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 던전 (3)
“크아아아악!”
약한 곳을 당한 고블린 파이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서, 수혁은 자신과 고블린 파이터 사이의 전세를 뒤집었다.
수혁은 재빨리 일어나 고블린 파이터를 밀쳐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고블린 파이터가 떨어뜨린 거대 몽둥이를 주워, 고블린 파이터의 가랑이 사이를 직방으로 내리쳤다.
“——“
고블린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목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고블린 파이터가 잠시 무력화된 동안에, 수혁은 고블린 파이터 위로 올라가 마운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를 양손으로 집어 든 뒤, 고블린의 얼굴을 향해 그대로 내려 찍었다.
쿵—! 쿵—!
마치 절구를 찧는 것처럼, 수혁은 고블린의 얼굴을 온 힘을 다해 수 차례 내려 찧었다. 아니, ‘빻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고블린 파이터의 얼굴은 형체도 모를 정도로 엉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도 수혁은 멈추지 않고, 그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역할인 것처럼 필사적으로 고블린의 얼굴을 빻았다.
쿵—! 쿵—! 쿵—! …쿠웅!
마침내 마지막 절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블린 파이터의 위로 드랍된 아이템 창이 떠오른 것은 이미 예전의 일이었다.
“허억… 허억….”
수혁은 가쁜 숨을 내쉬며 그대로 쓰러졌다.
자신이 경솔했다. 조금은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수혁은 반성했다. 다음부터는 너무 들떠서 막무가내로 달려들지 말자고.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살아났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휴우…. 아무튼 승리했으니 다행이긴 하지. 음.”
수혁은 전리품을 챙겼다. 무려 E급의 마정석과 40루페가 드랍되었다. 거기에 고블린 파이터가 놓친 거대한 몽둥이까지 있었다.
수혁은 몽둥이의 스테이터스를 살펴보았다.
<뚱뚱한 고블린 방망이>
등급 – E
희귀도 – 흔함
공격력 – 7
설명 – 고블린 파이터가 사용하던 어딘가 뚱뚱한 방망이. 보기에 따라서는 두꺼운 종아리처럼 생겼다고 해도 틀릴 것은 없다.
이전 사용하던 육모 방망이보다는 확실히 좋아 보였다. 단, 무게가 조금 많이 나간다는 점이 흠이었지만, 이 부분은 근력 스텟이 계속 오를 경우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혁은 다시 고블린 파이터의 시체에 눈을 돌렸다. 너무 잔인하게 죽인 것 같아 씁쓸했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어쨌든, 할 건 하고 가야 했다.
수혁은 고블린 파이터의 시체에 패티 생성의 주문서를 사용했다.
녹색의 빛이 고블린 파이터에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패티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무려 60장이나 되었다.
게다가 크기도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한동안 먹을 양으로는 충분하겠지.’
수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남은 건 물병에 담을 물이 있는 곳을 찾는 것과, 앞으로 고블린 파이터와 마주친다 하더라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스펙을 쌓는 것이었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살표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
그 이후로 수혁은 어찌 됐든 스펙을 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화살표는 던전의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수혁으로서는 도저히 고블린 파이터를 이길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면 어찌 됐든 힘을 기를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자신에게는 발현이라는 사기 능력이 있었으므로, 시간만 충분히 들인다면 언젠가는 고블린 파이터에게 도전할 스펙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식량은 당분간 문제없음. 하지만 물이 없어서야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지.’
사실, 식량보다도 오히려 물이 더 중요했다. 물이라도 있다면 식량이 없어도 적어도 1주일은 앉아서 버티는 게 가능하지만, 식량만 있다면 목마름 때문에 그보다 훨씬 더 일찍 죽을 터였다.
다행히도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우연히도 먹을 물이 있는 깨끗한 샘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못 먹는 물이 아닐까, 독이 들어 있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숨어서 지켜본 결과, 고블린들도 이곳에 와서 종종 물을 먹는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
물론 이곳에 찾아온 고블린들은 숨어 있다가 기습으로 전부 죽였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해서, 고블린 상점에서 구입한 대형 물통에 물을 보관하는 것으로 물에 관한 문제는 해결할 수가 있었다.
한편, 던전 안을 헤매는 도중 희미하게 노란 화살표가 생길 때가 있었다.
따라가면, 다른 이들은 발견하기 힘들도록 교묘한 곳에 보물상자가 숨어 있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곳에 보물상자를 숨겨 놓은 거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애초에 게임 비스무리한 세계이니 그러려니 하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열게 된 보물상자에서도 소득이 꽤 있었다.
보물상자에는 주로 레더 갑옷, 날선 검 등 장비품이나 악세서리 등이 들어 있었다. 때로는 그냥 동전만이 덩그러니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수혁은 일단 그것들을 전부 다 가져가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인벤토리의 용적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어쩔 수 없이 수혁은 가장 좋은 장비만을 선별하여 장비하고 나머지는 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수혁의 장비는 다음과 같았다.
