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션 (5)
그것은 아마도 버려진 사원인 모양이었다.
오갈 곳 없는 이 숲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점에서만 봐도 그렇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란 화살표는… 분명 이 사원 쪽을 가리키고 있군. 이 사원에 뭔가 있는 건 분명한데.”
조금 전 먼저 이곳을 향했던 3인방과 다리온도 이 사원에 볼 일이 있어서 온 것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조금 조사해 보는 게 좋겠군.”
일단 노란 화살표는 사원의 입구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혁이 다가가자, 당연하다는 듯 닫혀 있는 문과, 문의 가운데에 있는 6개의 구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혁은 가까이 다가가서 문에 손을 댔다.
그러자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문의 가운데에서 기이한 기운이 흐르는 장치를 감지하였습니다. 장치를 파악하기에는 탐사 마스터리의 등급이 너무 낮습니다. 하지만 고대 유물 지식의 보정에 의해 가까스로 장치를 파악할 권한을 얻었습니다.
-탐사 마스터리를 통해 이 장치를 이용하는 법을 파악하는 중입니다.
-파악 중….
-파악이 끝났습니다.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6개의 특수한 열쇠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추가로, 열쇠는 사원을 기준으로 하여 특정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파악이 끝난 6개의 구멍이 하이라이트 표시가 되어 강조되고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지도 탭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사원을 중심으로 하여 열쇠가 벗어나지 못하는 특정의 범위가 표시되었다.
수혁은 약간 놀랐다. 설마 탐사 마스터리가 이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
만약 탐사 마스터리가 없었더라면, 기껏 여기까지 와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탐사 마스터리라…. 생각 이상의 유용함에 감탄하는 수혁이었다.
‘전투에 필요 없어서 소홀하게 생각했었는데, 발현 어빌리티를 조금 투자해 주는 편이 좋으려나.’
한편, 장치가 파악된 것과 동시에 노란 화살표는 여러 군데를 향해 뻗어가는 중이었다.
지난 번 퀴벨 마을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본 적이 있었다.
분명 6개의 특수한 열쇠를 얻기 위한 단서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좋아. 그러면 어서 열쇠들을 찾으러 가볼… 응?”
수혁은 노란 화살표들 사이에 숨어 있는 파란 화살표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파란 화살표. 지금까지 나온 노란 화살표도, 붉은 화살표도 아닌 새로운 화살표의 존재.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위치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양인데. 도대체 뭐가 있으려나.’
수혁은 약간 긴장된 상태로 파란 화살표를 따라갔다.
파란 화살표는 무너진 유적의 세워진 파편 뒷면, 일반적으로는 신경조차 쓰지 않을 만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혁은 천천히 그 부분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마치 컴퓨터로 프린트 하기라도 한 것처럼 똑바른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게임은 좋아합니까?
“무슨 소리지, 이게?”
게임이야 당연히 좋아했다. 사실, 수혁 또래에서 게임 싫어하는 남자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터였다.
왜 이런 문장이 여기에 있는 거지?
수혁의 궁금증은 깊어져만 갔다.
무언가 있을까 싶어 글자를 만지거나 주변을 조사하거나 해봤지만,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문장은 문장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 다른 히든 피스와는 그 어떤 연관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이스터 에그라는 건가.’
이스터 에그. 원래는 부활절 달걀을 이르는 말이지만, 그 뜻이 변질되어 현재는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 내에 숨겨진 요소를 집어넣어 장난을 치는 것을 이른다.
숨겨진 요소라는 점에서 히든 피스와도 같지만, 이쪽은 보통 게임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이런 짓을 한 거지?’
만약 이 세계에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이런 짓을 한 거라면, 그 녀석은 상당히 악취미인 것이 분명했다.
아무도 볼 리가 없는 이런 곳에 이런 식으로 장난질을 치다니.
‘…뭐, 아무튼 별 다른 건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이 정말로 이스터 에그라고 한다면, 수혁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터였다.
수혁은 마침내 파란 화살표에게서 등을 돌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파란 화살표보다, 지금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노란 화살표가 더 중요했다.
수혁은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다가, 문득 생각난 듯 다시 파란 화살표를 돌아보았다.
한번 눈썹을 좁힌 수혁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노란 화살표 중 하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첫 번째의 화살표는 인근 호숫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한 삿갓을 쓴 인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삿갓 밑으로 드러난 털이 난 얼굴이나 소매에서 튀어나온 손 등을 볼 때 인간은 아닌 듯했다.
그의 이름은 리첸. 팬더족의 은거기인으로서, 낚시를 좋아하는 낚시광이었다.
그리고 사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수호자 중의 한 명이기도 했다.
“음? 이런 곳에 인간이 오다니, 드문 일이로군. 자네도 낚시를 좋아하나?”
수혁은 긴 말 하지 않고 본론부터 들어갔다.
“댁께서 사원의 열쇠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이미 전부 알고 찾아왔으니, 부디 내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거짓말이었다. 수혁은 눈앞의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그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노란 화살표가 그를 가리키고 있길래 넘겨짚어본 것뿐.
“…….”
