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션 (1)
“쿠위이익!”
세 뿔 멧돼지가 콧잔등에 난 세 번째의 뿔을 앞세워 수혁에게 돌격하였다.
수혁은 피하는 척 페이크로 멧돼지가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도록 유도하고는, 그 등 뒤에 라인플레임을 꽂아 넣었다.
“쿠익! 쿠익! 쿠이이이….”
마침내 마지막 멧돼지마저 처리하자 미션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미션을 완료하였습니다. D등급 밭이 해금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밭을 설치하시겠습니까?(비용 8000루페 소모)
수혁은 점차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멧돼지를 쳐다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녀석들을 요리해서 먹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보다시피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시체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요리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F등급의 밭 옆에 새로운 밭이 생겨나 그 면적을 넓히기 시작했다.
마침내 D등급의 밭이 완성되었다. F등급의 밭에 비하면 약 절반 정도의 크기였지만, 그 대신 더 좋은 작물들을 심는 것이 가능했다.
“역시나 주인님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이 밭을 이용하여 포션의 재료가 될 작물을 길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레밀리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관리자 권한을 이용하여 수혁 대신 홀로그램 패널을 조작한다.
한동안 이것저것을 건드리던 레밀리아가 손을 멈추자, 밭의 이랑으로부터 앙증맞은 새싹들이 쏘옥, 고개를 내밀었다.
“현재 두랄초라고 하는 체력 및 상처 회복 효과가 있는 약초를 재배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7일이 지나게 되면 약초를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제가 가진 포션 제조 스킬과 약간의 도구를 이용하여 본격적인 포션 제조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됩니다.”
“이 포션은 체력하고 상처 치료만 가능한 거지? 마력 포션은 제조할 수 없는 건가?”
“죄송합니다. 마력 포션에 필요한 재료들은 C등급 이상의 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기에… 주인님의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없어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레밀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수혁은 그다지 레밀리아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기반은 닦아 놓은 듯한데.’
수혁이 따로 조사해본 결과, 수혁이 지금 당장 이 거점에 대해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바로 생산 시설이었다.
이 거점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들은, 침실이나 부엌, 거실 등 거주 관련 시설과 상점, 보물 창고 등의 유틸리티 시설. 유흥시설. 그리고 밭이나 낚시터 등의 생산 시설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생산 시설은 자신이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계속해서 수혁의 수입을 늘려줄 테니, 미래의 일을 고려하자면 당연히 생산 시설을 먼저 설치해야 하는 것이었다.
‘채광 시설을 설치하면 금이나 은, 심지어는 마법 광물들조차 채굴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비싸군. 게다가 일꾼을 고용할 돈도 없다. 일단은 미션을 깨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좋겠지.’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린 수혁이 레밀리아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앞으로의 거점 운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레밀리아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나는 미션을 수행하러 다녀올 테니, 레밀리아는 거점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예. 최선을 다해 거점을 주인님의 마음에 쏙 드는 상태로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밭에서 나와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미션 항목을 열었다. 옆에는 레밀리아가 그런 수혁의 모습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미션을 고르는 게 좋을까.’
고민되었다.
미션 1을 제외하면 적정 랭크 외의 그 어떠한 정보도 나타나 있지 않았으며, 굳이 참고할 만한 것이라고는 각 미션에 나타나 있는 노란 화살표의 크기가 전부였다.
노란 화살표의 크기가 큰 것을 기준으로 미션을 선택해야 하나?
하지만 만약에 그 히든 피스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크기라면?
지금까지 수혁은 많이 강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E등급의 메인 미션 중 히든 미션으로 C등급의 철벽 골렘이 나왔던 것처럼, 미션의 적정 등급보다 더 강한 적이 출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너무 큰 욕심이 화를 부를 수 있었다. 신중하게. 어차피 조급해 할 것은 없었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해도 충분했다.
‘그래! 랜덤 미션이라는 기능이 있었지. 다른 미션들이 미션 포인트를 2~3에서 많게는 10까지도 소모하니까. 랜덤 미션을 사용한다면 미션 포인트를 좀 더 절약할 수 있겠지.’
어차피 수혁이 보기에 미션들은 전부 거기서 거기였다.
수혁의 스텟이 C급을 넘어서는 상태이고 장비 역시 누군가에게 뒤쳐지는 형편은 아니니, 몇 개의 B급을 제외하면 수혁으로서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을 터였다.
아주 운이 나쁘지 않는 한, 수혁은 미션 포인트를 절약할 수 있었다.
‘좋아. 랜덤 미션으로 가자!’
수혁은 랜덤 미션을 선택했다.
그러자 1~300의 미션들이 각자 어지러이 반짝이며 선택을 기다렸다.
반짝임은 서서히 느려지고, 마침내 300개의 미션 중 수혁이 진행할 미션이 선택되었다.
그것은 다행히도 B급의 미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미션들에 비해 독보적일 정도로 커다란 노란 화살표를 등에 지고 있었다.
‘헉. 잠깐. 노란 화살표가 너무 크지 않나?’
너무 어려운 미션을 피하고 싶었던 수혁으로서는 조금 부담될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이미 미션은 선택된 뒤였다.
