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57화 (457/458)

541화 신이 원하는 것 (39)

“네가 나를 죽였구나.”

거대한 그림자 기둥이 〈나〉라고 말하는 순간 수십 개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계곡에서 죽였던 추기경의 목소리, 와들루스 옆 신전에서 대화를 나누던 주교들 수십 명의 목소리가 일제히 겹쳐졌다.

“달의 이교… 게다가 추악한 뱀의 냄새까지 풍기다니……. 무수한 마귀들 가운데서도 너 자체가 올무요, 온 세상을 꾀는 자요, 죽음의 세력이로구나.”

‘•••너무 거창하게 말해 주는데.’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보티스의 은폐마저 꿰뚫은 이상 그 정도는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지도 모른다.

“저지른 죄악이 끝이 없으니, 모든 고난이 네게 있으리로다. 너는 시험조차 받지 못하고 영원히 몸도, 영혼도 지옥 속에 살아가리라. 네가 어느 부위를 찍어 내어도 이 판결은 변하지 않으리라”

엄청나게 강렬한 적의가 찌릿찌릿 공기를 자극한다.

‘아무래도 협상의 여지는 전혀

없겠군.’

하지만 묘하게도.

지독할 정도의 적의와 달리.

그림자 기둥으로부터 직접 공격이 날아오지는 않았다.

“저 불경한 악마를 잡아라!”

대신 기둥에 바싹 달라붙어 있는 노인이 소리쳤다. 다른 수도사들과 달리, 노인은 아예 거대한 짐승 기둥의 일부가 되려는 듯이 그 검은 그림자들에 몸을 억지로 파묻고 있었다.

-위이이잉!

“$스*&@[email protected]$%#&?”

등에 달린 여섯 장의 날개로 날아오른 수도사가, 너무도 몸이 가볍다는 듯이 위아래 지그재그로 곡예비행을 하며 나를 덮쳐 왔다.

‘이 자식……

세 쌍의 날개.

비슷한 모습을 분명히 황실 비역에서 본 적이 있다.

긴 더듬이의 천사가 세 쌍의 날개를 팔락거리며 덮쳐 왔었다.

새하얀 갑각으로 몸을 덮고, 머리 위에 광채가 떠올라 있었지만, 가슴팍에 붙은 앞날개와 머리에 붙은 겹눈은 누가 봐도 파리의 모습이었다.

‘일리엔의 천사랑 비슷하잖아?’

비슷비슷한 녀석들인지도 모른다.

다만 예메라가 부리는 짐승들은.

최소한의 겉치레도 없이 더욱 야생적이고 잔혹한 느낌이다.

인간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된 수도사는, 가까이 다가오자 검은 날개 여섯 장을 갑자기 수십 개의 촉수로 변형시켰다.

—파르르르! 진저리치는 수십 개의 촉수는 회전하며 나를 휘감았다. 그리고 즉시 얼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입을 벌리고 시커먼 독을 내뿜었다. 시야가 가릴 정도로 진하고 자욱한 독이었지만, 독을 다시 수도사의 입안으로 튕겨 내고 그 안에서 폭파시 켰다.

-콰광!

“너나 많이 처먹어라.”

재가 된 촉수를 툭툭 털어 버리고, 상체 절반이 날아간 수도사를 그대로 쫓아갔다.

너덜너덜해진 날개 한 장을 덜덜거리며 떨어지는 녀석을 곧바로 따라잡은 뒤.

-서걱!

인벤토리에서 신성을 억제하는 창 한 자루를 빼어 그대로 몸통에 처박았다.

인벤토리보다 파괴력 자체는 약해서 거의 쓰지 않고 있지만.

안에 담긴 것은 모두 나름대로 비역에서조차 고르고 고른 특색있는 전설의 보물들.

‘〈혐신의 징표 - 가엾은 자들의 자블린〉이라. 가끔 무기를 활용해도 괜찮겠는걸.’

