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벨 마을의 퀘스트 (3)
수혁이 찾아간 다음 화살표는 마을 바깥 언덕에 있는 공동묘지였다. 이왕 외곽까지 온 거, 멀리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공동묘지에는 커다란 나무가 하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그 주변에 여기저기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잊혀진 비석들은 쓸쓸히 바랜 빛을 발하고, 아직 잊혀지지 않은 비석 앞에는 꺾인 꽃이 놓여져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노란 화살표는 그 수많은 비석들 중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풀과 덩굴이 얽혀 지독하게 더러워 보이는 비석이었다.
수혁이 다가가자, 어디선지 모를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인기척이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마침 낮이었고, 그래도 밤보다는 낮이 공동묘지를 조사하기에는 더 나을 테니까.
수혁은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비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혹시나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도 덩굴들이 너무 무성하게 얽혀 있어서 뭔가 발견하고자 해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은 덩굴들을 치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수혁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덩굴들을 손으로 잡아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덩굴들을 잡아 떼던 도중이었다.
비석 뒤편에, 거의 쌓여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덩굴들을 치우는 도중, 수혁의 눈앞에 새하얀 백골이 나타났다.
“헬로.”
“헉! 깜짝이야.”
만약 검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면 검을 내질렀을지도 몰랐다. 비석 뒤편에 기대어 덩굴 속에 숨어 있던 백골이, 안구가 있던 자리에 푸른빛을 빛내며 켈켈켈 웃었다.
“켈. 오랜만의 인간이로군. 괜찮으면 물이나 좀 가져다 주지 않겠나? 목이 너무 말라서 말이야.”
수혁은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인벤토리에서 물이 담긴 캡슐을 꺼내 백골에게 건네주었다. 백골이 캡슐을 받아 들어 이빨 사이로 들이 부었지만, 뼈만 남아 있는 갈비뼈 사이로 다 흘러나올 뿐이었다.
“켈켈켈. 왜 물을 마셨는데도 계속 목이 마르지. 아, 맞다. 나 스켈레톤이었지.”
스켈레톤이 자신의 머리를 콩, 때렸다.
뭐야 이건 또. 수혁은 어이 없다는 눈빛으로 스켈레톤을 쳐다보았다.
스켈레톤은 켈켈켈 웃으며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살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스켈레톤이란 정말이지 불편하군. 취하고 싶은데 술을 마셔도 취할 수가 없잖아? 아니, 아니지. 어쩌면 뼈에 스며들게 하면 취할 수 있을지도 몰라. 거기 인간. 괜찮으면 술을 좀 가져다 주지 않겠나?”
아무래도 헛소리가 전문인 듯했다.
수혁은 스켈레톤에게 왜 여기에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오, 상냥한 인간이로군! 켈켈. 사실은 나도 일어나서 걷고 싶기야 싶지. 적당한 나무통이나 보물 상자 속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모험가를 놀라게 하는 게 내 꿈이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걸을 수가 없지.”
“어째서지?”
“누가 내 정강이뼈 하나를 훔쳐가 버렸거든.”
스켈레톤은 자신의 사라져 버린 오른쪽 정강이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굵은 정강이뼈는 사라지고 가느다란 종아리뼈 하나만이 무릎과 발목을 연결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저런 걸로 걸으면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리 없다고 수혁은 생각했다.
“거 참 나쁜 놈이네.”
“켈켈켈. 아주 나쁜 놈이지. 그래서 말인데, 내 정강이뼈를 어딘가에서 구해다 주지 않겠나? 아니면 뭐 적당히 비슷한 뼈라도.”
그러자 수혁의 눈에 미션 창이 떠올랐다.
<서브 미션: 난처한 스켈레톤 돕기>
등급 – F
설명 – 어딘가 머리가 이상한 스켈레톤은 다리뼈가 없어져 곤란에 처해 있다. 난처해하는 스켈레톤을 위해 정강이뼈를 구해 와 그에게 건네주자.
성공 조건 – 스켈레톤의 정강이뼈를 대체할 뼈를 구해주기
실패 조건 – 없음
보상 – 없음
“…….”
미션 창을 살펴본 수혁은 약간 어이 없는 것을 느꼈다.
난데없이 어딘가에서 정강이뼈 같은 걸 구하는 미션 조건의 난이도는 뭐 그렇다고 쳤다. 보상 란에 뻔뻔하게도 ‘없음’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자 수혁은 이게 과연 반드시 깨야 하는 미션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 이 히든 피스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대략 짐작은 갔다.
‘조금 전 커다란 개가 물고 있던 뼈다귀가 꽤 컸었지. 아마 이 정강이에 끼워 넣을 수 있을 지도 몰라.’
아마도 그 뼈다귀를 구하는 것이 이 서브 미션에 연결되는 모양이었다.
미션 체인. 하나의 미션이 다음 미션으로 연결되고, 다음 미션은 다다음 미션으로 연결되는.
수혁이 발견한 것은 바로 그 미션 체인 중의 한가운데인 것이 분명했다.
이번 미션의 경우도 보상은 없지만, 스켈레톤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무언가의 스위치가 발동되는 종류의 것이리라.
수혁은 스켈레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켈켈켈. 그럼 부탁하지.”
스켈레톤이 푸른색의 안광을 빛내며 이빨을 딱딱거렸다.
스켈레톤과 헤어져 마을 쪽으로 돌아오며 수혁은 생각했다.
