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46화 (46/78)

다리온과의 혈투 (1)

눈앞이 아찔했다.

붉은 화살표가 사원의 문 바깥을 가리키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 바로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리온의 공격은 수혁의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도 훨씬 빨랐다.

지켜보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그 찰나의 순간에서도, 수혁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촤악!

간신히 다리온의 검을 피한 수혁의 어깨에 한 줄기 혈선이 그어졌다.

화끈한 감각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행히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젠장, 다짜고짜 공격하다니!’

수혁은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온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그런 것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자신을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짐작 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사원의 열쇠를 훔친 대상은 다름 아닌 다리온이었으니까.

‘뒤끝 장난 아닌데. 그깟 열쇠 하나 훔쳤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냐!’

또다시 다리온의 검격이 날아온다. 수혁은 그것을 굴러서 간신히 피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시련을 돌파하고 나서 스텟이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다리온에게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다리온은 괴물이었다.

-‘다리온’의 선제공격에 의해 정당방위 모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다리온’을 해치워도 살기 스텟이 오르지 않습니다.

‘젠장,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정당방위고 뭐고 무슨 소용이야!’

재빨리 일어서서 거리를 벌렸지만, 다리온은 싸늘한 눈빛을 한 채 수혁에게 다가왔다.

“잘 피하는군. 만약 마신에게서 이어받은 힘을 개화시킨다면 더 잘 피하게 될 테지. 그 전에 네 녀석과 마주치게 된 것이 행운이로군.”

마신에게서 이어받은 힘이라.

그러고 보면 조금 전 자신의 움직임은, 평소보다도 좀 더 기민했던 것 같다.

민첩함이 높아졌다기보다는, 반응 자체가 빨라졌다는 느낌.

마치 다리온의 공격을 예측한 것처럼.

아마도 이것이 육감이라는 스텟의 힘인가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아직 5밖에 되지 않는 육감 스텟의 위력은 미미하기 그지 없었다.

만약 스텟이 좀 더 높았더라면 사원의 문을 열기 전부터 싸한 느낌을 받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바로 눈앞에 다가온 공격에 대해서만 미미한 예지 효과를 보여주었기 때문.

등급으로 따지면 아직 E등급에 불과하니 A등급인 다리온을 상대로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발현을 쓰려고 해도 이런 전투 상황에서 마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큰데다가, 만약 성공한다 하더라도 단일 스텟이 아니라 분배 적용되기 때문에 당장은 그리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자기자신에 대한 발현은 아직 쿨타임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위험하다. 다리온의 공격이 전혀 보이지 않아.’

수혁은 지금까지 이런 적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상대하는 적들이 어느 정도 수혁의 수준에 맞춘 상태였고, 설령 공격 한 방 한 방이 묵직할지언정 수혁이 피하지 못할 정도의 공격이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다리온은 달랐다.

육감이라는 스텟 덕에 공격을 피하긴 했어도, 수혁은 어떻게 자신이 그 공격을 피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려웠다.

식은땀이 흘러나와 등이 축축하게 물들었다.

빠르다는 것은, 그것도 인지하기 힘들 정도의 빠름이라는 것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괴물처럼 미지의 공포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마치 전신에 칼날을 가져다 대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털이 곤두선다.

‘도망쳐야 해. 정당방위고 뭐고 이 녀석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본다.

다리온의 공격을 피하는 과정에서, 둘은 사원 입구 밖의 돌바닥 위에 선 채 대치하는 중이었다.

물론 여유로운 것은 다리온 쪽. 긴장한 채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찾는 것은 수혁 쪽이었다.

‘일단 달려서 도망치는 건…. 힘들 것 같군. 얼마 달리지도 못해서 따라잡히고 말 거야.’

직접 시도해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장에 어디로든 달릴 수 있는 이런 개방된 공간에 자신을 둔 채 다리온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등을 보이면,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등에 검이 날아와 꽂힐 것만 같은 상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면으로 싸울 수는 없잖아. 뭔가 상황이라도 이쪽에 유리하면 뭔가 해볼 수 있을 텐데….’

그때, 수혁의 눈에 사원의 한쪽 부분이 들어왔다.

현재는 대낮.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빛에, 사원 한쪽에 그늘이 져 길게 늘어져 있었다.

수혁이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사원을 중심으로 반의 반 바퀴를 돌면 도달할 수 있는 곳.

평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리기는 했어도,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 기둥이나 부서진 바위 등의 장애물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수혁의 눈이 좁혀진다.

‘그림자는 곧 어둠.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는 어둠 내림 망토의 효과를 사용할 수 있다. 바깥이라 완벽하게 빛을 차단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차피 빛이 없으면 이쪽도 난처한 건 마찬가지니까.’

다리온의 오감을 속이는 것은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은밀 행동 효과만 받는다고 해도 상황이 훨씬 좋아질 터였다.

다만 문제는, 그 그늘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길을 다리온이 가로막고 있다는 점.

“머릿속이 온통 달아날 생각으로 가득하군. 하지만 이 다리온과 마주친 이상 그런 길은 없다. 주저앉지 않는 것만은 칭찬해주지.”