나냐우와 아이작이 공통의 안목으로 골라담은 녀석들.

무기에 관심없는 자들이 공간을 양보하고 넣자고 결심한 걸작들이다.

긴 창은 짐승에 오염되어 힘을 잃고 후들거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될 것 같았다. 자블린을 빼어 인벤토리에 넣자 수도사는 그대로 바스라졌다. 상성 때문인지, 인벤토리에 당할 때보다 어쩐지 한층 더 메말라서 잘게 부스러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몸이 부스러진 허공에서.

초록색 빛이 반짝인다.

‘으음? 이게 된다고……?’

[정수 흡수를 실행합니다.]

망설일 건 없다. 이미 추기경이나 주교들에게도 한번 빨아들여 봤다. 힘이 폭증한 지금이라면 뭔가 쓸만한 게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교리라도 얻어야지.’

베스커리빌의 별.

습득한 교리 레벨 총합이 60에 도달한 시점이 개방되는 특전.

어떤 특전인지는 몰라도.

베트라스나 유치린보다 약할 것 같지는 않다.

-고오오오……

허공이 진동하며 수도사에게서 초록색 빛을 빨아들인다.

[예메라의 교리 Lv.3를…….]

역시 순조롭다. 처음은 예상과 같은 예메라의 교리. 하지만 곧이어 빨아들이는 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권능이었다.

[날개no.214(Lv.l)를 흡수했습니다!]

‘이게 뭐야?’

[날개no.214(Lv.l)를 활용합니다.]

조금 전에 녀석이 파닥거리던 검은 날개가 자그마한 크기가 되어 내 발치에 흘러다녔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금방 떨어지려는 날개를 다시 회수했다.

‘이런 게 여신의 파편이라는 건가.’ 징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 파드드득!

아래쪽에 있던 다른 수도사들도 나에게 일제히 날아들었다. 양팔에 하나씩, 양다리에 날개가 하나씩 돋아난 거대한 수도사가 길게 늘어난 갑각질의 꼬리를 움직여 아래에서부터 나를 꿰뚫으려고 했다.

“결®%%지*#&*$ 겠다!” 중간중간 인간의 언어가 섞여 있긴 하지만,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말을 외치며 공격을 시작했다. 역시 말을 뱉어내야 할 발음기관마저 짐승의 형상에 반 넘게 뒤덮여 있었다.

‘얘는 뭐 없나.’

-서걱!

인벤토리에서 날린 쌍검〈부정〉과 〈실각〉이 꼬리와 몸통을 꿰뚫는다. 고고히 나는 것을 꿰뚫어 사냥하는 데 특화된 두 자루의 칼.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수도사의 몸을 검빙으로 부숴 버렸다. 냉기는 오직 수도사의 몸만을 몇 번이고 내달아서 순식간에 산 채로 지워 버렸다.

‘정수 흡수.’

-우우우웅…….

아까와 비슷한 밝기의 빛이 빨려 들어왔다.

[꼬리no.l91(Lv.l)을 흡수했습니다!]

방금 전 나를 꿰뚫으려던 갑각질의 꼬리.

흡수하며 한층 자그마해진 그 꼬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빨no.801(Lv.l)를 흡수했습니다!]

[예메라의 교리 Lv.4…….]

[지느러미no.73(Lv.l)을 흡수했습니다!]

‘하나씩 잡을 것도 없겠군.’

황실의 보구들도 나름 유용하긴 했지만 새로 발견한 소소한 재미에 가까웠다. 넓은 범위의 압도적인 파괴력은 당연히 인벤토리에 집중하는 게 최고다.

‘한 번에 몇이나 걸리려나?’

-쿠구구구구구구구!

