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 던전 (1)
수혁과 마주친 고블린이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쿠에에에!? 쿠에엣!”
고블린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수혁과 대치했다. 수혁은 긴장하는 것을 느끼며 고블린이 손에 든 나무 몽둥이를 쳐다보았다.
싸움 같은 건 자신 없는데.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그러나 이곳에서 그런 것은 의미가 없었다.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진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수혁은 자신을 다잡았다. 조금 전에 황금 풍뎅이의 유충을 잡은 것처럼, 이번에도 할 수 있었다.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된다.
수혁은 긴장한 채 슬금슬금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체격은 자신이 우위에 있었지만, 싸움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도통 파고들 틈을 찾을 수 없었다.
한편, 처음에는 긴장하던 고블린은 수혁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자 감을 잡았다는 듯 묘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쿠아앗!”
고블린이 갑작스레 달려들었다. 고블린은 조잡한 나무 몽둥이를 휘둘러 수혁의 옆구리를 노렸다.
당황한 수혁은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통로가 생각보다 좁았다. 수혁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수혁의 선택은 간단했다. 고블린의 공격을 왼팔로 막아내고, 몽둥이를 든 오른손으로 고블린을 공격한다.
그야말로 한 대 주고 한 대 받는, 턴제 RPG의 전투에서나 나올 법한 주고받기. 격투의 격 자도 모르는 초보자끼리의 격투에서나 나올만한 대처.
그러나 의외로 이것은 먹혔다.
빠악—!
고블린의 머리에서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혁은 자신이 하고서도 깜짝 놀랐다. 이 정도로 큰 소리가 날 줄이야.
반면에 자신의 왼팔은, 고블린이 휘두르는 것을 정면으로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별로 아프지 않다.
수혁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발현으로 원래 공격력 1이었던 육모 방망이는 공격력 1.8이 되었지.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물리저항이 1이지만, 나는 현재 2인 상태야. 고블린의 스펙이야 처음의 우리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테니, 똑같이 주고 받으면 이쪽이 유리한 게 당연해.’
정답이었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가, 또다시 수혁과 고블린의 틈을 벌려 놓았다.
고블린은 머리를 강타하는 거센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은 그 틈을 노렸다.
빡—! 빡—! 빠악—!
수혁의 육모 방망이가 고블린의 머리를 연신 강타했다. 그럴 때마다 고블린은 휘청휘청하며 수혁의 공격을 당하기만 했다.
게다가 고블린이 육모 방망이의 모서리 부분에 맞을 때마다, 알게 모르게 크리티컬 효과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마침내 고블린은 쓰러졌다. 그러나 수혁은 고블린을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수혁은 고블린을 패고, 패고, 또 팼다. 묘한 흥분이 수혁을 감싸고 있었다. 수혁은 미친 듯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얼마 뒤, 고블린의 목숨이 끊어졌다.
고블린에게서는 7루페와 F급 마정석이 드랍되었다.
“이, 이겼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수혁이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고블린을 후려 패던 게 거짓말 같았다.
그야 그랬다. 수혁에게 이것은 처음으로 인간형의 생명체를 살해한 것이었으니까.
충격이 컸다. 수혁은 단지 평범한 대학생이었을 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해했다.
잘은 몰라도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전투를 해나가야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자기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굳은 눈빛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결코 멈출 수 없다.
“아, 그러고 보니...”
수혁은 뒤늦게 자신의 어빌리티 ‘발현’에 대해 떠올렸다.
단지 0.8의 공격력이라고는 해도, 기본 능력치가 1이니 2니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꽤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수혁은 이 발현이라는 어빌리티를 어빌리티 자체에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번에 발현이 성공한다면, 0.8보다는 더 많은 능력치를 올려줄 것이 분명했다.
“계속 써 주지 않으면 안 되겠군.”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은 F등급에 올려주는 능력치도 별로 안 되지만, 자기 자신에게 계속 발현 능력을 걸어준다면. 그리고 원하는 아이템에 계속 발현을 걸어준다면.
수혁은 분명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수혁은 곧바로 발현 어빌리티에 발현을 걸기 시작했다.
-발현에 성공하였습니다. 능력치 변화 1.6->2.2
-마력이 부족합니다.
뭐, 뭣. 마력이 부족하다고?
수혁은 당황했다. 첫 번째는 상관 없었는데, 두 번째는 마력이 부족하다고 하여 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
현재 수혁의 마력 스텟은 3. 조금 전 발현으로 소모한 마력은 1.6. 남은 1.4의 마력으로 2.2의 마력을 소모하는 발현 능력을 사용하려고 하였으니 되지가 않는 것이다.
‘체력과 마력이 전부 채워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면 또다시 발현을 사용할 수 있나.’
바로 그러했다. 거기에 수혁은 또 다른 문제점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만약에 발현의 능력치가 마력 수치를 뛰어 넘게 된다면…. 쓰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보니 오싹했다. 아무리 좋은 어빌리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쓰지 못해서야 의미가 없었다.
‘그전에 알아채서 다행이군.’
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아직 사용하지 않은 마정석들을 떠올렸다.
당분간은 마력에 스텟을 투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수혁은 마음 속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0.5의 수치를 마력에 투자하였다.