그러나 그 넘겨짚은 것은 의외로 맞아떨어진 듯했다.
리첸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 모습을 보고 수혁은 눈앞의 사내가 사원의 열쇠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후우, 어디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인지 모르겠군. 그렇다네. 내가 바로 사원의 수호자 중 하나인 리첸이라네.”
“역시 맞았군요. 그렇다면 당신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 역시….”
“허허허. 이미 전부 알고 찾아왔으니 무엇을 숨기겠나. 그렇다네. 사원 근처에 흩어진 열쇠 중 하나는 바로 내가 가지고 있지.”
“역시나….”
수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그래,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나에게서 열쇠를 받으러 온 것이겠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열쇠를 얻어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그 사원은 저주받았다네. 설령 봉인된 사원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대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지. 게다가 그 시련들을 전부 뚫고 봉인된 그 힘에 다가섰다 하더라도 자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네. 커다란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런데도 자네는 그 사원에 기어코 들어가겠다는 것인가?”
수혁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금까지 무작정 히든 피스라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달려왔는데, 이렇게 듣고 보니 조금 심각했다.
사원 안에서는, 거대한 힘을 얻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다리온과 만나기 전이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다리온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된 지금은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힘겹게 미션을 따라 다리온을 쫓아갔다 죽은 남자처럼, 자신 역시 노란 화살표를 따라간 끝에 있는 것이 완전한 파멸이라면.
‘그러고 보니 이번 미션을 가리킨 노란 화살표의 크기가 다른 미션에 비해 묘하게 컸었지.’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꼭 지금 당장 이 히든 피스를 얻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메인 미션에 합류하여 다른 히든 피스를 통해 힘을 더 기른 뒤, 좀 더 자신감이 붙고 나서 이 묘한 사원의 공략에 들어가도 문제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안 되는데 나중이라고 될까? 그런 식으로 피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어. 기회는 오로지 지금뿐.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야만 해.’
그렇게 수혁은 히든 독식자로서의 두 번째 마음가짐을 다졌다.
히든 피스가 눈앞에 있다면 결코 피하지 않는다!
비록 그 끝에 파멸의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강해질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다면 수혁은 피하지 않으리라.
“피하지 않겠습니다. 사원의 열쇠를 저에게 주십시오.”
“…….”
리첸은 삿갓 밑의 눈빛으로 수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좋다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군. 하지만 그 대신에 나에게서 열쇠를 얻어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네.”
“무슨 조건입니까?”
리첸은 씨익 웃었다.
“낚시를 해서 나를 이겨야만 한다네.”
“낚시…라고요?”
리첸은 웃으며 자신이 낚싯대를 드리운 호수를 가리켰다.
“이 호수에는 아주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네. 나는 수많은 시간을 이 호수에서 낚시를 하며 보냈지만, 아직까지 단 한 가지. 청은잉어라는 녀석만은 잡아본 적이 없다네. 만약 자네가 나보다 먼저 그 청은잉어라는 녀석을 잡게 된다면, 자네에게 내가 가진 이 열쇠를 건네주도록 하겠네.”
-새로운 미션이 생겼습니다.
<히든 미션: 람바다 호수의 아름다움>
등급 – B
설명 – 람바다 호수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하나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울 같은 호수의 표면을 튀어 오르는 청은빛 잉어에 대한 전설입니다. 리첸은 이 청은잉어를 잡기 위해 벌써 몇 십 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청은잉어를 낚은 적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보다 먼저 청은잉어를 낚을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이 가진 사원의 열쇠를 건네줄 것입니다.
성공 조건 – 청은잉어의 획득(0/1)
실패 조건 – 리첸이 청은잉어를 먼저 획득
보상 – 3000루페, 미션 포인트 2, 사원의 열쇠
“저…. 낚싯대가 없는데 어떻게 낚시를 하란 거죠?”
“자네가 나의 미션을 받아들인다면, 기본 낚싯대와 낚시 마스터리 정도는 전수해주도록 하지. 물론 그런다고 해서 자네가 청은잉어를 잡을 확률은 개미의 털끝보다도 낮겠지만 말일세.”
“받아들이겠습니다.”
-‘대나무 낚싯대’와 ‘마스터리 스킬: 낚시/F’를 얻었습니다.
수혁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생겨난 대나무 낚싯대와 낚시 마스터리에 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낚시를 위한 그야말로 기본적인 것들인지라, 성능은 정말로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정말로 열심히 해야만 할 걸세. 나만 해도 청은잉어를 노리고 낚시를 한 것이 수십 년이지만, 아직까지 청은잉어의 꼬리조차 본 적이 없다네. 자네라면 100년쯤 뒤에야 심심해서 머리를 내민 청은잉어와 마주칠지도 모르겠군. 하하하!”
리첸이 수혁을 큰소리로 비웃었다. 이제 막 낚시를 시작한 수혁이 시간이 얼마가 지나건 청은잉어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데서 나온 자신감이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수혁은 앞으로는 웃는 얼굴로 리첸을 응대했다. 그리고 뒤로는 낚시 마스터리에 발현 어빌리티를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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