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48화 (48/78)

다리온과의 혈투 (3)

NPC에게는 인벤토리가 없으며, 원래 소지하고 있던 모든 아이템들은 드랍 아이템의 형태로 나타난다.

다행히도 다리온의 드랍 아이템 중에는 포션이 있었다. 그것도 수혁은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하이 포션이었다.

‘꽤 부자였던 모양인데, 이 녀석.’

하이 포션은 가격이 한 병에 약 5만 루페나 달하는 비싼 물건이었다. 한 병밖에 없었지만, 그런 엄청난 가격의 포션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혁에게는 대단하게만 여겨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싼 포션을 아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한 차례 격렬한 싸움 끝에 수혁은 너덜너덜해진지 오래였고, 너무 많은 피가 흐른 탓에 이제는 졸리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아, 맞다. 내 팔.”

포션을 바르기 전에, 수혁은 잘려버린 자신의 팔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하이 포션이라고 해도 이미 잘려버린 팔을 낫게 하지는 못하지만, 절단된지 얼마 안 된 팔을 붙일 수는 있을 터였다.

‘그나마 깔끔하게 잘린 게 다행이려나.’

만약 다리온의 검이 아니라 괴물의 이빨에 엉망진창으로 당하거나 한 것이라면, 다시 팔을 이어붙이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어쩌면 잘린 팔을 포기하고 손실된 부위를 자라나게 하는 더 비싼 방법을 이용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수혁은 잘린 팔을 절단면에 붙인 뒤 하이 포션을 쏟아부었다. 나머지 상처에도 포션을 들이붓고, 남은 것은 체력 회복을 위해 직접 마셨다.

한 차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과 함께 통증이 지나가고, 흉하게 드러났던 상처 부위가 금새 아문다. 잘린 팔도 흉터 없이 잘 접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몸 상태가 어느 정도 원상태로 돌아온 것을 느꼈다.

“휴우, 이제 조금 살 것 같군. 그건 그렇고 방금 얻은 게….”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하였지만, 정당방위로 취급되었기에 눈이 붉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다리온이 가지고 있던 어빌리티를 얻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었다.

수혁은 다리온에게서 얻은 3개의 어빌리티를 살펴보았다.

<교련 담당자>

등급 – B

설명 – 부하들을 훈련시킬 경우 성장 속도가 50% 상승한다.

<위조 통행증>

등급 – A

설명 – NPC들에 대하여 다른 나라의 인물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는다. 도시 출입시 통행증 검사를 받지 않는다. 단, 비밀장소에 대한 통행은 제외.

<격랑의 검격>

등급 – S-

설명 – 거친 파도와도 같은 몰아치기를 가능케 하는 어빌리티. 검 한정으로 기본 공격 및 스킬 공격력 30% 상승, 속도 50% 상승, 체력 소모 15% 감소, 연속 타격시 공격력 및 속도 3%씩 증가, 최대 30%까지 적용. 연속 타격은 장비류에도 적용.

세 번째의 어빌리티를 마주하자 수혁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자신이 이런 어빌리티를 보유한 괴물과 싸워 이겼나 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전 다리온과 싸울 때 다리온은 세 번째 어빌리티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리온은 원래 제국의 비밀 요원으로서 적국에 잠입하였는데, 그때 사용하기 위한 어빌리티로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어빌리티를 착용하였고, 그 때문에 제일 강력한 어빌리티인 세 번째 어빌리티는 착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위장 임무이니만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고, 때문에 임무에 관련된 어빌리티만을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다리온이 세 번째의 어빌리티를 착용하고 있었다면, 아무리 수혁이 마신의 힘을 이어받았다고 한들 다리온을 이기는 것은 결코 불가능했으리라.

‘나 진짜로 죽을 뻔했구나.’

수혁은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튼 다리온이 죽은 이상은 이 엄청난 어빌리티가 온전히 수혁의 것이었다.

수혁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후후, 돌아가서 어빌리티를 정리하는 것이 정말로 기다려지는군. 아무튼 다음은 드랍 아이템을 좀 더 살펴봐야겠어.”

조금 전 포션을 찾느라 드랍 아이템을 잠깐 훑어보긴 했지만, 제대로 살펴본 것은 아니었다.

수혁은 다리온의 드랍 아이템을 더 살펴보았다.

“A급 마정석! 이 인간 정말로 강한 사람이었구나. 돈은 5만 루페 정도인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네.”

동족상잔의 어빌리티 효과 덕에 A급의 스페셜 마정석을 5개나 얻었다.

A급 마정석의 경우 스텟을 20이나 상승시켜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스페셜 마정석의 경우 일반 스텟에 대해 3배의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60에 5를 곱해 300의 스텟을 한번에 얻어낸 것이나 다름 없었다.

수혁의 현재 최고 스텟이 민첩의 350이니 가히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수혁이 이러한 일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동족 상잔의 어빌리티를 착용한 것이 행운으로 작용한 셈이었다.

아무튼 그 외의 것들도 살펴보았다.

그라델 왕국에서 활동하기 위한 위조 신분증(호패와 같은 것)이라든지, 약간의 식량, 불을 피우기 위한 도구나 모포, 아마도 그라델 왕국의 군사시설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전략 지도 등이 눈에 띠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제대로 스파이짓을 하기로 작정하고 이 나라에 쳐들어온 모양이었다.

