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9화 (9/78)

오거스 던전 (5)

수혁이 라미롱에게서 받은 것들은 수혁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좋은 것들이었다.

<고블린 광부의 곡괭이>

등급 – D

희귀도 – 희귀

강도 – 35

설명 – 라미롱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곡괭이.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깃들어 보통의 곡괭이에 비해 더욱 단단한 광석을 채굴할 수 있다.

<마스터리 스킬: 채광>

등급 – E

위력 – 10

설명 – 채광 시 채광의 효과를 올려주는 마스터리 스킬. 곡괭이를 착용한 상태에서 적용된다.

<시스템 스킬: 지도>

설명 – 지도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스킬. 시스템에 지도 탭이 생성되며, 지도 제작, 지도 등록, 표식물 표시 등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수혁은 저절로 입가가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곡괭이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D등급의 물건이었고, 채광 스킬이 E등급부터 시작하는 점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지도의 경우, 무려 시스템 스킬이라는 정보가!

물론 곡괭이와 채광 스킬은 생각보다 등급이 높아 기분이 좋기는 해도, 앞으로 사용할 일이 있을까 싶어 조금 애매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도의 경우 일일이 스킬을 써가며 사용해야 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시스템 자체에 적용되는 스킬이라지 않은가.

그 말인 즉, 굳이 지도를 만들기 위해 일일이 스킬을 사용하는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마치 RPG 게임이나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그러는 것처럼, 어둠 속을 나아가면 그 부분이 그대로 지도에 등록된다는 것!

지금 이 던전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떠한 미션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 기능은 유용할 것이 분명했다. 유용하다 못해 한번 맛을 들이고 나면 지도 스킬이 없던 시절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으리라.

수혁은 입가의 경련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리고 이로부터 또 하나의 교훈을 새겼다.

‘NPC도 뜯으면 뜯어진다!’

완전히 사람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더라도, NPC 역시 자신이 어떻게 말을 꺼내느냐에 따라 반응이 조금씩은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의 차이를 적절히 이용하기만 한다면, 원래 그 NPC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뜯어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몇 명의 NPC들과 마주쳐야 할 지 알 수 없는 수혁으로서,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깨달음이 분명했다.

결국, 수혁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그어지고 말았다.

한편, 기뻐하는 수혁의 시야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배경은 숲과 초원의 경계.

고블린들과 인간들이 둘러싼 가운데, 하나의 협상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곳에는 한 명의 고블린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블린의 대표와 인간들의 대표가 서로 하나의 두루마리 위에 사인을 적고 있다.

고블린과 인간 사이의 평화 협정.

그것을 내려다보는 고블린, 라미롱의 늙은 얼굴에, 만족스러운 듯한 할아버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숨겨진 미션을 완료함에 따라 판데라 대륙의 역사적 흐름이 변화하였습니다. 당신의 행동이 역사에 발자취를 남깁니다.

-고블린 장로 ‘라미롱’과의 사이에 인연의 싹이 움텄습니다. 시스템에 ‘인연’ 탭이 추가되며, 라미롱과의 인연이 등록됩니다.

영상이 사라지며 수혁은 현실로 돌아왔다.

수혁은 시스템 창이 떠올라 인연 탭이 생성되었으며, 그 탭에 고블린 라미롱과의 인연이 생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혁은 그 인연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블린 장로 ‘라미롱’의 우호>

등급 – C

분류 – 우호

우호도 – 70

설명 – 휘말 왕국 일대에 영향력을 미친 고블린 장로 라미롱과의 인연. 라미롱은 당신이 구한 은백초 덕에 그 목숨을 구했으며, 이후 고블린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훌륭한 장로로서 거듭났다. 은혜를 잊지 않는 고블린 장로는, 이후 당신과 마주칠 경우 당신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효과 – 1. 고블린 장로의 우호: 고블린 상점의 가격 20% 할인(영구 적용)

2. 고블린 협정: 고블린과 인간 사이의 전투를 10분간 멈출 수 있음(우호도 50 소모)

3. 대사 특권: 중립적인 고블린 부족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으며(영구 적용), 고블린 부족이 참여하는 회의에 동행하여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됨(우호도 100 소모)

수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이런 시스템이 있었을 줄이야.

이런 식으로 NPC에 대한 인연이 앞으로의 행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정말로 NPC를 상대할 때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튼 지금 수혁의 눈에 비치는 것은, 아직은 어린 고블린일 뿐이었다.

라미롱의 어미 고블린이 은백초를 소중하게 받들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약을 만들기 위해서이리라.

“크흠. 아무쪼록 훌륭한 고블린으로 자랄 수 있도록. 너에게서는 가능성이 보여. 네가 열심히만 한다면 네가 이루지 못할 건 없을 거다. 내가 장담하지.”

“그,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모험가 님! 덕분에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라미롱의 우호도가 5 올랐습니다.

오호. 이런 식으로 우호도를 올리는 거였군.

수혁은 눈빛을 빛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대로 100까지 우호도를 채우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노란 화살표는 이미 이 비밀스러운 방 밖의 어딘가를 향해 뻗어 있었다. 우호도를 100까지 채웠을 경우 대사 특권이니 하는 능력을 발동시킬 수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당장은 써먹고 싶어도 유용하게 사용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쉽지만 여기서 작별이었다. 수혁은 라미롱에게 등을 돌렸다.

“가실 건가요?”

“그래. 잘 있어라.”

“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살펴 가세요!”