“거 참 말 많군. 빨리 덤비기나 하시지.”

다리온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수혁에게 짓쳐든다.

대쉬 계열의 스킬을 이용해, 거의 순간이동과 같은 속도로 수혁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본래라면, 수혁으로서도 미처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혁은 대쉬 스킬처럼 유사 순간이동이 아닌, 진짜 순간이동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다리온의 검이 수혁을 꿰뚫으려는 순간, 수혁은 점멸을 써서 다리온이 있던 방향으로 넘어간다.

‘큭, 아까운 점멸을 이렇게 사용하게 되다니. 하지만 그래도 그 덕에 그늘 쪽에 거의 도착했다!’

수혁은 인벤토리로부터 어둠 내림 망토를 꺼내 착용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수혁은 사원의 그늘 영역으로 들어섰다.

“훗, 건방지군. 내 앞에서 그런 시덥잖은 재주를 부리다니!”

다리온이 곧바로 수혁을 추격한다.

시야에서 사라진 탓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렇게 넓은 장소에서 기척을 숨길 만한 장소는 없는 것이다.

돌바닥에 깔린 모래를 밟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나, 그 소리를 추적한다.

‘됐어. 일단 몸놀림이 가벼워진 건 분명해.’

수혁은 자신의 스피드가 빨라진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늘 정도의 어둠이지만, 은밀 행동의 30% 몸놀림 증가 효과를 받기에는 충분한 듯했다.

“놓치지 않는다!”

다리온의 기합성이 들리고, 수혁을 향해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발출되었다.

상당한 양의 마력을 소모하는 스킬이지만,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강하기 때문에 방심했다가는 한 방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수혁은 육감과 빨라진 몸놀림의 효과를 통해 간신히 검기를 피해낼 수 있었다.

콰앙!

빗맞은 다리온의 검기는, 수혁의 뒤에 있던 구조물에 적중하여 구조물을 무너뜨린다.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지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수혁은 근처의 거대한 기둥 뒤에 숨는 데 성공한다.

“이 쥐새끼 같은 녀석, 그렇게 숨으면 못 찾을 줄 알았나?”

원래라면 숨는다고 해도 숨을 때 나는 소리만으로 그 위치를 특정할 능력이 있는 다리온이지만, 방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구조물이 부서지며 피어오른 흙먼지와 소리가 수혁의 행동을 감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리온은 마력 감지 스킬을 이용해 수혁이 있는 곳을 찾았다.

가만히 서 있는 다리온에게서 농도가 낮은 마력이 뿜어져 나와, 주변의 구석구석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다리온의 감지 스킬에 감지되는 기척은 없다.

다리온은 살짝 당황했다.

‘어떻게 된 거지. 나의 마력 감지 스킬은 주변 50m에 달하는 지역의 마력을 가진 대상을 탐지할 수 있다. 녀석이 순간이동 마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조금 전의 모습을 볼 때 그 정도의 거리를 한번에 도약할 수 있었을 리가 없어.’

한편, 숨어 있는 수혁은 숨소리마저 조심하며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다.

‘이대로 숨어 있기만 해서는 곤란해. 지금은 이 망토를 통해서 들키지 않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숨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개인적으로는 그냥 이대로 사라져 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아무래도 그건 조금 힘들겠지.’

조금 전 마력의 기척을 느끼기는 했지만, 수혁은 동시에 수혁이 등에 맨 이 망토로부터 알 수 없는 보호막이 형성되어 그 마력의 손길을 피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내림 망토의 기척 감지 차단 효과였다.

가까운 곳에서 허탕을 친 다리온이 욕설을 지껄이며 수혁을 찾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혁의 손에 땀이 배어 흥건했다.

‘하지만 이대로 단순히 도망치는 것만이 능사일까. 어차피 이 그늘에서 나가면 몸놀림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운이 좋아 그늘에서는 다리온을 따돌릴 수 있다고 해도, 바깥으로 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예 밤이 되면 어디든 어둠이기 때문에 망토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겠지만, 아직 밤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대로라면 밤이 오기도 전에 다리온이 자신을 먼저 발견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점이었다.

다리온의 발소리가 커짐에 따라 수혁의 심장소리도 따라서 커졌다.

“이 다리온을 완벽하게 속이고 숨은 것만은 칭찬해주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장애물이 별로 없어. 네 녀석이 숨을 만한 곳도 한정되어 있겠지.”

스윽, 다리온이 하나의 바위 뒤를 살펴본다.

수혁의 모습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 근처에 남은 바위는 한 개.

다리온의 입가가 슬쩍 비틀린다.

‘젠장,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잖아. 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저런 괴물과 부딪치게 되다니!’

생명의 위협.

수혁은 정말로 그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도망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체력과 마력이 남아 있는 지금이야말로 녀석에게 대항할 기회였다.

식스 오브 듀나한.

마신에게서 받은 절대적인 힘!

‘하나라도 빗맞추면 끝장이야. 나 자신의 모든 역량과 신경을 집중해야만 한다.’

수혁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다리온의 발걸음을 느꼈다.

그리고 더 짙은 그림자가 나타나는 순간, 라인플레임을 꺼내들었다.

‘식스 오브 듀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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