“응? 이게 뭐지?”

수혁이 발견한 것은 하나의 일기장이었다. 아무래도 다리온이 쓴 것인 모양이었다.

남의 일기를 함부로 훔쳐보는 것은 실례였지만, 주인이 이미 죽었는데 뭐 어떠냐 싶었다. 애초에 읽으라고 쓴 건데 읽지 않는 편이 더 실례일지도 모른다.

수혁은 가볍게 일기를 훑어보았다.

제국력 213. 4. 2.

천사들의 축복이 온 하늘에 가득하다. 사랑하는 그녀와의 약혼식인 오늘이 이런 축복받은 날씨라는 것은 신의 은총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레베카. 나의 사랑이자 나의 모든 것. 그녀의 미소는 밝게 빛나는 천 개의 태양과도 같고, 그녀의 숨결에는 살구의 달콤함이 실려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런 그녀와 꿈에도 바라던 약혼식을 올릴 것이다.

일기를 적는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검을 휘두르는 것밖에 모르는 내가 그녀와 하나가 되어 일생을 살아가게 되다니.

이렇게 되기까지 도움을 준 여러 인물들에게 감사해야만 할 것이다. 요르토 후작과 후바토 대주교, 기사단장 랜 경과 그 외의 친구들….

부족하기만 한 평민 출신의 내가 귀족 출신의 그녀와 약혼까지 이르게 된 것은 그들의 덕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녀와의 약혼식이 무사히 이루어지게 된 것을 천신 헬레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수혁은 적당적당히 훑으며 일기장을 넘겼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과 같은 일기장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제국력 213. 4. 14.

잔혹하도다. 어찌하여 운명은 이다지도 잔혹하단 말인가.

비보가 들어왔다. 바로 어제,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제국과 그라델 왕국 사이의 국경에서 돌이킬 수 없는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최근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사단장인 랜 경은 나에게 비밀 임무를 맡아 적국에 신분을 숨기고 침투할 것을 명령했다.

약혼식을 올린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다행히도 이에 대해서는 요르토 후작이 뒤를 봐주기로 하였다. 그가 뒤에 있는 한, 나의 소중한 약혼녀 레베카에게 누군가가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저택의 테라스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일기를 적고 있다.

한 조각 달빛이 공허한 내 마음을 시릴 듯이 후벼 판다.

이 위험한 임무가 끝이 나면, 나는 그녀에게 지고지순한 단 하나의 마음을 바칠 것이다.

마음이 착잡하다. 하루 빨리 이 사태가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할 것이다.

“…….”

수혁은 쓰러져 있는 다리온의 시체를 쳐다보며 약간은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으니 당연히 맞상대한 것뿐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제각각의 사연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리온을 해치운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수혁의 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히든 미션이 생겼습니다.

<히든 미션: 달빛 아래의 다짐>

등급 – A

설명 – 잔혹한 전쟁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찢어놓고 말았다. 아련하게 달빛이 흐르는 테라스에서, 다리온은 반드시 살아 돌아와 자신의 순정을 한 명의 여인에게 바칠 것을 다짐하였다. 하지만 다리온이 죽음으로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다짐이 되고 말았다. 다리온이 연인이었던 레베카는 그의 소식을 언제까지고 기다릴 것이다….

성공 조건 – 다리온의 일기장을 레베카에게 전해주기

실패 조건 – 일기장의 소멸

보상 – 10000루페, 미션 포인트 5

예상치 못한 미션의 등장에 수혁은 약간 놀라고 말았다.

설마 자신이 죽인 다리온의 일기장을 그의 약혼녀에게 가져다주는 미션이 생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군.’

수혁은 자신이 죽인 다리온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한편, 소식을 가져다 준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레베카를 상상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수혁은 보상 쪽을 살펴보았다.

A등급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10000루페에 미션 포인트 5라는 건 A등급인 미션 치고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짠데. 연계 미션이나 뭐 그런 것일까.’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커 보였다.

다만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이렇듯 새로운 미션이 생겼음에도 히든 미션의 길잡이를 해줄 새로운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리온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다리온의 경우, 마신의 사원 안에서부터 계속 붉은 화살표가 그가 있는 방향을 표시해주었기 때문.

수혁이 다리온을 꺾음으로서 붉은 화살표는 사라졌지만, 그런 다리온으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미션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노란 화살표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히든 피스라는 히든 피스는 전부 나타내 주었던 노란 화살표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너무 멀리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 제국이라고 했으니, 분명 이곳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겠지.’

아무튼 이 미션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수혁은 일단 미션을 수행중인 처지인 것이다. 적대국의 병사인 신분으로 제국에 쳐들어 가서 또 어느 정도의 고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미션을 수행하고 거점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어빌리티도 잔뜩 늘어났으니, 어빌리티를 연구하는 것도 필요해 보이고.’

히든 미션 쪽은, 최종 보상이 뭔지도 확신할 수 없으니 일단 지금 당장은 접어두기로 했다.

수혁은 다시 다리온의 일기장을 펼쳤다.

자신이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군사 계획의 일부가 일기장과 지도 등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래도 지금 수혁이 수행하려 하는 메인 미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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