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43화 (43/78)

마신의 사원 (3) (연재 재개)

*여러분 반갑습니다.

마신의 사원 에피소드의 구성이 장기 휴재 이전과 비교해 조금 바뀌었습니다.

스토리를 따라가시려면, 마신의 사원 (1)의 중간 부분부터 다시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블린은 헤실거리는 웃음을 지은 채 수혁에게 다가왔다.

수혁은 겨우 고블린 따위에게 자신의 생사여탈권이 달려 있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고블린이라니! 튜토리얼에서나 나오는 그 약한 녀석 따위에게!

하지만 수혁은 앞으로 10분 동안은 움직일 수 없었다. 설령 고블린이 아니라 슬라임 따위가 나온다고 해도 수혁은 저항할 수 없다.

분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주도권은 완전히 고블린에게 있는 상태였다.

고블린은 수혁이 약오를 정도로 신나는 걸음으로 수혁에게 다가온다.

수혁은 긴장한 채 고블린을 올려다보았다.

고블린은 수혁에게 말했다.

“쿠헤헤, 그토록 용맹하게 싸우던 전사가 지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구나. 이대로 그냥 숨을 끊어주어도 되겠지만, 불쌍하니 한 번의 기회를 주지.”

고블린은 수혁의 주위를 정신 사납게 요리조리 뛰어다니더니, 손가락 하나를 들어 수혁의 앞에서 흔들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손가락은 몇 개지?”

“한 개.”

“틀렸어. 내가 ‘들고 있는’ 손가락이라고 했지 ‘흔들고 있는’ 손가락이라고는 안 했잖아. 고블린의 손가락은 모두 해서 8개라구. 봐, 내 손가락이 6개나 10개로 보이니?”

고블린은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며 수혁의 신경을 자극했다.

수혁은 고블린을 한 대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여전했다.

고블린은 수혁을 찌르려는 것처럼 단검을 들고 위협을 가했다.

수혁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블린은 손가락을 세 개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를 접었다.

“세 번의 기회를 주지. 한 번은 이미 끝났어. 자, 그러면 여기 이 손가락이 몇 개지?”

고블린은 또다시 손가락 한 개를 들어 수혁에게 내밀며 질문했다.

수혁은 8개라 대답했다.

고블린은 무릎까지 쳐가며 깔깔 웃었다.

“크캬캬캬! 바보냐? 한 개잖아, 한 개! 너무 힘들게 싸우느라 눈이 이상해졌나보지?”

일부러라는 듯 수혁을 크게 비웃는다.

수혁은 이제 정말로 열이 받고 말았다.

하지만 체력이 차기 위해서는 아직 7분 정도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고블린이 또다시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하나의 손가락을, 이것 보라는 듯 수혁의 눈앞에 대고 천천히 흔들었다.

“자아, 여기 눈앞에 보이는 손가락의 숫자는 몇 개지?”

고블린의 노란 눈빛이 흥미로운 듯이 수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개도 안 되고, 8개도 안 된다. 놀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10분을 끄는 것이 수혁에게 주어진 시련인 것이다.

원래라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질문에서 어떻게든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겠지만, 너무 빨리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낭패였다.

그리고 그 낭패인 상황에서, 수혁은 더욱 대담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고블린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은 것이다.

“그딴 거 몰라, 임마.”

고블린의 표정이 단번에 험악해졌다.

질문이고 뭐고, 수혁의 목을 노리고 날카로운 단검을 휘두른다.

“켓, 건방지긴! 죽어랏, 인간!”

하지만 고블린의 단검이 수혁의 피부를 꿰뚫으려는 순간, 고블린의 단검이 멈춘다.

당황한 고블린이 몇 번이고 수혁을 향해 단검을 내지르지만, 여전히 단검은 수혁의 몸을 찌르지 못한다.

물리저항 때문은 아니었다. 고블린의 이 단검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여도 공격력만은 상당히 높으니까. 웬만한 저항쯤은 가볍게 관통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외의 무언가가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고블린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편, 수혁은 긴장한 채 고블린이 자신을 찌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잘 될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되는 고블린의 도발에 결국 사용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뛰어나서 놀랐다.

만약에 수혁을 마무리지으려는 것이 고블린이 아니라 다른 몬스터였다면, 수혁으로서는 정말로 낭패였을 것이다.

‘라미롱 녀석, 잘 지내고 있으려나.’

고블린 장로 라미롱과의 인연에 의해 얻어진 능력 중의 하나. 고블린 협정!

라미롱과의 우호도 50을 소모하여 10분 동안 인간과 고블린 사이의 전투를 금지한다.

실상 수혁 정도의 능력이라면 고블린 정도야 몇 부대가 와도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필요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의외의 곳에서 수혁의 목숨을 구해냈다.

정말이지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고블린은, 여전히 당황한 채 수혁을 찌르기 위해 이리저리 단검을 찔러본다.

“왜! 왜 들어가지가 않는 거야! 크윽….”

그러는 사이 10분의 제한이 풀렸다.

수혁의 체력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된 수혁은 이제 고블린의 목을 붙잡아 들어올린다.

전세 역전.

수혁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건방지게 군 대가는 받으셔야겠지?”

“헤, 헤헤. 그, 그게 아니라…. 끄아아악!”

퍽! 퍽! 퍼억!

수혁의 주먹이 무자비하게 고블린을 구타한다.

인간이 아니니 설령 죽인다고 해서 살기 스텟이 오를 일도 없었다.

고블린이 자신에게 한 장난질 때문에 수혁은 지금 상당히 열이 받은 상태였다.

