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16화 (16/78)

살인과 어빌리티 (1)

수혁이 한창 첫 번째 수호탑을 활성화시키고 두 번째 수호탑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히든 피스를 찾아 다닐 무렵….

조강태는 어쩐지 붉은 기가 감도는 눈을 빛내며, 한창 부하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첫 번째는 조금 전 수혁과 수연에게 세금으로 시비를 건 얍삽한 인상의 남자, 규학이었다.

“보고 드립니다. 이번에 마을에 새로운 녀석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건방지게도 이곳에서는 저희 조강태 파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하나 빼앗아가지고 왔읍죠. 헤헤헤.”

“하나라고? 이거 완전 웃긴 새끼네. 야, 미션 시작된 지 3일이 지났는데 3개는 받아 와야지, 하나밖에 못 받아오면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그, 그건….”

조강태의 붉은 눈빛이 규학의 온 몸을 난폭하게 훑었다. 규학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규학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모두는 조강태와 그의 붉은 눈빛을 두려워했다.

물론 이곳에 붉은 눈빛을 가진 것이 조강태뿐인 것은 아니었다.

조강태 외에도 붉은 빛이 감도는 눈빛을 가진 자들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곳에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자들이었다.

아이템이나 식량을 빼앗기 위해. 혹은 사람을 죽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페셜 마정석을 획득하기 위해.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밖에는 얻을 수 없는 어빌리티를 획득하기 위해서.

그리고 조강태는, 그중에서도 단연 제일 살인을 많이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니는 다음 전투 때 꼭 내 옆에 붙어 있어라. 알긋냐?”

“으윽…. 네, 넷!”

“똑바로 붙어 있어야 될 거야. 흐흐흐.”

조강태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규학은 검게 변한 얼굴로 죽을 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조강태의 어빌리티 때문이었다.

조강태가 받은 B급의 어빌리티. 동족 상잔.

동족의 피를 흡수하여 체력과 상처를 회복하고, 만약에 동족을 죽인다면 죽인 대상과 동급의 스페셜 마정석을 5개 획득한다.

현재 조강태가 미션 1-A부터 1-C를 거쳐 현재의 미션에 오기까지 마주친 인간들의 수는 모두 8명.

전부 조강태를 믿고 함께 다니다가, 조강태의 암습으로 전부 쓰러졌다.

그리하여 조강태는 현재 누구보다도 우월한 스텟을 바탕으로 모두의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규학을 데리고 다니려 하는 것은, 바로 이 동족 상잔의 ‘동족의 피를 흡수하여 체력과 상처를 회복하는’ 효과 때문.

조강태가 고블린 파이터와 일대일로 싸웠을 때에도, 사실은 조강태의 옆에 누군가가 있어서 계속 조강태에게 혈액을 보충해 주었었다.

그 덕에 조강태는 계속 소모된 체력과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고, 고블린 파이터를 일대일로 잡아내는 것이 가능했었다.

그 역할을, 이번에는 규학이 맡으라는 얘기였다.

규학이 이토록 두려움에 떠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크흐흐, 그보다도 넌 또 할 말이 뭐냐.”

조강태가 규학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네, 네! 사실은 마을의 수호탑 중 하나가 갑자기 저절로 작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수호탑? 그거 그냥 장식품 아니었냐?”

“그게…. 사실은 그렇지가 않더라는 모양입니다. 마을을 쳐들어오던 고블린들이 한 방에 나자빠지더라는데요….”

“참말로? 만약에 구라면 니는 진짜 뒤진다.”

“저, 정말입니다. 그때 마침 이종연 팀이 고블린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물어보셔도.”

“흐음….”

조강태가 생각에 빠졌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분명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들이 마을을 지키는 부담이 덜어지고, 자신들의 활동 반경을 조금 더 마을 바깥의 초원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조강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였다.

‘이주성… 오수연… 이 건방진 것들. 감히 튜토리얼에서 나를 엿 먹여?’

만약 자신이 그때 오수연을 죽였더라면 모두가 적어도 한 명씩은 죽여야 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실 조강태는 오히려 그 편이 더 재미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마을을 방어하는 데 녀석들의 힘이 어느 정도 필요해서 놔뒀지만…. 정말로 수호탑이 작동을 시작했다고 한다면 굳이 녀석들을 남겨둘 필요는 없지.’

조강태는 눈앞에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쭉 훑어보았다. 모두 다 자신처럼 탐욕과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자들.

