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 정비 (2)
“메이드라고? 진짜 메이드인 건가?”
“예,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수혁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레밀리아를 노려보았다.
겉모습만 보기에는 분명 각종 매체에서 나와 주인님을 보좌하는 메이드의 모습과 일치했다.
하지만 단 1루페로 소환할 수 있었던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어딘가에 하자가 있어서 1루페라는 싼 가격에 등장한 것은 아닐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거나.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레밀리아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런 수혁의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레밀리아는 관찰 당하는 이 상황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수혁에게 제안했다.
“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제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주인님의 스테이터스 창을 제 몸에 길게 접촉시키면 저의 스테이터스 정보가 나타날 것입니다.”
타인의 스테이터스 정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수혁은 레밀리아의 제안대로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그것을 레밀리아의 팔에 3초간 통과시켰다.
그러자 레밀리아의 스테이터스 정보가 나타났다.
<스테이터스>
이름 – 레밀리아
직업 – 메이드
근력 – 10 민첩성 – 10 체력 – 10 물리저항 – 5
법력 – 10 지력 – 10 마력 – 10 마법저항 – 5
주요 스킬 – 장사/A, 포션 제조/B, 정령 소환/C
어빌리티 – 1. 거점 관리/SS+
2. 절대 복종/N
원래는 요리, 빨래, 청소 등 다양한 스킬들이 존재했지만, 주요 스킬은 사용 빈도가 높은 3개까지만 표시되었다.
우선 스테이터스 항목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거점 관리라는 어빌리티.
‘무슨 등급이 SS+나 되지? 아무리 눈에 보이는 등급보다야 성능이 중요하다지만 이 정도 등급이면… 기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겠는데.’
수혁이 보기에 레밀리아가 가진 스킬들은 상당히 무난해 보였다. 다른 메이드들과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만, 일단은 합격점. 혹은 그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빌리티.
수혁은 두근거리는 것을 억누르며 레밀리아의 어빌리티 창을 열어 보기로 했다.
<어빌리티: 거점 관리>
등급 – SS+
설명 – 거점 내 모든 오브젝트에 대하여 관리자 권한을 가진다. 모든 오브젝트를 최적의 효율을 갖추도록 운영한다.
<어빌리티: 절대 복종>
등급 – None
마스터 – 최수혁
설명 – 마스터로 인식된 자의 모든 명령에 절대로 복종한다. 마스터로 인식된 자에 대해 일체의 살인, 상해 및 기타 해를 입히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일단 수혁이 가장 기대했던 거점 관리라는 어빌리티는, 생각보다는 수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어빌리티의 기본 기능은, 수혁으로부터 거점의 확장 및 시설 설치 등에 대한 권한을 이양 받아 거점을 효율적으로 키우는 것.
무엇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거점을 어떻게 관리해야 효율적인지 알지 못하는 수혁에게 있어서는 일단 상당히 반가운 어빌리티였다.
골치 아프게 거점에 대한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메이드가 스스로 알아서 거점을 확장시켜준다.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하는 수혁으로서는 상당히 흡족한 어빌리티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정도의 성능만을 가지고서 SS+라는 등급을 칭하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들이 직접 거점을 확장하거나 시설을 설치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메이드나 집사 역시 거점의 관리 및 유지 정도는 알아서 할 테니까.
‘하긴, 지금까지는 계속 대박이 나왔으니까. 가끔씩은 생각보다 안 좋은 게 나올 때도 있는 거지.’
고개를 끄덕여 납득한 수혁은 그 다음의 어빌리티를 살펴 보기로 했다.
절대 복종. 등급은 없음.
마스터로 인식된 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마스터에게 해를 입힐 수 없게 되는 어빌리티.
어찌 보면 능력이라기보다는 제한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메이드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나쁠 것은 없었다. 다소 편하게 대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불만을 드러내거나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니까.
‘그건 그렇고 진짜로 내가 하는 말은 뭐든지 하는 말을 듣는다는 건가.’
흥미가 생긴 수혁은 레밀리아에게 물었다.
“어빌리티에 절대 복종이라는 게 있던데. 그렇다면 내가 무슨 명령을 해도 그 명령을 따른다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죽으라는 명령을 하면 그것도 듣겠네?”
“물론입니다.”
그러면서 레밀리아는 메이드 복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단검을 꺼내,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아 자신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하얀 목에 맞닿은 단검의 뾰족함이 서늘했다.
“언제든지 분부만 내려주시길. 주인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아니. 이제 그건 됐으니까 그 단검은 그만 내려놔.”
레밀리아는 그제서야 단검을 내려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레밀리아의 눈빛에는 흔들림 한 조각 비치지 않았다.
수혁은 오히려 자신이 당황한 것을 깨달았다. 눈앞의 메이드는 정말로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수혁이 그 상태에서 죽으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을 찔렀을 것이다.
‘일단 고용비가 1루페인 것치고는 메이드로서 문제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다른 메이드들보다도 더 능력이 좋은 거 아닌가?’
궁금증이 생긴 수혁은 다시 컴퓨터로 돌아가 집사 및 메이드의 카탈로그를 확인하였다.
스텟이야 뭐 다들 고만고만하다 치고, 중요한 것은 보유 스킬과 어빌리티.
