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47화 (47/78)

다리온과의 혈투 (2)

수혁은 바람 같은 속도로 라인플레임을 휘둘렀다.

챙—!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둠 속에서의 기습임에도 불구하고 괴물 같은 다리온이 수혁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다리온도 완전히 막아낸 것은 아니어서, 옆구리쪽에 미세한 상처가 나고 말았다.

원래라면 수혁이 다리온의 옷깃조차 스치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현재 수혁이 숨어 있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 그림자가 더 짙은 지역.

어둠 내림의 효과에 의해 주위에 동화된 탓에, 다리온도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약간이라도 상처를 입힌 이상, 식스 오브 듀나한의 1타 적중 효과가 발동된다!

‘좋아, 몸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무려 36%의 몸놀림 증가 효과.

분노한 다리온이 수혁에게 검을 뻗었지만, 몸놀림이 빨라진 수혁은 간신히 그것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비록 막아내느라 팔이 저릿저릿하긴 했지만.

“이렇게 마주치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로군. 조금만 더 늦게 만났다면 정말로 고생할 뻔 했어!”

검을 맞댄 부분이 부들부들 떨린다.

검끼리 서로 부딪히기는 했어도, 수혁이 공격을 한 것이 아니라 막아낸 것이고, 검은 공격 대상이 아닌 장비 취급이므로 연속 타격 효과는 1타 적중 상태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공격을 맞힌 것으로 취급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이 불리한 상황에서 방금처럼 다리온에게 5번이나 유효 타격을 먹여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막막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다.

‘검이… 보인다!’

아까 전에는 번쩍하는 순간 코앞에서 나타나곤 했던 다리온의 검이,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그 경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은밀 행동의 몸놀림 증가 30%와 식스 오브 듀나한의 1타 적중 효과 36%가 곱해져서 적용된 결과였다.

몸놀림이 늘어날수록 동체시력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물론 아직도 다리온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는 한참 멀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암습이다. 이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은 어둠 속에 숨어 불의의 암습을 가하는 수밖에 없어.’

마침 하늘도 수혁을 돕는 듯, 작은 구름 한 조각이 흘러와 태양빛을 가리기 시작했다.

주위는 더 어두워졌고, 수혁의 미소는 더 밝아졌다.

검이 떨어지자마자, 수혁은 거리를 벌려 또다른 그늘을 찾아 들어간다.

물론 수혁의 그런 움직임을 놓칠 다리온이 아니다.

“쥐새끼 같이 도망가는구나!”

다리온은 대노하며 수혁의 움직임을 쫓는다.

하지만 아까 전의 움직임에 비하면, 수혁의 몸놀림은 훨씬 빨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어둠 내림에 의한 동화 현상 탓에, 다리온의 시각이 가벼운 착시를 일으킨다.

소리로 기척을 찾으려고 해도, 어둠 내림에 의한 동화 현상이 발소리를 희석한데다가, 조금 전부터 바람이 거칠게 불어 미세한 발소리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다리온은 또다시 수혁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어디냐. 도대체 어디에 숨은 것이냐!’

다리온의 매와도 같은 시선이 주변을 샅샅이 훑는다.

거대한 기둥과, 바위와, 풍화된 석상들.

이미 한 차례 둘러본 것들이지만, 수혁이 사라진 이상은 또다시 이 장애물 사이를 뒤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잡히기만 한다면 친히 사지를 찢어버릴 것이다!”

그의 이미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욕설을 입에 담으며 수혁의 자취를 쫓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다리온은 자신을 향해 공격이 날아오는 기척을 느끼고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스윽—

얕기는 했지만, 매우 아슬아슬하게 수혁의 공격이 적중한다.

다리온은 곧바로 반격했지만, 수혁의 팔에 얕은 자상을 만드는 데에 그친다.

수혁의 모습은 곧바로 사라졌다.

“후, 후후, 감히 이 나를 능멸하다니. 당장 눈앞에 나와 내 검을 받지 못할까!”

수혁이 또다시 튀어나와, 이번에는 다리온의 종아리에 작은 상처를 만들어낸다.

다리온은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정말 열받게 만드는군.”

벌써 세 번. 세 번이나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것은 다리온에게 있어 매우 자존심을 상처 입히는 일이었다.

고작 자신의 병사에 불과했던 잔챙이에게, 이 정도나 공격을 허용하고 말다니.

물론, 수혁이 하는 공격은, 어느 것이나 치명적인 것은 없고, 단지 자신을 약올릴 정도의 얕은 공격에 불과했다. 공격의 유효한 정도로만 치자면, 방금 자신이 수혁의 팔에 입힌 상처가 훨씬 크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검의 달인으로서 제국의 비밀 검사로 활약하고 있는 자신이 이런 공격에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매우 굴욕적이고, 또 짜증나는 것이다.