허공이 떨리고 회전했다. 나는 인벤토리를 길게 늘여서, 달려오고 있는 수도사들을 범위에 넣고 한 번에 빠르게 베어 버렸다. 몸이 터져 날아간 수도사들을 노리고 다시 한 번에 반대편에서 휘두르고, 거대한 영역으로 위에서 내리쳤다. 짐승의 형상들이 단번에 터져 나가고 눈앞의 허공이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이런……! 뒤! 뒤로! 성령을 보호하라! 모두 성령과 하나가 되어라!” 절반 넘는 숫자가 소멸하자 기둥에 몸을 박은 노인은 급히 명령을 내렸다.

‘정수 흡수.’

[의태no.47(Lv.l)을 흡수…….]

[촉수 no.l4(Lv.l).......]

‘촉수… 필요 없는데……?’

[소화기 관 no.21(Lv.l)…….]

‘이건 더 필요 없고.’

[예메라의 교리 Lv.5…….]

[이빨 no.l942(Lv.l)…….]

[뿔 no.83(Lv.l)…….]

[외배엽층 no.9(Lv.l)…….]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지만.’

[발톱no.229(Lv.l)를 흡수했습니다!] 중간중간에 한 번씩 올라가는 예메라의 교리와 함께.

수도사들에게 덮어씌워졌던 수많은 짐승의 형상에서, 독특한 부분들이 나에게 조금씩 흡수되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했던 다양한 짐승들의 신체 구조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심지어 흡수한 것들을 서로 결합해서 활용하는 지식마저 머릿속에 쌓여 가고 있었다.

‘ 흐음.’

무려 스무 개가 넘는 특성이 내게 흡수되어 자리 잡았다. 흡수가 쌓이다 보니 친숙하게 느껴 버린 건지 문득

싫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위잉. 위이잉.

작은 날개와 갑각류의 꼬리, 뿔과 이빨을 조합해서 내 주위에 슬쩍 띄워 봤다.

‘확실히 귀엽지는 않네.’

“가, 감히 어떻게 저런 불경한 짓을!”

수도사의 무리에서 아직 제대로 인간의 말을 하는 건 노인뿐이다.

예메라 자체는 집중하는지 별말이 없었다.

짐승이 기둥 쪽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충성심 있게 내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다 일단 회수시킨다.

발톱과 이빨의 형상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한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갈고리발톱, 몸을 열어 내장을 먹을 때 쓰기 좋은 발톱.

마치 하나의 끈처럼 생긴 이빨, 적의 살에 박히지 못하면 부서지면서 강력한 균을 퍼트리는 이빨, 톱니바퀴처럼 생겨 돌아가는 이빨.

뒤쪽에 붙은 숫자는 예메라가 부리는 짐승의 형상 가운데서 순서를 매긴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새겨진 가장 높은 숫자는

1942.

내 추측이 맞다면.

예메라는 이런 짐승만 최소한 1942마리는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끔찍하군. 헌데……

이상하다.

말도 안 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나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 거지?’ 적의는 이미 흘러넘친다.

그럼에도 움직이는 것들은 오직 수도사들뿐.

처음에는 시험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지만.

내가 인벤토리에서 비역의 무기들까지 꺼낼 만큼 여유롭게 상대하는 동안 예메라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도사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주교들의 영혼보다도 훨씬 아름답다고 칭찬받을 정도에, 나름대로 예메라가 제 일부까지 베풀어 준 광신도들인데.

뭔가 이상하다.

‘혹시 함정인가.’

나는 필사적으로 집중해서 상대를 살폈다. 하지만 모를 노릇이었다.

기둥에 파묻힌 노인과 수도사들이 분한 듯 나를 보며 눈을 이글거리고 있었고, 예메라는 여전히 정말 공격하려는 낌새 따윈 전혀 없었다. 그저 짐승의 형상이 뭉쳐진 그림자 기둥만 쭉쭉 하늘로 거대하게 뻗어 가고 있었다.

‘얌전히 도망갈까.’

하지만 좀처럼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저 기등은 크기는 물론이거니와.

느껴지는 힘의 용량이 실시간으로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다.

