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션 (2)
약간의 정적 후, 다리온은 진지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단숨에 적들을 제압해야만 한다. 마치 바람을 마주한 채 접근하는 호랑이처럼… 순식간의 적의 목을 뜯어내야만 하지.”
정적이 흐를 뿐이었다.
힘을 담은 눈빛으로 모두를 둘러본 다리온이 마침내 말을 끝마쳤다.
“그러면 이제부터 작전을 개시하겠다. 내가 손으로 신호를 주면, 우렁찬 함성과 함께 놀들을 덮치는 것이다. 대답 따윈 필요 없다. 자, 그러면 어서 움직이자.”
다리온이 먼저 앞서 나갔고, 나머지가 그 뒤를 따랐다.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무성했다.
그리고 바람 한 줄기가 모두의 뺨을 스친 순간, 다리온의 수신호가 올라갔다.
““와아아아!!!””
모두는 큰 함성과 함께 놀 서식지로 돌입했다.
수혁 역시 모두와 섞여 놀 서식지로 들어갔다.
“크르르르… 컹!”
놀은 개의 머리를 가진 털 달린 전사들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한 놀들이었지만, 이내 인간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음을 깨닫고 플레일이나 도끼 등을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뒤, 두 세력이 서로 격돌한다.
퍼억—! 쿵! 채앵—! 쾅!
“죽어라, 이 더러운 놀 새끼들!”
“으르르르… 크헝!”
“위대한 신 에디스께 영광 있으리!”
“으롸롸롸! 롸울!”
인간 측은 약 50명. 반면에 놀 측은 전사들을 전부 합쳐 스무 마리가 채 되지 못한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인간 측이 더 유리한 것이 당연했다.
스윽—
‘간단하군. 그나저나 이거 너무 싱거운데.’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평범한 검으로 놀 한 마리를 베어 버린 수혁이 생각했다.
나름 D등급이나 되는 미션이었지만, C등급에 한 발짝을 걸친 수혁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한 미션이었다.
하지만 그때, 움막 안에 있던 놀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놀 치프틴도.
“크륵. 케켁. 크왕!”
다른 놀들보다 신장이 2배는 되어 보였다.
한창 신나게 놀들을 사냥하던 병사들의 눈에도 동요의 빛이 흘렀다.
“모두들 물러나지 마라! 이 정도의 위협에도 물러선다면 저 가증스러운 니펠의 앞잡이들을 어찌 해치울 수 있겠는가!”
-‘다리온’으로부터 ‘전의 고조’ 효과를 얻었습니다. 모든 피지컬 계열 스텟이 1.2배 상승합니다.
슈우욱—
수혁의 몸에 약간 붉은 빛이 나는 기운이 들어왔다. 수혁은 더더욱 힘이 넘쳐 흐르는 것을 느꼈다.
수혁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모두가 이러한 효과를 얻어 기운을 냈다.
모두는 기운 찬 함성과 함께 놀 치프틴과, 녀석의 주위를 호위하는 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들 상당히 기운이 넘치는데.’
수혁은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적당히 놀을 상대하는 척하며 놀 치프틴과 다른 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놀 치프틴은 뒤덮인 털로도 가릴 수 없는 거대한 근육에,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두 손으로도 못 들 거대한 플레일을 한 손으로 든 채 병사들을 맞상대하고 있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일반 병사들의 종합 등급은 약 E~D 정도.
다리온으로부터 전의 고조의 버프 효과를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놀 치프틴에게는 먹히지 않는 듯했다.
놀 치프틴이 플레일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의 머리가 깨지고, 일부는 짚단처럼 휙휙 날아갔다.
그나마 놀 치프틴을 어느 정도 상대하는 것들은 플레이어로 보이는 자들뿐.
‘다들 꽤 실력은 있어 보이는데.’
수혁은 그중에서도 다른 이들보다 더욱 특출난 활약을 펼치는 3명의 인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놀 치프틴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것에 비해, 3인방은 그야말로 놀 치프틴을 우롱하는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현재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전선은 곧바로 무너졌을 것이 분명했다.
