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25화 (25/78)

거점 정비 (1)

침대에서 눈을 뜬 수혁은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막힌 방 하나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컴퓨터.

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또 어디야?”

한숨을 자고 난 것처럼 온 몸이 노곤했다. 머리를 털어 졸음기를 날린 수혁은 우선 스테이터스부터 확인했다.

손목을 흔들어 시스템 창을 불러내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항목이 떠올라 있었다.

거점 항목.

구석에 수혁이 현재 가진 미션 포인트가 표시되어 있었고, 04:12:45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숫자는 제한 시간인 양 점차로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게다가 저 컴퓨터는 대체….’

수혁은 방 한구석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컴퓨터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사방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저 컴퓨터는 유일하게 무언가가 가능해 보이는 물체였다.

수혁은 컴퓨터로 다가갔다. 그러자 켜져 있는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존재하는 아이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션. 어빌리티 합성. 확장 및 유틸리티. 아바레카. 통신. 승급. 이렇게 총 6가지.

우선 수혁은 미션이라 나타난 아이콘을 더블클릭 했다.

그러자 1부터 999까지 나타나 있는 미션들의 목록이 나타나 수혁의 눈을 어지럽혔다.

미션 1에만 Clear 표시가 적혀 있었고, 미션의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나머지는 숫자와 소모되는 미션 포인트가 나와 있었고, 300 이후의 숫자부터는 수혁이 선택할 수 없도록 잠겨 있는 상태였다. 미션의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적정 랭크가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로 100번대, 200번대, 300번대로 끊어져서 난이도가 결정되었으며, 최고 등급은 B였다.

맨 밑에는 랜덤이라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소모 미션 포인트는 1이었다.

아마도 여기에서 미션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숫자는 시간 제한 같은 건가. 시간이 다 떨어지기 전에 미션을 선택해야 한다는….’

수혁은 다시 아까 그 창을 불러냈다. 손가락을 꾹 대고 있으니 설명 창이 나타났다.

이곳 ‘거점’에서의 시간은 오로지 미션 포인트를 소모하여야만 보낼 수 있으며, 미션 포인트 1당 12시간의 거주가 가능. 만약 미션 포인트가 다 떨어지면 게임 오버.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게임 오버라니. 만약 미션을 깨지 않고 이곳에서 한가롭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미션 포인트가 바닥나 게임 오버를 당한다는 이야기였다.

다행히 수혁에게는 지금 20의 미션 포인트가 존재했다. 아무것도 없는 지루함을 감수하면 10일 정도는 이대로 보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안심하고 마음을 풀었다가는 금세 10일이 흘러 게임 오버 당하고 말 터였다.

아직까지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조금은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수혁의 의문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러면 미션 1만 계속해서 깨면 이곳에서 계속 지내는 게 가능한 거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미션 창의 설명으로는, 한번 깬 미션에 대해서는 또다시 미션 포인트를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즉, 미션 1을 다시 깬다고 하더라도 아직 수혁이 깨지 못한 새로운 히든 미션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미션 포인트는 받을 수가 없었다.

게임 오버를 당하지 않으려면 계속 새로운 미션을 깨 나가야만 했다.

‘다행히 아직 내가 깰 수 있는 미션의 수는 꽤 남아 있다. 당분간 미션 포인트가 모자라서 곤란할 일은 없겠군.’

미션 1에 작게 빨간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었고, 나머지에는 각각 크고 작은 노란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히든 피스의 중요도나 난이도 같은 게 나타나 있는 듯했다.

수혁은 일단 미션에 대해서는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다른 항목들을 살펴 보기로 했다.

어빌리티 합성.

‘역시. 이곳에서 어빌리티를 합쳐 새로운 어빌리티를 만들 수가 있다. 다만 미션 포인트를 사용해야 되는 것이 조금 걸리는군. 지금은 특별히 대단한 어빌리티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은 보류.’

그 다음은 확장 및 유틸리티였지만, 이 부분은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나중에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은 아바레카.

‘아바레카…. 지상 계층으로 올라간 뒤 미션 포인트를 내고 특정 미션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나와 있다. 지상 계층이라… 아, 스테이터스에 표시되어 있던 계층에 대해서 말하는 건가.’

수혁은 자신의 스테이터스에 지하 계층이라 표시된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어지는 느낌에 승급 아이콘을 선택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100의 미션 포인트를 모아서 지상 계층으로의 승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이용할 수 없지만, 아마 언젠가는 수혁이 이용해야 할 기능이리라. 수혁은 일단 이 부분을 기억에 집어 넣기로 하고, 통신 아이콘으로 마우스를 가져갔다.