반면에, 수혁의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흥분되는 상황이었다.

‘몸놀림이 또다시 빨라졌다! 이제 3번만 더 유효타를 먹이면 돼!’

다리온의 신체와 모든 장비에 2타 적중 효과인 저항력 반감이 적용되었고, 자신에게는 3타 적중 효과인 몸놀림 66% 상승 효과가 적용되었다.

추가 공격력 역시 1000으로 늘어났지만, 아쉽게도 이 정도로 검을 부러뜨린다든지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추가 공격력은 장비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

그래도 이 정도라면 다리온의 자체 저항을 뚫지 못하는 사태를 염려하지는 않아도 될 터였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공격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얼마나 유효한 타격을 입히느냐가 중요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다리온을 정면으로 상대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조금 전 다리온과 붙었을 때, 다리온의 검술이 장난이 아닌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지만, 수혁은 검술을 거의 배워본 적이 없었다. 다리온처럼 검의 달인과 정면 승부하기에는 기술 자체가 부족했다.

‘좋아. 이대로 빗나가지만 않으면 된다. 집중해. 그리고 정신 차려. 앞으로 세 번만 더 공격을 맞추면 돼!’

수혁은 또다시 다리온의 뒤에서부터 다리온을 급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리온도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뒤돌아 수혁의 검을 막고, 오히려 수혁에게 역습을 가해 수혁의 뺨에 긴 상처를 남긴다.

때마침 태양을 가리던 구름도 물러나, 어둠 내림의 효과 역시 약해지고 말았다.

다리온의 분노에 불타는 눈이 마치 도깨비 같다.

“헬레나의 분노가 네 녀석을 불태울 것이다!”

다리온의 검격이 유성처럼 세차게 쏟아진다.

아무리 몸놀림이 빨라진 수혁이라고 해도, 상당히 버거울 정도였다.

‘젠장, 엄청 화나게 해버린 것 같은데!’

다리온의 검을 막으며 생각한다.

방금 다리온이 반격을 가하기 전에 아주 미세한 차이로 4타를 적중시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번의 공격이 문제였다.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또다시 기습을 가할 수 있을 텐데, 다리온의 기세가 너무나 격렬해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미 밝아진 주위 때문에 제대로 도망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결국 정면 대결로 상대하는 수밖에 없는데, 과연 다리온을 상대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다는 건지….

‘아냐, 포기하지 마. 고작 두 번일 뿐이야. 처음의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은 나도 많이 빨라졌어. 게다가 5타를 맞추면 더 빨라진다. 절망할 이유는 없어.’

수혁의 눈빛이 바뀐다.

수혁은 스킬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원래라면 이 식스 오브 듀나한의 스킬을 시전하는 동안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가는 체력과 마력이 부족해지는데다가, 해당 무기를 이용한 공격이 아니면 스킬이 무효가 되므로, 이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리온의 체력과 마력은 수혁보다 많았고, 꽤 많은 양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대검을 이용하는 스킬 하나 정도는 사용해도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세 번 휘두르기!’

수혁의 대검이 연속으로 세 번을 물 흐르듯 내려친다.

하지만 수혁이 스킬을 사용하자, 도리어 다리온이 비웃음을 짓는다.

다리온이 보기에, 수혁의 이러한 공격은 너무나도 허점이 많았다. 단순히 세 번을 빨리 내려칠 뿐이라니! 검술의 검 자도 모르는 녀석이 이런 공격을 할까 싶었다.

두 번의 공격을 연이어 검을 비틀어 막아내고, 세 번째의 공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수혁의 배를 향해 치명적인 일격을 내지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미 공격을 시작해버린 수혁이 공격을 멈출 방법은 없었다.

둘의 검이 교차되고, 수혁은 자신의 5타가 미세하게 적중한 것과, 동시에 자신의 옆구리에 커다랗게 뚫린 상처가 생긴 것을 깨닫는다.

“크윽!”

수혁은 피를 토하는 고통을 느꼈지만, 상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혁의 두 눈에,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다리온의 검이 크게 확대되어 들어온다.

“그깟 조잡한 기술에 이 다리온님이 당하기라도 할 줄 알았더냐!”

예상치 못한 반격에 수혁은 당황했다.

강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이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다리온의 검이 금방이라도 수혁을 꿰뚫을 듯 날아오는 결정적인 순간.

수혁은 평소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수혁은 선택해야만 했다.