시야가 온통 일렁이는 가운데 레밀리아가 배웅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
마침내 눈을 뜬 수혁에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모두들 쉬었으면 어서 일어나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은 호시탐탐 우리 군을 노리고 있다! 그대들은 이리와도 같은 저들의 이빨이 두렵지 않은 것인가?”
뭐야. 수혁은 어리둥절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영이었다. 간이로 막사들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저기에 적들을 막기 위한 목책이나 쇠뇌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병사들이 바쁘게 여기저기 뛰어 다닌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이 있는 곳이 한 부대 정도의 병사들이 모여 있는 연병장 구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주변의 병사들은, 병사답게 갑옷과 창으로 무장한 이들도 있었지만, 자신처럼 자유로운 복장을 입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수혁은 그들이 아마도 자신처럼 미션을 수행중인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미션이 생겼습니다.
<미션 66-A: 전장의 여명>
등급 – D
설명 – 그라델 왕국과 니펠 제국은 전쟁 중입니다. 당신은 그라델 왕국의 병사로서, 니펠 제국의 보급부대를 공격할 별동대로서의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다리온 대장의 지휘에 따르십시오. 그가 당신을 용맹한 전사들이 날뛰는 전장으로 이끌 것입니다.
성공 조건 – 다리온 대장의 지휘에 따라 기습 훈련 실시 후 귀환
실패 조건 – 1. 다리온 대장의 사망
2. 훈련에서 낙오
보상 – 3000루페, 미션 포인트 5, D급 스페셜 마정석 3
“모두들 움직이도록! 어서 움직여! 기습은 살쾡이처럼 빠른 움직임이 핵심이다! 명심하도록!”
다리온 대장이 독려하자, 수혁의 부대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온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수혁은 상황 파악도 하고 주변인들과 정보도 교환하고 싶었지만, 다짜고짜 시작되어 버린 훈련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다른 녀석들과 대화라도 하다 걸리면, 훈련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상황도 이제는 슬슬 알고 싶은데 말이지. 우리는 대체 어쩌다가 이런 세계에 떨어진 걸까.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지낸 것일까.’
미션 1에서 이주성 일행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들 역시 수혁처럼 갑자기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튜토리얼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수혁은 미션 1을 수행하는 내내 궁금했었다. 그렇다면 이 미션들은 자신에게만 주어진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그대로 있고 선택받은 몇 명만이 이 서바이벌 월드라는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
하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저들은 수혁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적정 등급이 D랭크인 이 미션에 뛰어 들 만큼의 능력도 되었다.
분명 어딘가에, 수혁이 모르는 곳에서 튜토리얼을 거친 뒤에 이 서바이벌 월드로 유입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상으로 저들이 충분한 능력을 쌓았을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일 것이다.
몇 명이나 온 걸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
만약에 이전부터 계속 이런 일이 벌어져 왔다면, 수혁이 있던 원래의 세계에서 큰 소동이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혁이 알기로 그런 일은 없었다.
수혁은 정말로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도중에 갑자기 이 서바이벌 월드로 소환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정보가 부족해. 일단 지금은 훈련을 받고 나서, 분위기가 좀 풀어졌을 때 다른 녀석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게 낫겠어.’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자신의 시스템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빌리티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메인 미션이 시작되면 1시간 이내에 자신이 사용하게 될 어빌리티를 두 개까지 선택할 수 있지. 어디 보자. 일단 발현은 고정이고. 그 다음에 이 미션에서 사용하게 될 만한 게….’
일단 동족 상잔 어빌리티를 제외하면 물리 대미지 경감이나, 정신 집중, 돈 획득 증가, 마정석 가치 상승 등의 어빌리티들이 있었다. 어느 쪽도 수혁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하지만 수혁은 지금 장착 중인 동족 상잔 어빌리티도 꽤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션 내용을 보아하니 아마도 전쟁을 하는 쪽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사람을 죽이는 효과는 둘째치고 피가 많이 흐르게 될 테지. 그러면 체력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히 도움이 될 거야.’
게다가 전쟁이라는 포맷상, 아군은 아니더라도 적군은 죽여도 특별한 패널티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이 동족 상잔의 효과가 최대한으로 발휘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척이나 땡큐일 터!
‘좋아. 어빌리티는 지금까지 그대로 간다.’
이번 미션에서 수혁이 선택한 것은 ‘발현’과 ‘동족 상잔’이었다.
마침내 어빌리티까지 결정한 수혁은 다른 병사들과 발을 맞추었다. 앞 사람의 뒤통수를 마주한 채 기습 훈련 예정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영을 떠나 얼마 정도를 걸었을까.
숲 속을 행군하던 다리온이 마침내 멈춰 섰다.
“모두들 잘 해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앞에는 놀의 서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션이 생겼습니다.
<서브 미션: 놀 서식지 습격>
등급 – D
설명 – 별동대를 지휘하는 다리온은 기습 작전에 앞서 병사들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위해 놀 서식지를 공략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들을 습격하여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훈련에서 낙오하게 될 것입니다.
성공 조건 – 적어도 한 마리 이상의 놀 처치(0/1)
실패 조건 – 모든 놀이 사망할 때까지 성공 조건 미달성
보상 – 1000루페, 미션 포인트 1, D급 마정석 1
모두는 긴장된 표정으로 다리온을 주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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