‘어차피 부족한 공격력은 무기에 발현을 걸어서 보충하면 돼.’
수혁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노란 화살표를 바라보았다. 강해지는 방법이 정해졌으니, 이제 그것을 실천하기만 하면 되었다.
수혁은 화살표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
노란 화살표를 따라 나아가는 동안, 수혁은 여러 마리의 고블린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때마다 약간의 위기는 있었을지언정, 생각보다 수월하게 고블린들을 처치하여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이제 퀘스트에 나온 10마리까지는 앞으로 1마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수혁이 발현이라는 어빌리티에 대해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어빌리티의 적용 대상에 대해.
‘아이템, 스킬, 사람, 어빌리티. 물론 어빌리티는 발현 하나밖에 시험해본 게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될 거야. 나쁘지 않아.’
아이템은 수치를 가지든 안 가지든 가리지 않고 적용이 되는 것 같았다.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둔 황금 풍뎅이의 정수나, 은별초 같은 것까지 적용이 가능했으니까.
덕분에 1이었던 황금 풍뎅이 정수의 물저, 마저 스텟이 1.5까지 늘어난 것은 분명히 큰 수확이었다. 이제 수혁은 고블린이 풀 스윙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도 뼈가 부러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스킬도 적용되는 것은 뭐 당연하다 치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은 참 의외였어.’
발현은, 적용된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골고루 올려주었다. 다시 말해, 수혁이 그 자신에게 발현을 적용할 경우 그가 가진 8개의 스텟이 골고루 상승한다는 뜻이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그만큼 스텟의 상승률이 다른 대상에 적용할 때에 비해 적다는 점. 그리고 쿨타임이 다른 대상에 비해 꽤 긴 편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용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지. 마정석만으로 올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어.’
현재 수혁의 스텟은 평균이 3.3에 마력 스텟은 5.2까지 도달해 있었다. 만약 마정석만으로 이 수치를 올리려 했다면, 수혁은 고블린 20마리는 더 잡아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드랍하는 몬스터가 존재해야 하는 마정석과는 달리, 발현은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아도 마력과 쿨타임 조건만 충족되면 바로바로 걸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정도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혁의 능력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발현의 능력치는….
<어빌리티: 발현>
등급 – E
위력(마력 소모) – 5.1
설명 – 대상의 능력을 발현시킨다. 발현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E등급! 처음에는 F등급이었던 발현의 등급이 스스로의 위력이 상승하며 무려 E등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D등급도, C등급도, 더 나아가 튜토리얼에서 아무도 얻지 못한 A등급이나 그 이상의 등급을 얻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혁은 뿌듯했다. 처음에 F등급의 어빌리티라며 실망했던 자신이 바보 같이 생각될 정도였다. 이 정도의 좋은 어빌리티를 얻었으면서 그런 식으로 실망을 했다니?
아무튼 흥분은 거기까지였다. 수혁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스스로도 여전히 갈 길이 아직 꽤 멀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도 지금 수혁은 한 개의 빵과 물을 소비한 상태였고, 나머지 하나씩 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식량이 다 떨어지기 전에 빨리 마지막 고블린을 해치워야만 했다. 그리고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노란 화살표를 계속 따라가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자신이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건가 하는 불확실한 의문뿐. 어쩐지 이 노란 화살표가 자신을 이 던전의 출입구가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 노란 화살표는 숨겨진 부분들을 나에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정작 미션 자체와는 그다지 큰 관련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어.’
수혁은 불안한 느낌에 휩싸였다. 만약 이 화살표가 던전의 정말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있는 거여서, 도중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와 맞닥뜨리게 된다면?
만약 운 좋게 도망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그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갔는데 남은 빵과 물만으로 자신이 이 던전을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할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빵이랑 물이나 잔뜩 사두는 건데….’
혹시나 100명이서 합동하는 미션을 받을까 봐 사지 않았던 건데, 지금 와서 오히려 그것이 후회가 되고 있었다. 개인 미션인 줄 알았더라면, 수혁은 조금 더 욕심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때, 수혁은 노란 화살표가 갈라진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굵은 화살표로 넓은 통로를 향해 있었고, 작은 화살표는 굴곡이 진 통로로 꺾여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군. 숨겨진 요소가 하나가 아닌 건가.”
하긴, 수혁 자신이 했던 게임들도 한 맵에 히든 피스가 여러 개인 경우는 종종 있었다. 이곳은 넓은 던전이라 했으니, 히든 피스가 몇 개가 존재한다 한들 이상하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향할까.
수혁은 일단 작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감이지만, 화살표의 크기가 히든 피스의 중요도와 난이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간단한 것부터 해나가기로 했다. 작은 화살표를 따라 이리저리 꺾인 길을 걷는다. 이제 작은 화살표와 큰 화살표는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중 막힌 벽이 나왔다. 수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윽고 화살표가 교묘하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부분을 가리키는 것을 발견했다.
숨겨진 통로였다. 그곳에 뭐가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수혁은 일단 나아가기로 했다.
수혁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좁은 통로를 지나 막힌 벽 뒤의 또 다른 통로로 빠져 나왔다. 수혁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통로의 끝이 보였다. 그곳에는 찾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비밀스러운 상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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