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벨카 유적지의 진실 (6)
수혁의 한창 득템의 여운에서 빠져 있을 때였다.
벨리온이 낭떠러지를 넘어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흠, 잘해 주었네. 이로써 드디어 나도 동료들을 볼 면목이 조금은 서겠군.”
수혁이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벨리온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나벨카 유적지에 숨겨진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 아직 우리 퀴벨 마탑의 마도사들이 마탑에서 비밀스러운 연구를 하고 있었을 때라네.”
그것은 옛날, 마도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어느 날, 지드 학파의 마도사들이 퀴벨 마탑을 급습했다.
퀴벨 마탑의 마도사들은 어째서 그들이 자신들을 습격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싸워 그들을 막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지드 학파의 마도사들은 만반의 준비를 한 채 퀴벨 마탑을 습격하였으며, 갑작스럽게 적을 맞이하게 된 퀴벨 마탑은 그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당시 퀴벨 마탑의 수장이던 마가가 죽었다. 그때까지 살아 있던 마도사들은 어떻게든 남아 있는 연구 자료를 챙겨 이 나벨카 유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벨리온 역시 그러한 마도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배신자가 있었네. 그라하드라는 이름을 가진 못된 마도사였지. 그는 당시 우리가 개발하고 있던 마도 로봇들을 자신의 손으로 제어하고, 그것을 통해 한 편이던 우리 퀴벨 측의 마도사들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다네. 자네가 방금 해치운 그 철벽 골렘은, 그중에서도 우리 퀴벨의 마도사들을 가장 많이 죽인 마도 병기였지.”
벨리온은 그때를 회상하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저 철벽 골렘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마도사들이 희생되었던가!
“어쨌든 자네가 철벽 골렘을 해치워준 덕에 죽어간 동료 마도사들의 원혼은 잠재워졌을 것이네. 감사 인사를 표하지.”
“…? 그래서 결국 지드 학파라는 녀석들이 그쪽을 습격한 건 무언 때문이란 거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그때, 벨리온의 시선이 수혁이 들고 있는 마가의 서에 향했다.
벨리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수혁은 벨리온이 마가의 서를 탐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꽉 붙잡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그, 그건! 퀴벨 마탑의 수장이셨던 마가 님이 저술하신 책이 아닌가! 거기에는 마가 님이 생전에 연구하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네. 고대 문자를 해독할 수 없다면 읽을 수 없지만, 만약 그 고대 문자를 전부 되찾는다면 퀴벨 마탑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던 연구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있을 터!”
흐음. 수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마가의 서를 쳐다보았다.
결국 이 책 안에 퀴벨 마탑이 습격당한 이유가 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별로 관심은 없는데. 수혁은 머리를 가볍게 긁적였다.
“후우. 마지막으로 그 마가의 서에 담긴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다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기까지인 듯하군.”
벨리온의 반쯤 투명하던 몸체가, 점점 더 투명한 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온한 표정이 된 벨리온은 수혁의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수혁의 귓가에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히든 미션의 보상으로 미션 포인트 5, 디엘룬의 지팡이, 벨리온의 맹약을 얻었습니다.
<디엘룬의 지팡이>
등급 – D
희귀도 – 희귀
마법 공격력 – 73
옵션 – 물 속성 강화 12%
설명 – 물의 마법으로 이름을 떨친 디엘룬이 사용한 지팡이의 복제품. 물 속성을 사용하는 마법을 강화해준다.
<잊혀진 마도사 ‘벨리온’의 맹약>
등급 – A-
분류 – 맹약
우호도 – 50
설명 – 나벨카 유적지에 묶여 있던 마도사의 망령 벨리온과의 인연. 벨리온은 오랫동안 동료 마도사들을 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으며, 나벨카 유적지에 묶인 채 자신의 숙원을 이뤄줄 모험가를 기다렸다. 당신이 철벽 골렘을 쓰러뜨려 주었으므로, 이제 벨리온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동료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효과 – 1. 소환: 우호도 30을 소모하여 벨리온의 영혼을 소환. 이후 3시간마다 우호도 1씩 소모.
2. 벨리온의 버프: 벨리온이 근처에 있을 경우 마법의 쿨타임이 1/10로 줄어들며, 법력과 마력이 조금 상승.(영구 지속)
3. 망탑의 노래: 퀴벨 마탑의 망령들을 불러내어 짧은 시간 동안 광범위한 지역에 마도 폭격을 가한다.(우호도 100 소모)
예상대로의 성능에 수혁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디엘룬의 지팡이는 어차피 마가의 서가 있는 이상 필요가 없으므로 적당히 처분하면 좋을 것 같았고, 벨리온의 맹약은 성장 속도를 가속시켜 줄 벨리온의 버프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벨리온의 버프를 항상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호도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1씩 오른다. 우호도가 100이 차 있는 상태라면, 적어도 9일 동안은 벨리온을 소환한 채 곁에 두어 자신의 성장을 가속시킬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상당히 흡족했다. 그렇게 수혁이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저쪽의 메인 미션도 끝날 때가 거의 다 됐을 텐데. 미션은 이걸로 끝인가? 아니면 뭔가가 더 남아 있는 건가? 이 미션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지? 그 다음에는?’
그리고 수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미션이 갱신되었다.
