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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독식자-35화 (35/78)

유목의 던전 (2) (수정됨)

수혁은 천장을 뚫고 끝없이 뻗어나가는 식물체를 보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당장 이 식물체를 붙잡아야만 했다.

그래야 식물체의 성장에 맞춰 식물체가 향하는 곳으로 타고 갈 수 있었다.

수혁은 재빨리 식물체에 나 있는 돌기 하나를 붙잡았다.

그러자 수혁은 식물체가 자라나는 속도에 맞춰 솟구치기 시작했다.

식물체가 뚫고 지나가고 있는 천장은, 식물체가 지나가는 경로에 맞춰 이미 어느 정도는 길이 나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거지?’

식물체는 천장을 수직으로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중간에 옆으로 휘어지고,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며 구불구불한 경로를 따라 자라나고 있었다.

통로의 크기가 의외로 꽤 커서 머리를 부딪칠 염려는 없었지만, 중간중간에 벽을 뚫고 나온 유목들이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부딪치지 않으려면, 수혁은 몸을 이리저리 기울여 튀어나온 유목을 피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방향 전환이 잘 되는 건 다행이지만, 꽤 아슬아슬한데. 촉수에 한 번이라도 걸리면 그대로 아웃일 테니.’

식물체가 자라나는 속도는 빨랐고, 통로는 길었다.

만약 여기에서 식물체를 한 번이라도 놓치게 되면, 그만큼을 이 통로 사이로 기어가야만 했다.

그것도 사방에서 뻗어 나오는 유목들을 헤치고서!

‘스릴이 넘치는군. 별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말야.’

그러나 다행이라고 할까, 무작정 방해 요소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식물체를 타고 나아가자, 통로를 따라 일정한 패턴으로 쭉 늘어서 있는 동전들의 모습이 보였다.

동전에 닿으면, 동전의 모양과 색깔,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100루페를 얻었습니다.

-500루페를 얻었습니다.

-2000루페짜리 고대 주화를 얻었습니다. 고대 유물 지식이 1 증가합니다.

연속으로 촤르르 이어진 동전들을 헤치고 나아가면, 어느새 1000루페, 5000루페, 쌓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수혁의 얼굴은 싱글벙글하기만 했다.

‘돈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10000루페, 20000루페, 계속 쌓여갔다.

물론 이러한 동전들을 잡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유목은 언제 어디서나 뻗어나 수혁의 앞길을 막아 섰고, 유목이 가로막고 있는 곳과 동전의 위치가 겹쳐 동전에 닿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동전에 최대한 많이 접촉하는 것과 동시에, 유목을 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신의 방향을 조절해야만 했다.

‘큭, 그리 쉽지만은 않은데. 하지만 그렇다고 굴러들어온 돈을 놓칠 수는 없는 법!’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럴수록 수혁에게는 도전심이 생겨났다.

눈빛이 바뀌고, 두뇌 회전이 빨라졌다.

두 눈이 휙휙 지나가는 환경 정보를 두뇌에 전달하여,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한다.

유목의 위치, 현재 자신이 매달려 있는 식물체의 이동 방향, 속도, 동전의 위치와 패턴, 그리고 팔을 뻗어서 닿을 수 있는 위치까지!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이 향해야 할 방향과 거리를 선택한다.

‘여기서는 조금 왼쪽! 큭, 유목이 막고 있어서 동전을 집을 수가…. 그렇다면 동전만 빼서 집으면 되는 거지!’

파바바밧—

유목 사이사이에 위치한 동전들에 수혁의 손이 뻗어졌다가, 다음 유목에 걸리지 않도록 번개처럼 회수된다.

수혁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많은 돈을 얻고 가야만 한다.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하지만은 않을 테니!’

수혁은 신묘한 움직임으로 동전들을 회수하며 식물체를 타고 나아갔다.

길고 긴 질주가 끝나고 마침내 어딘가 새로운 공간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는,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젠장, 세 개나 놓치다니!’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수혁이 획득한 돈은 무려 7만 루페!

그런 거금을 한 순간에 손에 넣었으면서도 동전을 세 개나 놓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있는 놈이 더했다.

