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 던전 (6)
깡—! 깡—!
곡괭이와 바위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낡은 가죽 장갑을 손에 낀 채 곡괭이로 바위를 내려치는 한 남자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남자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악착 같은 눈빛으로 자신이 내려치는 한 부위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수혁이었다.
“제기랄! 도대체 어디까지 파고 내려가야 되는 거야!”
퍼억—!
수혁의 곡괭이가 바위를 커다랗게 파고들었다. 바위는 쩌억하고 갈라져 둘로 쪼개졌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 쪼개진 바위를 더욱 잘게 쪼개 바깥으로 퍼내는 것이 또 일이라면 일이었다.
‘고블린 상점에 들러서 삽이나 수레 차, 마석등 같은 걸 사지 않았다면 정말로 곤란했겠는걸.’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고블린 상점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적어도 수혁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구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고블린 장로 라미롱의 호의 덕에 20%나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수혁에게는 좋은 점이었다.
‘덕분에 상당한 깊이를 파내려 간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어야지 원.’
그동안 수혁이 파내려 간 깊이도 꽤 되었다.
처음에는 곡괭이를 쥐는 법조차 어색해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던 수혁이지만, 아무래도 3일이나 뭔가를 하게 되면 뭐가 늘어도 느는 법이었다.
이제 수혁은 곡괭이를 쥐는 법도 알았고, 무게중심을 다루는 법도 알았다.
채광 마스터리의 숙련도와 위력 역시 상당히 올랐고, 곡괭이의 강도 역시도, 발현의 랭크가 미치지 못하는 탓인지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채광 마스터리의 위력은 10->19로 E등급. 곡괭이의 강도는 35->38의 D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바위 겉핥기나 다름 없던 채굴 속도도, 지금은 이 정도로 빨라진 상태.
다만 끝없이 나오는 흙과 바위의 향연 탓에, 수혁은 점점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진척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언제 끝날지 모를 작업이라는 건 상당히 지치는군.’
다행히도 노란 화살표가 계속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도중에 다른 방향으로 탈선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딱히 버팀목 같은 걸 세워 놓은 것이 아니기에, 수혁은 슬슬 자신이 지나온 길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원하는 곳에 도착해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을 얻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수혁의 곡괭이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걸렸다.
‘응? 이게 뭐지?’
수혁은 난데없이 자신의 곡괭이에 걸린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삽으로 적당히 흙을 퍼내 윤곽이 드러나자, 수혁은 그것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벽이다! 그것도 상당히 넓게 퍼져 있는 것 같은데.’
수혁은 직감적으로 이 벽 너머에 노란 화살표가 목표로 하는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노란 화살표는 이 벽을 뚫고 넘어가 있는 상태였으니까.
‘좋아. 그렇다면 이 벽을 깨면 이 짓도 끝이라는 거로군!’
신이 난 수혁은 온 힘을 다해 곡괭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수혁이 가진 전력으로 곡괭이를 휘둘렀음에도, 눈앞의 벽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꽃만을 흩뿌릴 뿐 흠집조차 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뭐, 뭐야! 큭, 그렇다면….”
수혁은 세 번 휘두르기 스킬을 사용했다.
체력을 5나 소모하기는 하지만, 위력 +2.5의 공격을 세 번이나 연이어 펼쳐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안 먹혔다.
“젠장, 이걸로도 안 되는 건가…. 이러면 남은 방법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벽을 따라 땅굴을 파서 벽 너머로 이어져 있는 출입구를 찾아내는 방법.
그러나 지금까지 한 이 과정을 또다시 반복해야 했으며, 기약이 없다는 점이 걸렸다. 게다가 갱도의 길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이 흙과 돌멩이를 운반해야 하는 거리와 갱도가 무너질 위험이 동시에 증가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아니면 틈새 같은 걸 찾아본다든가.”
이건 꽤 일리가 있어 보였다.
수혁은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벽 주변의 흙을 파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딱히 소득은 없었다. 이 벽에서는 틈새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수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벽만 넘으면 뭔가가 기다리고 있는데!
설마 막판에 이런 문제점이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발현 쿨타임 다 됐을 텐데. 일단은 발현부터 써주고 나서 생각할까.”
수혁은 일단 채광 마스터리에 발현 어빌리티를 사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곡괭이에 발현을 써 봤자 랭크 차이 때문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쿨타임은 아직 꽤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수현이 채광 마스터리에 발현을 시전하자, 하얀 빛이 생겨나 채광 마스터리의 시스템 창으로 흘러 들어간다.
-발현에 성공하였습니다.
운 좋게도 성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채광 마스터리의 등급이 E에서 D로 오릅니다. 등급 상승 보너스로 위력이 10 상승하며, 채광 시 일점 격파 효과가 적용됩니다.
수혁은 갑자기 생겨난 메시지에 놀랐다. 황급히 채광 마스터리 창을 열어 살펴보니, 채광 마스터리의 정보가 다음과 같이 바뀌어 있었다.