‘조금 전 개와 만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연이어 이어지는 미션이 있었으니, 그 개의 입을 열게 하는 미션도 근처 어딘가에 이을 확률이 크겠군.’
수혁은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까운 쪽의 노란 화살표로 이동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 않은 곳에서 그 개의 입을 열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흐아아압!!”
“끄으으응!!”
대로변 한구석에 마련된 테이블 위.
몇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쪽에 자리잡은 두 명의 마초맨이 서로 팔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둘 다 시뻘건 얼굴이 되어 힘을 쓰고 있었지만, 승부는 이미 한 쪽으로 기운 것처럼 보였다.
왼쪽에 앉은 깍두기 머리의 남자.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힘을 넣자, 마침내 상대편의 손등이 테이블 바닥에 닿고 말았다.
“으하하하! 이겼다!”
“크윽, 젠장!”
“오오오! 역시나 마을의 챔피언! 마크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인가!”
마크라 불리는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둘이 팔씨름을 벌이던 테이블 바로 옆에는 상당한 크기의 붉은 고기가 쌓여 있어, 팔씨름 대회의 우승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노란 화살표는 바로 그 고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 다음은 누가 나에게 도전할 것인가! 마을의 주민이라도 좋고 모험가라도 좋다! 나에게 이겨서 이 상등품의 고기를 가져가게 될 자는 그 누구인가!”
정육점의 주인인 마크는, 상품으로 내건 고기를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마크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고기는 마블링이 골고루 퍼져 있고 색상이 선명한 것이, 수혁이 보기에도 상당히 상등품의 고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때, 수혁의 머리에 길 가던 아낙네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그 개가 부잣집의 개였으며, 다른 이들이 준 밥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고 했었다.
실제로 수혁이 내민 패티에 그 개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상질의 고기라면… 어쩌면 그 개도 반응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좋아. 어떻게든 실마리를 잡은 듯했다.
수혁은 마크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겉보기에는 마크 쪽이 훨씬 힘이 세 보였다. 수혁은 어쨌거나 일단은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마크는 전형적인 체격 좋은 서양인다운 우람한 체격과 근육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팔씨름, 제가 한번 도전해 보죠.”
“으음?”
마크는 수혁의 몸을 쳐다보고는 살짝 비웃음을 지었다. 이 세계는 근육량에 따라 근력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표는 될 수 있었다.
마크가 보기에 수혁의 근력은 잘 해 봐야 5~6 정도. 그에 반해 자신의 근력 스텟은 무려 11! 다른 건 몰라도 근력만큼은 웬만한 모험가들에게 지지 않았다. 그러니 마크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어쨌든 도전이 왔으니 도전을 받아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물론 도전자는 처참하게 패배하여 창피를 당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었다.
“좋다. 그 도전, 받아들여주지!”
“마크,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라고!”
주변의 구경꾼들이 은근히 수혁을 비웃고 있었다. 수혁은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 위에 앉았다.
이윽고 둘은 팔씨름 자세로 손을 마주잡은 채 서로의 눈을 노려보았다. 심판 한 명이 마주잡은 손 위에 손을 얹어 팔꿈치의 각도가 서로에게 공정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조금 뒤, 심판의 신호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팔씨름이 시작되었다.
마크는 단숨에 게임을 끝낼 생각으로 자신의 우람한 팔뚝에 힘을 가했다.
적당히 봐주는 척 하며 놀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방법을 쓰자니 수혁의 팔뚝과 자신의 팔뚝의 크기가 너무 차이 났다.
괜히 다른 곳에서 온 모험가를 자극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분수를 재빨리 깨닫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수혁의 팔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팔 쪽이 밀리고 있는 모양새이지 않은가!
‘뭐, 뭐야! 이 작은 팔뚝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마크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팔이 오히려 서서히 테이블 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마크는 굴욕을 느꼈다.
한편, 수혁은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큭, 기껏해야 마을 사람이니 간단하게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러면 내 체면이 뭐가 되냐고!’
마을 사람 A를 이기는 건 이미 기정 사실이었다. 오히려 마을 사람 A에게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것이 굴욕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남아 있는 마정석을 근력에 조금 투자하는 수밖에.’
지금까지 발현 어빌리티 하나만을 믿고 달려왔지만, 수혁 자신의 생각보다도 다른 이를 압도하지 못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수혁의 스텟 총합 자체야 다른 이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았지만, 다른 이들은 스텟을 자신이 필요한 스텟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수혁이 사용해온 스텟은 8개의 스텟 중 근력, 민첩성, 체력, 물리저항, 마력이 전부였다. 초반에는 마법이 거의 사용되지 않으므로 법력과 지력, 마법저항 같은 스텟은 찍어 봐야 당장은 무의미했다.
따라서 스텟 총합은 적더라도 스텟 편중이 이루어진 경우라면, 특정 스텟에 한해 수혁의 스텟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후우, 굴욕이다!’
수혁은 머릿속으로 시스템 창을 조종해 근력 스텟에 마정석을 배분하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어떻게 위태위태하게 버티던 마크의 팔꿈치 각도가 눈에 띄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혁의 팔이 마크의 팔을 테이블에 완전히 찍어 눌렀다.
“모, 모험가 님 승리….”
심판은 스스로 보고도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수혁은 고개를 숙인 채 멘붕한 마크의 어깨를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크가 상품으로 제시한 것은 약 10kg 정도의 상등품 고기였다. 아이템 창으로 확인해 보니 그것은 확실했다.
수혁은 감탄하는 구경꾼들의 시선 속에서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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