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18화 (18/78)

살인과 어빌리티 (3)

조강태였던 괴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혁을 쳐다보았다.

수혁은 갑자기 엄청나게 커져 버린 조강태를 보며 생각했다.

‘저건 설마 조강태인가. 그러고 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죽어 있고… 설마 사람을 죽이면 괴물로 변하는 어빌리티라든가 하는 건가.’

사실은 조금 틀렸다.

13. 그것은 이 서바이벌 월드에서도 가장 금기시되는 숫자.

사람을 죽일 때마다 하나씩 쌓여가는 살기 스텟이 13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조강태는 인성을 잃고 괴물이 되었다. 이것은 서바이벌 월드의 시스템상으로 정해진 하나의 규칙.

그러나 동족 상잔이라는 어빌리티의 특성상 살인을 하지 않으면 그 특성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요는, 성능 자체는 B급이라도 실제로 따져보면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불완전한 어빌리티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규칙의 헛점을 이용하여 동족 상잔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노리는 방법도 어디엔가는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조강태는 그러한 방법을 깨닫기 전 너무 일찍 어빌리티를 얻게 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비참한 괴물으로 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어어어—“

검은 피부에 거대한 덩치. 그 가운데에 붉게 빛나는 두 눈.

괴물은 이제는 너무 단순해져 버린 머리로 생각한다.

죽인다. 죽인다. 자신이 멈출 때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부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괴물의 눈에 한가득 수혁의 모습이 들어왔다.

괴물은 수혁을 향해 그 거대한 팔을 들어올렸다.

콰앙—!

수혁은 괴물의 팔을 피해 몸을 굴리며 생각했다.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저건 절대로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한다면… 라인플레임의 스킬을 사용해도 되는 거 아닌가?’

지금까지 수혁은 자신이 상대하던 대상이 죽을까 봐 라인플레임의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 정도로 고유스킬: 라인플레임은 지금의 레벨에서는 너무나도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가 어디까지나 사람일 때의 이야기.

상대가 괴물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까지 손속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수혁은 결심을 굳혔다. 라인플레임을 들어, 괴물을 향해 돌렸다.

“라인플레임!”

거대한 불의 직선이 괴물을 향해 날아간다.

지글거리는 화염이 괴물의 얼굴을 태운다.

괴물은 화염에 휩싸인 채 멍청한 비명을 질렀다.

“그아으… 그아아아…!”

괴물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불타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붙잡은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수혁은 그런 괴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괴물의 목을 향해 마지막 자비를 내려주었다.

서걱—

“그억… 어그으….”

쿵—!

괴물의 목이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해서 조강태는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수혁의 앞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변질자 ‘조강태’를 처치하였습니다. 조강태가 보유하고 있던 모든 어빌리티를 획득합니다.

-어빌리티 ‘동족 상잔/B’, ‘물리 대미지 경감/E’, ‘정신 집중/D’, …등, 총 9개의 어빌리티를 획득하였습니다.

수혁은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어빌리티 획득이라니. 아까 조강태가 하던 말에 따르면, 어빌리티는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만 회득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런 것 치고 자신의 눈이 붉어지는 듯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괴물은, 어빌리티는 주면서도 사람을 죽인 효과는 나타내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행운이었다.

수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빌리티의 정보들을 살펴보았다.

‘호오, 다른 사람들의 어빌리티는 이런 식으로 생겼구나.’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던 탓에, 어빌리티 역시 어떤 식인지 그 양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약간 쇼핑하는 기분으로 그 어빌리티들을 살펴보았다.

동족 상잔. B등급. 동족의 피를 흡수하여 체력과 상처를 회복하며, 살해할 경우 스페셜 마정석 5개.

스페셜 마정석의 경우 물저, 마저 외의 스텟에 사용하면 일반 마정석의 3배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효과만은 엄청났다. 수혁은 그제서야 조강태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괴물이 된다는 것만은 수혁도 이해했다. 일단은 보류.