메이드 혹은 집사답게 청소나 요리 등 기본적인 스킬들은 대부분이 가지고 있었고, 각 메이드마다 무기 제작이나 마도구 연구 등 각자의 특색에 맞도록 마스터의 미션 수행에 보조가 될 만한 스킬이나 어빌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어빌리티의 조합은 대체로 가사 관련이 한 개, 전투 보조 관련이 한 개로 두 개가 짝지어져 있는 듯했다.
그런 면에서 레밀리아의 거점 관리와 절대 복종이라고 하는 어빌리티는 다른 메이드 및 집사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조합임은 분명했다.
‘히든 메이드라서 그런 건가. 꽤나 특이한 어빌리티 구성이로군. 개인적으로는 전투 보조 관련 어빌리티가 붙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나 지금 이 상태가 불만인 것은 아니었다.
레밀리아를 고용했다고 해서 다른 메이드를 고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닌데다가, 무엇보다도 그녀의 고용비는 단돈 1루페였으니까!
굳이 만족이냐 불만이냐를 따지게 된다면, 수혁의 마음은 단연코 만족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결단코 대만족이었다.
‘단돈 1루페로! 이런 쓸만한 메이드를 얻어내다니! 흐흐흐, 대박이다!’
수혁은 다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레밀리아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대망의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배고파. 어떻게 맛있는 음식 좀 만들어 봐.”
***
수혁은 오랜만에 빵빵해진 배를 만족스럽게 쓰다듬었다. 레밀리아가 그런 수혁을 뒤에서 보좌하고 있었다.
“레밀리아 너는 안 먹어? 아무리 메이드라도 배는 고플 텐데.”
“주인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무엇이라도 달게 먹겠습니다.”
“네가 해준 건 지금 다 먹어 버렸는데… 괜찮으면 보리빵이라도 먹을래?”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빵을 꺼내 레밀리아에게 건넸다.
레밀리아는 그 빵을 소중히 두 손으로 들어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수혁이 왜 지금 안 먹냐고 물으니, 주인님 앞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만 좋은 거 먹어서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레밀리아는 언제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부담이 느껴질 정도의 극진한 대접인걸. 마치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이야.’
수혁은 지금 자신이 앉아 있는 4인용의 작은 테이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현재, 수혁의 거점은 레밀리아의 요리가 가능하도록 어느 정도의 확장과 시설의 설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5000루페의 식재료 상점이 설치되었고, 방 확장비를 포함해 4000루페의 부엌과 식당이 설치되었다. 조리 설비와 식기류, 음식 재료를 사느라 1500루페가 소모되었으며, 500루페를 들여 쓰레기 투입구를 설치하였다.
이로 인해 현재 수혁의 수중에는 3000루페밖에는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요리 마스터리가 C등급이었던가. 별로 들어간 재료도 없는 것 같은데 상당히 맛있네. 게다가 체력과 상처를 약간 치유해주기도 한다는 모양이고.’
요리 마스터리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만든 음식에 부가 효과가 추가된다. 미션에는 메이드를 데리고 갈 수 없지만, 메이드가 요리한 음식은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메이드의 요리 등급이 높을수록 마스터에게는 이득이었다.
“아무튼 잘 먹었어. 그건 그렇고 재료값이 조금 비싸네. 지금 한 끼야 그렇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음식을 얼마나 만들지 알 수 없으니까. 조금 부담되는걸.”
“그거라면 해결 방법이 하나 존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해드릴까 합니다만.”
“그야 물론이지. 설명해 봐.”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러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레밀리아는 공손한 태도로 수혁에게 밭이라는 것의 존재와, 그로부터 작물을 재배하여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밭이라고? 태양도 없는 이 닫힌 공간에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건가.”
“예. 실제로는 바깥의 적절한 공간을 이 거점에 연결하는 형태가 됩니다.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 작물의 재배가 가능하지요. 게다가 이 거점에서의 밭은 바깥 세상보다 생장 사이클이 빠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작물을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수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확실히, 생산할 수만 있다면 사는 것보다는 그쪽이 싸게 먹히기는 하겠군.
“네. 게다가 높은 등급의 밭에서는 약용 작물 또한 기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 포션 제조 스킬을 이용해서 포션을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포션! 수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까지는 몬스터들과 싸울 때는 포션 없이 싸워 왔었다. 고블린 상점에서 팔기는 하지만, 은근히 비싸기도 한데다가, 수혁이 선택한 미션에 고블린 상점이 반드시 존재하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만약에 이곳에서 포션을 조달해 갈 수만 있다면, 비교적 싼 가격으로 전투 지속 능력을 높여주는 포션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나쁘지 않군. 하지만 밭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할 텐데. 얼마 정도가 필요하지?”
“가장 등급이 낮은 밭은 2000루페가 필요합니다. 포션을 만들 정도의 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약 2만 루페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지금은 3000루페밖에 없는데. 어딘가 돈을 확보할 수 있을 만한 거리가 없으려나….”
물론 지금 당장 미션을 시작하면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그전에 거점을 어느 정도는 정상 궤도에 올려 놓고 싶은 것이 수혁의 마음이었다.
돈. 돈이라.
그때, 수혁의 눈에 복도 벽을 뚫고 지나가는 희미한 노란 화살표들이 보였다.
수혁은 눈을 좁혔다.
수혁은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고, 슬며시 고블린 광부의 곡괭이를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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