일단 피해서 다음을 도모할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마지막 6타를 노리고 다리온에게 덤벼들 것인지.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일단 도망친다 하더라도 상처 때문에 가면 갈수록 불리해질뿐더러, 조금 전 다리온이 자신의 암습에 대처한 모습을 볼 때 반드시 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수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후퇴는 없어. 단지 앞으로 나아갈뿐.’

수혁의 눈빛이 전에 없던 강한 빛을 품었다.

다리온의 빛살과도 같은 검격에 맞서, 수혁 역시도 라인플레임을 뻗어나간다.

물론 아무리 몸놀림이 빨라진 수혁이라 하더라도, 다리온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분명, 이대로 가다가는 수혁이 훨씬 큰 상처를 입고 말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수혁은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대로 라인플레임을 내뻗었다.

촤악!

수혁의 공격이 6타를 먹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반면에 수혁의 팔은, 상태가 조금 심각했다.

아니, 많이 심각했다.

잘린 왼팔의 절단면에서 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후후후, 이것으로 승부는 끝이로군. 이 다리온에게 여러 번이나 상처를 입힌 것은 칭찬해주지. 하지만 네 녀석은 이미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구나.”

“…….”

수혁은 이빨을 악물며 고통을 버텼다.

현재, 식스 오브 듀나한의 6타까지를 맞힌 수혁의 체력과 마력은 10%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배의 한쪽에는 커다란 상처가 생겨 피를 흘리고 있었고, 왼팔은 아예 깔끔하게 잘려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반면에, 눈앞에 있는 다리온은 생채기만이 생겼을 뿐, 처음과 거의 변함이 없는 상태로 건재하다.

이럴 거면 어째서 기를 써가며 6타까지의 타격을 노렸는지 의아할 정도.

아무리 공격력이 높다고 해도, 저항을 깎을 수 있다고 해도, 결정적인 공격을 맞히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노력은 가상하였다. 하지만 이로서 또다시 헬레나의 전사가 마신의 불길한 힘을 이어받은 전사보다 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도다.”

다리온은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수혁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횡으로 검을 그었다.

“신께 영광 있으리!”

그와 동시에 오른팔밖에는 남지 않은 수혁 역시, 이를 악물며 라인플레임을 들었다.

다리온의 공격에 맞춰서, 어설프게 라인플레임을 휘두른다.

물론 바보 같은 짓이었다. 어떻게 당장은 다리온의 검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수혁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무의미했을 터인데….

푸슉!

다리온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의 갈라진 배를 쳐다보았다.

손에 든 검 손잡이의 위에는, 깨끗하게 잘린 검날의 단면이 보였다.

어째서?

다리온이 의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혁의 눈을 쳐다보았다.

수혁 역시 힘겨운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다리온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다.

수혁은 다리온의 심장에 라인플레임을 꽂아넣었다.

“크헉! 어, 어떻게 이런….”

“너무 자만했군, 다리온.”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리온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쓰러진 수혁은 가쁜 숨을 내쉬며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의 여운을 느꼈다.

첫 살인이었지만, 살인이라는 자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몬스터와의 전투를 겪기도 했거니와, 상대방이 자신을 죽이려 한 NPC라는 점 때문인지도 몰랐다.

‘저항 무시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사기적이군.’

비록 수혁의 검술이 미숙하여 6타를 마지막의 일격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6타를 맞힌 덕분에 장비를 포함한 다리온의 모든 저항을 0으로 만들 수 있었다.

여타 게임에서처럼 HP 등의 체력 바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공격이 적중하였을 때 그것을 견디는 것은 오로지 저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즉, 저항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공격이 적중하더라도 찢겨나가는 종잇장 상태라는 것과 마찬가지.

6타를 맞힌 뒤 추가 공격력은 사라졌지만, 이런 식으로 다리온을 지킬 장비나 무기의 강도가 모두 0이 된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딪친다는 것은, 이처럼 일방적인 결과를 부를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것이라면 저항이 없어진 상태에서 추가 공격력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었지만, 몸집이 큰 괴수를 상대할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어디까지나 상대가 인간이었기에 추가 공격력을 버리고서도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된 것이었다.

‘강한 녀석이었어. 이 녀석과 싸워서 이겼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

수혁은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다리온의 시체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설마 붉은 화살표가 표시된 대상과 싸워 이기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수혁은 몰랐지만, 종합 등급 C인 수혁이 A등급인 다리온을 이겼다는 것은 판데라 대륙의 역사에 남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아무튼 수혁은 다리온의 시체 위에 뜬 드랍 아이템 창으로 다가섰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 머리가 어지러웠다. 포션은 시련을 통과하는 데 모두 사용해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다리온의 드랍 아이템에서 얻게 되었으면 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