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의 열쇠 (2)
리덴 길드의 3인방은 설치해둔 함정들을 점검하였다.
마신 수라카의 행방을 조사하는 것. 그것은 리덴 길드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
길드장 슈라이에 의해 내려진 제1의 특명이었다.
설령 그것이 수라카의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신과 관련된 히든 피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희귀하며, 가치가 있다고 전해진다.
서바이벌 월드의 배경이 되는 판데라 대륙에서, 신과 마신의 수는 각각 7과 12. 7천신과 12마신이 존재하여 태초부터 세계를 다스려 왔다고 전해졌다.
다만, 현재에도 계속 하늘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7의 천신과는 달리, 12마신 중 6의 마신은 천신의 도움을 받은 용맹한 전사들에 의해 봉인되어, 지금은 그에 관련된 흔적만이 판데라 대륙에 남아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단지 흔적에 연관된 미션만으로도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져다주었다.
때문에 이들은, 최대한 무리를 해서라도 다리온과 싸울 필요가 있었다.
비록 자신들에게는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라고 하더라도.
“길드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건 이 정도인가. 전기 트랩에 자동 저격 쇠뇌, 화염 브레스 주문서에 끈끈이 그물 트랩까지. 100만 루페는 넘게 들었겠군. 이거 어깨가 상당히 무거워졌어.”
“괜찮아요, 형. 제가 녀석이 열쇠 숨기는 부분은 잘 봐뒀으니까, 기회를 봐서 열쇠를 스틸하면 되니까요.”
오광수가 단검을 손가락 사이로 돌리며 말했다.
그는 도적 계열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어빌리티 역시 은밀한 손길, 단검 다루기 등 물건을 훔치거나, 단검 계열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어빌리티로 장착 중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다리온이 사원의 열쇠를 가지러 이 성소에 들어온 순간, 길드 아이템 전송으로 받은 함정들과 주문서를 이용해 순간적인 폭딜을 가하는 것.
그리하여 다리온을 죽일 수 있다면 최상이고, 죽일 수 없다 하더라도 다리온과의 전투 중에 일어날 혼란을 노려 녀석이 가지고 있는 열쇠를 훔친다.
단지 열쇠를 빼돌려 조사할 수만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이득이다. 이후 잡아둔 엘프로부터 나머지 사원 열쇠의 행방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더 좋고!
“좋아. 그러면 모두들 제자리를 지키도록.”
“알았어요, 형.”
“네, 대장님.”
셋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자리로 흩어졌다.
기둥 뒤와 제단 뒤, 의자 밑 등.
중앙의 열쇠가 봉인된 장소에 다리온이 도착하여 열쇠에 손을 댄 순간이 바로 이들이 나올 차례였다.
모두들 자리에 숨어 숨을 죽이고 다리온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다리온이 나타났다.
“…뭔가 이상하군. 마을에 누군가 나타나 마을을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사원의 열쇠는 손대지 않았다…?”
3명은 긴장한 상태로 다리온의 행보를 주시했다.
다리온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보통은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에 붙여진 트랩 주문서를 확인하고는, 품에서 동전을 꺼내 트랩 위로 던졌다.
날카로운 강철의 창이 돋아나 동전을 꿰뚫는다. 만약 다리온이 그 자리를 밟았다면 몸이 성치는 않았을 터였다.
“…하하. 이 정도의 트랩으로 이 다리온님을 잡으시겠다? 웃음만 나오는군.”
그때, 사방으로부터 트랩이 발동되었다.
다리온을 향해 뜨거운 화염과, 치명적인 독이 묻은 단검들과, 화살과, 마법들이 쏟아져 내렸다.
다리온은 훌쩍 뒤로 뛰어 모든 공격들을 회피하고는, 모습을 드러낸 3명의 플레이어와 마주했다.
“형, 어떡하죠? 이래서는 작전이 완전히 물거품이….”
“걱정하지 마. 아직 트랩들은 남아 있다. 조금 버거울 지 모르지만, 못 잡을 정도는 아니야.”
이세광은 검을 들어 올렸다. 뒤이어 오광수는 단검을, 김수현은 활을 들어 다리온에게 겨눴다.
“호오, 재밌군. 한번 해보자는 건가. 마침 심심하던 차에 잘 됐군. 자, 덤비게나.”
다리온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세광은 난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광수가 제 역할을 잘 해주기만을 기도하며, 이세광은 다리온을 공략할 방법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
수혁이 엘프의 무리에 섞여 성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다리온과 리덴 길드 3인방에 의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운이 좋아. 다행히도 타이밍은 잘 맞춰 들어온 것 같군.
병장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수혁의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하는 사실이 떠올랐다.
‘안쪽에 분명히 리덴 길드의 그 녀석들도 있을 텐데. 녀석들이 내 얼굴을 보고 도망치면 어떡하지? 분명 수상하게 생각할 게 뻔한데.’
현재 수혁이 저들을 죽여 입을 막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살기 스텟도 살기 스텟이지만,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해도 저들에게 무슨 수단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법.
자신에게 점멸 마법이 있는 것처럼, 저들 역시도 비상 탈출용의 수단 한두개 정도는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게 수혁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들에게 처음부터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엘프들 사이에 숨어 들어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난 인간이고 이 녀석들은 엘프니까 나만 너무 눈에 띄잖아. 뭔가 모습을 숨길 방법이 없을까?’
그때, 수혁의 머릿속에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펭긴 변신 주문서!
