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 던전 (4)
수혁은 계속 나아갔다. 고블린 파이터들을 계속 상대했다. 그리고 계속 강해졌다.
반나절 정도 던전의 통로를 지났을 때, 수혁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노란 화살표가 이상하게도 통로가 아니라, 막혀 있는 벽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했다. 수혁은 막혀 있는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손으로 만져 확인해 보아도, 무언가 장치가 있는지 확인해 보아도, 그 어떤 것도 수혁은 찾을 수 없었다.
뭐지? 설마 나 이 노란 화살표한테 엿먹은 건가?
하지만 지금까지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서 나빴던 적은 없었다. 뒤에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목소리가 나와서 알려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첫 날 이후 수혁은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수혁이 그렇게 생각하며 화살표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던전 생활을 계속하느라 예민해진 수혁의 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또 고블린인가. 이제 고블린 파이터쯤은 수혁에게 간식거리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혁이 고블린을 상대하러 가려고 한 순간, 수혁은 한 가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이 부근에 고블린들만이 아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라.’
수혁은 일단 적당한 곳에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수혁이 숨을 만한 적당한 굴이 형성되어 있었다. 수혁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블블블블, 고블, 고블.”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고블린 한 마리가 수혁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다.
고블린은 어깨가 구부정하고 등이 굽은 것이, 어째 지금까지 싸워온 고블린 파이터보다는 훨씬 약한 종류인 것 같았다. 심지어 이전 싸웠던 고블린 일꾼들보다도 더 약해 보였다.
이윽고 고블린이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바로 그 위치에 섰다.
그리고 벽을 똑똑 두드리며 고블린의 언어로 외쳤다.
“블블 고블 고블!”
수혁은 저 고블린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 벽은, 아니 저 벽 뒤에 있을 무언가는, 그 언어를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마치 ‘열려라 참깨!’ 주문이라도 외운 것처럼, 벽이 갈라져 그 내부가 드러났다.
고블린은 총총히 걸어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수혁은 황급히 그 고블린의 뒤로 따라붙었다. 다행히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벽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빛이 없으면 어쩔까 싶었는데, 예상 외로 내부에는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활 감각이 느껴졌다.
“고, 고블?! 고블고블고블!”
“뭐라는 거야.”
앞서 이 공간에 들어온 고블린이 수혁을 발견하고 굉장히 놀라고 있었다.
수혁은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던전 안 빈 공간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주거 공간이었다.
새삼 다른 고블린들이 제대로 된 주거 공간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차피 히든 피스였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서 그리 놀랄 것은 없었다.
“어? 그쪽은 설마… 인간…?”
수혁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고 허름한 침대 위에 마찬가지로 작고 볼품없는 고블린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조금 전 수혁이 따라온 고블린은 그 작은 고블린을 지키려는 듯 두 팔 벌려 수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수혁은 히든 피스의 대상인데다가 잡아 봤자 F급 마정석도 안 나올 것 같이 생긴 녀석들을 굳이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래. 인간이지. 그보다도 고블린인데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거냐? 신기한 걸.”
“네. 저는 어릴 때부터 조금 특이한 고블린이었거든요. 인간과 말을 하는 게 가능해서, 다른 고블린들한테 따돌림을 받았… 콜록!”
아무래도 침대 위의 그 고블린은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고블린이라지만 걱정되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고, 고블! 고블!”
“괜찮아요, 엄마. 이 정도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 콜록! 헉….”
고블린의 상태는 빈 말로라도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미 고블린이 고블린의 말로 떠들며 자신의 자식을 걱정하고 있었다.
“으…. 죄송해요. 저는 라미롱이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몸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서… 손님이 오셨는데도 딱히 대접해 드릴 만한 게 없네요.”
“인간이면 너희들 고블린의 적인 거 아니야? 왜 나를 대접하려고 하는 건데?”
“그런 모험가 님은 어째서 저를 공격하지 않는 거죠?”
그야 너희들이 히든 피스의 NPC니까.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NPC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막 말해서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라미롱은 쓴웃음을 지었다.
“거 보세요. 아무리 인간인 모험가 님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처지인 저를 다짜고짜 죽일 마음을 들지 않으실 거예요. 그건 고블린인 저와 인간인 모험가 님이 서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
“물론 저도 알아요. 지금 저희 던전의 고블린들과 휘말 왕국의 모험가들이 서로 공격을 주고 받고 있다는 거. 하지만 저는 언젠가 서로가 평화롭게 지낼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만약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그렇게 만들고 말 거예요. 물론 지금의 이 병약한 몸으로는 힘들겠지만요….”
라미롱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때, 수혁의 눈에 하나의 미션 창이 떠올랐다.
<히든 미션: 고블린 라미롱의 고민>
등급 – E
설명 – 인간과 고블린의 말을 할 수 있는 고블린 라미롱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그것은 병약하게 태어난 자신의 몸에 대한 것이었다. 만약 그의 병을 낫도록 도와준다면, 라미롱은 인간과 고블린 사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성공 조건 – 고블린 라미롱이 앓고 있는 병의 완쾌
실패 조건 – 고블린 라미롱의 죽음
보상 – 고블린 광부의 곡괭이, 채광 스킬
“응? 곡괭이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건가?”