<용맹한 병사의 검>
등급 – E
희귀도 – 흔함
공격력 – 10
설명 – 휘말 왕국의 한 이름 모를 병사가 사용하던 검. 소중히 사용한 듯 손잡이 여기저기에 때가 배어 있다.
<모험가의 가죽 갑옷>
등급 – F
희귀도 – 흔함
물리저항 – 3
설명 – 용감한 모험가가 사용하던 가죽 갑옷. 물리 공격의 대미지를 어느 정도 흡수하며, 움직임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펜던트>
등급 – F
희귀도 – 흔함
법력 – 1
마력 – 2
설명 – 아마도 누군가가 소중하게 사용했을 펜던트. 안타깝게도 동굴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대부분이 F급이고 그다지 좋은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 레벨에서는 이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한편, 발현 능력을 계속 사용한 결과 발현을 사용하는 데에도 체계적인 기준을 적용하게 되었다.
일단 우선 순위를 정했다. 쿨타임은 길고 스텟 상승률은 낮아 제일 제한 요소가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발현이 1순위. 그 다음이 마력 상한선에 맞추어 발현 어빌리티 그 자체였으며, 소지하기만 해도 물저와 마저를 올려주는 황금 풍뎅이의 정수가 3순위였다.
그 뒤를 이어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무기가 4순위였고, 어차피 그리 오래 쓸 것 같지 않은 나머지는 마력이 아까워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재 수혁 자신의 스텟은 평균이 무려 8! 거기에 더해 마력은 어느새 15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수혁 자신도 꽤 자신이 붙었다. 이제는 고블린 파이터와도 결판을 내야 할 때였다.
수혁은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걷자, 이윽고 이전 수혁이 고블린 파이터와 마주쳤던 곳에 도달했다.
수혁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마주쳤던 것처럼 꽤 큰 체격을 가진 고블린 파이터와 마주칠 수 있었다.
“쿠워우어어어!”
고블린 파이터가 괴성을 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수혁은 동요하지 않고 고블린 파이터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싸움 한번 한 적 없어 고블린 한 마리에도 쩔쩔 맸던 수혁이었지만, 계속되어온 전투 덕에 이제 눈빛만은 웬만한 전사에도 뒤지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기술도 경험도 스펙조차도 미숙하다.
하지만 이 정체 모를 세계에 떨어져 고작 3일. 이 단기간에 이 정도나 성장한 것을 볼 때, 수혁에게도 나름대로 용맹한 전사의 기질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고블린 파이터와 수혁이 격돌한다. 저번에 한번 제대로 깨진 이상 공격을 피해낸다는 선택지도 있었을 테지만, 수혁은 결코 피하지 않았다.
똑같은 조건에 처함으로써 자신의 스펙이 어느 정도나 올랐는지 확인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제부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수혁의 의지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 정도로 물러서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이야기.
채앵—!
“쿠워어?”
고블린 파이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눈앞의 인간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 전혀 믿기지 않는 모양.
하지만 실제로 수혁의 검은 조금 밀리는 모양새이긴 해도, 고블린 파이터의 공격을 확실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수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감돌았다. 이 정도라면, 저번에 만났던 그때보다는 확실히 해 볼만한 게임이었다.
수혁은 ‘세 번 휘두르기’ 스킬을 발동하였다.
쾅— 쾅— 콰앙—!
처음에는 쓰레기나 다름 없던 이 기술도, 이제는 제법 스펙이 올랐다. 체력을 2나 소모하는 기술이 되었지만, 그만큼 격렬한 타격이 고블린 파이터의 몽둥이를 밀어낸다. 그리고 그 밀쳐진 짧은 틈을 타, 수혁의 검이 교묘하게 움직여 고블린 파이터의 옆구리를 긁어내 찢는다.
“쿠와아악!”
고블린 파이터는 주춤한다. 자세를 바로 잡으려 하지만, 이미 수혁이 기세를 탄 상태였다.
수혁은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고블린 파이터를 계속 밀어붙였다. 어차피 고블린 파이터라고 해 봐야 스펙이 조금 좋을 뿐 싸움 기술이 월등히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수혁에게 밀리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마침내 고블린 파이터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고블린 파이터는 단말마와 함께 아이템을 남기고 쓰러졌다.
고블린 파이터는 37루페와 E급 마정석, 고블린의 손톱이라는 잡템을 남기고 죽어 있었다.
“후우, 힘들다.”
수혁도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저번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상대가, 이번에는 이렇게나 간단히 쓰러졌다.
자신이 강해진 것이 확실하게 체감되었고, 자신감도 생겨났다.
노란 화살표. 그것이 자신을 이렇게 강하게 만들어준 거나 다름 없었다.
수혁은 그 자리에서 조금 체력을 회복한 뒤 다시 일어섰다. 노란 화살표는 아직도 어딘가를 향해 뻗어 있었다. 수혁은 그 끝을 봐야만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