‘젠장, 그런 요상한 생물체로 변신해야 한다니. 분명 라인플레임도 제대로 쓸 수 없을 텐데. 하긴, 라인플레임을 든다고 해도 저 사이에서 제대로 활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수혁은 창문을 통해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몰래 훔쳐보며 생각했다.
A급 한 명과 B, C급 연합 간의 싸움.
놀랍게도, 3명이 한 명을 공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3명쪽이 밀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3명쪽은 이 전투를 위해 각종 축복 주문서를 이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랬다.
물론 수혁이 이들의 등급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눈으로만 봐도 어느 정도 견적은 낼 수가 있었다. B급으로 상승한 라인플레임의 공격력을 고려하더라도 저들의 움직임 자체를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지난 번 본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이거 어쩌면 여기서 발을 빼는 게 잘한 선택이 되는 건 아닐까.’
망설임이 수혁을 붙잡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되든 안 되든 일단은 기회라도 엿보는 것이 좋았다.
‘에이, 일단은 가보는 거야. 여차하면 점멸로 도망치면 되지.’
수혁은 결심한 뒤, 펭긴 변신 주문서를 찢었다.
수혁의 모습이 귀여운 펭긴으로 변했다. 양 손은, 털이 달려 마찰력이 없어진 만큼 라인플레임 같은 걸 쥐기에는 부적합했지만, 구부려서 가벼운 물건 정도는 쥘 수 있게 되었다.
‘큭, 거울이 없어 볼 수는 없지만 굉장히 꼴 사나운 모습일 것 같군. 그래도 이 모습이면 적어도 내 정체가 들키지는 않겠지.’
수혁은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성소의 안쪽으로 향했다.
한편, 그 사이에 먼저 성소 안으로 돌입한 십 수명의 엘프들은 화살 공격을 하기 좋도록 최대한 넓게 퍼진 뒤 다리온과 리덴 길드 3인방을 향해 공격을 펼치는 중이었다.
“인간들을 모두 죽여라! 절대로 한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엘 살바의 눈이 분노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불타오르는 자신들의 마을과 고문당한 엘프들의 모습이 선했다.
자신들을 이 꼴로 만든 3인방을 제일 용서할 수 없었지만, 3인방과 대치하는 남자 역시 용서할 수 없었다.
데 롬바님을 죽이고 사원의 열쇠를 가져갔으니까.
어느 쪽이든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갈아죽여도 시원치 않을 녀석들이었다.
‘큭, 분명히 마법 철창 안에 가둬놓았을 텐데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이세광을 비롯한 3명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 탓에 고전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엘프들의 등급은 자신보다 낮고, 길드의 일원인 자신들은 물리저항과 마법저항 역시 어느 정도는 갖춘 상태였기 때문에 버티고는 있었지만, 다리온과의 전투 도중인데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저들의 공격이 자신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다리온 역시 엘프들의 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검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화살들을 쳐내며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기회가 될 수 있다. 아까보다도 더 상황이 혼란해졌으니, 다리온에게서 열쇠를 훔치는 것도 쉬울 터.’
이세광은 오광수에게 눈짓을 했다.
척하면 척이었다. 오광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이세광과 함께 다리온에게 돌진했다
이세광은 다리온에게 맹렬한 검격을 날렸다. 뒤에서는 김수현이 다리온에게 화살들을 날려댔으며, 엘프들도 다리온을 노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다리온을 노린 공격이 연이어 펼쳐졌다.
다리온은 침착하게 매의 눈으로 모든 공격을 하나하나 검으로 분쇄해 나갔다. 하지만 그런 그로서도 이런 상황에서 도적의 은밀한 손길을 눈치챌 수는 없었다.
오광수가 단검을 뻗어, 다리온의 소맷자락을 잘라냈다.
그리고 속에서 떨어져 나온 주머니를 낚아채어, 뒤에 있는 김수현에게 던졌다.
“수현아! 이거 받아!”
사원의 열쇠가 들어있는 주머니였다.
모두의 시선이 공중에 떠오른 그 주머니에 집중되었다.
다리온도, 이세광도, 오광수와 김수현, 그리고 열심히 화살을 쏘아대고 있는 엘프들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그 주머니와… 그리고 그 주머니를 향해 달려가는 펭긴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페, 펭긴이라고?!
‘나이스 인터셉트!’
펭긴으로 변신해 있던 수혁은 긴 목을 이용해 부리로 주머니를 붙잡았다. 두둑한 것을 보니, 열쇠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내친 김에 끈끈이 혀 아티팩트를 이용해, 중앙에 놓여져 있던 마지막의 사원 열쇠마저 채가는 데 성공!
“뭐하는 거야! 빨리 저 녀석 잡아!”
“아, 알았어요! 형!”
“네, 네, 대장님!”
퍼뜩 정신을 차린 오광수와 김수현이 재빨리 수혁을 덮쳤다.
하지만 수혁을 덮치는 그 순간, 수혁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 뭣? 당황한 둘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하지만 이미 수혁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성소에 달린 창문을 통과해 점멸을 사용한 수혁은, 그대로 달려 사원으로 향했다.
달리면서도 수혁의 가슴은 쿵쾅거려 주체를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자신보다 강한 녀석들에게서 사원의 열쇠를 훔쳤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좋아. 이걸로 6개의 열쇠는 모두 갖췄다. 이제 문에 꽂기만 하면 돼!’
수혁은 펭긴의 짧은 다리를 움직여 부리나케 달렸다.
사원 안에서 무엇이 수혁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수혁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엘프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지만, 어차피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었다. 수혁은 그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뿌듯했다. 이제는 더 강해지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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