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벨 마을의 퀘스트 (4)
수혁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당연히 맨 처음 만났던 그 개가 있는 곳이었다.
개는 조금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이긴 했지만, 여전히 그 뼈다귀를 입에 문 채 이빨로 갉고 있었다.
응. 역시나 저 정도라면 그 스켈레톤의 다리에 꼭 맞을 것 같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개에게 다가갔다.
개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수혁을 쳐다보며 낮게 그르렁거렸다.
수혁은 신경 쓰지 않고 개에게 다가가, 미리 잘라둔 고기 1kg 정도를 개 앞에 내밀었다.
개는 약간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고기 쪽으로 코를 향했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킁… 킁킁….”
“빨리 좀 처먹어라.”
개는 몇 번이고 고기에 코를 처박고 냄새를 맡았다. 여전히 수혁을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버림받았다고 했지. 어쩌면 사람이 있는 걸 꺼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수혁은 얌전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수혁은 근처 건물의 모퉁이에서 얼굴만 내밀어 개를 지켜보았다.
개는 수혁이 자리를 비키고도 몇 번이나 고기를 냄새 맡더니, 그제서야 입에 물고 있던 뼈다귀를 놓은 채 고기를 덥석, 입으로 물었다.
우적거리며 고기를 씹는 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혁은 깜짝 놀랐다. 지금 개는, 상등품의 고기를 먹으면서 자신을 버린 옛 주인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우우우!”
개는 서글프게 울부짖었다. 수혁은 살그머니 그런 개의 옆으로 다가가, 개가 지금껏 계속 입에 물고 있던 뼈다귀를 슬며시 빼 왔다.
개는 그런 수혁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처박고 고기를 뜯으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뒤돌아서 자리를 뜨는 수혁의 마음도 조금 짠했다.
어쨌든 다음으로 수혁은 스켈레톤이 있던 그 묘지로 향했다. 스켈레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비석에 기댄 채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을 바라보는 스켈레톤의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반가워, 친구. 그런데 조금 늦었네. 기다리느라 뼈가 다 삭아 없어지는 줄 알았지 뭐야. 히히.”
수혁이 이곳을 떠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능청이 심한 스켈레톤이었다.
아무튼 수혁은 다짜고짜 멍멍이가 물고 있던 다리뼈부터 내밀었다.
“오! 정말로 가져왔군. 줄 것 하나 없는 스켈레톤에게 이렇게 친절하다니, 자네 참 호구로군. 켈켈.”
스켈레톤이 켈켈거리며 웃었다. 수혁은 스켈레톤을 패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참았다. 이때쯤부터 수혁은 하나의 원칙을 세웠는데, 그것은 히든 피스는 결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히든 피스는 중요한 것.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
그런 히든 피스를 부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히든 독식자 수혁의 제1원칙이었다.
“그럼 어디 새 다리가 맞나 한번 볼까. 읏차!”
스켈레톤이 다리를 맞추자 마치 원래 다리뼈였던 것처럼 뼈가 맞아 들어갔다. 스켈레톤이 이빨을 딱딱거리며 기쁨을 표현했다.
“켈켈켈! 새 다리가 나타났다! 이제 나도 마음껏 걸을 수 있어!”
스켈레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난 채 덩실덩실 기쁨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뼈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뭐야, 정말로 이게 끝인 건가? 수혁이 그런 식으로 실망감을 안은 채 스켈레톤의 춤사위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푸른 빛으로 번쩍이던 스켈레톤의 안광이 순간 사라졌다. 그 대신, 스켈레톤의 두개골 안에서 푸른 구슬이 하나 떨어져 스켈레톤의 척추에 부딪쳤다.
스켈레톤과 수혁의 시선이 하나에 모아졌다.
스켈레톤은 조심스럽게 그 구슬을 주워 들었다.
“…이게 대체 뭐지?”
수혁은 어이가 없었다. 눈에서 빛이 나오길래 스켈레톤의 원래 눈빛인 줄 알았더니만, 그 눈빛은 사실 어떤 구슬로부터 나오는 거였고, 게다가 스켈레톤 자신조차 모르는 거였다.
뭔가 속은 듯한 기분이 들어 조금 짜증이 났다.
“이런 게 왜 내 머리통 안쪽에 들어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네. 아무튼 가질래? 내 다리뼈를 찾아 줬으니 이 정도는 선물해 주지.”
수혁은 낚아채듯 그 구슬을 받아갔다. 스켈레톤은 여전히 덩실덩실 춤을 추며 춤을 추고 있었다.
“자, 그러면 어디에 숨어 있어야 사람들을 놀래킬 수 있을까! 켈켈켈. 잘 있으라구, 친구!”
스켈레톤은 춤을 추며 마을 바깥의 어디론가 향해 곧 사라졌다.
수혁은 받아 든 푸른 구슬의 정보를 확인했다.
<청의 수호 구슬>
등급 – B
희귀도 – 유일
설명 – 푸른빛을 띈 작은 수정 구슬. 적합한 장치에 집어넣으면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줄 듯하다.
수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려 B등급! 희귀도 역시 유니크로, 자신의 라인플레임과 똑같았다.
그러나 수혁은 곧 그것이 전혀 쓸모 없음을 깨달았다. 이 아이템은 자신이 써먹으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미션이나 히든 피스로의 연결다리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 아이템이 어디에 쓰이느냐 하는 것인데….
수혁이 이 언덕 위 묘지에서 마을로 시선을 옮긴 순간, 수혁의 눈에 마을 주위를 둘러싸는 세 개의 낡은 탑이 들어왔다.