“앗, 어떻게 아셨나요. 저희 아버지가 광부였거든요. 이전에 일어난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곡괭이만은 유품으로 소중히 보관하고 있거든요.”
수혁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턱을 쓸었다. 곡괭이 같은 게 솔직히 필요한가? 아마도 짐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노란 화살표의 히든 피스는 예상보다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었다. 이 뒤에 언젠가 곡괭이와 채광 스킬이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고.
수혁은 일단 이 미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이 고블린을 낫게 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아.’
수혁에게는 의학 지식 같은 건 없을뿐더러, 치료 마법 같이 편리한 기술도 없었다.
게다가 만약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게 고블린 종족에게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이 고블린을 낫게 할 방법 같은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수혁에게 한 가지 잊고 있던 물건이 떠올랐다.
‘그래! 은백초라는 게 있었지. 약초인 듯 했으니, 아마 여기에 쓸 수 있을지도 몰라.’
수혁은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던 은백초를 꺼냈다.
달여 먹으면 기침, 발열, 오한 등에 효능이 있다고 나와 있는 바로 그 꽃이었다.
미션을 시작하고 나서 노란 화살표에 의해 곧바로 얻은 바로 그 꽃.
은백초를 꺼내자, 라미롱과 그 어미 고블린의 눈이 커진다.
“그, 그건 은백초가 아닌가요? 어, 어떻게 그걸….”
“이 꽃에 대해 뭔가 알고 있나?”
“알다마다요! 이 던전 안에서는 유명해요. 특히 저희 고블린들한테는요. 이 꽃은 저희 고블린들에게는 거의 만병 통치약이나 다름 없는 약으로 쓰이거든요. 이런 귀한 걸 도대체 어디에서….”
그냥 등 뒤에 있길래 꺾은 건데. 수혁은 약간 어안이 벙벙한 기분을 느꼈다.
흐음. 그건 그렇고 이게 그렇게나 대단한 거였나.
수혁의 눈빛이 은백초를 가볍게 훑었다.
“...가질 테냐?”
“네, 네? 하, 하지만 그렇게 귀한 걸….”
“물론 공짜는 아니야.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수혁은 라미롱에게 이 꽃이 절실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단순히 퀘스트만 깨는 걸로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난해 보이는 고블린들에게 뭔가 뜯을 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쓸모 없는 은백초가 고블린에게는 지고의 약초인 것처럼, 고블린에게는 별 게 아니라도 자신에게는 꽤 쓸모 있는 물건이 있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던전의 지도라든지, 채광 스킬을 제외한 다른 스킬 같은 것을 전수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 은백초를 저에게 주신다면… 저희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곡괭이와 채광 스킬을 전수해드릴게요. 저에게도 소중한 것이지만 저보다는 모험가 님이 더 잘 사용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당연히 줘야 하는 거고. 그 외에는?”
“그, 그거 말고는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거의 없….”
라미롱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지도를 제작하는 방법에 대해 아세요?”
“지도라고?”
지도라는 말에 수혁의 귀가 솔깃해졌다. 안 그래도 던전에 들어온 뒤 줄곧 헤매기만 한 탓에, 수혁에게 지도라는 것은 너무나도 절실한 것이었다.
고블린 상점에서 지도를 팔긴 하지만, 3000루페라는 돈은 아직까지도 거금이었다.
“네. 어쩌면 모험가 님에게는 너무 기본적인 걸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모르시면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어요.”
라미롱의 말에 수혁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설마 지도 제작 스킬을 알려준다는 건가? 그것만 있어도 예전보다 길을 찾는 수고가 10배는 더 줄어들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수혁은 만 원짜리 지폐 위에 발을 올리고 주변을 살피는 신사처럼 점잖은 태도를 유지했다.
“크흠.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면 조금 실망인데.”
“하, 하지만 정말로 그것 외에는 모험가 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라미롱은 정말로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수혁은 잠자코 라미롱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라미롱은 난처해하며 수혁의 안색을 살필 뿐이었다.
마침내 라미롱에게 더 이상 빼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수혁이 내키지 않는다는 척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할 수 없지. 던전 안의 온갖 위험을 헤치고 나서 겨우겨우 얻은 꽃이지만, 그토록 필요하다고 하니 자선사업 하는 셈 치고 주는 수밖에.”
“저,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미롱은 연신 수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수혁은 약간 양심에 찔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은 세슘 원자 시계로나 측정 가능할 정도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자, 가지도록. 그보다도 곡괭이는 어디에 있지?”
“감사합니다! 곡괭이는 저절로 모험가 님의 인벤토리에 들어갈 거예요.”
-히든 미션 ‘고블린 라미롱의 고민’이 완료되었습니다. ‘고블린 광부의 곡괭이’와 ‘채광 스킬’, ‘지도 스킬’을 얻었습니다.
환한 빛이 라미롱에게서 터져 나와 수혁에게로 들어갔다. 시스템 창으로 확인하니, 확실히 보상들이 자신에게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혁은 라미롱에게서 받은 것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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