<마스터리 스킬: 채광>
등급 – D
위력 – 31
효과 – 일점 격파: 한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경우 위력이 점차적으로 상승. 단, 공격 지점에서 벗어날 경우 초기화.
설명 – 채광 시 채광의 효과를 올려주는 마스터리 스킬. 곡괭이를 착용한 상태에서 적용된다.
잠깐. 일단 진정하자.
수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우선 채광 마스터리의 위력은 19였고, 그것이 조금 전 21로 오르면서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실제로 이곳 서바이벌 월드의 등급은 수치가 존재하는 경우 그 수치에 따라 결정되며, F급은 1~5, E급은 5~20, D급은 20~80의 수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19였던 채광 마스터리의 위력이 21로 변하며 D등급이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발현 어빌리티의 위력이 올라 E등급이 되었을 때에는 이러한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었다.
‘마스터리 스킬이라서 특별한 것이거나. 아니면 스킬마다 위력이 확 상승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거나.’
둘 다 정답이었다. 원래 모든 스킬들은 사용함에 따라 숙련도가 상승하여 위력이 점차적으로 상승하며, 등급이 상승할 때마다 성능이 확 뛰어 오르는 경우가 있었다.
마스터리 스킬의 경우 이러한 점프 구간이 다른 스킬들에 비해 자주 있는 편이었고, 이번이 바로 그러한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지금의 상황에서 이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던 조금 전의 상황에서, 이것은 약간이나마 성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
“좋아. 채광 마스터리의 위력도 많이 올랐고, 일점 격파라는 효과도 생겼어. 잘만 하면 이 벽을 깨부수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
수혁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근육이 여기저기 쑤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수혁은 벽의 한 지점을 돌멩이로 쓱쓱 그어 X자 표시를 한 뒤, 그 중앙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곡괭이질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타격 지점 바로 옆쪽에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창에는 첫 타격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연속 타격 유효 범위와, 자신의 현 타격이 이 유효 범위에서 어느 방향, 어느 정도로 벗어났는지가 확대되어 표시되고 있었다.
연속 타격에 성공하면 상승하는 위력이 좌측 상단에 표시되었으며, 실패할 경우 상승 위력은 무효로 돌아갔다.
‘참 별 시스템이 다 있구나.’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X자의 한가운데를 노려서 공격했다고 생각한 수혁이었지만, 홀로그램의 표시에는 이 타격들이 전부 빗나가는 것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쩌다 운 좋게 3번까지가 한계였고, 나머지는 치면 칠수록 원래 타격했던 지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왔다.
“아 나 진짜! 이놈의 벽 뒤에 뭐가 있길래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또다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 뒤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거 아니면 진짜로 가만 안 둘 줄 알아!
“후우…. 일단은 진정하자.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게임이다 생각하고 차근차근 해나가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그랬다. 이것도 일종의 미니 게임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 게임의 종류가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드는, 미세 컨트롤 류의 게임이라는 점이지만.
어쨌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혁이 이러한 게임을 공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동시에 매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집중.’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이런 류의 게임은, 오로지 플레이어의 집중력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소였다.
물론 사용하는 도구가 마우스나 컨트롤러가 아닌 곡괭이이다 보니, 충분한 근력 역시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곡괭이를 휘둘러온 이상, 근력이 크게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을 터였다.
따라서 지금 수혁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집중. 집중뿐이었다.
수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수혁은 곡괭이를 휘둘렀다.
깡—! 깡—! 깡—! 까앙—!
성공. 성공. 빗나감. 성공. 성공. 성공. 빗나감. 빗나감….
몇 번인가의 성공과 실패가 서로 교차하며 위력이 올라갔다가, 팍 떨어지고는 했다.
그러나 수혁은 홀로그램 위에 펼쳐지는 그런 결과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수혁은 오로지 X자 위의 한 점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이외의 어떤 것에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곡괭이질은 계속되었다.
빗나감. 성공. 성공. 성공. 성공. 성공. 빗나감. 성공. 성공….
아까보다도 최고 성공 횟수가 더욱 증가해 있었다.
곡괭이질의 위력이 +1, +2, +4, +7, 계속 올라갔다.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아직은 이 벽을 뚫을 만한 위력이 나오지가 않았다.
수혁은 계속 휘둘렀다. 그리고 더, 더 집중했다.
모든 것을 잊고 한 점을 맞추는 것에만 모든 신경과 집중력을 쏟아 부었다.
성공. 성공. 성공. 성공. 성공. 성공. 성공. 성공….
+1, +2, +4, +7, +11, +17, +30, +45, +80!
아홉 번째의 연속 타격을 성공했을 때, 마침내 채광 마스터리의 위력과 일점 격파의 위력을 합쳐 100의 위력을 넘어섰다.
그러자 지금까지 벽에 금조차 가지 않던 것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눈앞의 벽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뚜, 뚫렸다!”
수혁은 무너져 내린 벽 너머에서 불어오는 후끈한 바람을 느꼈다.
그곳에는 마치 달궈진 것처럼 신비롭게 빛나는 주홍색의 대검이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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