울로 변해, 계곡 전체가 사방에서 타이탄을 비췄다.
‘거울 속에 비친 타이탄들 각자가 따로 움직여 타이탄을 공격했지.’
계곡에서 일어났던 그 복제가 지금 이 장소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규모가 폭력적으로 다르다.
‘바다 전체가……
모든 것을 비주는 거대한 거울.
‘당장 끝내야 해.’
인벤토리로 소년을 짓이기려는 순간.
[계약은 끝났다.]
거대한 그림자 덩어리 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약……?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 목소리를 영접하고 갑판 위의 노인과 수도사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림자가 웅웅거렸다.
[잡종들의 봉인이 풀려 버린 이상 낙원화의 계약은 끝이다. 바깥 녀석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어. 이제부터〈우리〉가 직접 움직이겠다.] 소년의 목소리에 인벤토리를 멈췄다.
‘낙원화라고?’
처음 듣는 단어가 아니다.
카린과 함께 갔던 미스릴 광산.
그 심층부에서 마주한 일리엔의 왼손이 떠오른다.
허공을 움켜쥐어 훑으며 인식을 왜곡시키던 손길.
초월급 타이탄의 정신을 단번에 소멸 시키고.
산맥 전체마저 광기로 뒤덮을 것 같았던 녀석도,〈망토〉와의 대화에서 분명히 낙원화에 대해 언급했었다.
일리엔의 왼손이 망토와 한 대화가
기억에서 떠올랐다.
〈네 녀석들의 낙원화樂園化는……. 계속해서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뭘 하나 제대로 믿고 맡길 수가 없군…….>
‘일리엔과 예메라……. 그리고 〈바깥〉에서 온 자들……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낙원화라는 게 도대체 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더 들어야 해.’
설령 눈앞의〈강림〉을 저지할 수 없게 되더라도, 이 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내야 한다.
아이작도, 레나도, 나나우도 세계선에서 적출해 버린 존재들.
같은 신격을 흡수하는 하얀 후드마저 엮이기 두려워하는 녀석들에 대해 반드시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야 한다.
무수한 그림자가 뻗어 가는 주변의 바다를, 언제든 검빙으로 울퉁불퉁하게 파괴해 버릴 준비를 마치고 상황을 주시했다.
“오오... 사랑하는 님이시여, 명을 내리소서! 그리하면 저희 미천한 양 떼들의 영혼을 이 자리에서 바치면 되는 것이옵니까? 더 이상의 방황 없이 주에게 깃들고 싶사옵니다!” 사방을 뒤덮는 기운에 흥분한 노인이 갑판에서 부르짖었다. 수도사들도 눈앞에 벌어지는 초자연적 일에 격동한 듯 함께 외쳤다.
“명을 내리소서!”
당장이라도 칼로 제 목을 끊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광기였다. 하지만 소년을 중심으로 뭉쳐진 그림자는 손을 내저었다.
” 거절한다.”
“아아, 저희의 신앙이 부족한 것이옵니까? 그렇다면 저희를 부디 불쌍히 여겨 주소서! 나약한 육체의 노예인 탓에 충분히 의롭지 못했나이다!”
“너희는 훌륭했다. 강림의 씨앗이 되기 위해 끌어모은 주교들의 영혼들보다도 너 희들이 아름다우니 라.”
“님이시여, 감사하여 찬양을 올립니다! 그러하다면……
“다만 수렴이 아닌 발산의 시간이니.”
-스르르르륵!
소년에게 뭉쳐 있던 무수한 짐승의 그림자들이 배를 덮치기 시작했다. 갑판 위에 엎드려 있던 수도사들의 몸에 검붉은 짐승들이 스며 들어갔다.
회전하는 톱니 이빨을 가진 연골 어류, 구부러진 날개 모양의 뿔을 여덟 개나 가지고 있는 거대한 곤충, 기괴한 모습의 양서류와 조류들이 한 마리 한 마리씩 수도사들의 육체와 결합해 갔다.
“끄아아……으아아아아아아……
몸이 산 채로 부서지고 재구성되면서도 수도사들은 환희와 기쁨에 찬 표정을 짓는다. 마치 지금까지 제 몸에 일부러 고통을 가하고, 상처를 만들어 냈던 것이 모두 오늘을 위해서였다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면서도 웃는다.
"크흐…크흐흐흐…."
까다로운 입회 시험을 통과할 만한 자질과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생의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때로는 스스로에게 예메라의 성소聖石가 있는지 아닌지조차 의심하고 흔들리며 살아왔지만.
지금 그 보답이 주어진다.
정결과 단련, 체벌로 유지해 온 육체에 드디어 신이 깃들고 있다.
망상도, 신경증도 아닌 또렷한 기적.
-콰드드득!
수도사들의 몸과 결합한 검은 짐승의 그림자들은 더욱 진해지고 민첩해진다. 작은 움직임만으로로 단단한 얼음과
갑판을 먼지처럼 흩어 버린다.
-콰득! 콰득! 콰드드득!
순식간에 배가 찢어졌지만 이제 문제를 겪는 건 아무도 없다. 가벼운 날갯짓으로 허공에 체류하고, 발에 달린 아가미로 물 아래에서 숨을 쉰다.
“하늘과의 통로를 열겠다. 재의 수도회는 나를 지켜라.”
“명을 받듭니다.”
거대한 그림자는 하늘과 기둥을 이루듯이 높이 솟아올랐고, 수도사들의 몸도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빨리…….>
-파앗.
그 순간 보티스와의 소통이 끊겼다.
제대로 된 공양도 받지 못하고 있던 녀석이, 이 기운에 밀려나 버린 건지도 모른다.
- 고오오오…….압도적으로 느껴지던 빙산이 별거 아닌 크기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늘 위로 수십 미터나 솟아오른 그림자는 저 멀리서 눈보라를 흩뿌리던 구름을 휙휙 감아 치워 버렸다.
그 부분의 하늘까지 맑아졌고, 잔잔한 수면이 거울처럼 비치는 범위는 한층 더 늘어났다. 그리고 짐승들의 형상은 수면에 비치는 즉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망했네.’
유령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고 했던 기운은, 이제 수천 배로 폭증해서 나까지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수백 개의 짐승이 결합한
그림자의 기둥이 문득 나를 바라봤다.
“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