그 외의 어빌리티는, 자신이 받는 물리 대미지를 25% 감소시킨다거나, 집중하여 마력 회복 속도를 50% 상승시키는 등, 특정 조건에 대한 퍼센트 효과가 대부분이었다.

설마 이것도 발현이 들어가는 걸까?

마력이 회복된 이후에 실험해 본 결과는, 그렇지 않음. 아무래도 발현은 퍼센트 수치는 올려주지 못하는 듯했다. 다만, 수치가 존재하는 다른 어빌리티의 경우는 발현 효과가 적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러한 어빌리티를 살펴보고 나니, 자신의 발현 어빌리티가 얼마나 특이한 어빌리티인지를 알 수 있었다.

비록 확률적이기는 해도 거의 노 코스트로 원하는 대상의 모든 스텟을 뻥튀기 시켜주는 어빌리티는 이것밖에는 없을 터였다.

‘그건 그렇지만 아깝네. 이토록 많은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어 봤자 사용할 수 있는 건 단지 두 개라니. 게다가 미션이 끝날 때까지는 바꿀 수도 없다.’

수혁은 어빌리티 탭의 어빌리티들을 살펴보며 아쉬워했다.

현재 자신이 가진 10개의 어빌리티 중, 발동되고 있는 것은 ‘발현’과 조강태의 메인 어빌리티인 ‘동족 상잔’뿐.

그러나 어빌리티 중에는 단 하나만으로 엄청난 효과를 나타내는 것도 있었으며, 이러한 어빌리티들을 한번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너무 초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어빌리티는 한번에 두 개까지만 골라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조강태가 예상한 대로 어빌리티를 합성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넓은 서바이벌 월드의 어딘가에서 낮은 등급의 어빌리티끼리 합성하여 더 좋은 어빌리티를 만들 수 있었다.

아마 수혁이 얻은 이 어빌리티들은 그때가 되면 요긴하게 사용되리라.

“하여간 사람도 더럽게 많이 죽였구만. 뭐, 그 덕에 이쪽이 사람 하나 안 죽이고 이 정도의 어빌리티를 획득하게 된 거지만.”

수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제는 목이 잘린 조강태의 시체로 다가갔다.

시체 위에 드랍 아이템 창이 떠올라 있었다. 수혁은 그 아이템 창에 떠오른 아이템들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조강태가 생전 소지하고 있던 아이템들이 전부 드랍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거의 유일한 식량이라 할 수 있는 빵도 잔뜩 있었고, 단검이나 마체테 같은 날붙이와 장비류,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수혁은 일단 제일 요긴한 마정석과 돈부터 챙기기로 했다.

F급의 마정석만 해도 30개가 넘었고, E급의 마정석도 10개는 있었다. 스페셜 마정석도 조금 전 다섯 명을 살해했으므로 25개는 있었다. 거기에 조강태 자신으로부터 드랍된 D급의 스페셜 마정석까지!

‘새, 생각보다 많은데. 이걸 진짜 나 혼자 다 가져도 되는 건가.’

생각 이상의 전리품에 두려움마저 앞섰다.

그러나 조강태라고 하는 괴물을 죽인 것은 수혁이므로, 당연히 수혁이 가져도 되는 것들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플레이어를 죽임으로써 이 정도의 이득을 얻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의 패널티를 감수하고 플레이어를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수혁에게 운이 좋았던 점은, 조강태가 괴물로 변신한 상태인지라 살인에 의한 패널티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거 다 챙기고, 돈은 1000루페 정도인가. 생각보다 별로 많지가 않네. 그 다음은 아이템인가.’

아이템을 선별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전부를 습득하기에는 자신의 인벤토리 공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도움될 만한 알짜 아이템들만 선별해야 했다.

“음, 어디 보자. 쓸만한 게…. 일단 단검 정도는 하나 정도 있어서 나쁠 게 없지. 일단 챙기고. 마체테? 이건 버려. 체인 메일이라…. 어디서 이런 걸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필요 없지. 빵 같은 건 이쪽도 충분하니까. 일단 놔뒀다가 다른 사람들이나 먹으라고 할까.”

