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벨카 유적지의 진실 (4)
최근 수혁의 발현 쿨타임은 상당히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자기 자신에게 수행할 수 있는 쿨타임도 예전에는 1분 정도에 불과했는데, 최근에는 3시간이 넘어갈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발현은 성공해야만 스텟이 꽤 오르고, 실패하면 거의 스텟이 오르지 않아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벨리온의 쿨타임 버프로 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되면서 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발현의 성공률과 스텟 상승률은 법력의 영향을 받고, 발현의 쿨타임은 지력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까지 쓸모 없는 스텟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지금까지는 발현 어빌리티가 무조건 마력에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다른 스텟을 소홀히 대했었다. 그래서 실제 발현의 위력에 비해 성공률이나 쿨타임이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마구잡이로 사용해온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발현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력뿐 아니라 법력과 지력 역시 어느 정도 올려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 발현 어빌리티를 생각한다면, 수혁의 현 상태는 마법과 꽤 궁합이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였다. 수혁은 마법보다는 몸을 쓰는 게 더 즐거운 타입이다. 애초에 마법을 사용해서 싸운다고 해도 쓸 수 있는 마법은 현재 라이트닝 빔 하나뿐이었다.
성장하는데 필요한 스텟은 매지컬 계열인데, 실제로 전투에 필요한 스텟은 피지컬 계열이다.
성장과 강함. 이 둘 사이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은 성장이겠지. 지금 나 정도의 강함이라면 맨손으로도 큐버 정도는 상대할 수 있으니까. 철벽 골렘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유적지 안의 녀석들을 생각하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지도 몰라.’
그렇게 정한 수혁은 일단 매지컬 계열인 법력, 지력, 마력에 남아 있던 마정석을 모조리 투자했다. 지금 투자해야 나중이 편했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 덕에 수혁은 지금까지의 배 이상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것이 가능했다.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발현을 사용해 자기 자신의 스텟을 강화하고, 남은 마력이 있으면 소드 마스터리나 황금 풍뎅이의 정수를 강화했다.
수혁은 점점 더 성장해 나갔고, 스텟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리하여 이 유적지에 들어와 벨리온과 만나게 된 지 7일째. 즉, 히든 미션 수행 기한의 마지막 날.
“어째 자네는 아무리 몬스터를 때려 잡아도 그리 강해지는 것 같지가 않군. 에휴. 이래서야 철벽 골렘의 털끝 하나나 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 그러고 보니 골렘은 털이 없던가.”
벨리온의 비아냥거림도 수혁에게는 별 다른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고맙게 생각되었다.
벨리온 덕분에 이 정도나 강해진 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수혁은 스텟창을 열어보았다.
<스테이터스>
이름 – 최수혁
계층 – 지하
미션 포인트 – 15
근력 – 89 민첩성 – 88 체력 – 88 물리저항 – 46(+26)
법력 – 113 지력 – 105 마력 – 122(+2) 마법저항 – 46(+23)
주요 스킬 – 세 번 휘두르기/E, 라이트닝 빔/E
어빌리티 – 1. 발현/C
2. 동족 상잔/B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이었다.
지금까지 바깥에서 힘들게 사냥해서 올린 스텟보다 이곳에서 쉬엄쉬엄 발현으로만 올린 스텟이 몇 배는 되었다.
저항을 제외한 모든 스텟이 C급에 도달한데다가, 저항 역시도 아이템과 합쳐 C급 제한인 80에 도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스텟에 비하자면 라인플레임이나 다른 주요 무기 등에 발현을 거는 것이 조금 소홀하긴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발현을 걸 쿨타임에 비해 수혁의 마력 회복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으니까.
포션이라도 있으면 유용하게 사용했으련만. 이전 고블린 상점으로부터 마나 포션을 사두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물론 그래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발현은 자신보다 랭크가 낮은 대상에 더 좋은 효과를 나타냈으므로, 발현을 쓸 수 있는 마력과 충분한 발현 위력만 있다면, 뒤쳐진 아이템들은 언제라도 제 성능을 끌어낼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스텟과 발현 자체의 위력!
요 며칠간 스스로의 스텟을 잔뜩 올린 수혁으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적지의 문이 닫힐 걸세. 그전에 철벽 골렘을 무찌르지 않으면 나 역시도 다시금 오랜 잠에 빠져들게 되겠지. 하지만 자네 정도의 강함으로 그 철벽 골렘을 이길 수 있을지 어떻지….”
“한번 가볼까요.”
“응? 뭐라고? 자네 돌았나?”
수혁은 씨익 웃으며 앞장 섰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걸었다.
“허 참! 뭐, 알겠네. 일단 가 보는 걸로 하지. 하지만 나는 도와줄 수 없으니 알고 있으라고!”
그야 물론이었다.
벨리온은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었다.
수혁은 쿨타임이 또다시 지난 것을 확인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발현 어빌리티를 시전했다.
***
마침내 철벽 골렘이 있다고 하는 보스 방 앞에 도착했다.
“부디 조심하게나.”
“조심하게는 무슨. 따라오시죠.”
빼먹을 거 다 빼먹었으니 이젠 예전처럼 깍듯이 대할 필요는 없었다. 벨리온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수혁의 뒤를 따랐다.
수혁은 망설임 없이 거대한 홀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조용한데.”
수혁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거대한 강철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었다.