조금 전 수연과 함께 대로를 걸으며 마을 안의 몇몇 시설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안에 저 탑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옛날에는 이 마을이 마도사들의 마을이었다는 모양이었다. 그때 이 마을의 중앙에는 건물들 대신 높은 마탑이 세워져 있었고, 마탑의 주위에는 마탑을 수호하기 위한 세 개의 탑이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탑이 무너지고, 그 위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생겨나게 되었지만, 수호탑의 잔해만은 그대로 남아 사람들에게 위안을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수호탑이라고는 해도 이제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폐탑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혁은 조금 전 얻은 수호 구슬의 ‘수호’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아이템 설명에 ‘적합한 장치에 집어 넣으면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줄 듯하다’는 문구가 있는 걸 볼 때, 이 아이템은 지금은 기능을 멈춘 수호탑을 작동시키는 핵심 아이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했으면 망설일 것은 없었다. 수혁은 곧바로 세 개의 탑 중 가장 가까운 탑으로 향했다.
수혁은 탑의 입구 앞에 서서 탑을 올려다보았다. 벽을 이루는 낡은 벽돌 몇 개가 빠져 있었고, 담쟁이넝쿨이 벽을 타고 꼭대기까지 뻗어 있었다.
입구에는 출입금지의 표지가 붙은 쇠사슬이 걸려 있었지만, 그 쇠사슬 자체가 너무 낡아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수혁은 간단하게 쇠사슬을 넘어 탑의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탑의 가장자리를 따라 빙빙 나 있는 소용돌이 계단을 타고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는 꼬깔 모양의 지붕으로 덮여 있었고, 사방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뭔가 낡은 유리로 만들어진, 원형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장치가 하나 있었다.
수혁은 직감적으로 이것이 바로 그 장치라고 생각했다.
수혁은 장치를 조사해 가장자리 쪽에 구슬을 넣는 투입구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투입구의 부근은 조금 헐긴 했어도 푸른색의 도료가 입혀져 있었기에, 수혁은 이 푸른 구슬을 넣는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수혁은 그대로 구슬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구슬이 가운데의 오목한 곳으로 소용돌이를 그리며 장치 안의 여러 마력 회로를 건드렸다.
구슬이 지나가는 곳마다 환한 빛과 함께 장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오, 오오…!”
수혁은 신기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장치 안의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장치를 활성화한 푸른 구슬은, 마지막으로 중앙의 홈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조금 뒤, 막대한 에너지가 탑에 흘러 내부 구조를 변화시켰다.
낡은 벽돌로 된 벽이 변형되어 새로 지은 것처럼 변했고, 여기저기 부서진 부분이 복구되었다.
지붕 위에 은은한 빛이 떠올라 하늘로 솟아 오르고, 수혁이 작동시킨 장치 위에 빛이 떠올라 하나의 거대한 푸른 빛의 구체를 완성시켰다.
-청의 마도 수호탑을 활성화시켰습니다. 법력, 지력, 마력, 마법방어가 1씩 올랐습니다. 고대 마도 유물 지식이 1 오릅니다.
-현재 탐사 혹은 고고학 마스터리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고대 마도 유물 지식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탐사 혹은 고고학 마스터리를 습득할 경우 당신이 얻은 고대 마도 유물 지식이 적용될 것입니다.
-히든 미션이 생겼습니다.
<히든 미션: 잊혀진 고대의 수호탑>
등급 – D
설명 – 당신은 잊혀진 고대의 마도 수호탑 중 하나를 일깨웠습니다. 활성화된 수호탑은 수호탑 근처에 도달하는 모든 적들을 강력한 마법의 힘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적색과 녹색의 수호탑이 자신들의 활성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두 수호탑을 활성화시킬 방법을 찾아내십시오. 그러면 이 마을은 더 이상 고블린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 조건 – 고대 마도 수호탑 활성화 (1/3)
실패 조건 – 미션 1-D가 끝날 때까지 성공 조건 미달성
보상 – 미션 포인트 2, 탐사 스킬, 고대 유물 지식 2, 라이트닝 빔
또 모르는 것이 잔뜩이었다.
물론 매지컬 계열인 법력, 지력, 마력, 마법 저항이 1씩 오른 것은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수확이었다. 스텟이 올라서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수혁에게 지식이 없어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라이트닝 빔은 조금 좋아 보이긴 한데. 이 정도가 수혁의 감상이었다.
‘그건 그렇고 마을 안에 난잡하게 뻗어 있던 노란 화살표들은 바로 이것 때문에 존재했던 모양이로군. 다른 화살표들은 다른 탑을 활성화시키는 데 필요하겠지.’
그때, 바깥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크, 큰일이야! 생각보다 고블린들이 너무 많아!”
“고블린들이 마을 쪽으로 몰려간다! 막아!”
“젠장, 쉬고 있는 다른 팀들 빨리 다 불러! 이대로라면 마을이 부서진다!”
수혁이 알기로 지금 마을을 방어하는 것은 조강태의 팀도, 이주성의 팀도 아닌 제3의 팀이었다. 그들의 방어선이 지금 막 뚫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혁은 바로 옆에 있는 마력 구체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뒤, 마력 구체에서 거대한 마력의 에너지 탄이 발사되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콰앙—!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혁은 황급히 꼭대기의 가장자리로 이동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확인했다.
마을로 향하던 고블린 부대의 한 가운데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많은 고블린들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멀쩡한 고블린들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지금 일어난 이 사태에 얼이 빠져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수혁은 바로 옆에서 또다시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수호탑의 마력이 또다시 충전되려 하고 있었다.
‘…엄청난데.’
수혁은 다음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탑 아래로 향했다. 괜히 이곳에 있다가 자신의 히든 피스 관련 능력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혁은 다음의 수호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그 사이에 다른 곳에서는 수혁이 모르는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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