아이템의 분류가 착착 이루어졌다.

이것저것 아이템들을 살펴보는 도중, 수혁의 눈에 무언가가 띄었다.

“초강력 끈끈이 주문서…?”

흥미가 돋은 수혁이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기타 주문서: 초강력 끈끈이 주문서>

등급 – C

위력 – 180

남은 사용 횟수 – 2

설명 – 사용한 위치에 위력 180 이하의 대상을 10분간 잡아둘 수 있는 끈끈이를 설치한다.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어딘가에 쓸 수 있을 것 같은 주문서였다.

수혁은 일단 챙기기로 했다. 주문서이기에 부피를 적게 차지하는 점도 한 몫 했다.

“좋아. 대충 이 정도면 챙길 만한 건 대부분 챙긴 것 같고.”

잔뜩 득템을 했으므로 수혁은 기분이 좋았다.

한편, 수혁이 정리를 끝마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주성과 오수연이 도착했다. 나머지 일행들은 조강태의 팀원들을 한 곳에 모으고 감시하는 중이었다.

“자네, 조강태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조금 전 이쪽에서 커다란 불꽃이 솟아올랐는데….”

이주성은 괴물이 된 조강태의 시체를 맞이하고 말을 멈췄다.

조강태의 시체는 잘린 얼굴 부분에 아직까지도 드문드문 불꽃이 매달려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자네가 한 건가?”

“조강태가 괴물로 변했습니다. 제가 마무리를 지었죠.”

이주성은 할 말을 잃었다. 옆에 있는 오수연도 마찬가지였다.

“괴물로 변하다니…. 어째서.”

“아마도 사람을 많이 죽여서 그런 건가 봅니다.”

조강태의 어빌리티를 직접 확인한 수혁이 내린 결론이었다. 추측하건대 이게 가장 적절한 답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주성은 곧 납득했다.

“그렇군. 눈이 붉어지는 것은 몬스터로 변하는 징조였던 건가.”

이주성은 수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딱히 수혁에게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는 둥 상투적인 질문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는 배려심이 많은 남자였다.

“자네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텐가.”

“뭐, 별거 있겠습니까. 그냥 지금까지처럼 미션 깨고, 돌아다니고…. 아, 다만 사정이 있어서 함께 행동하는 건 조금 곤란할 것 같네요.”

“저,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

수연의 질문이었다. 수혁은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힐러시잖아요. 저하고만 있는 것보다 여럿과 함께 있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

수연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설령 이들이 자신의 노란 화살표를 이용할 마음이 없다 해도 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수혁은 아직 이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이들이 뭔가 수혁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행동을 보여서가 아니라, 굳이 이들을 신뢰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물론, 이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자신에게 손해가 없는 범위에서 이들을 도울 것이고, 또 그만큼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조금 전 수혁이 이들을 구했듯이.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를 꺼내라고 한다면, 수혁은 두 말할 것 없이 거절의 제스쳐를 꺼낼 것이 분명했다. 예를 들면 노란 화살표 같은 것 말이다.

게다가 사실 이번에 조강태와 싸워 이주성을 구한 것도, 조강태를 무찌르는 김에 이주성을 구한 것이지, 이주성을 구하기 위해 조강태와 싸운 것은 아니니까.

딱 그 정도의 거리.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적절했다.

“흠, 그렇군. 그렇다면 알겠네. 우리는 우리끼리 열심히 쳐들어오는 고블린들을 막아내겠네. 지금까지보다 더 강한 녀석들과 싸우게 되겠지만, 그만큼 더 좋은 보상들을 얻게 되겠지. 혹시라도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 자네가 우리들을 구했으니, 우리도 당연히 자네를 돕겠네.”

“그야 물론이죠.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는데 말이죠.”

“음? 무엇을 말인가?”

수혁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저랑 수연 씨한테 시비 걸었던 놈이 하나 있었는데. 수연 씨. 그 녀석 아직 안 죽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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