‘호오, 대단한데.’
3명은 여자 한 명에 남자 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소에도 자주 합을 맞춰본 듯 서로 연계하여 놀 치프틴을 상대하는데도 동선의 꼬임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주성이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 중에 파티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 서바이벌 월드에서는 서로 파티라는 것을 맺을 수가 있는데, 그것을 이용하면 파티를 맺은 사람들끼리 미션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모양이었다.
수혁이 레밀리아를 데리고 인던에 입장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원리.
아마도 저들 역시 그런 식으로 파티를 맺고 행동하는 것일 것이다. 수혁은 일단 저들의 얼굴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이쯤에서 슬쩍 빠져서….’
수혁은 이곳에 오고 나서 생긴 노란 화살표를 따라 놀 서식지에 위치한 움막 중 하나로 향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어 빠져나올 수 없었지만, 놀 치프틴에게 모든 시선이 쏟아진 지금이 찬스였다.
수혁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하나의 보물상자가 은은한 빛을 발하며 수혁이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보물상자를 개봉했다.
-놀의 비밀 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5천 루페를 획득하였습니다.
“후후후.”
수혁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거점의 확장과 시설 설치 때문에 돈이 부족하던 참이었다. 이런 식의 득템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잘하고 있다! 제군들이여! 이제 남은 것은 저 놀 치프틴뿐이다! 모두들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싸우도록!”
“와아아아!”
다리온이 마지막 싸움을 독려한다.
이제 놀 치프틴은 조금 전의 3명에 의해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 하는 찰나였다.
“크르르륵…! 크륵….”
가슴과 등, 팔 다리의 여기저기에 자상을 입은 놀 치프틴이 마지막 발악을 하려 했지만, 최후의 찌르기가 놀 치프틴의 목을 꿰뚫었다.
결국 놀 치프틴의 거대한 몸체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병사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잘했다, 제군들이여! 실제의 기습 작전 시에도 이대로만 하면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병영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서브 미션: ‘놀 서식지 습격’을 완료하였습니다. 미션 포인트 1, 1000루페, D급 마정석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5천 루페를 획득한 수혁은 시치미를 떼며 병사들 사이에 합류했다.
놀 치프틴을 상대한 3인방이 좋은 보상을 획득했겠지만, 그 대신 그들은 이곳의 플레이어들에게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수혁이 보기에 그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사람을 죽이면 괴물이 되는 패널티가 있다고는 해도, 다른 이에게 무언가 좋은 것이 있으면 빼앗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였다.
물론 저들이 다른 이들을 압도할 정도로 무력에 자신이 있다면 얘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사실, 수혁으로서는 아직 판단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 그들이 보여준 무력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수혁이 보기에는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저 놀 치프틴에게서 무엇이 나왔든 간에, 수혁은 남들 몰래 얻은 불로소득 5천 루페가 더 반가웠다. 수혁은 입 꼬리를 잡아 끈 채 다른 병사들과 발을 맞춰 병영으로 향했다.
병영으로 향하는 길은 다행히도 아까보다는 분위기가 풀어져 있었다.
수혁은 주위의 플레이어들을 관찰했다.
조금 전의 3인방을 포함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혁은 그 중 바로 옆에서 걸어가는 한 명에게 작게 말을 걸었다. 긴장해 있는 표정이 역력한 남자였다.
“저기 혹시, 이번 미션이 처음이신가요?”
“네, 네? 아, 네, 네. 처음입니다.”
“그랬군요. 사실은 저도 이번 미션은 처음인지라… 도통 감이 안 잡히더군요.”
그러자 남자는 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 없더니, 조금 전과는 다른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렇군. 당신도 그쪽이었나. 표정이 여유롭길래 파티나 길드에라도 소속된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로군.”
“길드?”
