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션 (4)
한편, 수혁은 저들의 조금 특이한 부분에 주목했다.
‘저 이세광이라는 남자, 눈이 붉지 않은걸. 분명 얘기하는 걸로 봐서는 누군가를 죽이고 온 모양인데…. 설마 몬스터에게 던져주면 자신이 죽인 걸로 취급되지 않는 건가.’
수혁은 오싹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고 한다면 굳이 괴물로 변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
어빌리티나 사람을 죽였을 때 나오는 마정석은 얻을 수 없겠지만, 인벤토리의 아이템이나 돈은 습득할 수 있는 모양이고.
‘물론 어디까지나 몬스터에게 먹이로 던져줄 수 있을 정도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건 중요한 사실이야. 만약에 상대방이 나보다 월등히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저들은 자신이 괴물로 변할 위험 없이도 간단히 이쪽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거니까.’
결국, 앞으로도 계속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죽일 경우 상대방이 패널티를 얻게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과 비슷한 실력일 경우.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상대라면, 패널티 없이도 자신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 역시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누군가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수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수혁은 이 방법을 이용해 자기보다 약한 녀석들을 학살하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 방법으로는 어빌리티를 빼앗을 수도 없었고, 동족 상잔 어빌리티에 의한 스페셜 마정석도 얻을 수 없었으니까.
애초에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 수혁의 기본 방침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자가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알아둔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어쨌든 빨리 이동하지. 지금 우리가 쫓고 있는 것이 마신 수라카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다리온이 향했던 이 길을 앞질러 간다면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네요. 자, 빨리 가죠.”
3명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갔나?’
수혁은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있어야 했다.
혹시라도 저들이 자신을 발견한다면 매우 곤란했다. 어디까지나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됐겠지.’
한동안 시간을 보낸 수혁이 슬금슬금 바위 위에서 내려오려고 할 때였다.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된 수혁은 그 자세 그대로 멈춰서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번에는 또 누구지?’
수혁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금 전 3인방이 머물렀던 그 공터에 다리온이 나타났다. 여전히 붉은 화살표를 매단 채였다.
다리온은 수혁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서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와라.”
수혁은 뜨끔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우선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은 들키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 뒤에서 은근 슬쩍 튀어 나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조금 전 수혁에게 파티나 길드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던 남자였다.
“다, 다리온 대장님! 우연히 이쪽으로 향하시는 걸 봐서…. 헤헤. 같이 함께 저 니펠 제국을 무찌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메인 미션에 다리온을 따라가라는 문구를 본 그는, 다리온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몰래 쫓아오다가 지금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다리온은 거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는 그라델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꽤나 뛰어나군.”
“그야 물론입죠! 충성심하면 바로 저 아니겠습니까! 헤헤!”
“그래. 자네가 죽기에는 충분한 이유지.”
다리온의 검이 남자의 배를 꿰뚫었다.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으로 다리온을 쳐다보았다.
“어, 어째서…. NPC 주제에….”
다리온은 남자의 배에서 검을 빼며 중얼거렸다.
“니펠 제국에 충성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나.”
털썩. 남자가 쓰러졌다.
다리온이 검을 털어 묻은 피를 흩뿌렸다.
다시 검을 집어넣은 다리온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쓰러진 남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다리온이 배신자였던 거로군. 그래서 붉은 화살표가 녀석을 가리키고 있었던 건가.’
생각해 보면 오싹했다. 만약 자신 역시 미션의 내용에 따라 멋 모르고 다리온을 따라갔다가는, 조금 전 남자와도 같은 최후를 맞이했을 터였다.
어쩌면 비밀스럽게 지어졌던 병영이 습격당한 것도, 상식적으로 결코 이길 수 없을 렐리펀트 부대에 돌격을 명령한 것도. 처음부터 다리온이 배신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이번 미션은 도무지가 뭘 믿어야 될지 하나도 모르겠군. 시작부터 이런 식으로 기만 요소를 잔뜩 날려대다니!’
이제부터 믿을 건 노란 화살표 하나밖에 없었다. 수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챙길 건 챙겨야지.’
수혁은 이번에야말로 다른 이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위 아래로 내려가, 이제는 죽어버린 이름 모를 남자의 인벤토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
수혁은 남자에게 1초간 애도를 표한 뒤 인벤토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왠지 하이에나가 된 기분이라 찝찝하긴 한데. 그래도 버려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할 수 없지. 이 남자도 그걸 원했을 거야. 음.’
남자의 인벤토리에서는 현금으로 2만 루페와 D급 마정석 몇 개, 이런 저런 잡템들과 약간의 식량, 그리고 B급의 폭탄과 펭긴 변신 주문서가 들어 있었다.
생각보다 마정석이 별로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마정석이 나오자마자 바로바로 쓰는 타입인 듯했다.
그래도 돈 자체는 2만 루페면 큰 도움이 되는 금액이었고, 식량 역시 보리빵 외에도 말린 고기나 비스킷, 과일 등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아직 식량이라곤 보리빵밖에 없는 수혁으로서는 횡재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메이드 레밀리아가 밭에서 작물을 기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결실을 맺지 못한 상태였다.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었다.
‘어디 보자, 폭탄하고 펭긴 변신 주문서라.’
수혁은 B급 폭탄과 펭긴 변신 주문서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둥근 폭탄>
등급 – B
희귀도 – 흔함
위력 – 500
설명 –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폭탄. 심지에 씌워진 캡을 벗기면 심지가 타들어가기 시작하므로 취급에 주의하여야 한다.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도록 절대로 주의!
