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션 (3)
다리온의 호령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미션 창이 갱신되었다.
<미션 66-A: 기습 전투>
등급 – D
설명 – 니펠 제국의 군대가 그라델 왕국의 비밀 기지를 기습하였습니다. 용맹한 다리온 대장은 저 비열한 니펠 제국의 앞잡이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릴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기습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직은 저들에게 그라델 왕국의 무서움을 보여줄 기회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성공 조건 – 기갑 렐리펀트 부대 격파
실패 조건 – 1. 다리온 대장의 사망
2. 부대의 전멸
보상 – 8000루페, 미션 포인트 10, D급 스페셜 마정석 5
임무 내용이 달라졌지만, 그만큼 보상 자체가 조금씩 더 좋아져 있었다.
하지만 그 임무라는 게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것이 문제였다.
수혁은 자신의 부대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눈이 4개 달린 코끼리 형태의 몬스터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아무리 내가 C급이 되었다고 해도 저건 못 이겨. 한 마리만 해도 버거울 것 같은데 저게 대체 몇 마리야. 스무 마리는 넘는 것 같은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저 기갑 렐리펀트 무리에 달려든다고 해도 개죽음당할 뿐이고, 도망친다 해도 미션을 실패할 뿐이다.
미션 실패하면 거점으로 못 돌아가는 거 아냐? 수혁은 걱정이 되었다.
“대, 대장님의 말씀대로다! 자, 어서 돌격하자!”
“도, 돌격! 부대 돌격! 와아아아!”
몇몇의 병사가 함성을 지르며 렐리펀트를 향해 달려나간다. 수혁은 순간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야 하나 고민했지만, 하나의 장면을 보고 마음을 고쳤다.
‘저 리덴 길드의 길드원이라는 녀석들. 분명히 같은 미션을 받았을 텐데도 렐리펀트 따위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도망치고 있어. 미션 같은 건 실패해도 상관 없다는 건가?’
어느새 주위의 플레이어들 역시 눈치를 보며 슬슬 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렐리펀트에게 돌격하는 자도 한두 명인가 있었지만,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래. 노란 화살표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지?’
미션이 갱신되는 것과 동시에 노란 화살표도 바뀌었을 터였다.
수혁은 노란 화살표가 렐리펀트 부대와는 다른 쪽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굳혔다. 오히려 렐리펀트 쪽에는 붉은 화살표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상태로는 달려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아 보였다.
게다가 애초에 다리온 대장조차도, 도망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관심이 있는 것은 오로지 NPC 병사들뿐인 듯했다.
‘그렇군. 잘은 모르겠지만, 미션 하나 실패한다고 해서 큰 패널티는 받지 않는 모양이야. 하긴, 미션 하나 깨겠다고 저 코끼리 부대에 달려들다니, 미련한 짓이지.’
미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라델 왕국이 어쩌니 했지만, 애초에 수혁은 실제로 그라델 왕국의 병사인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좋아. 이쪽도 도망치는 게 좋겠군.’
수혁은 노란 화살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런 수혁의 눈에, 무언가 의아한 것이 비쳤다.
‘붉은 화살표가 하나 더 있어. 게다가 가리키는 게… 다리온 대장?’
수혁과 다리온의 눈빛이 마주쳤다.
수혁은 다리온의 눈에서 냉정함을 읽어내고 오싹하는 기분을 느꼈다.
다행히도 눈빛이 마주친 것은 우연인 듯, 다리온은 수혁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혁은 다리온이라는 인물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는 없었다.
‘수상한 녀석이로군. 일단 기억 정도는 해 놓는 편이 좋겠어.’
아무튼 수혁은 발걸음을 돌려 전장으로부터 도주했다.
그날, 그라델 왕국의 전선은 무너졌고, 수많은 패잔병들이 발생했다.
플레이어들은 패잔병이 되어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기나긴 방황의 여정을 걷게 되었다.
***
<미션 66-B: 패잔병의 발걸음>
등급 – E
설명 – 수치를 모르는 당신은 결국 중요한 전투에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남아 있는 패잔병들과 합류하십시오. 다리온 대장 정도라면 적당한 합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 뒤, 당신은 모두와 힘을 합쳐 니펠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여정에 나아가야 합니다.
성공 조건 – 패잔병의 무리와 합류
실패 조건 – 없음
보상 – 1000루페, 미션 포인트 1, E급 마정석 2
-적군이 쳐들어온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십시오. 그렇게 하면 다른 패잔병들과 만날 가능성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수혁의 왼쪽으로부터 하나의 홀로그램 나침반이 떠올라,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노란 화살표와는 달리, 이쪽은 이 서바이벌 월드의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메인 미션을 보조해주는 모양이었다.