‘후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시 돌아갔다간 유목들의 손길에 붙잡히고 말 거야.’

수혁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이곳은 던전이었다. 항상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근데 여긴 또 어디지.”

어느새 유목들이 또다시 스멀스멀 수혁을 쫓아오고 있었다.

수혁은 유목들을 피해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분위기가 달라졌어. 이전 던전이 갈색이었다면 이곳은 푸른색이라고 해야 하나.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느낌이 감도는군.’

길을 살피는 수혁의 앞을 하나의 몬스터가 가로막았다.

푸른 크리스탈 형태에, 눈코입은 없고, 공중에 떠 있었다.

주변에는 한 줄기 노란색의 빛이 타원형의 궤도를 그리며 크리스탈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블루 크리스탈. 이동 속도는 느리지만, 단단하며 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기에 위협적인 몬스터였다.

물론 이런 류의 몬스터와 처음 만나는 수혁이 그런 것 따위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신기한 마음을 품은 채 블루 크리스탈 앞으로 다가선다.

“이건 또 뭐지? 어쩐지 주워서 팔면 비싸 보이게 생겼는데.”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동전들이 굴러다니다보니 자연히 생각도 그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 아무리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는 비쥬얼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블루 크리스탈의 주위를 감돌던 노란색의 빛이 점점 강해져, 동시에 블루 크리스탈의 최상단에 모여 들었다.

에너지의 축적. 이윽고 모여든 에너지는, 발사되기 직전 딱 한번만 점멸한 뒤, 수혁이 있는 곳을 향해 엄청난 섬광과 폭음을 동반하여 폭사된다.

콰앙!

간신히 피한 수혁이 뒤를 돌아보자, 커다랗게 파인 벽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는 유목들이 기어나와 수혁을 노리고 있어야 하겠지만, 위력이 위력이다보니 유목 자체의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모습이었다.

수혁의 뺨에 한 방울 땀이 흐른다. 설마 평범해 보이는 크리스탈 따위에게서 이런 위력이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다 못해 조금 전 상대했던 커크 트리만 생각해 봐도 이 정도의 위력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비동작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한 방만 맞으면 물리저항이고 마법저항이고 간에 그냥 가버릴 것 같은데.’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하지만 이대로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행동해야만 했다. 또다시 저 공격을 한 몸에 받았다가는 정말로 살아서 나갈 수 없을 터였다.

다행히도 블루 크리스탈은, 한 번 거센 공격을 가하고 난 뒤에는 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무언가에 공명하는 듯 천천히 떨리며 주위를 도는 노란빛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저 노란빛이 다 커지고 나면 또다시 공격이 시작되는 듯했다.

바로 지금 이 타이밍이야말로 저 푸른색의 크리스탈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수혁은 마가의 서를 꺼내들었다.

“아이언 차지.”

처음에는 D등급이었던 아이언 차지 마법도, 지금은 발현에 의해 C등급까지 올라갔다.

이를 라인플레임에 적용하면, 그것만으로도 자체의 공격력을 50% 정도는 올려줄 수 있었다. 속성의 상성만 잘 맞아 떨어진다면 100%까지도 올라갈 것이다.

세 번의 공격 기회가 수혁에게 주어졌다. 수혁은 움직임이 굼뜬 블루 크리스탈에게 접근해, 그대로 대검을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의 공격을 하려는 그 순간, 수혁에게 다른 곳에서부터 공격이 날아왔다.

수혁은 반사적으로 대검을 들어올려 그 공격을 방어했다. 다행히도 블루 크리스탈의 경우처럼 무지막지한 공격이 아니라, 광선 정도 위력의 공격이었기에 수혁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한 종류가 아닌 모양인데. 파란 녀석 말고도 빨간 녀석에 초록 녀석에….’

수혁은 눈을 좁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붉은 크리스탈과 초록 크리스탈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의 공격은 붉은 녀석으로부터 나왔었다.

아무래도 이 크리스탈들은 색깔에 따라 공격 방식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좀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은데.’