남자는 수혁의 얼굴을 약간 놀란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설마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길드를 모르다니. 당신 사정도 알 만하군. 분명 이 서바이벌 월드에 들어와 얼마 지나지 않은 초보자겠지. 여유로운 표정도 그 때문인 건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전부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는 수혁이 미션을 단 한 개만 깼음에도 C등급의 스텟에 도달했다는 것은 알지 못할 터였다.
남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자네, 아바레카라는 것의 존재는 알고 있을 테지.”
“네. 지상계로 승급한 뒤에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곳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네. 물론 나도 들은 것이네만. 다양한 상점들과, 즐길 거리와, 미션에 관련된 정보 같은 것들이 있다는 얘기야. 길드도 그곳에서 결성할 수 있지. 비록 우리 같은 초보들은 감히 가입할 꿈도 꿀 수 없겠지만….”
남자는 조금 전 놀 치프틴을 잡은 3인방을 슬쩍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3명도 길드 출신이라네. 어깨의 견장에 붉은 번개 마크가 있는 것이 보이지? 저건 아바레카의 리덴 길드 소속이라는 걸 나타내는 문양이라네. 나도 아바레카에는 가본적이 없어서 길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리덴 길드는 유명하지. 아직 지상계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들 지하계 플레이어들에게조차….”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 3명에게는 대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특히나 그 어떤 파티나 길드에조차 소속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솔로 플레이어인 우리에게는 말이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처음 튜토리얼 때 그들 파티에 따라가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어. 혼자서 아무 정보도 없이 미션을 깬다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
문득 궁금증이 생긴 수혁이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파티를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남자는 수혁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내뱉은 채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아무도 못 믿어.”
“…….”
그리고 둘은 말없이 걸었다.
수혁은 또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파티든 길드든 적어도 한군데에 소속되어야 유리하다. 하긴, 지금까지의 미션들을 생각해 봤을 때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있는 편이 더 나아 보이는 건 사실이야.’
수혁 자신도 만약에 노란 화살표가 보이는 능력이 없었다면, 이주성 일행과 함께 다니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노란 화살표가 보이는 이상은, 수혁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반드시라는 것은 아니다. 굳이 노란 화살표를 들킬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적당한 상황에서 그럴만한 누군가와 함께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루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웬만하면, 수혁은 위험 요소를 최대한 없애고 싶었다. 게다가 남자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아무도 못 믿을 정도라고 말 할 정도라면, 생각보다 사람들의 인심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로군.’
하긴, 미션 1만 해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팀으로, 파벌로 나뉘어 서로 싸우곤 했었다. 다른 곳이라고 그리 다르지는 않았을 터.
그래도 그때는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을 때고, 어쨌든 간에 서로 힘을 합쳐 미션을 깨 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연대감이 생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연적이다.
하지만 그때 공동체와의 연결고리를 잃은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의 신뢰고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이 남자처럼 위태롭게 혼자서 미션을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이야기로군. 파티나 길드 같은 건 필요 없어. 히든 피스는 나 혼자서 다 먹는다. 세력을 만드는 건 그 다음이야.’
수혁은 굳은 각오를 다졌다.
한편, 그러는 동안에 부대는 어느새 병영 근처에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그런데, 병영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다, 다리온 대장님! 병영 쪽에서 큰 화재가!”
“음…. 동요하지 마라!”
다리온은 모두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병영이 가까워짐에 따라 병영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커다랗게 치솟은 연기. 사람들의 비명. 커다랗게 울리는 뿔피리 소리.
“저, 적습이다! 기습을 위해 비밀스럽게 지어진 진영에 어째서….”
“대, 대장님! 적군 쪽에서 우리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상대는 기갑 렐리펀트 부대입니다! 이쪽의 전력으로는 결코 상대할 수 없습니다!”
“대장님! 어서 퇴각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다리온 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뜬 그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퇴각 같은 건 없다. 자랑스러운 그라델 왕국의 병사들이여, 진격하라! 그리고 그대들의 용맹함을 만천하에 떨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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