<변신 주문서: 펭긴>
등급 – D
희귀도 – 흔함
효과 – 변신하는 동안 몬스터에게서 획득하는 마정석의 가치가 1.2배로 증가
설명 – 목이 긴 펭귄 계열 몬스터 ‘펭긴’으로 변신할 수 있는 주문서. 지속 시간은 약 30분.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지만, 갈라지는 목소리 탓에 듣고 있기는 꽤나 힘들 것이다.
“별걸 다 가지고 있네.”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내심 500이라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폭탄을 보고 입가가 풀어져 있는 수혁이었다.
위력 500.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 위력의 스킬인 라인플레임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위력에는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굳이 자신의 순간 최대 화력을 산출하자면 220 정도일까.
단 한 번만을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500이라는 위력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임은 분명했다.
반면에 펭긴 변신 주문서는.
‘촌스러워. 마정석의 가치가 올라간다고는 해도, 펭긴으로 변신하게 되면 라인플레임 같은 건 못 쓰게 되는 거 아냐?’
수혁은 자신이 펭긴으로 변신한 채 털이 달린 날개로 라인플레임을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뒤뚱뒤뚱 걸으며 몬스터를 만나자 라인플레임을 휘두른다.
하지만 털 달린 날개에는 마찰력이 없기에, 미끄러진 라인플레임이 자신의 머리를 강타한다.
사망.
이런 식의 어이없는 전개가 수혁의 머릿속에 흘러 다니고 있었다.
‘변신 주문서라…. 이 부분은 조금 생각해 보는 걸로 하자.’
아무튼 수혁은 그렇게 해서 남자의 인벤토리로부터 가져올 것들을 선별해낼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선 수혁은, 다시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분명 마신 수라카던가 뭔가를 말했었지. 마신이라…. 뭔가 있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리덴 길드라는 녀석들은 마신과 관련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길드 차원에서 찾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엄청 대단한 무언가이리라.
자신이 먼저 빼앗는다면 더욱 대단하겠지.
큭큭큭. 수혁의 입가에 장난기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한편, 열심히 걷고 있던 수혁의 왼쪽 손목에 붉은색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수혁은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그러자 시스템 창이 나타나며, 그 안에 메이드 레밀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미션은 잘 진행하고 계신지요, 주인님.
“어라, 레밀리아. 거점에서 이곳으로 통신이 가능한 건가?”
-네. 주인님 컴퓨터의 통신 기능을 이용하여 통신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통신 기능을 이용하면 아이템에 따라 일정 루페를 소모하여 아이템을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며, 보물 창고를 지을 경우 더 적은 루페로 아이템을 전송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호오. 그런 기능이 있었단 말이지.
수혁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쪽은 별일 없지. 그건 그렇고 용무는 그것뿐인 거야?”
-아닙니다. 사실은 두랄초로 만든 체력 포션의 시제품이 제조되었기에 필요하시다면 가져가시라는 말을 하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음? 두랄초는 7일이 지난 후에야 재배가 끝나는 게 아닌 건가?”
-맞습니다. 하지만 식재료 상점에서 마침 싼 가격에 두랄초를 팔고 있었기에, 주인님께서 당분간 사용하실 정도로는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 소량을 구입하여 포션을 제조해 보았습니다.
기특한 짓을 하는 레밀리아였다.
“좋아. 그러면 포션 전송 가격은 어느 정도지?”
-이 정도의 등급 및 부피라면 포션 하나당 30루페가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이전 고블린 상점에서는 정가가 250루페였었다.
물론 질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훨씬 싸리라.
“흐음, 일단 다섯 개 정도가 있으면 적당하겠지. 잘 하고 있어. 그럼 계속 수고해 줘.”
-네, 그러면 곧바로 카탈로그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주인님이 두고 가신 디엘룬의 지팡이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저번 나벨카 유적지의 히든 미션 보상으로 얻은 디엘룬의 지팡이. 수혁으로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인벤토리도 비울 겸 다른 잡템들과 함께 거점에 두고 왔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욱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기에, 이것의 처분에 대하여 주인님의 허락을 맡았으면 합니다만. 주인님께서는 어떠하신지요.
“상관없어. 디엘룬의 지팡이뿐만이 아니라 거점에 두고 온 건 전부 레밀리아에게 맡길 테니까, 전부 마음대로 하도록 해.”
-예. 그러면 미션 도중 다치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드리겠습니다.
레밀리아가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끝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이윽고, 포션 다섯 개의 카탈로그가 수혁의 시스템 창에 전송되었다.
수혁은 모두 전송 받기 버튼을 눌렀다.
구입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루페가 빠져나가고, 인벤토리에 포션 다섯 개가 생겨났다.
‘나쁘지 않군. 역시 지원이 있으니 한결 든든한걸.’
이런 식으로 만약 도중에 식량이 떨어지더라도 레밀리아를 통해 식량을 지원받을 수 있을 터였다.
메이드나 집사를 고용한 플레이어만의 특권이었다.
“좋아. 이 기세로 앞에 있는 히든 피스들도 모두 차지하… 어?”
들뜬 기분으로 걷던 수혁의 앞에, 무언가 거대한 사원이 나타났다.
수혁은 말문이 막힌 채 눈앞의 사원을 올려다보았다.
“크다.”
마치 고대 이집트나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처럼 세모꼴의 형태로 올라간 검은 사원이었다.
여기저기가 무너지고 훼손되어 낡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으스스한 사원이, 숲 한가운데 자리잡은 채 불길한 기운을 풍기며 수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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