수혁은 양손으로 대검을 쥐며 생각했다.

일단은 한놈부터.

수혁은 자신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블루 크리스탈을 쳐다보며 싸늘한 시선을 옮겼다.

***

“허억…. 허억…. 휴우. 이 근처에 있는 녀석들은 거의 다 쓰러뜨린 것 같은데.”

크리스탈과의 전투는 매우 격렬했다.

수혁의 예상대로, 크리스탈들은 색깔에 따라 서로 다른 이동 속도와 공격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블루 크리스탈은 이동 속도가 느리고, 간격이 큰 한 방 공격을 한다.

레드 크리스탈은 이동 속도가 빠르며, 간격이 작은 자잘한 공격을 한다.

그린 크리스탈은 중간 정도의 이동 속도에, 유도성이 있는 연발 공격을 날려댔다.

마치 일반적인 파티의 마법사와 전사, 궁수와도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 크리스탈들의 조합 탓에 고전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종합적인 전투 능력 자체는 D등급 정도인 수준. C등급의 스텟을 가지고 있는 수혁에게는 해볼만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수가 많고, 주변에서 수혁을 덮쳐오는 유목의 손길이 너무나도 짜증난다는 점.

“젠장, 전투가 끝났는데도 쉬지도 못한다니, 짜증나는구만.”

수혁은 다가오는 유목을 슬쩍 피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이미 부서져버린 크리스탈의 파편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아이템 창들이 여기저기에 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불평을 입에 담던 수혁의 입가가 슬쩍 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하는 것 자체는 짜증난다 하더라도 이들에게서 나오는 보상 자체는 꽤나 짭짤했기 때문이었다.

이 크리스탈들에게서 드랍되는 것은 D급의 스페셜 마정석과 크리스탈 조각이라는 잡템, 그리고 약 400루페 정도의 돈.

그 중에서도 수혁이 주목한 것은 스페셜 마정석이었다.

스페셜 마정석!

이름만 들어도 스페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특수한 마정석은, 드랍률이 무척이나 낮았다.

일반적인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했을 때, 10마리를 사냥해서 1개가 나온다면 잘 드랍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특수한 몬스터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가끔씩 등장하는 네임드 몬스터의 경우에는 2마리 중 1마리 꼴로 스페셜 마정석이 드랍되었으며, 에스티거나 철벽 골렘, 미션 1-E의 보스였던 철혈의 고블린 등 보스 몬스터의 경우 100%의 확률로 스페셜 마정석을 드랍한다.

다시 말해, 여기에 있는 이 크리스탈 몬스터의 경우 보스 몬스터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뭔가 그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짭짤하군. 이 유목들만 없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가면 갈수록 유목들이 짜증나는 수혁이었다.

현재, 수혁은 몇 갈래로 나뉜 노란 화살표 중 하나를 따라 무작정 걷고 있는 중이었다.

히든 피스를 나타내주는 것 자체는 불평할 나위 없었지만,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화살표의 크기가 어느 정도 중요성을 나타내주기는 하지만, 그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사실,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 싶었다.

“일단은 제일 큰 화살표를 노려야지. 제일 어려운 걸 하고 나면 그 다음의 히든 피스는 간단히 할 수 있을 테지.”

어려운 부분과 쉬운 부분이 있으면 어느 것부터 하느냐. 수혁의 성향은 전자에 가까웠다.

물론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느냐 찍어 먹느냐처럼 의미없는 일이긴 했다.

“자, 그러면 제일 큰 화살표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화살표의 끝에는 하나의 방이 있었다.

보스방일 가능성이 컸으므로, 수혁은 경솔히 발을 들여놓거나 하지는 않았다.

모든 보스방이 들어온 자를 가두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방에 갇혀버린다면 수혁으로서도 난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수혁은 입구 앞에서 방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

바로 돌아섰다. 방금 본 것을 못 본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방 안에 들어 있는 건 충격적이었다.

“미친 거 아냐?! 아니 어떻게….”

경솔하게 방 안으로 발을 들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방 안에는 매우 거대하고 반투명한 나무 괴물 하나가, 수혁을 광채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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