-미션 1-D: ‘퀴벨 마을 방어전’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300루페, 미션 포인트 3, E급 스페셜 마정석 3개, E급 기본무기(선택 가능)를 얻었습니다. 원하는 종류의 무기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새로운 미션이 생겼습니다.
<미션 1-E: 라쿤 요새 공성전>
등급 – E
설명 – 당신의 모험대는 드디어 퀴벨 마을을 위협하는 고블린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용맹한 모험대장 존스 파커는 이 참에 위협이 될 만한 뿌리를 모조리 뽑고 싶어 합니다. 마침 오거스 던전 근처에 세력을 확장한 고블린들이 요새를 지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므로, 당신의 모험대장은 이를 공격하여 고블린들을 섬멸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고블린들의 요새를 무너뜨리십시오. 그리고 용맹한 휘말 왕국의 개척자로서의 정신을 보여주십시오!
성공 조건 – 라쿤 요새의 고블린 섬멸
실패 조건 – 모험대장의 사망
보상 – 500루페, 미션 포인트 3, E급 스페셜 마정석 5개
미션 1의 마지막 미션이 시작되었다.
***
이주성은 높이 솟은 요새의 벽을 올려다보며 난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저 벽을 부수기 위해 벌써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해 보았지만, 아무리 고블린이 만든 것이라고 하더라도 요새의 벽은 굳건했다. 아직까지 특별한 공성 도구가 없는 이들로서는, 저 벽을 부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 저 벽을 깨고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당장에 모험대장이 저 벽을 어떻게든 부수라고 성화였다.
난처했다. 쓸모도 없고 명령만 내리는 NPC인 모험대장을 제쳐두면, 현재 이 서른 남짓한 공성대를 이끄는 대장은 바로 이주성이었다.
바로 그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저 높이 솟은 요새를 뚫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만약 여기에 그 남자가 있었더라면….’
이주성은 남몰래 푸념했다. 거의 1주일 전부터, 그 남자는 이 퀴벨 마을로부터 사라져 지금까지 한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 남자는 강했다. 어째서, 어떻게 그렇게 강한 것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정말로 강했다.
사실, 묻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만 해도 자신들과 똑같았던 그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하게 변한 것인지. 그래서 자신 역시 그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은 짓이었지만, 이주성은 그랬다. 자기가 살아야 하니 남에게 미안한 소리 해 가며 들러 붙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도. 이주성은 결국 수혁에게 부담이 될 만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사람이 미련한 거지.’
알고 있다. 여기나 원래 있던 세계나 기본은 다르지 않다. 정글 같은 사회였다. 악착같이 달라붙어야 했고,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다.
자신은 그걸 못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렸다.
‘아이러니하군. 분명 이곳에 와서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들일 텐데도, 오히려 마음만은 이전 세계보다 더 편안한 듯한 기분이 든다. 하긴, 여기에는 적어도 구박하는 마누라나 눈치 주는 상사 같은 건 없으니까.’
이주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분명 힘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회 생활보다 나은 면조차 있었다.
회사에서 잘리기 전, 책상과 자기 부서와 일할 거리마저 잃은 채 흡연장에서 하염없이 담배만 피워대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그랬다.
우스웠다. 이런 자신이 모두를 이끌고 저 굳건한 요새를 점령할 수 있을까?
‘새삼 그 남자가 가진 힘이 부러워지는군. 나에게도 그 정도의 힘이 있었더라면…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을 내려 놓는 것이 가능할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이주성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때였다. 요새의 망루 위에서 몇 명의 고블린이 등장하여 인간들을 향해 무언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쿠아앗! 챠핫! 페에!”
“이챠앗! 에벳! 페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는 손동작이나 몸놀림으로부터 의미가 전달되어 왔다.
고블린들이 인간들을 상대로 도발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것들이 감히!”
화가 난 모험대장이 몸을 일으켰다. 또 귀찮아지겠군. 주위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들 돌격하라! 저 더럽고 냄새 나는 고블린들을 죽음이란 이름의 진창 속으로 처넣어 버리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휘말 왕국의 모험가인 그대들이라면 저런 쓰레기보다 못한 고블린들과 싸우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터!”
그때였다.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가 모험대장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모험대장은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채 기절하고 말았다.
수혁이었다.
“자, 자네! 이제서야 돌아오다니, 도대체 어디에서….”
“좀 그럴 일이 있었죠.”
수혁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모두가 황당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성큼성큼 고블린 요새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위험하네!”
“안 위험합니다.”
수혁이 라인플레임을 꺼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수혁은 시동어를 외쳤다.
“라인플레임!”
불꽃이 넘실거렸다. 처음에는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불길이, 나무로 만든 요새의 벽에 부딪쳐 그 크기를 더욱 키웠다.
물론 그냥 나무가 아니다. 화공에 대비한 기본적인 방열 처리는 해두었을 터.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라인플레임의 위력 앞에서는 소용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요새 한쪽 벽에 뻥 뚫린 구멍이 생겨나고 말았다.
이주성은 그런 수혁을 할 말을 잃은 채 쳐다보았다.
영웅. 이주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있었구나. 영웅이라는 존재가.
“자, 그럼 신나게 한바탕 뛰어 보죠.”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주성은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미션 1-E: ‘라쿤 요새 공성전’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미션 포인트 3, 500루페, E급 스페셜 마정석 5개를 얻었습니다.
-미션 1을 완료하였습니다. 살아남은 모든 인원이 거점으로 이동합니다.
온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뒤, 수혁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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