물론 수혁은 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미 미션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 전 경험한 것으로 충분히 깨달았다.
그렇다면, 미션보다는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당연했다.
수혁은 뒤쪽에 붉은 화살표를 이끄는 채로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과는 약 45도 정도의 방향 차이를 두고 뻗어 있는 길이었다.
숲이 펼쳐져 있었고, 개울이 가로막고 있었다. 길도 없어서 도대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끝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걸었다.
‘사람들은 하나도 못 만났군. 하긴, 나침반이 길을 알려주는데 굳이 이런 곳으로 올 사람이 있을 리 없나.’
수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야 노란 화살표가 있으니 당연하다는 듯 이쪽으로 왔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이쪽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뭐 하러 이쪽으로 온단 말인가.
‘다 노란 화살표 덕분이지. 다른 사람들은 이쪽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걸. 큭큭큭.’
수혁은 음흉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때였다.
수혁의 눈에, 우연히도 저 앞 공터에 모여 있는 2명의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나무 뒤에서 살펴보니, 리덴 길드 소속이라는 3인방 중의 두 사람이었다.
조금 전 이쪽으로 올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사람이 있었다.
‘큭,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저 녀석들은 어떻게 이 방향을 알고 있는 거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방향이 너무나도 절묘하게 일치했다. 그들 역시 무언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쪽으로 온 것이 분명했다.
현재, 그들은 서로 무엇인가를 의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를 엿듣기 위해 다가가야만 했지만, 이런 탁 트인 숲에서 그들에게 다가갔다가는 들키게 될지도 몰랐다.
‘뭔가 적당한 방법이…. 아, 잠깐.’
수혁의 눈에, 공터 근처에 세워진 거대한 바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위를 타고 오르려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들킬 테지만, 만약에 점멸을 이용한다면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도 저들 가까이에서 저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터였다.
좋아. 수혁은 마음을 먹은 뒤, 점멸을 시전할 수 있는 거리까지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에서 점멸 마법을 시전하였다.
팟—
소리는 아주 미세했다.
감이 좋은 김수현은 그 소리를 듣고 잠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다른 동료인 오광수의 의문스러운 시선을 받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잘못 들었나. 아무튼 기껏 5나 되는 미션 포인트를 소모해서 여기까지 온 이상, 뭔가 단서 정도는 가지고 가야 아깝지 않을 텐데 말야.”
“당연히 그래야지. 이미 한번 깬 미션을 또다시 깨는 것만 해도 미션 포인트가 아까운데, 여기까지 와서 아무런 단서도 못 찾으면 부장님이 또 화내실 거 아냐.”
“아, 그 꼴은 진짜 못 봐주지. 조금 일찍 길드에 들어왔다고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단발의 여성인 김수현은 재수없다는 듯 땅에 침을 내뱉었다.
바위 위에서 그 대화를 엿듣고 있던 수혁은 생각했다.
‘단서라. 이미 한번 미션을 깼으니 숨겨진 요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는 건가. 물론 이들로서도 아직 히든 피스에 대해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수혁의 머릿속에 경각심이 울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들에게 히든 피스의 단서가 주어지는 것을 막아내고, 이들보다 먼저 히든 피스를 차지해야만 했다.
물론 이들을 죽이는 것이 더 간단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수혁의 실력으로 저들을 탈 없이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사람을 죽임으로써 괴물이 되는 것도 걸렸고, 이들이 길드 소속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조금 전 남자가 말하기를 길드라는 것은 그다지 마음씨 좋은 집단은 아닌 듯 했으니, 만약 잘못해서 수혁의 존재가 그들에게 드러나게 된다면 일이 매우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결국, 이 부분은 아직 좀 더 생각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3인방 중 나머지 한 명이 공터로 다가왔다.
김수현은 쾌활한 말투로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세광 대장! 그 쥐새끼처럼 따라다니던 녀석은 잘 처리하고 온 겁니까?”
이세광이라 불린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카니발 플랜트가 있길래 던져 주고 왔지. 지금쯤 잘 소화되고 있을 거다.”
“와, 그 식인 식물에게 처리를 시키다니, 이세광 대장도 진짜 잔인하네요. 그래서 아이템은요?”
“별건 없었다. 아이템을 다 처분하면 5만 루페는 나올 것 같더군.”
“진짜로 단순한 솔로 플레이어였나보네요. 다른 길드의 추격은 일단 없음인가. 아무튼 수고했어요, 대장님!”
김수현이 이세광의 어깨를 주무르며 가볍게 애교를 부렸다.
수혁은 불쾌한 기분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아무튼 꽁냥꽁냥하는 것들은 다 죽어야 돼.’
여자친구에게 차이자마자 이 서바이벌 월드에 끌려오게 된 수혁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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