통신 항목은, 일종의 메신저 같은 것이었다. 열어보니, 전 미션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목록이 한쪽에 떠 있고, 그 중에서 이주성과 오수연의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시지는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안부를 묻는다든지, 자신들은 지금부터 파티를 맺고 미션을 시작하니 혹시라도 괜찮으면 같이 미션을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물론 수혁은 이제부터도 계속 히든 피스를 찾아 다녀야 하므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수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만약 그들이 이 서바이벌 월드를 잘 헤쳐나갈 수 있다면, 언젠가 수혁과도 웃음 지으며 만날 날이 있을 터였다. 수혁은 마음 속으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무튼 이제 마지막으로 확장 및 유틸리티 항목을 살펴볼 차례였다.

수혁은 확장 및 유틸리티 항목을 더블클릭 했다. 그러자 방의 추가 혹은 시설의 설치, 인스턴스 던전 오픈, 집사 및 메이드 고용 등의 세부 항목이 출현했다.

‘방 하나만 놓여 있길래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로군. 거점이라는 이름에서 볼 때 이곳은 미션 사이사이마다 내가 지낼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것이 틀림없어.’

수혁은 일단 방의 확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은 다른 공간이 있어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창문조차 없었던 것이다.

‘작은 방이 1000루페, 큰 방은 10000루페. 더 큰 방은 10만 루페 이상…. 지금 나한테는 15000루페밖에는 없는데.’

결국 작은 방 하나만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방 추가를 선택하자, 지금 이 방의 한쪽이 변형되며 새로운 문 하나가 나타났다.

수혁은 잠깐 몸을 옮겨 그 문을 열어보았다.

짧은 복도가 있었고, 그 끝에 방 하나가 존재했다.

방문을 여니, 수혁이 있는 방보다는 조금 더 큰 빈 방 하나가 있었다.

물론 창문이나 문 같은 건 따로 나타나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거점에서 다른 곳으로 나가는 것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수혁은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시설 항목을 살펴보았다.

‘잡화 상점 5000루페. 무기 상점 1만 루페. 침실 1만 루페. 보물 창고 5만 루페.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시설도 있고. 말하자면 이곳을 미션 사이사이에 있는 정비소로 만들 수 있는 거로군.’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스턴스 던전 항목을 살펴 보았다. 설치할 시설에 대해서는 일단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인스턴스 던전. 돈을 주고 구입하여야 하며, 이곳에서는 미션을 깨면서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더 안정적으로 마정석을 획득할 수 있다. 단, 이용하는 동안은 거점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미션 포인트가 지속적으로 소모된다.’

말하자면 개인 수련 공간이었다. 다음 미션에 도전하고 싶은데 능력에 자신이 없다면 이용할 만한 기능이었다.

마지막으로 집사 및 메이드의 고용에 대해.

‘집사 및 메이드를 고용하여 거점에서의 잡일을 시킬 수 있음. 그건 그렇지만 이거 가격이….’

수혁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제일 싼 집사나 메이드라도 30만 루페 정도이고, 100만 루페는 기본에 1000만 단위를 넘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비싸다. 수혁으로서는 당분간 결코 지불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하아. 남 부려 먹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하긴, 이 알 수 없는 세계에 떨어져서는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배가 부른 거지. 내 주제에 집사나 메이드는 무슨. 그냥 빵이나 먹자.’

패티도 이제는 다 떨어졌다.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생각만 해도 속이 니글거리는 보리빵을 꺼내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이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 먹고는 살아야지.

그런 그때였다. 수혁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수혁이 켜놓은 확장 및 유틸리티 창 위에, 자그마한 노란 화살표가 찍혀 있었다.

→←→→←↑↓↑↑↓

‘…뭐지? 이건?’

노란 화살표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노란 화살표는 히든 피스가 있는 방향을 가리킬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제각기 가리키는 방향도 다른데다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한참을 들여다보던 수혁이, 마침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키보드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옛날에 격투 게임에서 히든 캐릭을 고를 때의 커맨드처럼 생겼는데. 설마….’

수혁은 키보드의 방향키를 눌러 노란 화살표가 나타내는 커맨드를 입력했다.

그러자 치킹—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뭐가 바뀐 거지?

수혁은 뭔가 달라진 것이 있는지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작했다. 방 확장, 없음. 시설 추가, 없음. 인스턴스 던전, 없음. 그리고 메이드 및 집사 고용… 어, 어라?

수혁은 목록의 맨 위에 나타난 항목을 보고 눈을 끔뻑거렸다.

있었다. 메이드. 1루페짜리.

으응? 1루페라고? 다른 녀석들은 죄다 수십만 수백만 루페씩이나 하는데 어째서 이 녀석만….

수혁은 긴가민가하는 기분으로 1루페짜리 메이드를 선택했다.

메이드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

그러자 수혁의 뒤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는 것과 함께 한 메이드 여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혁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색의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어쩐지 차분한 눈빛의 메이드 하나가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메이드 레밀리아라고 합니다. 부디 원하는 명령을 내려주시길.”

수혁은 할 말을 잃은 채 레밀리아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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