“그러고 보니 요즘 식량 배급이 조금 줄어든 것 같군.”

“말도 마십쇼, 형님. 그 구피 녀석, 첫날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빵 푸는 양을 줄이고 있는데, 저희들이야 상관없겠지만 밑에 놈들은….”

“이런 식으로 가면 언젠가 우리가 먹을 빵도 부족해지는 때가 오겠지. 그렇지 않나?”

모두는 정신이 퍼뜩 들어 조강태를 쳐다보았다.

반쯤 올라간 조강태의 미소가 잔인하게 빛나고 있었다.

***

“냐오옹!”

“거기 서 이 녀석!”

마을의 골목길을 가로질러, 목걸이를 물고 있는 고양이와 수혁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양이는 빨랐다. 그리고 수혁은 고양이에 비해 너무나도 느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란 화살표가 계속해서 고양이가 물고 있는 목걸이를 가리키고 있어, 고양이의 위치를 놓칠 염려는 없다는 것.

하지만 고양이가 날렵한 몸으로 통과할 수 있는 곳을, 수혁은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날렵한 고양이를 붙잡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었다.

‘큭, 이 방법이 아닌가? 뭔가 유인이나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돈 바로 그때였다.

수혁의 눈에 손목을 잡힌 수연의 모습과, 그런 수연을 막무가내로 끌고 가려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는 거지?’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일단 빨리 와 보라고 하잖아!”

“꺄, 꺄악!”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수연이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수혁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인벤토리에서 병사의 검을 뽑아 들고는, 뚜벅뚜벅 걸어가 수연의 손목을 붙잡은 남자에게 들이밀었다.

“놔라.”

“뭐, 뭐야 너는!”

수연을 끌고 가려던 남자들은 총 세 명이었다.

수연의 손목을 붙잡은 남자가 갑자기 들이밀어진 검에 놀라 손목을 놓쳤다.

수혁은 재빨리 수연을 끌어들여 자신의 등 뒤로 돌렸다.

“고, 고마워요 수혁 씨….”

“인사는 나중에 하셔도 돼요. 그보다도….”

수혁은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오른쪽부터 광수, 혁태, 병규였다.

갑자기 검을 마주하자 놀랐지만, 이내 나타난 것이 수혁 혼자라는 것을 깨닫자 기세 등등한 표정들을 짓는다.

“아, 너는 튜토리얼 때 조강태 대장에게 대들었던 녀석이로군. 큭큭큭. 잘 됐어. 어차피 반항하는 녀석들은 뿌리를 뽑아 버린다고 하셨으니, 이 녀석도 데려가야겠군.”

“데려간다고? 나를?”

제일 앞에 나와 있던 혁태가 다짜고짜 수혁에게 레이피어를 찔러 왔다.

찌르기 공격은 수혁에게 있어 생소한 편이지만, 상대해본 적이 없지는 않았다. 제로가모 숲에서 노랑 괴물 왕벌들이 독침 찌르기 공격을 해 왔던 것이다.

수혁은 반 바퀴 몸을 틀어 레이피어를 피하고, 역으로 검을 내밀어 혁태의 손목을 가격했다.

혁태는 순간적으로 레이피어를 놓쳤다.

“이, 이 자식이! 감히 조강태 님의 팀원인 우리에게 반항을….”

“수연 씨. 잠시만 뒤돌아서 있을래요?”

“네, 네?”

수연은 수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혁의 평소 인상은 그렇게 차가운 편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차가운 수혁의 인상이 부각되어 보였다.

그러나 수혁은 원래 이런 녀석이었다. 평소에는 평범하지만, 냉정해져야 할 때는 한없이 냉정하다.

게다가 이곳에 와서 수혁의 그런 성격은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수연은 그런 수혁의 표정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3대 1이라는 불리한 상황인데도 수혁 쪽이 오히려 우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수연이 이런 상황인데도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요.”

“자, 잠시만요!”

수혁은 왜 그러느냐는 듯한 얼굴로 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연은 그 무표정한 얼굴이 약간 무서웠지만, 이 말은 꼭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혹시라도 죽이지는 마세요. 저 사람들이 불쌍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여기서 사람을 죽인 자들은 전부 뭔가 이상해졌거든요. 눈이 붉어지는 것 말고도 이것저것… 그러니까 죽이지는… 마세요.”

수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주 달려오는 광수의 다리를 향해 검을 내던졌다.