수혁의 생각보다도 거대했다. 허리를 다 펴면 7m는 되어 보였다.
“…벨리온 씨.”
“뭔가, 모험가여.”
“설마 저런 걸 저 혼자서 상대하라고 한 겁니까?”
벨리온은 딴청을 피웠다. 도무지가 생각이 없는 녀석이 분명했다.
스스로도 유명 RPG 게임에서 한때 랭커로서 활동한 적 있는 수혁이 볼 때, 저 몬스터는 일명 레이드 몬스터였다.
혼자서 잡는 녀석이 아니다. 여러 명의 탱커, 딜러, 힐러가 힘을 합쳐 겨우겨우 잡아내는 것이 바로 저 레이드 몬스터인 것이다.
그런 녀석을 자신 혼자더러 잡으라고 하다니, 이 녀석도 정말로 어딘가가 맛이 갔음이 분명했다.
만약 수혁이 벨리온의 버프 덕에 이렇게나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수혁은 당장 미션을 포기하고 등을 돌려 이 방에서 나갔음이 분명했다.
물론 그것도 이미 늦은 모양이었지만.
쾅—!
수혁이 지나온 거대한 문이 저절로 닫혔다.
그리고 철벽 골렘의 눈이 스산한 노란 빛을 발하며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나 참. 그동안 엄청나게 강해졌으니까 망정이지.”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라인플레임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철벽 골렘의 주먹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노려보았다.
쿠웅—!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혁은 재빨리 피하며 골렘의 팔을 향해 라인플레임을 휘둘렀다. 이전보다 강렬한 주홍빛을 발하는 라인플레임이 골렘의 팔을 타격한다.
라인플레임의 타격은 어느 정도 골렘에게 대미지를 입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무 자르듯 간단하게 잘라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처했다. 그동안 무척이나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이 철벽 골렘에게는 약간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레이드 몬스터라지만… 이건 도저히 고블린이나 상대하는 이 미션에 존재할 만한 레벨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다른 녀석들은 이 녀석을 어떻게 상대하는 거지.’
수혁의 생각대로였다. 원래 이 철벽 골렘은 미션 1을 수행하는 플레이어들이 상대할 만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미션 1을 완전히 클리어한 뒤 강해진 플레이어가 다시금 미션 1을 선택해, 마을의 비밀을 샅샅이 밝혀 내고 나서, 3개의 수호탑을 모조리 활성화시킨 뒤, 파티를 맺고 유적을 조사해 비밀통로까지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도달할 수 있는 몬스터였던 것이다.
당연히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랭크로만 따져도 C급 중간은 갈 것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 이 철벽 골렘을 쓰러뜨리는 것과 튜토리얼 바로 직후인 지금 철벽 골렘을 무너뜨리는 것 사이에는 하나의 묘한 차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골렘을 쓰러뜨리고 나서 그 뒤에 무엇이 나오느냐 하는 점의 차이였다.
원래라면 철벽 골렘을 지금 여기에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서일까. 이 뒤에는 서바이벌 월드의 그 어느 곳에서도 얻기 힘든 희귀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에 수혁이 여기서 철벽 골렘을 쓰러뜨린다면 수혁은 그것들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수혁은 생각했다.
‘대미지는 분명 들어가고 있어. 하지만 생각보다 주먹의 스피드가 빠르다. 한 대라도 맞으면 진짜 정신 못 차리겠는데.’
골렘을 멈추기 위해 골렘의 몸체를 부숴야 할 테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부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한 두 대 때려서 골렘이 파괴되는 것도 아니고, 죽치고 골렘을 때리는 동안 골렘이 자신을 공격해올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역시 답은 라인플레임 스킬밖에 없었다.
수혁은 골렘을 향해 라인플레임을 겨누었다.
“라인플레임!”
화르륵—!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이 골렘의 얼굴을 향했다.
골렘은 두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골렘의 두 팔이 서서히 녹아 내리고 있었다.
“돼, 됐다! …어라?”
라인플레임의 지속 시간이 끝나고, 골렘의 두 팔이 내려졌다.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니, 강한 불꽃에 녹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골렘의 팔이 서서히 원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왜 갑자기 팔이 재생되는 거지?”
“음? 모르고 있었나? 고급의 골렘들은 대부분 자가 수복 능력을 가지고 있지. 골렘의 핵을 부수기 전까지 골렘은 자가 수복을 통해 자신의 원래 형상을 복구할 걸세.”
“왜 그걸 이제 말하는 겁니까!”
“그야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젠장. 벨리온의 뻔뻔함에 이가 갈리는 수혁이었다.
아무튼 그렇다면 골렘의 핵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수혁은 그 위치가 골렘의 머리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조금 전 라인플레임을 향했을 때 팔로 머리를 막을 이유가 없지.’
생각해 보면 상당히 그럴 듯했다.
상식적으로 핵이라면 가장 노리기 어려운 부분에 있는 게 정상이고, 7m나 되는 신장을 가진 이 골렘에게서 제일 노리기 힘든 부위는 가장 높이 있는 머리 부위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저 부위까지 도달하느냐 하는 점인데.
‘뭔가 저 골렘의 두 팔을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앗, 잠깐. 설마 그걸 여기에서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수혁은 뭔가를 떠올리고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수혁의 손에 하나의 주문서가 들려 나왔다. 초강력 끈끈이 주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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