수혁은 어깨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고블린 모자는 수혁이 사라질 때까지도 계속 고개를 굽실거리고 있었다.

***

노란 화살표는 수혁을 던전 안 더욱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고블린 파이터들과 싸우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수혁으로서도 더 무서운 몬스터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리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노란 화살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끝이 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화살표가 이번에는 아예 던전의 벽을 뚫고서 어디론가 파고 든 상태라는 점.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설마 조금 전처럼 숨겨진 통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화살표 주변의 여기저기를 만지고, 살피고, 공기의 흐름을 조사하고, 혹시나 이곳을 이용하는 다른 고블린이 없는지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통하지 않았다.

사실, 이상한 점이 있기도 했다.

‘아까는 화살표의 끝이 벽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화살표는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화살표가 벽을 뚫고 들어가 버렸잖아.’

그때, 수혁의 머리를 번개같이 스쳐가는 깨달음이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아니, 하지만 그것밖에는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는데.

수혁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곡괭이와 좀 전에 얻은 채광 스킬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있는 벽을 쳐다보았다.

‘이건 진짜 미친 거 아냐?!’

부정하고만 싶었다.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는 거라면 모를까, 얼마나 깊게 들어갈지도 모를 벽 속을 뚫고 들어가라니. 황당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살펴봤을 때, 앞에 달성했던 히든 피스는 뒤에 나오는 히든 피스와 어느 정도 연결성을 가지고 있었다.

곡괭이와 앞을 막고 있는 벽. 이 두 가지 조합이 수혁에게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벽을 뚫고, 나아가라!

‘그냥 여기서 돌아갈까.’

나름대로 타당하다면 타당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처음에 원했던 지도 스킬은 이미 얻은 상태였고, 스펙 역시 처음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묘한 욕심이 수혁의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물론 힘든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노란 화살표를 따라간 결과 어떠한 보상들을 얻게 되었던가.

많다. 희소 스텟을 올려주는 황금 풍뎅이의 정수에서부터, 식량과 물 역시 노란 화살표를 따라간 결과 얻을 수 있었으며, 동굴 안에서 헤매는 자신에게 절실한 지도 스킬 역시 노란 화살표 덕에 얻을 수 있었다.

얻고, 얻고, 또 얻었다. 그런 노란 화살표가, 이번에는 수혁을 배신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힘들다. 분명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지금까지의 이상으로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된다. 흥분이 솟아올라 수혁의 전신에 은근한 활력의 기운이 퍼져간다.

탐욕.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힘 중 하나인 그것이 수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아. 수혁은 팔을 걷어붙이고, 들고 있던 검을 집어넣은 뒤 라미롱에게서 받은 곡괭이를 꺼내 들었다.

“읏차! 읏차!”

깡—! 깡—!

아무것도 없는 바위 벽에 곡괭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곡괭이질은커녕 노가다조차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수혁에게 있어 이런 식으로 바위를 뚫는 것은 너무나도 생소한 일이었다.

곡괭이를 쥐는 법부터 해서 휘두르는 자세, 무게 중심의 배분 등, 누가 보더라도 초심자라는 것이 티가 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곡괭이의 강도가 강해 웬만한 암석을 만나더라도 상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시작부터 E등급인 채광 스킬에 의한 보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하지만 그러한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의 진행 속도는 달팽이처럼 느렸다. 아니, 애초에 나아가고 있다는 말을 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다.

곡괭이와 바위 사이에 불꽃이 튄다. 바위 표면의 돌이 조금씩 깎여 튕겨 나간다.

하지만 그저 그뿐. 어디에 있는지 모를 이 앞의 목적지까지 도달하기에는, 수혁의 이러한 시도는 작은 촛불로 시베리아의 벌판을 녹이려는 것만 같았다.

“뭐야 이거 진짜! 짜증 나서 못 해먹겠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확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손에 들고 있던 곡괭이를 내팽개치려다가, 라미롱의 얼굴을 생각해서 간신히 내팽개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열이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이 대부분 간단히 이룰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한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수혁은 선택해야만 했다.

여기서 히든 피스를 얻기 위해 기약 없는 곡괭이질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히든 피스는 만족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것인지.

수혁의 이마에 패인 주름이 더욱 깊어져 갔다.

‘만약 이대로 계속 곡괭이질을 해나간다고 하면… 식량은 충분하긴 한데.’

현재 패티 생성의 주문서는 총 5회의 사용 횟수 중 3번을 사용한 상태였다. 지금 있는 패티만으로도 앞으로 며칠 정도는 견딜 수 있을 듯했다.

먹을 것이 패티밖에 없는지라 영양실조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특별한 건강 상의 문제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앞으로 얼마를 파고 들어가야 하느냐는 것과, 이 고생을 하고 들어간 끝에 얻어지는 것이 과연 무엇일 것인가에 대한 것.

이 고생을 하고 들어갔는데 얻는 것이 고작 패티 대량 생성의 주문서라거나, 보잘것없는 무기 장비류 같은 것이라면, 수혁은 열 받아서 견디지 못할 확률이 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수혁이 쉽게 단념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 앞에 있을 정체불명의 보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보물상자를 여는 것처럼. 복권을 긁는 것처럼.

뭐가 나올까. 무엇이 수혁을 반겨줄까.

수혁의 눈이 살짝 빛났다.

‘3일. 거기까지만 노력해보고, 특별한 진척이 없다면 더 이상 미련을 갖는 것은 그만 두자.’

수혁은 결심했다. 그리고 굳은 눈빛으로 눈앞의 바위 벽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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