“끄아아악!!!”

갑자기 자신의 무기를 내던질 줄 몰랐던 광수의 허벅지에 그대로 검이 박혔다.

하지만 나머지 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양 방향으로부터 수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귀한 무기를 버렸으니 저 녀석은 이제 맨 손이다!

물론 착각이었다.

수혁은 인벤토리에 손을 넣어, 마치 인벤토리가 검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안에서 라인플레임을 꺼내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등장한 대검에 주춤하는 병규의 앞으로 다가가, 그대로 대검을 내리그었다.

병규는 당황했다. 그의 무기는 검. 회피하려고 했지만, 설마 저 정도로 거대한 대검을 가지고 저렇게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 병규는 검 면에 손을 받치고 막는 자세를 취했다.

초보자 용이기는 해도, 나름 강철로 만든 검이다. 어쩐지 있어 보이는 대검이긴 하지만, 막아내지 못할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역시 착각이었다.

라인플레임은 마치 나무 젓가락이라도 부수는 것처럼 너무나도 간단히 병규의 검을 부러뜨렸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 병규의 왼쪽 어깨부터 비스듬히 팔을 잘라냈다.

치지지직—!

살이 타는 소리.

“아아악! 아악! 내 팔—!”

쿵!

병규의 어깨를 부순 것도 모자라 힘이 남은 라인플레임이 바닥에 처박혔다.

혁태는 이 순간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수혁이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이 순간.

“죽어랏!”

혁태의 레이피어가 수혁의 등을 향해 바람을 가른다.

그러나 수혁은 어느새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욱—!

“….…!”

수혁이 내민 왼손이 레이피어에 찔렸다. 수혁의 손바닥으로부터 피가 철철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것으로 혁태의 레이피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수혁은 오른손을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혁태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퍽! 퍼억! 퍽! 퍽! 퍽—!

“자, 잠! 나... 크헉! 기, 기달…. 억!”

수혁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혁태의 코가 주저앉고, 눈이 시퍼렇게 부어 오를 때까지도 수혁의 주먹질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죽이면 안 된다는 수연의 말을 기억했는지, 이번에는 혁태의 배를 향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의 손바닥에 박힌 레이피어를 뽑아낸 수혁이 허리를 폈다.

“이제 돌아보셔도 됩니다.”

“….…!”

수연은 눈앞의 광경에 아찔해졌다.

정말로 이겼다. 이겨 버렸다.

물론 수혁 역시도 상처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에 비한다면 눈앞의 남자들은 완전히 전투 불능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 지금은 그보다도 수혁의 치료가 급선무였다.

수연은 수혁의 상처 입은 손바닥에 치료 마법을 걸어주었다.

“너무 잔인했나요?”

“…아니. 아니에요.”

수연은 굳은 표정으로 치료 마법에 전념했다.

어쩌면 이곳에 오기 전의 수연이었다면, 이런 장면을 보고 토악질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만큼 서바이벌 월드에서의 생활은 수연과,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강하시네요. 어디서 그렇게 강해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보다도 주성 아저씨가 위험해요! 방금 이 남자들이 반항하는 녀석들은 전부 뿌리를 뽑는다고 했으니 아마 아저씨도….”

“제가 가도록 하죠.”

“위험해요!”

수혁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어차피 이 녀석들의 말대로라면 자신도 노려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결판을 내는 편이 좋았다.

수혁의 그 굳은 눈빛을 보자 수연도 마음이 꺾였다.

“후…. 하긴 강하시니까요. 저는 일단 여기서 이분들 응급처치를 하고 따라갈게요. 혹시라도 죽어버리면 수혁 씨가 곤란할 테니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의 수연은 따라온다고 해도 발목만 잡을 확률이 컸다.

게다가 마지막에 혁태 녀석은 수혁이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패버렸기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죽을지도 몰랐다.

수혁 자신이야 이제 와서 살인 같은 것을 주저하지는 않았지만, 수연이 말한 붉은 눈이 된다는 것은 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이 녀석들이 상처 조금 치료 받는다고 해서 멀쩡하지 않은 몸으로 자신에게 위협이 될 리는 없으니, 지금 당장은 죽지 않게만 어떻게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이후에 이 녀석들이 대들지 않도록 좀 더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 정도로도 괜찮았다.

그렇게 생각한 수혁은 병사의 검과 라인플레임을 회수하여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수연에게 조강태의 아지트 위치를 듣고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수연은 그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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