저게 지금 뭘 하려는지 몰라도 ‘완성’된다면.

뜻을 이루고 나면 절대로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를 분명히 인식했고, 원한도 몹시 깊은 상태야.’

이 자리를 떠도 결코 마음 편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숨어 살아야 하리라.

‘혹시… 뭔가 약한 상태가 아닐까?’ 아니면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얼핏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 같았지만.

‘지금 아니면 없어.’

‘내 순수한 힘이… 신에게 얼마나 통하는지 시험해 볼 기회가 말이지.’ 참회의 신 예메라.

나를 받아 봐라.

선택도.

준비도 곧 끝난다.

- 파르르릉.

수면 아래.

스스로 끓어올라 움직이는 새카만 그림자의 파도가-

‘검빙.’

창백한 섬광에 얼어붙는다.

냉기가 바다를 부숴 가며 난동을 부리고, 춤을 추고, 글씨를 쓴다.

얼기설기 얽혀.

마치 악어의 등처럼 울퉁불퉁하게 어지러진 두껍고 새하얀 얼음.

여기는 이제 대지.

반사도•- 증폭도 없다.

그리고.

[특전: 백화제방百火齊放을 발동합니다.]

세 종류의 최상위급 권능을 흡수해 얻은 증폭의 특전.

[당신의 불꽃은 누구보다 다양하고 자유롭습니다. 불에 관련된 권능을 사용할 때의 파괴력과 사정거리가 크게 늘어납니다.]

‘검염.’

-콰과과과과과과광!

검빙보다 두 배는 넓은 범위로 불꽃의 폭발이 날아 올라갔다. 검기로 만들어진 불꽃은 같은 불꽃마저 태우고, 백화제방의 특전이 더해져 검빙마저도 태워 버리겠다는 것처럼 믿을 수 없는 범위와 응집력으로 위를 휩쓸어 갔다.

-번쩍!

다른 쪽에서는 직경 수십 미터의 크기로 만들어진 검뢰劍雷가 빛과 함께 터지고.

‘이 제부터 지.’

-고오오오오.......

사방에 자리잡은 무형의 칼날이 거대해지며 네 방향에서 기둥을 베어 갔다.

가만히 서 있는 상대인 만큼.

오직 면적과 파괴력을 최대화한 공격.

응축한 순수한 파괴력에 허공에 으르렁거리듯 진동하며 그림자의 기둥을 움푹 파먹는다.

‘마지막으로.’

_ 파아아앗!

허공을 밟아 올라가 파먹힌 기둥 가운데 인벤토리를 박고.

-스릉.스릉.스릉.스릉.스르릉.멸신滅神과 신살神殺의 특성이 조금이라도 붙은 무기들은 모조리 꺼내 놓고 허공에 닻처럼 고정시켰다.

‘잊혀진 신격들을 처음 만났을 때 한번 점검해 봤지.’

기둥의 크기에 비하면 바늘 하나조차 안 되는 크기지만.

‘나에게는……

유치린의〈파동〉이 있다.

작은 힘조차 일렁이며 방사형으로 퍼트리는 권능.

감각되는 〈추〉의 위치에 신살의 무기들을 모아 놓고 증폭의 파동을

일으킨다면.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제어하기도 힘든 속도와 범위로.

신살의 특성을 가진 파동이 사방을 잠식해 들어갔다.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기둥조차 이번에 최소한 20%가 넘게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군데군데 파먹히고, 외곽이 벗겨지고, 깊숙이 깎여 나가고.

헤아릴 수조차 없는 짐승의 형상이 먼지가 되어 터져 버린 것이. 내가 신을 벤 것이 마치 촉각처럼 느껴진다.

‘됐다••••••!’

온 힘과 정성을 모은 공격.

시간을 끌며 어떻게 공격할지를 계산하고, 완벽하게 힘을 모아서.

어째서인지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날린 최선의 타격.

‘제대로 먹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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