손가락 하나를 들어 고블린의 눈앞에 들이밀며 고함을 친다.

“이게 몇 개처럼 보이지? 몇 개처럼 보이냐고!”

“하, 한 개!”

퍽!

“다, 다섯 개!”

퍽, 퍽, 퍽, 퍽, 퍽!

대답하는 숫자만큼 쳐맞았다.

마침내 고블린의 움직임이 멈추자, 고블린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피가 공중에 하나의 글귀를 만들었다.

시련을 돌파한 자여. 길을 따라오라. 그 끝에,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을지니.

***

열린 문을 통해 수혁은 길을 따라갔다.

어느새 노란 화살표가 생겨 있었고, 수혁은 그 화살표를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물론 어차피 한 방향으로만 나 있는 길이었으므로, 그다지 큰 의미는 없을지도 몰랐다.

마침내 길의 끝에 도달한 수혁의 앞에, 어둡고 긴 홀의 모습이 보였다.

굉장히 넓고 어두침침해서, 반대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혁은 천천히 홀 안을 나아갔다.

문득 거대한 동상의 모습이 보여서, 수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거대한 통로 양쪽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갑옷 전사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뭐야, 단순히 동상일 뿐이잖아.’

수혁은 안심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더 앞에는 어딘지 음산한 기운을 흩뿌리는 제단과, 그 제단 가운데에 위치한 하나의 받침대. 그리고 그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 불길한 검붉은 기운을 품고 있는 구슬이 있었다.

노란 화살표는 바로 저 구슬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혁은 그 구슬로 다가갔다.

그러자 구슬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환영이라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오랜만이로군.”

검은 연기 안에서, 반투명한 환상으로 이루어진 상반신만을 가진 마신이 나타났다. 마치 알라딘의 램프의 요정처럼 팔짱을 낀 채 붉은 눈으로 수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순히 환상이긴 해도, 상반신만 가지고서 수혁을 생쥐처럼 내려다보는 그 모습에, 수혁으로서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너는 누구지?”

수혁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일부러 당당함을 내비치기 위해 반말로 질문했다.

어둠 속에 가려진 마신의 붉은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여기까지 찾아왔으면서도 이 신전이 무슨 신전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수혁에 대해 재미있어하는 것이리라.

“큭큭큭. 나의 이름은 듀나한. 흔히들 여섯 번째의 마신으로 불리며 전대륙을 공포로 물들였던 전설의 마신이지.”

“마신이라고?”

수혁은 약간 놀랐다.

물론 수혁은 이 세계에 익숙하지 않아 아직 마신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위치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수혁으로서도 마신이라는 것이 일종의 신이라는 것은 알았다.

신!

기본적으로 전지전능하고,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

혹은, 그 정도로 강하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환상에 가까운 형태라고는 해도,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수혁은 더욱더 심장이 뜀박질하는 것을 느꼈다.

‘이거 잘만 하면 한탕 제대로 건지겠는데!’

모르고 들어왔지만, 역시나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은 수혁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신의 시련과, 그 시련을 돌파한 자신. 수혁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신은 붉은 눈을 좁혀 그런 수혁을 쳐다보았다.

“그렇다. 나 마신 듀나한은, 너무 오랫동안 이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지. 수 천년의 세월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을 되풀이하고 반복하며 고통받아야만 했다. 다름아닌 나 자신을 이 빌어먹을 공간에 봉인한 녀석 탓에 말이지.”

마신의 목소리에는 끓어넘치는 것만 같은 분노가 스며들어 있었다.

수혁은 마신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월을 되풀이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일까.

하지만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마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증오한다. 나를 이 더럽고 비좁은 공간에 집어넣은 녀석들에 대해! 나는 분노한다. 내가 이곳에서 하염없이 보내야만 했던 억겁과도 같던 세월만큼!”

마신은 수혁 전체가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손가락을 수혁에게 향했다.

“나의 시련을 통과한 그대여. 그대는 나의 힘을 받아들일 자격을 갖추었다. 그대는 눈앞에 닥친 시련에 굴하지 않고, 두려워하여 물러서지 않았다. 해야만 할 때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갖추었으며, 위기에서 벗어나는 기지를 갖추었다. 그런 그대라면 이곳에 비참하게 갇혀 있는 나를 대신하여 나의 숙원을 이루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붉은 눈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신은 말을 이었다.

“검을 들라. 그리고 신을 죽여라. 그러기 위한 힘은, 이 내가 보증하도록 하지. 그대는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만 하면 그대는 엄청난 힘을 얻게 될 것이니!”

수혁은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기세로 마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마신이 목소리 톤을 바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대는, 그대가 몇 번의 시련을 통과하였는지 알고 있는가?”

수혁은 마신의 말을 듣고 천천히 세보았다.

첫 번째는 퍼펫, 두 번째는 오크, 세 번째는 오거, 네 번째는 리자드맨이었고, 다섯 번째가 고블린.

총 다섯 번이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몇 번째의 마신이라 불리는지 알고 있는가?”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에 들었지 않은가.

여섯 번째의 마신.

미션 66 안에 있는 히든 피스였으며,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열쇠도 6개….

“진정한 마지막의 시련이 그대를 기다리는구나.”

쿠구궁—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에 수혁의 고개도 저절로 돌아갔다.

뒤에는, 도중에 마주쳤던 거대한 갑옷 기사의 동상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었다.

아파트 3층보다도 더 커 보이는 갑옷 기사 두 명이, 수혁을 향해 거대한 창을 겨누고 있었다.

수혁의 표정이 떫은 감이라도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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